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기술 발전의 명암
“자칫 위험한 사업에 활용될 수도 있겠어요.”
“물론이야. 비슷한 기술로 안 좋은 방향에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잔뜩 있으니까.”
소위 말하는 딥페이크 기술이 일반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음습한 욕망을 채워 주는 도구로 사용된 것도 오래다.
어쩌면 그러한 기술의 출발 자체가 그런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요는 기술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지.”
“맞는 말씀이에요. 합법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업이라면 누군들 싫어하겠어요?”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무슨 의미죠?”
“이 기술은 정말 놀라울 정도거든. 그러니까 약간만 신경을 쓰면 영화의 얼굴을 바꿔치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경이라든지, 특수 효과라든지,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얼마든지 쉽게 넣을 수 있어.”
“특수 효과까지요?”
“물론 그 경우 단순히 얼굴을 바꾸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수많은 사람을 갈아 넣어 고가의 특수 효과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유진은 TV 화면을 다시 바꾸었다. 거기서는 아마도 아마추어 영화 동아리에서나 만들 법한 조악한 수준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이건 한국의 예술학교 재학생이 만든 졸업작품이야. 러닝타임 30분짜리로 대략 2만 달러 안 되게 들어갔고.”
“2만 달러라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 신도 못 찍을 정도네요.”
셰넌이 웃었다. 독립영화 제작 환경의 열악함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는 수백만 달러 수준의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부르지만, 수십만 달러나 그 이하의 제작비를 투자해 만드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지? 그런데 이 저렴한 영화를 약간 손보면 이렇게 되지.”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며 영화의 퀄리티가 갑자기 높아진다.
“어? 어째서 화면의 구성까지 바뀐 거죠? 저건 영화를 새롭게 찍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예전의 특수 효과라면 그랬지. 하지만 이젠 인공지능이 원래의 장면을 토대로 작가가 원하는 장면을 새롭게 만들어 줘.”
조금 전의 영화에 비해 훨씬 더 역동적이며, 다채로운 영화가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폭발 장면에서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에 못지않은 그럴듯한 특수 효과까지 마음껏 사용되고 있다.
“저 정도라면 길이만 맞으면 대형 장편 영화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어요.”
“처음의 영화를 저렇게 업그레이드하는 데 대략 10만 달러 미만의 비용이 들어갔지.”
“맙소사!”
셰넌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겨우 10만 달러로 블록버스터까지는 아니라도 수천만 달러는 들여야 할 것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저기에서 배우들의 얼굴을 다시 유명한 사람으로 바꾸면…… 혹시 언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요?”
셰넌은 굉장히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
“얼마든지. 지금은 한국어 버전이지만, 몇 단계만 거치면 배우들이 중국어나 인도어로 대사를 하지. 물론 입술 모양도 정확하게 부합하면서 말이야.”
“이제 영화에 자막이 필요 없겠군요.”
“자막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것이 바뀔 거야. 다음 버전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면, 그걸 3D 영상으로 바꾸고 조명이나 구도 모두 후처리가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감독이 원하는 배경을 합성으로 집어 넣고, 편집하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거지.”
유진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셰넌은 아찔한 기분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몇 명의 연기를 순서대로 펼치며 녹화한 뒤에, 인공지능에 처리를 맡겨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도 가능해.”
“혼자서 한 편의 영화를 말이지요? 하기야 혼자 연기를 해도, 여러 사람의 모습을 입혀 버리면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진 않겠지요?”
셰넌이 마치 그렇다고 대답해 달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인공지능이라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툴이니까, 그 기구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거야.”
유진은 다소 모호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혼자서 대작 영화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이건…… 마치 영화계의 빅뱅 같은 거로군요.”
셰넌은 벌써 이 기술이 가져올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지금까지 촬영 현장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스태프들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각자의 일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스탭들이 담당해야 하던 많은 일을 인공지능이 알아서 처리해 준다.
물론 지금 수준이 완벽하다 볼 수는 없어도, 지금 보여 준 것만으로도 다가오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빅뱅이라? 좋은 표현이네.”
“혼란스럽네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뀌게 될지 모르겠어요.”
처음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새로운 기술이 보여 주는 비전에 마냥 흥분하던 셰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심각해지고 있었다.
현명한 그녀도 도저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감을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인 영화 제작이라는 것이 지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대부분 차마 보기 어려울 정도의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영화 산업의 결과물은 예산에 비례한다는 것은 영화가 태어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함없는 불변의 법칙과 같은 것이었다.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은 이제 그런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리려 하고 있었다.
“솔직히 영화 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네요.”
단순히 비용의 절감이라는 면에서만 보아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영향이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좀 더 들여다보면 비용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누구나 영화 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완전히 ‘누구나’라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연기를 할 배우와 영화의 큰 틀을 구상할 사람은 재능이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 수준으로 극장에 걸 수 있을 정도의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니.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면 비슷한 것을 다른 분야에서 찾을 수 있어. 만화나 일러스트 말이야.”
“아! 그렇네요. 요즈음은 누구나 인공지능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장면을 멋진 퀄리티로 만들어 낼 수 있지요?”
“그래. 덕분에 그쪽에 뛰어드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났지.”
물론 저작권 문제와 그림체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한계는 명확하지만, 지금도 아주 많은 사람이 그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롭게 뛰어들어 매진하고 있다.
그런 열풍이 영화계로 넘어오는 것은 이제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다.
“언제쯤 공개될까요?”
“저걸 개발한 쪽에서도 아직 명확한 일정을 잡고 있지는 않아.”
“다행이로군요.”
너무나도 빠른 기술의 발전에 인간이 따라가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하물며 그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당사자가 다름 아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다가 정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거 아니에요?”
“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인공지능은 도구라고 생각해야 해. 인공지능에 의지는 없으니까.”
적어도 유진이 보고 왔던 미래는 그랬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지금과는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인공지능에 종속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근본적인 면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대자본을 지니고, 기술을 독점한 사람들에 의해 종속되어 있다는 면에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는 언제나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투쟁하며 화합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류를 말살하려 들거나, 인류를 가축처럼 사육하는 미래는 적어도 유진이 노년기를 넘어설 때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그렇게 변화되는 환경을 지금부터 고찰하지 않으면, 셰넌의 장대한 계획에도 많은 난관이 있을 거야.”
“그렇겠어요. 제가 그리는 중국 문화의 부흥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기술 수준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요. 고마워요.”
셰넌은 아마도 기업 비밀에 해당할 것들을 자신에게 아낌없이 보여 준 유진에게 진정한 고마움을 느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지.”
“중국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의 시스템은 조만간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맞아. 저 기술이 나오게 되면 지금처럼 경직된 시스템은 다른 나라의 발전 수준을 절대 쫓아가지 못할 거야.”
영화든 드라마든, 비용의 문제와 제작 기술의 난이도 면에서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셰넌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영상 예술 분야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새롭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꺼내 놓을 것이다.
그러한 아이디어들이 서로 교류되며 다시 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야말로 인류 발전에 가장 부합하는 체제지요.”
“맞아. 시장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각자의 성공을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는 것이 발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밑받침이 되지.”
“지금의 중국에서는 그게 어렵고요.”
중국은 문화 예술 분야에 있어 놀라울 만큼 다양한 규제를 펼치고 있다.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만들어 보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이 우선 정부의 시책에 부합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러한 자기 검열이야말로 창조에 있어 극독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인민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셰넌이 지닌 가장 큰 딜레마였다. 사상의 자유가 가져올 결말이 무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일당독재의 종말. 그건 중국 정부로서는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최후의 보루였다.
“어쩌지요?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요?”
셰넌은 겁을 집어먹는다. 중국인으로서, 그리고 중국 지도자의 자식으로서 중국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원대한 꿈을 지닌 그녀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중국의 정권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유진이 방금 보여 준 몇몇 미래 기술은 틀림없이 문화계에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 흐름을 타고 훨훨 날아오를 것은 역시 자유로운 나라들이다.
무엇보다도 미국, 그리고 지금 한창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한국이 이 흐름에서 가장 먼저 시장을 선점하게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중국도 14억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발판으로 나름 크게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것이기는 하겠지만, 14억의 거대한 시장은 한편으로는 바깥을 고려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고립된 시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상품이 중국 내수 시장에서만 팔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셰넌이 원하는 문화의 부흥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어디에서나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