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50화 (350/363)

350화 교묘한 결합

“원대한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건 처음 한 발자국이지.”

“처음 한 발자국이요?”

“그래. 셰넌이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보는 거야. 비록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고 때로 아득하기만 하겠지만,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 걸어가는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을 셰넌이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

“그럴까요?”

“예전 마오 주석도 그랬었지”

유진이 장난처럼 웃으며 말했다. 마오의 공과에 대해 거론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암울했던 고난의 시기에서 거대한 중국 대륙을 차지한 지배자로서의 모습은 셰넌에게 작은 귀감은 될 수 있으리라.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수많은 정복 군주들이 그랬겠죠. 테무진이든, 티무르든 그들이 내디딘 첫 한 걸음은 아주 보잘것없었을 거예요.”

다행히 셰넌은 유진의 격려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아! 그건 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거겠죠?”

“꼭 그럴 것까지야.”

“그럼 뭔가 가르침을 내려 주실 게 있으세요?”

셰넌이 얼굴을 활짝 펴며 물었다.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제안이겠지.”

“제안이요?”

“아까 본 기술들 어때? 굉장하지?”

“굉장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요. 틀림없이 이번 세기는 그 기술들이 예술계, 아니 그 이상의 범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거예요.”

“맞아. 적어도 한 세기 동안은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봐야 할 거야.”

유진은 단순히 영화 속 등장인물의 얼굴을 바꾸고, 영화를 부담 없이 제작하는 기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관한 것이다.

“우선은 아까 그 두 가지부터 말이야. 이미 관련 분야에 대한 특허는 전부 마쳤어.”

“당연하겠지요. 더군다나 유진이라면 말이에요.”

유진은 이 새로운 분야에 필요한 기업들을 미리 선점하고 그들이 지닌 기술을 특허화하는 데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유진이 투자한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 특허가 없다면 그 어떤 기업이라 해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은 분명했다.

“이번에는 중국이라고 해도 피해 가기 힘들 거야.”

“그렇겠죠.”

중국이 타국의 특허에 대해 무심한 행태를 보여 온 것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랴?

하나 몇 년 동안 이어지며 중국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 넣었던 무역 분쟁의 끝에 중국 정부는 마침내 중국 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의 특허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첨단 분야에서는 공개된 특허 이상의 기술들도 적지 않지만, 이미 유진이 투자 기업들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완전히 피해 사업을 할 길은 없었다.

“그러니 이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중국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중국 인민들은 구경도 못 할 거란 얘기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중국에서 유진의 투자 기업들과 협력하지 않고 해당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런 첨단 기술 분야에서 몇 년이 뒤처진다는 것은 영원히 후발 주자로 남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전히 중국이 한국과 미국과 비교해 반도체 분야에서의 격차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그럼 결국 유진이 중국에서도 해당 기술을 서비스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요.”

셰넌은 꽤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중국은 이쪽 분야에서 한없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건 중국 문화의 부흥을 바라는 셰넌이 원하는 것과 전혀 반대의 일이다.

“그렇지만 내 쪽에서도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물론 중국 기업들이 이 새로운 기술에 도용해 경쟁자로 나서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걸 두려워해서 14억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을 포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맞는 말이에요. 중국 인민의 숫자는 서방 세계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으니까요.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시장이지요.”

“그래서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적절한 협력자가 필요해.”

“아! 그게 혹시?”

“맞아. 바로 셰넌이지.”

중국에서 사업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기술의 유출과 더불어 중국인들이 사업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적지 않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중국의 부당한 관행 덕분에 기술만 유출하고, 제대로 된 성과는 올리지 못한 채 철수하고 말았다.

특히 이런 첨단 분야라면 더더욱 긴장해야 한다.

무역 분쟁 이후 중국 내 관행이 전보다 훨씬 더 공정해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뿐이다.

여전히 많은 중국 기업들은 해외 기업은 물론이고, 자국 내 다른 기업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난 셰넌이 중국 내 합작 기업의 책임을 맡아 주었으면 해.”

하지만 만일 그 기업의 대표가 중국 정부 최고 지도자의 영애라면 어떨까?

어느 간 큰 기업가가 감히 지도자의 따님께서 운영하는 기업의 기술을 훔치려 들 것이며, 어느 무도한 관료가 황제의 따님께서 운영하는 기업에 부당한 요구를 해 올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합자 법인의 형식이 되겠지. 물론 중국 측 파트너는 셰넌이 결정하면 되고.”

셰넌을 영입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당연히 그에 부응하는 떡고물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국이라서가 아니다.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을 매끄럽게 진행하려면 가능하면 위쪽과 손을 잡는 것이 좋다.

물론 그랬다가 홀랑 빼앗기는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그 누가 유진이 투자한 기업을 집어삼키겠다고 나올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다시 한번 미국과 끝을 알 수 없는 끔찍한 분쟁을 겪어야 할 것이다.

“좋아요. 해 보고 싶어요.”

셰넌의 의욕이 갑자기 확 올라온다.

“이건 중국 문화계에도 매우 커다란 기회가 될 거예요. 물론 여전히 검열과 같은 여러 문제가 있겠지요. 그래도 누군가가 그런 문제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거예요.”

“그래. 법적으로든 관행적으로든 문화적인 억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릴 수 있으면 좋겠군.”

물론 유진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문화 예술계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관치는 동양 문화권의 유구한 관행이다.

비록 셰넌이 최고 지도자의 영애라는 지고한 지위에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정계에서 가진 영향력은 그리 대수롭다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유진이 알고 있는 미래에도 중국 사회에 진정한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은 오지 못한다.

물론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선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어.”

“뭔가요?”

“페이스북 머니.”

“머니? 암호화폐요?”

“그래. 이번에 브라질에 온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게 남아메리카에서 암호화폐를 유통하는 것에 관한 문제였잖아?”

“그렇죠.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화폐는 인플레도 너무 심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암호화폐는 각국 국민에게 아주 좋은 대안이 될 거예요.”

“난 중국에서도 암호화폐를 유통할 생각이야.”

“아! 그건…….”

셰넌은 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해 유통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정부 시책이 확고한 만큼,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무척 많은 난관을 겪어야 한다.

더구나 그런 중대한 문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셰넌이 거론할 사항이 아니다.

“물론 정부 시책에 따른 암호화폐 금지를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야. 이번에 새로 출시되는 페이스북 전용의 코인을 사용하겠다는 거지. 말하자면 본격적인 암호화폐라기보다는 게임상에서 통용되는 게임 머니 정도로 보면 될 거야.”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10여 년 동안 해외의 SNS, 그러니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중국 내 서비스를 금지해 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 분쟁이 끝나며, 유진의 강력한 주장으로 페이스북은 이제 중국 내에서 금지되지 않았다.

물론 중국 정부의 검열은 여전하기에 중국인들은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도 위험한 내용은 섣불리 올리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영화 관련 인공지능과 페이스북 머니라니……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은가요?”

“새로운 서비스는 페이스북과 연계될 예정이야. 영화를 보거나 영화 제작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머니를 사용해야 하지.”

“으음…….”

셰넌은 중국 정부가 해외의 SNS나 암호화폐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지 잘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앞섰다.

“페이스북 가입자는 이미 오래전에 30억 명을 넘어섰지. 인스타그램도 20억을 넘었고. 어떤 의미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거대한 대륙이란 거야.”

“확실히 두 서비스를 결합하면 시너지는 확실하겠네요. 그리고 그만큼 파괴력도 엄청나고요.”

수십억의 이용자와 새로운 시대의 매스미디어, 그리고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화폐의 조합이 어떤 영향력을 지니게 될 것인지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금세 도출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달러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새로운 화폐가 출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너무 크기 때문에 셰넌은 중국 정부가 그걸 선선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중국 측에 제안하려는 것은 아니야.”

“무언가 대가를 치를 거란 말이지요?”

“페이스북 머니는 페이스북 운영 기업인 메타와는 별개의 기관에서 주관하게 될 거야.”

“별개의 기관이라면?”

“기업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은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중국 측이 그 기관의 지분을 보유하게 될 거라는 거지.”

이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셰넌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얼마만큼이요?”

“원래라면 페이스북 가입자 수만큼이지만…….”

“중국에서 페이스북을 허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건 불공평하겠군요.”

“물론이지. 아마 이건 협의를 통해 서로가 납득할 만한 선을 찾아봐야 할 거 같아.”

“으음…….”

셰넌은 생각에 잠겼다. 유진이 이걸 중국 정부의 요인도 아닌 자신에게 먼저 꺼낸 이유를 금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부친에게 보내는 특사로 사용하려는 거였다.

이는 유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중국 정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지도자 개인이 될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넘겨 주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일을 제삼자를 통해 알릴 수는 없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셰넌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셰넌을 유진에게 보낸 그녀 부친의 원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딸을 유진과의 개인적인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쓸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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