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사회적 갈등의 양상
유진이 투자 진행에 관해 확인을 해 주었고, 쿠데타 모의가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브라질 사회가 다시 과거처럼 정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좌와 우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던 브라질 시민 사회는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오히려 더욱 그 갈등의 폭을 키워 버리고 말았다.
브라질 대도시 어디에선가는 언제나 양측 시위대가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고, 그 도시 경찰의 성향에 따라 대통령 지지자들 혹은 그 반대 진영의 시위대가 체포되어 가는 모습이 흔히 벌어졌다.
“미국이랑 다를 게 없네.”
뉴스를 보고 있던 유성은 혀를 찼다.
“어느 나라이든 마찬가지일걸.”
“맞는 말이야. 유럽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이니까. 다들 호시탐탐 물어뜯을 적을 찾고 있는 것만 같아.”
“러시아도 비슷해요.”
유진이 탄 요트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셰넌 리와 함께 뉴욕에서 날아온 옐리자베타도 한마디 했다.
“다행히 중국에서는 저런 일은 없어요. 서구식 민주주의의 한계이지요.”
셰넌 리가 자국 체제의 우월함을 자랑하듯 말했다.
“대신 중국에서는 러시아와 미국에 대한 증오가 늘어나고 있잖아.”
옐리자베타가 말한다. 셰넌과 옐리자베타는 평소 무척 친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자국 문제에 대해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부친이 각각 러시아와 중국의 최고 지도자이고, 지난 전쟁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모든 사회가 갈등을 지니고 있고, 지금의 중국 같은 경우라면 러시아와 미국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야 없으니까.”
“전쟁을 시작한 건 중국인데, 러시아가 나쁘다는 것 웃긴 일 아니야?”
“러시아에 일하러 간 중국인 노동자를 살해한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그건 최소한의 자위권을 행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미국과 나토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했잖아.”
“아아, 그만두자.”
“그래. 그만두자.”
두 여자는 웃으며 싸움을 멈추었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자국의 행동이 그다지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 세력에 대한 시위가 사실 절반 즈음은 자국 정치 세력의 적극적 개입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적대국 지도자의 자식 앞에서 말이다.
지금이야 좋은 관계이지만, 여기서 꺼낸 말이 후일 그녀들의 부친에게 어떤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그렇게 짧은 말다툼이 끝나고, 다시 그녀들은 흘러나오는 뉴스를 지켜봤다.
“확실히 요즈음은 어딜 가나 증오와 경멸이 가장 큰 화두인 것 같네.”
유성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래도 한국은 좀 낫지 않아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안정적이지 않던가요? 누구 덕분에 말이지요.”
옐리자베타가 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확실히 유진의 투자 이후로 한국의 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탄탄해졌다.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가 점점 더 시장을 넓혀 가면서 고급 일자리도 늘어났고,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을 받쳐 줄 경제 펀더멘털이 확실히 자리 잡으며 서민층에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더욱이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있어, 고급 일자리는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 때문인지 전 같으면 서울 하위권 대학을 나와서도 간신히 중소기업에나 취직해야 했을 사회 초년생들이 요즈음은 대기업 계열사도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다.
지방 사립대만 나와도 먹고살 만한 일자리는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제 상황은 호전되었다.
대기업에서부터 취직 희망자가 모자라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중소기업이라고 겨우 최저임금만 지급하는 회사는 거의 사라진 수준이다.
“건국 이후 최대의 호황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까 경제 사정은 정말 좋은 편이지.”
마치 버블 경제 시대의 일본처럼 일자리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모든 게 좋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당장 부동산 문제만 해도 그렇고.”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들의 수익이 증가하며 그동안 잠잠했었던 부동산이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로 5%까지 올랐던 이자율이 다시 바닥에 가까워지며 부동산 구매에 부담이 줄어든 까닭이다.
이번에도 역시 부동산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이자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이 지난번의 최저점을 지났다고 하더군요.”
한국 사정에 가장 밝은 것은 셰넌이었다. 그녀는 한두 번 서울에 직접 가 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의 친한파였다.
그에 비해 옐리자베타는 유진의 도움으로 러시아를 탈출하기 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몇 명의 아이돌 이름이 전부였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무섭게 오르는 것 같. 정부에서도 다시 무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더라고.”
“나도 강남에 아파트 하나 사놓을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부동산? 그건…….”
유성이 난처한 얼굴로 형을 바라보았다.
“미국의 이자율이 당분간은 지금처럼 이어질 듯니 몇 년 동안은 나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경기나 경제라는 것은 정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놈이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유진이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걸요?”
옐리자베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솔직히 전에는 유진이 경제에 대해 엄청나게 예측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경제라는 괴물을 자기 손안에서 마음대로 부리는 조련사 같다니까.”
셰넌이 완전히 동의한다는 듯 곧바로 말을 받으며 덧붙였다.
“경제를 마음대로 부린다라……. 세상에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지. 당장 내일의 일이라면 몰라도 거시적인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는 건 노벨 경제학상을 딴 학자들의 머리를 전부 하나로 뭉쳐도 불가능한 일이야.”
유진이 그저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 경제에 대한 흐름을 알고 있는 그도 이미 지금처럼 세상에 스스로의 영향력을 잔뜩 미쳐 버린 다음에야 더 이상 완전한 예상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지금의 유진은 다른 경제 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가장 큰 문제라는 거예요?”
셰넌이 유성에게 다시 물었다.
“부동산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보다는 사회의 각 주체 사이의 갈등이 큰 문제야. 노년층과 젊은 층의 세대 갈등이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성별 갈등 말이야. 경제가 호전된다고 해서 그런 갈등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보더라고.”
유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갈등이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성별 싸움이었다. 그나마 세대 간 갈등은 경제가 호황기에 접어들며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성별 간의 갈등은 오히려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하기는 지금 중국도 그런 면에서 난리에요.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해서 말이지요.”
셰넌의 말처럼 중국 사회도 성별 갈등으로 지독한 사회문제가 속출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쪽은 한국과 달리 경제 기반이 미흡하기에 여성과 남성 사이에 일자리를 놓고 일어나는 갈등도 무척 심했다.
“어쩔 수 없어. 미디어뿐 아니라 SNS를 통해 반사회적 사고를 여과 없이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없던 혐오 발언들을 아무 부담 없이 SNS에 올리고는 하잖아.”
“맞아요. 여자를 무차별로 폭행하고 다니는 SNS 영상이 올라오면 좋아요가 수만 개씩 달린다니까요.”
셰넌의 얼굴에는 혐오의 표정이 서려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폭행하는 거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일인데 말이야.”
옐리자베타도 끼어들어 한마디 보탰다.
“러시아에서는 성별 갈등 같은 건 그렇게 심하게 터져 나오고 있지 않아. 그저 여전히 남자들이 여자들을 폭행하지. 아버지도 그런 문제를 정치권에서부터 해결해 볼 생각이신가 본데,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것 같아.”
옐리자베타의 얼굴에는 셰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진한 혐오와 경멸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요즘 러시아 여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으로 가려는 열풍이 불고 있어. 한국 남자들은 잘생기고 자상하잖아.”
세계를 휩쓰는 한류 열풍의 가장 커다란 수혜자는 한국 남성들인 듯했다.
현재 세계의 여성들이 한국 남자에 대해 갖는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이다.
모두 한국에 가면 TV에 나오는 아이돌처럼 잘생긴 남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아. 그런 문제 때문에 한국의 성별 갈등이 고조되는 것도 있지. 점점 더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들어오면서, 한국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을 비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뭐예요? 그럼 한국의 성별 갈등이 우리 때문이라는 거예요?”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핑계로 쓰는 거지. 다들 어떤 현상이든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잖아.”
“그러고 보면 그나마 한국 사회가 나은 편이네요. 다른 나라에 대해 공격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옐리자베타의 조국 러시아에서는 성별 갈등은 문제도 되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다양한 혐오의 정서가 사람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셰넌이 언급했던 것처럼 러시아인들은 미국과 서유럽이 러시아를 노리고 있다 여기고 있었고, 시베리아 전쟁 때문에 중국에 대한 증오도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들끓고 있었다.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했다고 해서 러시아의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자그마한 기회라도 생긴다면 러시아는 당장이라도 주변 국가와 전쟁을 시작할 것처럼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기세를 넘실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한국도 마찬가지야. 한국 사회만 위대하고 다른 나라들은 전부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잔뜩 있어. 그게 딱히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유성은 한국인이라고 특출나게 외국인과 주변 국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단지 지금의 경제 상황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좀 무섭기는 해요. 마치 100년쯤 전처럼 전 세계가 서로에 대해 증오를 잔뜩 억누르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당장 미국부터 그렇고요.”
옐리자베타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녀의 말처럼 미국인들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에 대해 점점 더 큰 혐오를 표출하고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어쩌면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셰넌도 걱정이 많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침략이 휴전으로 끝이 났지만, 중국은 지난 100년 전 빼앗겼던 연해주 일부를 회복했다.
그것 때문인지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는 다시 한번 주변 국가를 침략해 중화의 위대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러다 다시 세계적인 전쟁의 시대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길 때도 있어요.”
셰넌의 말에 유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