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1억 달러를 누가 마다해?
그리고 다음 날, 존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왔다.
“루이스라는 사람 말고도 복수의 제보자가 나왔습니다. 하나 같이 호드리스 구에라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마치 짜고 하는 이야기 같군요?”
유진은 어떤 세력이 한 사람을 지목해 범인으로 몰아가는 영화나 소설을 떠올렸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다들 1억 달러의 현상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보한 것을 모르는 눈치이더군요. 그동안 서로 눈치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나서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1억 달러의 현상금은 확실히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금액이었다.
“호드리스 구에라와 함께 사건을 모의했던 사람이 모두 다섯 명이라는군요. 그중 루이스를 포함한 셋이 제보해 왔습니다. 그리고 호드리스 구에라의 심복 둘이 각기 따로 제보해 왔고요. 각자 그럴듯한 증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다들 법정에서 증언하겠다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브라질 경찰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던가요?”
“루이스를 포함한 세 사람 모두 지역에서 제법 영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심복 둘은 목숨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보상이 돌아가면 충분히 해 볼 만한 모험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증거와 증인들이라면 브라질 경찰도 그리 쉽게 뭉개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해결된 건가요?”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그 호드리스 구에라가 야당 측과 깊게 연관이 되어 있는 모양이라 결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존 브래넌은 그 복수의 제보자들이 호드리스 구에라가 야당 측 거물과 손을 잡았다는 증언을 내놓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현상금은 어떻게 하지요? 나누어 주면 될까요?”
“다섯 명과 각기 협상 중입니다. 호드리스 구에라를 법정에 세우고 처벌받게 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제일 큰 몫을 받을 겁니다.”
제보자들 사이에 경쟁을 붙인다는 말이다. 나쁘지 않은 전략으로 보인다.
“아! 잠시만요. 뭔가 중요한 보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존 브래넌이 잠시 허락을 받고 전화를 받았다.
“응? 그래? 뭐라고? 그자가? 직접? 알겠네. 조금 뒤에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짧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존 브래넌의 표정이 참 묘했다.
“안 좋은 일인가요?”
“아닙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뭡니까?”
“호드리스 구에라가 스스로 자신의 범행을 밝혔습니다.”
“네?”
이번엔 좀처럼 놀라지 않던 유진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역시 1억 달러를 원하고 있습니다. 증거는 충분하다고 합니다. 감옥에 들어갈 테니 1억 달러의 현상금은 자신에게 줘야 한답니다.”
“그…… 상파울루에서 꽤 저명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1억 달러는 물론 굉장히 큰돈이다. 하지만 거대한 커피 농장을 소유한 지주라면 그것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인정할 것까지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죠. 그런데 최근 브라질 커피 농장들이 이런저런 압박이 심하다고 합니다. 특히 인건비 문제 말이지요. 이번에도 보스의 투자로 브라질 경제가 활성화되면 인건비가 다시 올라 파산까지 생각해야 했던 상황입니다.”
“그런…….”
“그리고 1억 달러라면 자신이 감옥에 가더라도 가족들이 부채를 해결하고, 지금의 자금난을 헤쳐 나가는 데 충분한 금액이기도 하고요.”
“그자가 감옥에 가도 그리 힘들지는 않겠지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런 나라일수록 힘 있는 이들이 감옥에서 얼마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알게 되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더군다나 검찰 측에서도 그다지 엄한 벌을 구형하지도 않을 거고, 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뭐. 어쨌든 확인은 더 해 보겠습니다.”
존 브래넌도 조금은 당황한 모습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날 늦게 존에게서 좀 더 쓸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야당 측 인사와 통화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 사건의 몸통이 호드리스 구에라 자신이 아니라 야당에 있다고 들릴 수도 있는 대화입니다.”
“그건 상당히 흥미롭네요.”
“원한다면 그쪽 누구라도 잡아 넘어트릴 수 있는 증인과 증거가 될 겁니다.”
브라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호드리스 구에라의 증언은 엄청난 힘이 있었다.
궁지에 몰려 있는 대통령이 단번에 반대로 야당을 수세로 몰아넣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존은 호드리스 구에라를 안전한 장소에 데려놓고, 대통령과 협상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이렇게 커다란 도움을 주시는군요.”
브라질 대통령의 특사는 당장 유진의 요트로 날아와 감사의 표시를 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브라질에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는 유진에게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이 다름 아닌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라는 증거를 손에 넣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아무리 대통령과 야당에 부정적인 미디어라고 해도, 이번 일에 대해 딴지를 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톡톡히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제가 듣기로 브라질에 오셔서 벌써 적지 않은 지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지출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특사는 그렇게 몇 번이나 다짐하고 돌아갔다.
그의 말대로 범인들을 잡기 위해 5,000만 달러를 브라질 경찰 고위직에 주었고, 쿠데타를 막기 위해 3억 달러를 썼고, 다시 호드리스 구에라와 그 일당에게 1억 달러의 현상금을 지불했으니, 브라질에서 머무는 동안 무려 4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써 버린 셈이다.
그렇지만 유진의 주머니를 생각했을 땐 별 티가 나지도 않을 정도의 액수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이번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브라질 주식 시장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드디어 브라질의 정국도 안정이 되어 가려나?”
하나 유진의 생각처럼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호드리스 구에라로부터 받은 증거로 법정에서 야당을 압박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대신 물밑에서 어떠한 협상을 한 것 같았다. 야당과 대결 구도를 멈추는 것을 조건으로 증거를 당분간 묻어 두기로 한 듯했다.
생각해 보면 상당히 현명한 처사이다. 이걸 수면 위로 올리면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높아지겠지만, 대결 구도는 점점 더 심화될 뿐이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야당을 무너트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안정화였다.
협상이 잘 풀린 덕분인지, 시위는 잦아들었고 미디어들은 더 이상 대통령에 관한 공격적인 기사를 자제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증시도 자연스럽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최하 70억 달러의 수익이 생겼습니다. 사건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면 그 두 배는 벌 수 있을 테고요.”
요안나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녀가 세계에 퍼져 있는 유진 소유의 모든 투자기관을 총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확인하지 못한 투자기관에서 행한 투자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많다.
“확실히 돈이 많으면 돈을 버는 게 쉽구나.”
유성도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이번 사태로 충격을 받은 것은 브라질 경제만이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도 비슷한 규모의 충격을 받았다.
유진의 요트가 공격을 당했을 때, 유성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유성은 암호화폐 업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표준을 만들었고, 암호화폐 거래에 필수적인 스테이블 코인을 지배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암호화폐 시장은 아주 작은 요인만으로 폭락하거나 폭등하고는 한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유성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암호화폐들 대부분은 폭락을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번 브라질을 포함한 남아메리카 각국에서 암호화폐가 기존 통화와 함께 유통될 수 있다는 소식으로 한껏 기세가 오르던 암호화폐의 기세가 급격하게 꺾여 버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낙폭이 생각보다 큰 것을 본 유성은 폭락이 큰 암호화폐에 대한 매수를 시작했고, 형인 유진이 브라질에 대한 투자 의사를 다실 밝힐 때쯤, 자신도 건재함을 내보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암호화폐는 다시 날개를 달고 폭등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가 형보다 더 벌었을걸?”
유성이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게도 2억 2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브라질의 주식 시장 규모는 1조 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2조 7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암호화폐 시장 전체 규모의 1/3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과대평가되어 있는지 말해 주는 지표일 것이다.
유성의 말처럼 이번 사태로 그가 벌어들인 돈이 다시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그것도 가벼운 투자였기에망정이지, 제대로 흔들 생각이었다면 훨씬 더 큰 액수를 만질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이 있고, 정보가 있다면 당연한 일이지.”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까지 이렇게 정보를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벌었단 거야. 그나저나 이제 수십억이나 수백억 달러의 수익에 대해서는 크게 감흥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또 그건 아니네.”
유성이 즐겁게 웃었다.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다시 거액의 자산이 추가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 다행이네. 사람이 욕심을 버리면 무기력해지는 법이지.”
“맞는 말이야. 사람의 욕심에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아.”
물론 유진의 욕심이란 것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유진 일행이 타고 있는 요트가 상파울루 항 앞바다에 머무는 시간이 여유로운 휴가의 시간은 아니었다.
브라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으로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유진의 요트에는 중요한 사람을 태운 헬기가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장관님과의 회견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페루의 국민들에게 있어서도 말이지요.”
페루에서 날아온 경제부 장관은 주요 방문 목적인 페루에 대한 투자 약속을 받아 낸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선물까지 잔뜩 얻은 덕분에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물론 무슨 불법적인 정치 자금 제공 같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진의 특별한 투자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얻어 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 투자 기회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뵐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페루의 장관 각하께서도 빨리 귀국해 뉴욕의 투자 회사에 개인적인 자산을 보낼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페루의 장관 일행이 돌아간 뒤로는 다시 칠레의 실무진이 방문했고, 그다음으로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특사가 방문했다.
모두 유진이 들고 있는 돈주머니가 얼마나 후한지 기대로 가득했다.
물론 유진이 그들에게 약속한 투자라는 것이 그저 무상으로 남아메리카 각 나라에 공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투자이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정치 상황이 특출나게 혼돈스러운 만큼, 각 국가에 뼈를 깎는 요구사항들이 잔뜩 추가되어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유진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국가 내부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사항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유진을 방문하는 특사 일행들은 다소간의 난관을 겪으면서도 협상을 거듭해 다양한 조건들을 수용했다.
상파울루의 앞바다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금액이 오가는 중요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