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46화 (346/363)

346화 초상권과 출연권

지난 삶에서 20세기 스튜디오는 점점 더 커져 가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영화시장에 먹힐 만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주요 등장인물로 한국계 배우와 중국계 배우를 한 명씩 넣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가장 중심 배우는 백인 남자였지만, 두 명이나 되는 동양계 남자 배우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일은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매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재원이 할리우드에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 동양계 영화배우가 주연급으로 성공한 것은 중화계 스타 몇 명이 전부였고, 그것도 제대로 된 성공이라기보다는 그저 동양권에 팔릴 만한 영화의 주역으로 성공한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재원은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 온 이 잘생긴 남자 배우는 그저 극의 흥을 돋우는 역할이 아니라 섹시하고 매력 넘치는 남자로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인들의 마음을 훔쳤다.

그가 그럴 수 있던 데에는 그동안 한류 연예인들이 부지런히 활동해 온 덕분에 미국에서나 다른 국가들에서 한국 남자에 대한 호감이 잔뜩 올라가 있던 시점이라는 면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까 갑판에서 잠깐 스치면서 봤는데, 그 친구 정말 잘 생겼던데?”

자리가 끝나고 객실로 돌아오자, 유진이 한국 배우와 식사를 하고 온 것을 알고 유성이 말을 꺼냈다.

“그렇지? 할리우드에서도 충분히 먹힐 얼굴이더라고.”

“그렇기는 해. 그런데 알콜 중독 소문도 있던데, 지금은 괜찮아?”

“어. 상당히 의지가 굳은 것 같더라고. 앞으로의 일이야 누구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는 버텨 주겠지.”

흔히 알콜이나 마약 중독 같은 것은 완전히 치유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참고 참는 것뿐이라는 말도 있다.

유진이 경험했던 미래에서의 재원도 몇 년 동안 참아 내다가 다시 알콜에 손을 대고 만다.

원래였다면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대흥행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터였으나, 막상 그 큰 인기를 얻은 당사자가 술에 절어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내는 참사를 벌이는 바람에 주연배우는 다른 동양계 배우로 교체되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유진은 알지 못한다. 그저 가능하다면 그 친구가 최대한 오래 버텨 주기를 바랄 뿐이다.

가능하다면 도움을 줄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언제고 다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유진은 그가 다시 술독에 빠지기 전에 두어 편 정도는 시리즈를 끌고 갈 생각이다.

그 뒤로는 유진이 투자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회사의 도움으로 배우가 없어도 충분히 시리즈를 이어 갈 수 있다.

곧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드라마나 영화 분야에서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인공지능은 영화의 주인공을 마음대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을 한다 해도, 해당 배우의 초상권을 확보하고 있다면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래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영화 제작사는 출연하는 배우의 초상권을 확보하고,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굳이 그 배우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인지도는 낮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가 그 역할을 하고, 얼굴을 유명 배우로 바꿔치기하기도 한다.

대신 영화의 흥행에 따른 개런티를 지급하면 그만이다.

배우 쪽에서도 나쁘지만은 않다. 특히 연기가 딸리거나,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환영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제작 환경은 지금과는 너무나 달라진다.

영화의 초상권과 출연권이라는 두 가지 권리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진은 거기에 맞는 준비를 지금부터 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야 할 텐데.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니까 말이야.”

유성도 한국 배우가 제대로 된 주연을 맡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잘 되겠지? 그 영화?”

“영화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까지의 투자와 달리, 이번에는 제법 많이 개입했다.

원래였다면 세 명의 주인공 중 하나였을 중국계 배우 역할이 히스패닉으로 넘어가, 한국인, 백인, 히스패닉의 세 사람이 남성미를 잔뜩 풍기게 되었다.

그리고 제작 시점도 원래보다 2년이나 빠르다.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유진의 개입으로 아주 많은 일이 변했다.

한류의 열풍은 원래보다 몇 배나 강하게 세상을 뒤흔들고 있지만, 아직은 아이돌 그룹의 강세에 다른 분야가 간신히 따라가는 수준이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한국계 배우가 영화계에서도 돌풍을 일으켜 주어야 이 기세를 더욱 강하게 몰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유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영화들 중 한국계 배우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를 원래보다 빨리 나오게 만들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 원래의 영화에서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그래도 형이 찍은 영화가 실패한 적 있었나. 뭐.”

“없지는 않지.”

유진이 투자한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유진의 영향력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왔고, 그런 사회의 변화가 알게 모르게 영화나 드라마 등의 흥행에 어떤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하나 이번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투자는 드물었다. 그렇지만 큰 상관은 없다.

이걸 기점으로 지금까지와 달리 점점 더 많은 영화에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배우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번처럼 세 명 중 한 명 정도가 아니라 투톱이나 단독 주연으로 말이다.

재원의 영화가 지금부터 촬영에 들어가면 내년 후반기 정도에 개봉할 예정이고, 그 뒤를 이어 적지 않은 숫자의 한국계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전방위로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이미 미국이나 유럽이나 남미의 시청자들이 한국계 인사들을 마주하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 여세를 몰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 여하튼 잘 되겠지. 난 이만 일어나야겠네.”

“마리아와는 잘 되어 가는 모양이네?”

유진은 동생이 마리아와 만나기 위해 상파울루로 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성과 마리아와의 관계는 더는 비밀이 아니었다. 이미 브라질 언론에서도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수도 없이 내보내고 있을 정도이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둘이 공식적인 커플로 여겨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더불어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제법 화제가 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처럼 한국 사람들의 반응도 제법 호의적이다.

아무래도 상대가 브라질 미녀라는 사실과 브라질에서도 손꼽히는 재벌 가문의 장녀라는 사실이 플러스가 된 듯했다.

“응. 그녀와 함께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

유성도 부인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미인이라는 것과 부잣집 영애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인간적으로 아주 많은 장점을 지닌 여자라고 했다.

“같이 장래에 대해서 논의해 본 적은 있고?”

“아니. 마리아도 나도 그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마리아가 그렇게 말했어?”

“꼭 서로 말을 해야 아나? 그냥 눈빛만으로 통하는 게 있잖아?”

유성이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어쨌든 너와 만나는 게 마리아한테는 꽤 좋은 일인 것 같더라.”

“그런 거 같아.”

마리아는 무척 커다란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재계에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성을 어떤 발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유진은 그렇게 사람을 섣불리 의심하는 행위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며 살기엔 삶이 너무나 아깝다.

“참! 그리고 난 이번에 같이 안 올라갈 생각이야.”

유성이 선언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마리아와 좋은 시간을 더 보낼 생각인 모양이다.

“그럼 호텔에서 지낼 생각이야?”

유진은 내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아무런 부담 없이 만나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유진 자신도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 그 관계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아니. 뉴욕에서 요트 불렀어.”

“아! 요트…….”

얼마 전까지 유진이 사용하던 첫 번째 요트는 유성이 건조 비용의 반값을 내고 사 갔다.

200미터 길이의 10억 달러짜리 요트는 유진의 지금 요트 다음으로 커다랗고 럭셔리한 요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유성에게는 그 10억 달러가 그리 부담이 되는 돈은 아니다.

세계 부자 순위에서 형인 유진에 이어 두 번째 자리에 오른 지도 이미 한참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등락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유성은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그가 암호화폐 시장에서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지간한 대형 투자 은행 전체의 수익보다 클 정도이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인한 수익은 제외한 것이다.

이미 2천억 달러 규모를 넘어선 스테이블 코인은 다양한 투자기관에 유치되어 매년 10%에 가까운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초대형 IT 기업의 1년 수익을 훌쩍 넘어선다.

거기에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으로 발생하는 수익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매년 천문학적인 수입이 생기고 있다.

물론 암호화폐 거래소나 암호화폐 투자 수익 모두 유진의 지분이 더 크지만, 그래도 유성이 가져가는 수익은 유진과 유성 두 형제 다음으로 포브스 부자 순위 3위부터 10위까지에 오른 부자들의 1년 수익을 가볍게 추월한다.

그런 유성에게 요트값으로 치른 10억 달러 정도는 그야말로 껌값에 가까울 것이다.

최근 유진은 보잉사에 자신과 관련 기업의 임직원이 사용하기 위해 몇 대의 비즈니스 젯을 주문했다.

이때 유성도 자기가 사용할 전용기 한 대를 끼워 넣었다.

물론 평범한 소형 여객기가 아니라 747-8 VIP 버전에 다양한 첨단 기술을 잔뜩 집어 넣어, 대당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자랑하는 것들이다.

사실 현재의 유성은 넘쳐나는 돈을 쓸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이다.

형과 다름없이 사치에 익숙하지 않은 유성이 돈을 쓰는 것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고, 두 형제는 그렇게 비행기나 요트를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요트가 도착할 때까지는 호텔에 머무를 생각이기는 해.”

“호텔 섭외는 끝났나 보네?”

“어. 상파울루 팰리스 호텔의 세 층을 예약해 놓았어.”

유진과 마찬가지로 유성도 소대 단위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다. 모두 백악관 출신으로, 이미 브라질 현지에서도 무장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다.

브라질의 치안이야 워낙 유명하니, 최대한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뭔가 계속 부산하다 했더니, 그 때문이었구나?”

“흐흐. 그러네. 아무래도 라틴 여자와 만나는 건 처음이라서, 뭔가 설레는 게 있네.”

“좋은 시간 보내.”

유진은 그런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잠시 고민해 본다.

하지만…… 유성도 유진 못지않게 필요한 건 다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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