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아레나 코린치앙스
“내일 아레나 코린치앙스에서의 공연이 마지막 행사에요. 이걸로 브라질에서의 행사는 전부 끝나네요.”
모니카가 여느 때처럼 유진의 스케줄을 알려 준다.
브라질에서의 일정이 끝날 무렵, 유진은 이례적으로 공식 행사에 나섰다. 다름 아닌 상파울루에서 개최하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합동 공연이다.
“대형 공연이라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만큼 경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해요.”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 아레나 코린치앙스는 아레나 데 상파울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남미인들답게 최대 6만 명의 수용이 가능한 초대형 경기장이다.
이번 공연에도 무려 5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모일 예정이라고 한다.
상파울루는 물론이고 브라질 전역, 더 나아가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수많은 팬들로 상파울루 국제공항이 북적인다는 뉴스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을 정도이다.
“표를 못 구한 사람들이 경기장 밖에서 진을 치고 있다나 봐요.”
“5만 장으로도 모자랐다고?”
“당연하지요. 한 그룹의 공연에도 5만 명은 모인다고요. 하물며 이번엔 한 그룹도 아니고 무려 다섯 그룹이나 되니 말이에요. 브라질, 아니 남아메리카 전역의 한국 아이돌 팬 규모를 생각하면 5만 명은 어림도 없는 숫자였죠. 그 다섯, 아니 열 배쯤이라고 해도 채울 수 있었을걸요?”
모니카도 은근 한국 아이돌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유진도 알고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모니카의 팀에 한류 아이돌 팬을 자랑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어쩌면 그들 중 대다수가 한류 아이돌 한두 팀쯤은 팬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저 업무의 일환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빠져들게 된 모양이다.
더군다나 유진의 지시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진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나서다 보니, 이런저런 특혜를 얻기도 한단다.
아이돌 관련 상품은 물론이고, 공연 티켓 같은 걸 남들보다 훨씬 쉽게 손에 넣어 일정을 맞춰 구경 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딱히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걸 보면, 점점 한국의 선남선녀들이 세계인들의 선호를 받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자들의 경우는 한국 연예인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하거나, 패션을 따라 입는 일도 유행을 하는 듯했다.
아쉽게도 남자들의 경우는 한국 남자 아이돌이나 배우의 흉내를 내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지난 10여 년 동안의 투자가 제법 꽃을 피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 전체가 난리에요. 거의 카니발 수준이라고요. 만일 그 아이들이 거리 공연이라도 하면 100만 정도는 우습게 모일걸요.”
“그 정도로 반응이 좋아?”
“물론이지요. 브라질 여자들은 이제 한국 남자라고 하면 세계에서 제일 섹시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엄청나다고요. 특히 보스 말이에요. 만일 보스가 브라질에서 여자 친구라도 한 명 만들겠다고 하면 브라질 여자들 절반이 달려올지도 몰라요.”
“응? 갑자기 나는 왜?”
매체에 거의 등장하는 일도 없고, 브라질에서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브라질 경제 현안에 대해 몇 마디 한 것이 전부인 자신이 그렇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말에 유진은 조금 놀랐다.
“이미지잖아요. 이미지!”
모니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브라질 여자들에게 한국 남자에 대한 이미지가 최고로 좋아요. 그런데 세계 제일의 부자인 보스가 항공모함보다 더 큰 배를 타고 브라질에 와서 브라질에 엄청난 투자를 약속했어요. 그 와중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고서도 브라질을 떠나지 않고 있고요.”
“어…… 그렇긴 했지.”
“당연히 브라질 사람들의 호감이 높을 수밖에 없지요. 브라질 사람 중에 보스를 싫어하는 사람 찾기는 정말 하늘에서 별 따기일 거예요.”
“결국은 돈이 많아서라는 거네.”
“그것과는 좀 달라요. 여기 여자들은 그냥 돈이 많다고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브라질 여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상대가 얼마나 섹시한지에요. 그러니까 저들에겐 보스가 지금 제일 섹시한 남자라는 거죠.”
모니카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어찌 되었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좋겠네. 그럼 이참에 브라질 여자친구 하나 사귀는 건 어때?”
곁에서 지켜보던 유성이 놀리듯 물었다.
“참! 참고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섹시한 남자는 유성 씨에요.”
“응? 어째서?”
유성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얼마 전에 마리아와 함께 상파울루 해안에서 파파라치 샷 찍혔잖아요. 그게 굉장히 화제가 되었어요. 세계 제일 가문의 둘째가 브라질 재벌 가문 여인과 열애 중이라고요. 덕분에 유성 씨 인지도가 엄청 높아졌어요. 더군다나 브라질 여자와 그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있으니 더욱 호감이 가나 봐요.”
결론은 인지도의 문제였다. 세상에 알려지는 만큼 미워하는 사람도,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유진도 유성도 지금 브라질에서의 인기가 어지간한 연예인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단다.
굳이 비교하자면 월드컵 결승전에 골을 넣은 스타 플레이어 정도라고 모니카가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브라질에선 한국 남자이기만 하면 정말 어지간하면 여자친구 서넛은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여자라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브라질에서의 한국 사람에 대한 호감은 사상 최대치에 달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브라질만의 일은 아니다. 여기 있는 동안 남미 여러 국가 경제부처와 협상을 통해 앞으로 몇 년 동안 남아메리카 각국의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경제 협력과 거액의 투자 약속에 대한 얼개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각국 정상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해당 사안을 재빠르게 발표했다.
덕분에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각국은 경제 발전에 대한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일부 최상류층에서는 이런 유진의 투자에 불편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서민들 대다수는 환영의 기색이 뚜렷했다.
당연히 그동안 한류 아이돌을 비롯한 다양한 한류 문화에 노출되어 온 남아메리카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은 끝을 모르고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오늘의 콘서트가 백미에요. 남아메리카 10개국에 실시간으로 공연 실황이 중계될 예정이지요.”
물론 이것도 모니카의 솜씨이다. 원래였다면 무척 복잡한 이권이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참여하는 아이돌 그룹과 소속사들부터 브라질 현지의 기획사와 방송국까지, 관련되어 이권을 얻어 내려는 수많은 주체 사이의 문제를 모니카는 가볍게 해결해 남아메리카 전역에 방송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 콘서트가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진의 브라질 방문을 기념하고, 브라질 국민에게 한국에 대한, 더 나아가 유진 개인에 대한 호감을 잔뜩 쌓아 줄 목적으로 진행되는 행사였다.
“사실 유럽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아직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던 요안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덜란드에서도 한국 남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디든지 환영이더라고요. 우리 조카 아이들도 벌써 한류 아이돌에 환장하고 있어요.”
그녀의 동생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한류 팬이 되는 동안에도 요안나는 결혼에 대한 꿈도 꾸지 않았다.
“러시아는 예전부터 그랬어요.”
이번엔 옐리자베타가 입을 열었다.
“벌써 10년도 전부터 한국 남자라면 잘생기고 친절한 걸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고요.”
“중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사실 중국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연애 상대는 늘 한국 남자였어. 잠깐 백인들이 붐이 일기는 했지만, 여전하다니까.”
인터넷에서야 한국을 비하한다는 중국 SNS 글귀를 가져와 서로 간의 혐오를 조장하려는 이들이 여전히 날뛰고 있지만, 실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한국 남자와 여자에 대한 환상이 그대로라는 말이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의 이미지는 정말 더할 나위 없어. 미남미녀투성이에 일 잘하는 스마트한 이미지,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점잖은 이미지까지. 일부러 그렇게 이미지를 만들려고 해도 어려울 거야.”
사실 만든 게 맞다. 하지만 딱히 만들어진 이미지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수많은 한류 연예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세계 진출에 열심인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 비교해 보면 그런 이미지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인도인들이나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 진출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 왔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더 많다.
“요즈음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좋으니까요.”
“맞아. 요즘 무슨 영화든지 한국 출신 배우가 한 명은 끼어 있잖아. 그것도 대개 그럴듯한 이미지로 말이야.”
얼마 전까지 미국의 미디어 매체에서 묘사되는 아시아인에 대한 이미지는 천편일률적이었다.
안경을 쓰고, 수학을 잘하며, 가부장적인 가장에서 자라고, 사교적이지 못한 남자. 혹은 머리에 브릿지를 넣은 별 의미 없는 역할을 하는 여자.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이 느끼는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미디어를 통해 일반적인 미국인이 접하는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런 것이기에 더욱 그런 이미지가 고정된 면도 있다.
미디어의 역할은 수십 번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하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경험을 실제 생활에서의 경험과 구분하지 못한다.
심지어 동양인 스스로조차 마찬가지다. 동양계 혈통을 지닌 어린 세대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러한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들을 계속 접하는 것이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 이후로 많은 미디어가 장애인이나 다양한 모습의 등장인물들을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시키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자주 접할수록 그들 또한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와 드라마들을 통해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억지로 주입하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물론 거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유진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유진은 영화계와 방송계에 지닌 자신의 영향력을 아주 충실하게 사용해 왔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나 한국계 혈통을 지닌 배우가 영화에서 좋은 역할을 맡게 되면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었다.
단순히 제작비의 지원 수준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충분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의도를 딱히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진의 영화 투자사 문을 두드리는 제작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을 정도였다.
뭔가 기획이 하나 나오면 우선 적절한 한국 배역을 집어넣고, 한국 피를 지닌 배우부터 섭외하는 것이 수순이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