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쿠데타
브라질에서 벌어진 이 사태로 궁지에 몰린 쪽은 대통령과 야당이다.
유진의 투자 유치를 내세워 적지 않은 여론의 지지를 받아 왔지만, 테러 한 번으로 그런 지지가 무너져 버렸다.
한국의 예를 들어 유진에게 투자를 받게 되면 곧 브라질도 선진국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라 믿던 브라질 국민들은 이 테러로 유진이 마음을 돌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정적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든 역량을 다해 정치적 공격을 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에 대해 친화적이지 않던 언론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양쪽 지지자들이 브라질 전역에서 시위를 벌이며 부딪치는 바람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대통령과 여당의 출구는 오직 유진이 투자 의사를 명확히 밝혀 주는 것이었다.
만일 현시점에서 유진이 브라질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겠다고 나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더군요.”
유진이 탄 요트를 공격한 배후를 색출하기 위해 브라질로 날아온 존 브래넌은 그동안 브라질 현지 사정에 대해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대통령과 여당이 파라과이 테러리스트 하나 방비하지 못한 것을 빌미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답니다.”
“그건 곤란한데.”
유진은 결코 브라질에 대한 투자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저 좀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내기 위해 뜸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정말 쿠데타라도 벌어진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군부는 결코 서민들과 친한 관계가 아니다.
꼭 브라질만의 일이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군부가 일으키는 쿠데타는 늘 특권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특권층의 경우 자국의 경제를 개방하고 시장의 규모를 확충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농장이나 광산의 유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쿠데타가 성공할 것 같습니까?”
“성공의 가능성은 솔직히 말해 저로서도 예측이 어렵습니다. 브라질의 정치 지형이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만일 쿠데타가 벌어진다면 아주 사소한 계기로 크게 성공할 수도, 반대로 사소한 실수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반반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밖에 드리기 어렵군요.”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사람은 특정되나요?”
“남동부 군사 사령부와 플라날토 군사 사령부 쪽이 유력해 보입니다. 특히 브라질리아에 주둔한 남동부 군사 사령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존 브래넌은 플라날토 군사 사령부가 수도 브라질리아의 방위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 사령부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수도방위 쪽이라면 대개 자신과 가까운 장성이나 심복을 심어 놓는 게 보통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브라질 군부가 워낙 그런 성향이 있습니다. 지난 23년 시위 때에도 군부는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지만, 교묘하게 시위대들의 편을 들었다는 의혹이 있었어요. 폭동 발생 전 주요 건물에 대한 경비를 느슨하게 하고, 상부에 휴가를 떠났다고 보고했던 군사경찰 주요 간부가 현장에 있다가 발각되기도 했었지요.”
의혹은 어디까지나 의혹에 불과할 테지만, 명확하게 확인 가능한 몇몇 사실이 덧붙여지면 이는 그저 추측일 뿐이라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 된다.
“더군다나 육군본부 측에서 시위대의 체포를 방해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시위대와 군부 사이에 공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보내고 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시위대 중에 현직 군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으니까요. 어쨌든 브라질 군부는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닙니다.”
“쿠데타가 벌어질 가능성도 매우 농후한 편이겠군요?”
“적어도 강경파들의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플라날토 군사 사령부 쪽에 연줄이 있습니까?”
“여기도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라서, 몇 단계 거치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쿠데타가 일어나면 곤란하겠지요?”
존은 유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물론이지요.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도 비용이지만, 여러 가지로 손실이 막심할 겁니다.”
유진은 브라질에 쿠데타가 발생해 브라질 정국이 경색되고 혼란에 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한창 건설 중인 의약 단지부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혼란이야 외부인으로서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정권이 무너지고 쿠데타 세력이 권력을 잡고 난다면 브라질에 대한 투자는 완전히 물 건너갈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손을 써 보겠습니다.”
사실 CIA의 수장으로 오랜 시간을 역임한 존 브래넌이 브라질 군부와 어떤 커넥션도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라의 월급을 받고 있을 때와는 전혀 반대의 일을 하게 되었군요.”
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중앙정보부는 이곳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군부가 현지 정권을 몰아내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존 또한 적지 않은 세월을 현장 요원으로 지내 왔으니, 어쩌면 한두 번 정도는 그런 공작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데 이번에 존에게 주어진 임무는 반대로 쿠데타를 방지하는 일이니, 존으로서야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했다.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슬슬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존이 그날 요트를 떠나 무슨 짓을 했는지는 유진은 알지 못한다. 단지 이틀 정도 그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전화 통화로 일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보고를 보내 오는 것이 전부였다.
[이날 육군본부 측에서는 쿠데타 세력을 모두 진압하고, 관련자들을 전원 체포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존 브래넌 본인이 아니라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플라날토 군사 사령부의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장성들이 다수 연루된 이번 쿠데타 모의는 육군본부 측의 재빠른 대응으로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육군 정보부는 쿠데타 모의에 대한 정보를 접하자마자 바로 해당 군 사령부의 장성들을 모두 체포했다고 합니다.]
“잘 해결되었습니다.”
유성과 모니카와 함께 뉴스를 지켜보고 있는데, 존이 도착해 보고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꽤 바쁘게 보내셨던 모양이군요.”
항상 말끔하게 다니던 존 브래넌이 조금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도 깎지 못하고 나타난 걸 보면, 무척이나 정신없이 움직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의 노고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정리하지 않은 차림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가 수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 오랜만에 필드에서 움직이니 즐겁더군요.”
올해 일흔이 된 베테랑의 노익장이 대단하다. 존 브래넌은 정말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제법 큰 비용이 들었습니다.”
“충분하게 청구하세요. 관련자들에게 보너스를 아낄 필요 없습니다.”
“물론이지요. 생각보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했습니다.”
쿠데타를 막기 위해 육군본부의 최고위 장성들을 꽤 여럿 매수해야 했던 모양인지, 존 브래넌이 후일 청구한 액수는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걸었던 현상금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번 쿠데타 모의의 성공 가능성이 확실치 않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일 성공 확률이 높았다면, 육군본부에서도 쿠데타를 용인했을 겁니다.”
“쿠데타에 실패하면 육군 측에도 좋은 영향이 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옷을 벗어야 할 사람도 잔뜩 나왔을 거고요. 하지만 육군본부가 나서서 쿠데타를 막았으니, 실제 행위자 위까지는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들의 자리가 걸려 있기도 한 까닭에 더 보장된 가능성에 건 모양이다.
괜히 쿠데타는 다른 놈이 저질렀는데 한패로 몰려서 옷을 벗고, 심지어 법정에 서는 일까지 벌어지면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그렇게 곤란한 상황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쿠데타를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니, 옳다구나 하고 돈을 챙긴 것이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퇴역 후에 정치권으로 들어오겠다는 이가 있더군요. 아! 저치입니다.”
존은 뉴스 화면에서 이번 쿠데타 모의 사건 해결의 주역이라며 나오고 있는 장군을 가리켰다.
이번 일로 지지도를 높이고, 군을 나와 바로 선거에 나설 생각이라고 한다.
쿠데타를 막았으니 국민들의 지지도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신임도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정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고 볼 수 있었다.
“야망이 대단한 남자입니다.”
“그렇군요. 앞으로도 신경을 써야겠네요.”
유진의 기억에는 없는 사람이다. 사실 유진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런 활약을 보이지도 못했을 것이고, 정치계에 나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한 야망가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유진도 자못 궁금해졌다.
“더 이상 군부 쪽에서 잡음이 흘러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이번 쿠데타 모의의 실패로 군부가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군부의 중심 인사 중에는 기득권층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군부 내에서 새로운 갈등의 양상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이 존의 예측이지만, 뿌린 돈이 있으니 받아먹은 자들이 책임지고 당장의 혼란을 수습하게 될 거라는 게 존의 장담이었다.
“이제 당장 급한 불은 끈 셈이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쿠데타를 막기 위해 눈이 튀어나올 만큼 큰돈을 써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톡톡히 받아 낼 생각이다.
* * *
“비록 얼마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의 원인이 결코 브라질 국민들께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브라질 경제에 대한 저의 믿음도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브라질의 잠재력을 미루어 볼 때, 적절한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빠른 시일 내에 유럽과 중국에 버금가는 선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브라질에 대한 투자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 약속드리겠습니다.”
유진이 브라질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브라질에 대한 투자 의사에 변함이 없음을 알린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1주일이 흐른 뒤의 일이다.
당연히 그 시간 동안 유진이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거의 매일 같이 브라질 정부의 관료들과 만나며 새로운 협상에 협상을 거듭했다.
특히나 쿠데타를 막은 것이 아주 유효했다. 대통령궁에서도 유진 덕분에 끔찍한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했다.
어디에도 밝힐 수는 없는 일이지만, 중요 인사들은 이번 사태의 전말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건 존 브래넌의 일 처리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정부 측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을 흘린 덕분이다.
무려 3억 달러나 퍼 준 일인데, 입을 꾹 닫고 있을 수야 없는 일이다.
“군부 측에서 다시 한번 정치적 중립과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충성을 밝혀 왔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분부의 위험한 시도는 없을 겁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곁을 지키던 대통령 특사가 좋은 소식을 전해 왔다.
브라질 사회의 혼란은 아직 그대로이지만, 적어도 군대의 정권 찬탈 행위는 당분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유진에게 줄 선물도 잔뜩 들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