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38화 (338/363)

338화 1억 달러의 위력

“드디어 끝나네.”

뉴스 화면에는 경찰이 출동해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시위대들을 체포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이 이번 시위로 경찰에 잡혀가는 첫 번째 시위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위가 시작된 지 벌써 사흘이 지났고, 그동안 대통령궁 앞에서는 연일 똑같은 시위가 일어났다.

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전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상대방을 향해 욕설이 섞인 고함을 외치다가 마침내는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어 정신없이 싸움을 벌이고, 잠시 뒤에는 경찰이 출동해 양측 시위대를 전부 체포해 차에 싣고 가 버린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다시 어디에선가 몰려온 시위대가 다시 대통령궁 앞에서 소란을 피울 것이다.

“저렇게 주기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건 자생적인 시위라고 보기 어렵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매일 같이 브라질리아로 시위대를 실은 수십 대의 버스가 도착하고 있다더라. 어떤 특정한 세력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겠지.”

“어쩐지 몇십 년 전쯤 한국의 정치 유세를 보는 느낌이네.”

더군다나 그런 시위가 열리는 곳은 대통령궁이 있는 브라질리아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전국 어디서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대도시의 중심가에서는 그런 종류의 시위가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었다.

유진이 탄 요트가 머무르고 있는 브라질 제일의 도시인 상파울루 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피해를 본 쪽은 우리인데, 시위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마치 이걸 기회로 나라를 뒤집어 버리고 싶은 듯해.”

명백하게 브라질 사회를 혼란으로 밀어 넣고 있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의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시위대에 공급되는 자금 대부분은 브라질 상류층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당에서도 일부 나오고 있고요. 사실 둘을 따로 나누어 말하는 게 어렵지만요.”

배에는 급히 뉴욕에서 날아온 존 브래넌도 함께였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유진이나 그의 손님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 그의 목숨과 재산을 노린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존 브래넌의 가장 큰 임무는 보스를 모든 미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고, 현재 가장 큰 위험은 이 브라질에 머무는 것 그 자체였다.

“브라질 경찰은 이번 테러를 일으킨 주범에게 사주한 자들도 그쪽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라과이 인민군과 콜롬비아의 카르텔이라고 했었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 카르텔 쪽은 그저 한 명이 개인적으로 참여한 것이고, 주축은 파라과이 인민군이었습니다.”

“파라과이 인민군은 처음 듣는데, 꽤 위험한 조직인 모양이지요?”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유성도 남아메리카 토착 테러 조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공산 게릴라 세력이 꽤 많다는 정도가 전부다.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조직입니다.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조직원들이 적어도 수백 명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꽤 많은 인원이네요.”

“주로 브라질과의 국경 지대인 콘셉시온을 근거지로 하며, 파라과이 정부나 지주들을 대상으로 20여 년 동안 테러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국경을 넘어와 브라질 지주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도 있고요.”

“결국은 그냥 범죄 조직이나 다름없네요.”

“돈은 어디까지나 파라과이 정부를 전복하고 남아메리카에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실질적인 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갱이나 마피아 같은 조직적인 범죄 집단이라는 말이다.

“브라질과 아주 긴 국경을 접하고 있기에 때때로 파라과이 경찰과 군대를 피해 브라질로 넘어와 자리를 잡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곳 상파울루에만 적어도 수십 명, 많게는 100명 이상의 파라과이 인민군 조직원들이 암약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곳 상파울루의 파벨라(Favela)에는 브라질 경찰의 치안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요.”

“아! 그 유명한 파벨라 말이로군요.”

유성도 브라질 치안의 총체적 문제점이 모여 있는 파벨라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다.

경찰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빈민가인 그곳은 각종 범죄 조직과 마약 밀매 조직들의 소굴이다.

파라과이의 반정부 테러 조직이 암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경찰 조사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뢰인의 요구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무기와 고속정, 그리고 고속정 안에 가득 담긴 폭약도 그쪽에서 준비해 준 것이고요.”

“고속정과 무기의 출처를 쫓으면 누가 사주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조직이라면 그런 중무기나 폭약을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증거가 될 수 있는 거라면 사용된 폭약이 브라질 정부군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이겠지요.”

“그럼 더 잘 된 거잖아요? 군에서 나온 폭약이라면 출처를 확인하기 더 편한 것 아닌가요?”

브래넌이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군도 경찰도 그다지 믿을 만한 곳이 아니라서 말이지요. 사실 군에도 현 대통령에 대한 비토 세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괜히 시위대가 쿠데타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군인이 대통령에 대해 불복하는 것도 아니지만.”

“복잡하네요.”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결론은 범인들을 사주한 놈들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말이로군요.”

유성과 존 브래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이 물었다.

비록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공격한 배후의 누군가를 잡지 못하는 것은 그리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브라질의 경제 협력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을 위협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솔직히 말씀드려 브라질 경찰의 의지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수사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정부와 사법제도 그리고 경찰의 부패 문제나 군대의 국정 개입 논란은 딱히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브라질 경찰 또한 아주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찰 측 고위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만, 일선 경찰은 또 다르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더군다나 조직의 윗대가리들은 파벨라에 꼭꼭 숨어 있으니, 그들을 처리하려면 경찰들도 피를 흘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금 잡은 범인들 윗선으로는 넘어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잡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존 브래넌이 싱긋 웃었다.

* * *

“5천만 헤알?”

“그래. 5천만 헤알.”

“정말이야? 그놈들을 잡아 오면 5천만 헤알을 준다고?”

“틀림없어. 5천만 헤알. 우리 팀 열 명이서 나누면 한 사람당 500만 헤알이야. 이까짓 경찰 때려치워도 그만이지.”

“5백만이면 큰돈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잖아?”

“그리고 크루제이루 조직에도 5천만을 주기로 했어.”

“우리한테 5천만, 크루제이루에도 5천만? 1억 헤알이라니 엄청나군.”

“뭐. 그쪽은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은 남자니까.”

리우데자네이루주 헌병 소속 경찰특수부대 BOPE의 특수임무조 대원들은 각자의 장비를 손질하며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위쪽에서 내려온 이번 임무에 대한 대가가 그들을 들뜨게 만들고 있는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빈민가 중 하나인 파벨라를 정찰하는 특수 부대인 BOPE 소속 대원들이지만, 매번 파벨라를 들어갈 때면 적지 않은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그런 정찰 임무가 늘 위험한 것은 아니다. 나름 파벨라를 장악한 조직과는 신사협정이 맺어져 있어 대부분은 형식적인 조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그런 형식적 정찰이 아니다. 파벨라에 들어가 파라과이에서 넘어온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해 무사히 돌아와야 하는 최고 난도의 임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임무를 내린 쪽에서도 이쪽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파벨라의 조직에게도 엄청난 거액을 찔러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한테 5천만, 크루제이루에게도 5천만인데 위쪽에서는 받아먹은 게 없을까?”

“없겠냐? 우리보다 많이 먹으면 많이 먹었겠지.”

“그렇겠지?”

“적어도 1억은 먹었다는 모양이더라.”

“미친…… 2억 헤알이라니…….”

실제 존 브래넌이 브라질 경찰에 지급한 액수는 그보다 많은 3억 헤알. 미국 달러로 대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이다.

피해를 본 유진이 범인을 잡아 달라고 5,000만 달러를 내놓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이런 나라에서야 오히려 상식적인 일이다. 돈이 없다면 어떤 조직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몸 제대로 챙겨. 기껏 500만 헤알을 받기로 했는데, 죽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야?”

“난 상관없어. 어쨌든 내가 죽어도 돈은 챙겨 줄 거지? 마리아에게 꼭 전해.”

“지랄 났다.”

브라질의 최저 임금은 약 300달러 수준, 그리고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600달러를 넘지 않는다.

BOPE 팀이 받기로 한 1인당 500만 헤알은 일반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00년을 모아도 손에 쥐기 불가능할 만큼 엄청난 액수였다.

그 때문에 위험하기로 이름난 파라과이 인민군을 체포하러 가는 발걸음도 가볍기만 했다.

* * *

“파라과이 인민군 잔당들을 소탕했다고 합니다.”

존 브래넌이 좋은 소식을 알려온 것은 다시 이틀 뒤의 일이다. 역시 돈은 언제나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파벨라로 진입한 특수부대 요원 중 두어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파라과이 인민군 잔당들은 격렬한 저항을 하다 절반 정도가 사살되고 열 명 남짓이 부상을 입은 채 체포되어 군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

“파벨라를 장악한 크루제이루 조직원들의 도움이 컸다는군요. 돈을 받은 대가는 해 준 모양입니다.”

천만 달러의 대가로 원래였다면 파라과이 인민군을 보호해 주었을 파벨라 범죄 조직이 오히려 경찰들을 도와 파라과이 인민군을 공격했다.

만일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체포하기 위해 적지 않은 경찰 병력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행이로군. 사망자가 없어서.”

“네. 다행입니다. 만일 사망자가 나왔다면 그들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했겠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의뢰자에 대한 정보는 찾았습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곧 찾아 낼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역시 돈이었다. 존 브래넌은 브라질 현지의 누군가를 통해 파라과이 인민군에게 유진의 요트를 공격하도록 의뢰한 범인을 밝히고 적절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1억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브라질에서 어지간한 재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이다.

“1억으로 모자라면 그 열 배라도 쓰지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브라질 전체가 들썩거리는 모양입니다.”

일반인이 십만 년을 일해도 모을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 걸려 있었다.

아직 누구인지 모르지만 분명 파라과이 인민군에게 의뢰하는 과정에 한두 사람이라도 중간 다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들 내부에도 1억 달러라면 눈이 돌아갈 사람이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