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머니 컴퍼니
“중국으로 가라고요? 제가요?”
유진이 한 말을 그대로 되묻고 있는 저커버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중국공산당 중앙판공청의 초청입니다. 아마 주석과도 회담의 자리가 있을 겁니다.”
“급작스러운 말이로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얼굴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페이스북은 중국에서 금지되어 오다가 얼마 전 중국 정부의 해외 SNS 해금이 풀리며 공격적인 영업을 시작했지만, 이미 중국 내 SNS 시장은 자국 SNS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중국 시장의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14억이 넘는 거대한 시장을 보유한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을 무척이나 고대해 왔지만, 후발 주자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다들 고전하는 중이다.
“중국 정부에서 글로벌 SNS 업체들에게 좀 더 폭넓은 개방을 약속했습니다. 더불어 글로벌 SNS 업계의 수뇌부와 정부의 화합을 보여 주려는 목적으로 이번 초청이 성사된 것이니i,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점유율 확보에 도움이 될 겁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그리고 구글과 같은 다른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후발 주자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이 미국산 인터넷 서비스를 여전히 꺼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한몫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이나 정부에서 막아 왔고, 함부로 이용하다가 자칫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 때문에 이번 행사를 통해 중국 정부는 해외의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결코 안전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려는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 머니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겁니다.”
“역시 그것 때문이로군요.”
마크의 눈이 빛난다. 십 년도 넘게 꿈꿔 오던 대장정이 브라질을 비롯한 남아메리카에서 시작되고, 드디어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도 빛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수십억에 달하는 자사 서비스 가입자들이 국적에 관계 없이 다양한 상업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 머니를 꿈꾸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페이스북 내부에서 아이템이나 광고 서비스를 거래하는 정도가 되겠지만, 점차 범위를 넓혀 페이스북에 연결된 쇼핑몰 상품을 구매하고, 점점 더 많은 연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다가 마침내는 오프라인에서도 사용되는 수준이 된다면 페이스북 머니가 기존의 화폐를 대체할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마크가 구상한 것처럼 15년 전쯤 이러한 페이스북 전용 화폐가 상용화되었다면, 지금쯤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달러 다음가는 기축 통화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서는 페이스북이 보유한 가입자가 너무 많아 페이스북 자체의 사이버 머니를 유통하는 것이 가져올 파급력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페이스북에서 그런 통화를 유통하려는 시도에 제한을 걸었다.
일개 기업이 지니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힘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저커버그가 자신의 야망을 접지 않았다면, 중국뿐 아니라 아주 많은 나라에서 페이스북 서비스가 금지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페이스북 머니를 위해 페이스북을 포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서야 곤란했기에 마크는 자신의 거대한 야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유진을 만난 뒤 저커버그는 잠시 한편으로 밀어 두었던 자신의 꿈을 다시 실현할 수 있었다.
“카운실에서 중국 측 지분은 20% 내외가 될 전망입니다.”
“적지 않은 비율이군요.”
마크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유진이 말한 카운실은 페이스북 머니를 유통하고 통제하기 위한 조직을 의미한다.
30억에 달하는 유저가 사용하는 대안 화폐는 그 파급력이 너무나 무시무시한 만큼, 일개 기업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유진이 만든 특별한 단체이다.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페이스북 머니의 유통을 허가한 각 국가의 정부 기관이 카운실에 들어와 페이스북 머니의 현황과 유통에 대해 관여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감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운실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일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페이스북 머니의 유통 관행에 제재를 걸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중국이 요구한 20%의 지분이다.
중국의 인구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페이스북 가입자 수로 보면 아직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30억에 달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페이스북 머니의 지분을 20%나 요구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뭐. 지금 당장이 아니라 더 앞을 봐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마크는 금세 수긍했다. 중국 시장은 현재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가장 빠르게 중진국 대열에 진입한 중국의 경제 규모는 인도와는 격이 다르다.
더군다나 이번 행사를 통해 페이스북 가입자가 급증한다면 전체 가입자의 20%를 중국에서 확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머니 컴퍼니 지분도 10%가 필요합니다.”
유진은 카운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말했다.
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는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와는 전혀 별개의 법인에서 담당하게 된다.
사실 메타의 지분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유진으로서야 메타가 운영하든 다른 기관이 운영하든 큰 상관은 없지만, 외부의 시각으로 볼 때는 메타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페이스북 머니가 지닌 파급력 때문이라도 각국에 진출할 때에는 각국 정부의 권력자들과 페이스북 머니에서 얻어지는 과실을 나누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이번 남아메리카 방문에서도 역시 각국 수뇌부의 특사가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머니 컴퍼니의 지분에 대해 일정 부분 양도하는 선물이 주어졌다.
물론 외견상으로야 비상장 주식의 거래이지만, 누구라도 이 페이스북 머니가 미래에 얼마나 거대한 힘을 얻게 될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겨우 태동 단계에 불과하지만, 몇 년 안으로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각국 화폐를 대신해 유통되게 되면 머니 컴퍼니가 수천억 달러 가치를 지니게 되리라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과장도 아니다.
거기다 남아메리카를 넘어 유럽과 미국, 인도와 중국에까지 진출하고 나면 머니 컴퍼니의 가치가 얼마나 거대해질지는 사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다만 적어도 근 10년 내로 머니 컴퍼니가 1조 달러 기업의 반열에 들 것은 너무나 확실했고, 그 때문에 남아메리카 각국 정상들은 겨우 0.1%에 불과한 지분도 감사하게 여겼다.
그들은 0.1%의 지분이 수십억 달러가 되는 날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10%라. 상당하군요.”
마크는 다시 다소 가라앉은 얼굴이 된다.
“사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금세 다시 얼굴을 폈다. 중요한 것은 지분 몇 %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페이스북 이용자만 해도 30억 명, 여기서 페이스북 머니가 몇몇 국가에서 중요한 화폐로 자리를 잡게 되면 페이스북 가입자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30억이 40억이 되고, 40억이 50억이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지구 인구의 2/3가 사용하는 엄청난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중국 시장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중국은 다른 인구 대국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인도인들이 1년에 100달러를 쓸 때, 중국 사람들은 그 몇 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이번 중국 시장에서 얼마나 제대로 정착하느냐 하는 거죠. 중국 정부에서 단단히 밀어줄 생각이니, 확실하게 해 보세요.”
유진의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이미 셰넌을 통해 중국 최고 지도부와 충분한 교감을 마쳤다.
약간의 고심 끝에 중국 정권의 수뇌부는 페이스북 머니의 자국 내 유통을 허용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셰넌의 부친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 정치계는 다시 집단 지도체제로 돌아갔고, 이런 중대한 사항을 지도자 혼자 결정 내리는 것에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했다.
그쪽에서 무려 10%나 되는 지분을 요구한 것에는 그런 내막이 있었다.
현 지도자는 물론이고, 수뇌부 모두가 적절한 보상을 원하고 있다.
적어도 중국 정치권에서 권력 순위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거의 1%에 달하는 지분이 나뉘어 주어질 예정이다.
각기 몇 년만 기다리면 100억 달러 이상의 기대 수익을 바랄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다.
“중국 정부의 기대가 매우 큽니다. 그쪽에서는 페이스북이 달러를 압박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중국 정치권에서 페이스북 머니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떡고물을 기대해서만은 아니다.
100여 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달러 본위 체제에 페이스북이 위협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미국의 절대적 우월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무한히 찍어 낼 수 있는 달러가 있다는 속사정이 있다.
미국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라도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
세계 경제가 하나의 몸뚱이가 된 이후로는 달러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어려워졌다.
더불어 각국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달러를 잔뜩 비축해 놓고 있다. 중국의 경우 무려 4조 달러나 되는 외환을 비축해 둔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경제에 약간의 위기라도 오면 기타 국가들의 경제는 아주 거세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기축 통화의 위력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그런 달러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낮추기를 원한다.
지금까지 국제 무역 시장에서 달러를 대신해 중국의 위안화가 통용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 크게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여전히 세계인들은 위안화가 아니라 달러를 원한다. 그리고 유럽의 유로화나 일본의 엔화를 훨씬 더 선호한다.
“페이스북 머니가 통용되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죠. 세상이 바뀌는 거지요.”
마크는 궁극적으로 페이스북 머니가 실생활에서의 유통을 넘어서서 금융 투자나 보험료의 지급, 그리고 더 나아가 무역 거래에서도 사용되기를 원했다.
상점에서 물건을 판 대금이 페이스북 머니로 들어오고, 직원들의 급여도 페이스북 머니로 지급하고, 은행의 ATM 기기에서도 페이스북 머니로 금융 거래를 한다.
그러다 마침내 기업 간의 무역 거래에서까지 페이스북 머니를 사용하게 되면 완벽하게 현재의 화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남아메리카 국민들은 이제야 보급되기 시작한 페이스북 머니를 현금보다 훨씬 더 선호하고 있었다.
1년에 5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은 보유한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달러에 패깅된 페이스북 머니는 그렇지 않다. 100페이스북 머니는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100페이스북 머니다.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어플만 깔면 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