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올리비아 핫세의 타이타닉
“중국에서의 사업은 아주 잘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저커버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완연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페이스북 가입자 수는 3억 명이 늘었고, 인스타그램은 2억 3천만 명이 늘었습니다. 늘어난 가입자의 2/3는 중국에서 유입되었습니다. 더욱 좋은 점은 이런 추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잘된 일이로군요.”
“물론 중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때문이지만, 어찌 되었던 아직 큰 문제는 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해외 SNS 서비스를 받아들이며 내건 조건은 중국 내 가입자에 대한 서버를 중국 국내에 유지할 것이었다.
서버가 중국에 있으면 중국 국내법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고, 중국 정부에서 원치 않는 내용을 삭제하라는 요구나, 기타 법적인 문제를 들어주어야만 했다.
중국 정부로서는 미 정부의 압력에 의해 자국 시장을 개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부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까지 방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미국의 사업자들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마땅한 요구였다.
언론이나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은 지구상 몇몇 나라에서나 보장되는 권리이지, 결코 모든 사회가 합의한 천부적인 권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반대의 경우로 중국의 SNS 서비스인 틱톡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미국 정부에서는 잠재적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핑계로 미국인 사용자 정보를 본 서버와 분리하고, 미국 보안 전문가들의 감독 아래 놓이도록 강제한 일도 있으니 중국의 요구가 무도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 기업 측에서야 진출하려는 국가의 정부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쪽이 합리적인 계산이다.
이미 애플도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국 정부가 원하는 것을 무한정 들어주며,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저커버그로서는 중국 인민들의 가입 정보가 담긴 서버를 중국 내에 위치하게 한 뒤, 중국 정부에서 요청하는 게시물을 빠릿빠릿하게 내려 버리는 것으로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시작하기 전에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걸림돌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중국 정부도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셈이니까요.”
몇 년 전의 태도와 반대로 중국 정부, 그러니까 적어도 중앙정부의 수뇌부는 페이스북이 중국 내에서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내년에는 새로운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가 시작될 겁니다.”
“드디어 시작인가요?”
저커버그가 화색을 띠며 물었다.
“일반인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최저 한계를 넘었습니다.”
2010년 후반 이후 인공 지능의 발전은 눈부시게 빨라, 이제 영화 한 편의 등장인물을 다른 배우로 바꾸는 작업도 실시간으로 가능해졌다.
더군다나 지난 1년 동안 투자의 결실이 있어, 이제 한 번에 수천만 시청자들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놀랍군요. 대체 어떤 괴물들을 모아 놓은 겁니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많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그러듯이, 마크 또한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인공지능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메타에서 서비스하는 다양한 서비스에 인공지능을 탑재해서 좀 더 창의적인 콘텐츠를 더욱 쉽게 제작할 수 있게 해 주고,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메타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투자한 분야는 특히 생성 인공지능 분야이다.
그러니까 지금 서비스하려는 미디어 서비스 역시 마크의 주요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페이스북의 메타뿐 아니라,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마존과 애플도 비슷한 종류의 인공지능 개발에 매년 막대한 투자를 이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쟁에서의 승자는 처음부터 유진으로 정해져 있었다.
유진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에 이 서비스를 개발할 유명한 사람을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접근해, 막대한 투자비와 그가 원하는 모든 자원을 서포트해 주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가격은 정해졌습니까?”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30분짜리 TV쇼라면 5달러 내외, 그리고 영화의 경우 대략 30달러 선이 될 전망입니다.”
영화 한 편에 30달러라면 결코 낮은 가격은 아니지만, 대작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이 아닌 OTT에서 공개할 때도 30달러가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 그렇게까지 비싼 비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영화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우려가 섞인 환영이라고 봐야겠지요. 어차피 묵혀 두고 있던 콘텐츠에서 새로 수익이 발생하는 것엔 불만이 있을 수가 없을 테고요.”
수십 년 전에 찍은 영화도 물론 수요가 없지는 않다. 명작의 반열에 든 영화라면 여전히 매년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추가로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서비스에서 발생할 수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이타닉 같은 경우 무려 2억 달러의 개런티를 제시했습니다. 러닝 개런티는 당연히 추가이고요.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30년 전 영화에 2억 달러라면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로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커버그는 타이타닉이 지닌 상징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쥐라기 공원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흥행작들은 1억 달러의 개런티를 주고 리스트에 올린 영화의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초기 투자 비용이 상당하겠군요.”
“대략 300억 달러 이상이 들었죠. 대신 전부 20년 독점 계약입니다.”
그것도 싸게 든 셈이다. 어지간히 유명한 명작, 대작 블록버스터들은 대부분 이 서비스에 집어넣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많은 명작 영화들을 서비스할 생각은 아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영화가 주어지는 것도 고객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차근차근 매년 보유 영화의 몇 퍼센트 정도씩 추가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영화에 거액의 개런티를 지불하며 계약한 것은, 후발주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기술이 성숙하기 전부터 다양한 특허로 진입 장벽을 높여 놓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특허로 시장을 독점하기는 어렵다. 언제 누가 새로운 기술을 들고나올지 모른다.
그렇지만 콘텐츠라면 문제가 다르다. 아무리 새롭고 뛰어난 기술로 무장한 신생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어도, 유망한 영화를 섭외하지 못한다면 말짱 헛수고에 불과하다.
유진이 알지 못하는 어떤 천재가 훨씬 더 뛰어난 기술로 이 분야에서 창업한다면, 저작권이 끝난 1900년대 초반의 영화나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할리우드와 방송계에 폭넓은 영향력을 지닌 유진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고전 영화 콘텐츠는 과거의 영광을 다시 팔아먹을 기회이고, 앞으로 제작될 영화들은 역시 유진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유진이 대다수 메이저 제작사의 지분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 각국의 산하 투자 기관들을 통해 디즈니나 유니버설, 소니 픽처스 등의 지분을 적어도 30%씩은 소유하고 있으니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당연했다.
“300억 달러라니, 영화사와 배급사들이 돈 잔치를 벌이겠군요.”
이번 일로 영화 산업계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이 있을지 금세 알아차린 저커버그가 말했다.
“그렇죠. 디즈니의 경우 아무런 추가 비용도 없이 계약금으로만 120억 달러를 받아 챙겼고, 앞으로 매년 얼마나 클지 알 수 없을 만큼의 추가 이익이 발생할 테니까요.”
당장 이번 계약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배급사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솟아오를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라면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유진은 이미 이런 영화산업 관련주를 이미 충분히 추가로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자기가 투자한 회사에서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니, 그 액수가 커도 유진에게는 오히려 좋기만 한 일이다.
“주주들이 크게 환영할 겁니다. 콘텐츠를 보유한 영화사 쪽에서야 나쁠 게 하나도 없겠군요.”
“다만 걱정도 적지 않지요. 이 서비스의 파급력에 따라 극장 수익이 휘청거릴 수 있으니까요.”
이제 영화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영화를 극장에서 20달러를 주고 보는 것과 이미 명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를 자신이 원하는 배우로 바꾸어 새롭게 즐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대개의 이들은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이 한정적이니, 이 서비스가 흥행에 성공하면 극장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제작자들 가운데에는 이제는 다시는 흥행 수익 30억 달러짜리 영화는 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도 있을 정도예요.”
“물론 그거야 영화가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마크는 선지자이다. 새롭고 뛰어난 기술이 과거의 산업을 사장시키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이지요. 모든 사람이 과거의 명작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걸 찾기 마련입니다.”
유진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한 뒤에도 영화관은 여전히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극장 산업에 작지 않은 타격이 갈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멀티플렉스 체인 등에 대한 투자는 이미 청산하도록 지시했다.
극장이 충격을 딛고 다시 살아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가 되어 극장 산업 관련주들이 가장 쌀 때 다시 거두어들이면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얼굴들은 충분히 확보했습니까?”
이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두 축의 또 다른 하나는 배우의 얼굴들이다.
타이타닉을 새로 볼 사람이라면 남자 배우나 여자 배우 중 한 명이나, 혹은 둘 다 바꿀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배우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걸 볼 이유는 없다.
그런 이유에서 충분히 많은,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의 초상권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이지요. 다소간의 이견이 있기는 해도 충분한 대가를 제시하면 대개는 받아들이더군요. 할리우드 스타들은 이번에 다들 아주 큰 재산을 마련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무려 1억 달러를 받아 챙겼지요.”
“휘유! 굉장하군요.”
영화판에서 여자 배우들보다 남자 배우들의 개런티가 높은 것은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 아니다.
이번 서비스를 위한 접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체로 남자 배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액수가 제시되었다.
어쩔 수 없다. 시장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참! 올리비아 핫세의 초상사용권도 확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를 새로운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