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영화의 미래
“처음에만 원래 영화고, 재원 씨가 나오는 데부터는 새로 찍은 건가요?”
“그런 거 같아?”
“음…… 그런데 설마 영화 한 편을 전부 다시 찍은 건 아니지요?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요? 대충 찍은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 친구가 주인공으로 나와.”
“대체 무얼 위해 저런 걸 만든 건가요?”
셰넌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무얼 위해서? 그거야 관객을 위해서지.”
“관객이라니요?”
“다른 사람이 아닌 재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이번에는 칼라로 보고 싶은 사람 말이야.”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적어도 몇 명은 되지 않겠어?”
“그런 사람을 위해 저걸 찍었다고요? 아무리 유진이 부자라고 해도…….”
셰넌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딱히 부자라서 만든 건 아니야.”
“저걸 새로 찍는 데 대체 얼마나 들었는데요? 유진이 아니라면 세상에 몇 명 보지도 않을 영화를 위해 천만 달러, 아니 1억 달러를 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1억 달러는커녕 1달러도 쓰지 않았어.”
“네?”
유진의 말에 셰넌이 TV 화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설마 인공지능으로 저렇게 만들었다는 건가요?”
“바로 전에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아.”
“그렇지만…… 보통은 영화 작업의 일부분에 쓰이는 거잖아요. 저렇게 감쪽같이 영화에 색을 입히고, 주인공의 얼굴을 바꿔치기한다고요?”
사진이나 동영상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그것으로 바꿔치기하는 기술이 세상에 나온 지도 이미 몇 년이나 지났지만, 지금까지의 기술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퀄리티가 굉장히 뛰어나네요.”
“그렇지? 나도 사실 처음엔 상당히 놀랐다니까.”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믿을 수 없을 정도네요. 그런데 1달러도 안 들었다고요?”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사용되는 전기 요금 정도겠지?”
“실시간이라고요?”
“그래. 실시간이야. 영화를 고르고, 거기에 출연할 배우를 고르면 그때부터 프로세서가 계산을 시작하는 거지.”
정말로 1달러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을 제외하고라도, 저걸 실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돌아가는 컴퓨팅 자원을 생각하면 그보다는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로 정말 1달러 미만의 비용만 가지고도 실시간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바꾸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지금 다 꺼내 놓을 필요는 없다.
“맙소사! 엄청나군요. 그런데 목소리까지도 재원 씨 목소리인데요? 목소리까지 변경할 수 있는 건가요?”
“그 정도는 되어야 서비스할 수 있지 않겠어?”
“위화감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
첨단 기술이 감쪽같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어 버렸다.
“인공지능, 인공지능 하더니 정말 엄청나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초짜리 동영상을 바꾸는 데에만 8시간이 걸렸었지. 하지만 GPU 기술과 인공지능 발전 수준이 생각보다 무섭게 빠르더군.”
사실 원래의 역사보다 몇 년은 빨라진 것이었고, 이는 물론 유진의 투자 때문이다.
“굉장해요. 저런 게 나오면…… 확실히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겠어요. 솔직히 말해, 지금의 발전 수준을 따라가는 게 힘들 정도네요.”
아직 20대에 불과한 셰넌도 놀랄 만큼, 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매우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가깝게는 일자리 문제부터,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양식까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없다.
퍼스널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처럼,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 구석구석을 이전과 전혀 다른 무언가로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이 급격한 흐름에 섞여 사는 사람들은 그저 새로운 것들을 따라가기도, 또 즐기기에만도 바쁠 뿐이나, 일반인들이 모르는 곳에서는 지금도 이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유진은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고, 그러한 기술 발전의 과실은 당연히 자본 대부분을 투자한 유진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걸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건가요? 언제요?”
셰넌은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아 보였다.
“시기는 특정 지을 수 없어. 아직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으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문제가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셰넌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이라면 해결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실시간이라면 자기 컴퓨터로 하는 건가요? 아니다. 일반인의 컴퓨터가 그 수준이 되긴 어렵겠고…… 스트리밍 서비스겠네요? 넷플릭스처럼 가입자가 원하는 영화를 고르고, 원하는 배우를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정확해. 사실은 저걸 넷플릭스에 연계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OTT 서비스로 런칭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넷플릭스의 최대 주주도 유진이다. 이미 3억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에 서비스를 도입할 경우 처음부터 막대한 가입자를 배경으로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 넷플릭스 주주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는 면도 있으니,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확실히 이건 궁극의 OTT, VOD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용자가 원하는 비디오를 틀어 준다는 의미에서의 VOD(Video On Demand)에 이보다 부합할 수 없는 서비스이다.
“이게 서비스되면 같은 영화를 몇 번이라도 보겠어요. 티모시 샬라메 버전의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든지, 콜 스프라우스가 나오는 버전도 나쁘지 않겠고…….”
잠깐 사이 셰넌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와 그들이 출연하지 않은 영화의 목록을 나열했다.
“미쳤군요. 굉장해요. 다들 어느 정도의 돈을 내고서라도 보려 할 거예요. 그런데 영화의 저작권을 보유한 영화사에서 이걸 허락해 줄까요? 아! 아니지…….”
셰넌은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지 금세 깨달았다.
미국의 영화사 중에 유진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 있던가?
“영화사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일이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콘텐츠 사용료를 아주 넉넉하게 받아 낼 수 있으니까.”
“그건 그러네요. 40년이나 50년쯤 지난 영화를 지금 다시 찾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하지만 고전 명작 영화의 주인공 역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겠네요. 더군다나 요즘은 가정의 TV 화면도 보통 큰 게 아니니까요.”
셰넌이 다시 TV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저건 정말 극장 스크린 사이즈고요.”
유진의 요트 객실에는 모두 100인치가 넘어가는 대형 모니터가 달려 있고, 유진 자신의 거실에는 무려 400인치짜리 초대형 마이크로 LED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제일전자에서 제작한 시제품으로 내년 즈음이나 시중에 풀릴 상품인데, 유진이 자신의 요트에 넣기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다.
일반적인 극장 스크린은 대략 500인치 수준이고, 조금 작은 소극장이라면 400인치 스크린을 설치한 곳도 있으니, 셰넌의 말처럼 TV 화면이 극장 스크린 크기만 하다는 것이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100인치만 되도 사실 극장과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종래의 TV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기는 하지요. 그런데 저렇게 자기가 원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나만을 위한 영화를 대형 TV로 본다면 느낌이 정말 남다르겠어요. 아! 그러면 대형 TV 매출도 늘어나겠네요?”
셰넌은 이 기술이 몰고 올 파급 효과 중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유진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대형 TV, 고화질 TV의 매출 증가는 유진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엄청나네요. 중산층 가정에서도 대형 TV를 원할 이유가 충분해졌어요.’
사실 이때 즈음의 TV 시장은 과거와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해, 한해가 다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초대형이라 할 수 있는 90인치대 TV의 가격은 여전히 비싼 편이지만, 저가형은 2,000달러 수준으로 구매할 수 있다.
어지간한 중산층이라면 그리 무리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나, 아직은 50인치에서 60인치 사이의 제품들이 주로 나가고 있다.
하나 이제 유진이 준비 중인 신기술이 현실화되면 중산층 가정에서 기존의 TV를 대형 TV로 바꾸는 붐이 일어날 것이다.
유진이 전 세계 TV 생산 업체의 지분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면 어디에서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 발전의 핵심 요소를 지배하고 있는 유진에게 돈을 버는 것은 불확실한 도박이 아니라, 그저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상권이 문제로군요. 시청자가 자기가 원하는 배우를 마음대로 넣고 싶다고 해도, 배우가 원치 않는다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그녀는 티모시 샬라메나 콜 스프라우스의 얼굴을 쓸 수 있을지 걱정되는 모양이다.
“물론 그것도 한 번에 처리해야지. 배우들의 초상권을 확보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니.”
“그러면 배우가 초상권을 넘겨 준 경우에만 그 배우를 내가 원하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당연하지. 그렇게 시청자들이 배우의 얼굴을 사용할 때마다 배우에게 사용료를 지불하는 거야. 그러니까 저 쉰들러 리스트의 경우 시청자가 10달러를 내고 영화를 보면, 영화의 저작권을 보유한 영화사에 3달러를 주고, 주연 배우에게는 1달러를 주고, 혹시 다른 배우를 더 바꾼다면 그때마다 사용료를 받고, 해당 배우에게 10% 정도의 사용료를 주겠지.”
“배우들로서도 나쁠 건 없네요. 자기가 출연하지도 않은 영화에 나와 출연료를 받는 거니까요. 뭔가 아이러니하네요.”
“그렇지. 한 번도 촬영하지 않은 영화에 출연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게 말이야.”
“어? 그러면…… 꼭 배우일 필요도 없는 거겠네요?”
셰넌이 다시 무언가를 떠올렸다.
“맞아. 모델이라든지, 가수라든지, 누구라도 상관없어.”
“그렇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라도 말이지요?”
“물론이지. 우선은 배우들이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명사들을 대상으로 초상권 사용에 대한 계약을 맺겠지만, 그 뒤로는 일반인들도 자기 초상권을 등록해 남들이 자기 얼굴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할 예정이야.”
유진은 작은 단서만으로 금방금방 자신의 구상을 따라오는 셰넌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SNS, 혹은 트위치 같은 인터넷 방송들을 통해 유명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기 얼굴을 사용하게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좋아하겠어요.”
“그렇게 되길 기대하고 있어.”
“그런데 조금 무섭네요. 잘못 사용하면 상당히 위험한 기술 아닌가요?”
“그렇지.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하는 법이다. 기술의 발전은 대개 이런 명암이 함께 등장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