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아대륙(亞大陸)
“으아아! 살 것 같다. 여기 공기를 맡으니 살 거 같네.”
몇 달 만에 뉴욕에 돌아온 유성은 형을 보자마자 하소연을 시작했다.
중국과 브라질을 오가며 두 대륙에서의 사업을 정신없이 수행하던 유성은 얼마 전부터는 인도에서도 비슷한 일을 맡았다.
남아메리카와 중국에서처럼 유진이 구상한 인도의 경제 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계획을 잔뜩 들고 가 인도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을 만나며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는 무척이나 야심 넘치는 프로젝트이다.
유성은 이미 암호화폐 분야에서 경이로운 성과를 이루어 내었고, 뒤를 이어 브라질과 중국에서의 프로젝트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성취를 보였다.
물론 형인 유진의 서포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 세상일이 계획과 도움만으로 이루어지던가?
사실 유진으로서도 동생인 유성이 이렇게까지 비즈니스에서 능력을 보이게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유성은 형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진정한 경영인으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유진도 이번 계획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인도를 마음 놓고 유성에게 맡길 수 있었다.
“여기 공기라니? 뉴욕 공기가 그렇게 괜찮았던가?”
요즈음 전기차가 많아진 덕분에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는 해도, 맨해튼은 여전히 미국에서 세 번째로 공기 질이 좋지 못한 도시다.
물론 인도 대도시의 오염에 대해 조금 알고 있기는 하지만, 유성이 출발한 곳은 그래도 꽤 알려진 휴양도시였다.
“거기보다는 나아. 으으…… 딴 건 몰라도 냄새는 도통 적응이 안 되더라고.”
유진의 생각과 달리 공기가 아니라 향신료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래? 호텔에만 머문 게 아닌가 보지?”
“아무래도 신비의 나라를 방문했으니 다양한 곳을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어? 더군다나 그런 영적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지금 시대에 흔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그 영적 체험은 많이 즐겨 봤어?”
“뭐. 그럭저럭. 흐흐. 근데 생각처럼 사람들이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유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인도라고 물질주의 세상을 역행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쪽보다도 훨씬 더 물질적인 것에 충실한 것 같더라고. 맨해튼에 사는 금융가들보다 더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 해야 할까?”
“당연하지 않아? 그쪽은 1달러에 하루의 끼니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맞는 말이야. 정말 1달러를 벌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하지.”
유성이 조금 씁쓸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확실히 인도 사람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지요?”
오랜만에 돌아온 유성을 반기기 위해 옐리자베타와 함께 들른 셰넌이 물었다.
그녀도 그간 중국을 오가며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의 성공적인 시작을 위해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기적이라. 사실 틀린 말은 아니겠네. 그렇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크게 다른 것도 아니잖아?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법이지.”
“그런가요? 사실 나도 인도 사람들에 대해 조금 들은 게 있어서요.”
“무슨 이야기?”
“신의가 없고, 과장이 심하다고요. 거짓말을 아주 밥 먹듯이 한다더군요.”
“인도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에도 꽤 많은데? 딱히 다른 나라 출신과 크게 다른 건 모르겠더군.”
유진이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유진이 거느린 투자법인에도 인도 혈통을 지닌 직원은 꽤 많은 편이다.
숫자에 밝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미국에 와 있는 인도인이 많기 때문인지 부서별로 한 명씩은 있을 정도였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보스 앞에서야 그럴 수 있나요? 더군다나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글로벌 스탠다드가 통하는 곳이라고요. 그러니까 평범한 인도인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그런가?”
“인도인들 대개는 뭐랄까? 굉장히 말이 많고, 시끄럽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더라고요.”
셰넌은 인도인들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런가?”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인도 사람들은 그랬어요.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인도인도 마찬가지이고요. 뭐라고 하죠? 맞다! 염치가 없어요. 원하는 게 있으면 주인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손을 대고, 누군가를 만나든 꼭 이득을 얻으려고 하지요.”
“염치라…….”
“그것뿐인 줄 알아요? 자기가 잘못을 해 놓고도 말도 안 되는 말로 변명을 하고,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기 일쑤에, 그래도 안 되면 인도에서는 이게 정상이라며 말을 돌려 버리곤 하죠.”
단순히 인도와 중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 때문에 생긴 악감정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매우 신랄한 비난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유진이 만난 인도인들은 진짜 인도인의 습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거라고요.”
아마 시간만 주어진다면, 셰넌은 인도인의 나쁜 점을 끝도 없이 꺼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최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 그녀의 고국인 중국인일 것이다.
어쩌면 그런 면 때문에 셰넌이 더욱 인도인을 폄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유진은 셰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도인을 만나 봤다.
그것도 금융업이나 대단한 직업을 가진 엘리트들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말이다.
뉴욕에 본거지를 둔 글로벌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협력 관계로 만난 사람도 있고, 다양한 현장에서 파트너로서 함께 일해 본 적도 적지 않다.
또 뉴욕에 사는 동안 이웃으로 만난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사교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만나 친해진 일도 많다.
그중에는 친구라고 서슴없이 부를 사람도 몇몇 있고, 그중에 다시 몇몇은 지금 새롭게 인연을 맺어 왕래하고 있다.
물론 유진도 인도인 중에는 좀처럼 믿지 못할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셰넌처럼 누군가에게 들어서가 아니라, 직접 접해 보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인정하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인도인도 적지 않다.
그저 사람일 뿐이다. 한국인 중에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있고, 매사에 과장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15억에 달하는 인도인 전부를 그렇게 싸잡아 태그를 붙이는 것 따위는 유진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셰넌의 주장을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인도인에 대해 편견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경우라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유진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굳이 이 자리에서 그걸 가지고 논쟁할 이유는 없었다.
“뭐. 그런 면도 있을 수는 있겠네.”
인도에서 몇 달을 보내고 온 유성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냄새도 지독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적반하장에…….”
“확실히 커리 냄새가 어딜 가도 나기는 하더라.”
유성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인도 사람들은 정말 향신료를 좋아하더라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었어.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대화할 때 정말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고는 하더라. 심지어 금세 밝혀질 거짓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고.”
“거 봐요? 맞지요?”
셰넌이 굉장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확실히 문화의 차이라는 게 있더군. 인도 사람들이 지닌 윤리 관념이 동아시아 쪽과는 꽤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야.”
“그쪽 사람들과 협상을 할 때면,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거지.”
인도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거짓말을 내뱉는 것은 유진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 또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라면 얼마든지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협상의 자리에서라면 전혀 다르다.
오늘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다음날 다시 만나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
그런 거짓말은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아주 큰 돈이 걸려 있는 협상 과정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맞아. 나도 처음에는 꽤 당황했어. 틀림없이 지난번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이번엔 또 반대의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지난번과 다르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떼 버리고 말이야. 지금은 조금 익숙해진 것 같기는 하네. 하하.”
“그렇죠? 인도인들이란.”
기세가 오른 셰넌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나마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훨씬 나아. 그래도 규모가 있는 사업을 하는 이들은 국제적인 안목을 갖추고, 최소한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지키니까. 문제는 정치인들이나 관료와 만날 때지. 그들은 외부를 보고 살아가지 않으니까 말이야.”
“사실 그건 꼭 인도만 그런 것은 아닐 거야.”
유진은 아마 지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정치 지도자를 직접 마주하고, 또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서 정치인들이 얼마나 쉽게 말을 바꾸고는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런가 봐.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정치인들을 만나는 건 굉장히 다르더라.”
“사업을 하는 사람은 굉장히 투명하잖아. 대화의 목적이 명분이 아니라 이익이니까. 때로는 서로가 조금이라도 더 큰 이익을 보겠다며 다투기도 하지만, 대개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 내기 마련이지. 정치가들을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야.”
유진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이야. 명분, 명분…… 늘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한테 어떤 이익을 안겨 줄 것인지 묻고 있더라고.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은 순수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고.”
“인도라서 더 그럴 거예요. 그쪽 정치인들이 부패한 건 유명한 일이니까요.”
셰넌은 여전히 인도에 관한 좋지 못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얼마 전에 중국의 지방 정치인이 수백억 달러를 자기 금고에 쌓아 두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
옐리자베타가 슬쩍 초를 쳤다. 두 사람은 틀림없이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때때로 각자의 조국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렇게 비꼬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고는 한다.
그러면서도 앙금은 남기지 않는 것을 보면 때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건 보였어. 수백억 달러가 아니라 수억 위안이었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자기 집에 수백억 달러 상당을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고.”
셰넌이 눈썹을 치켜뜨며 반박했다.
“수억 위안이면, 적어도 수천만 달러라는 거잖아? 역시 중국은 굉장한 부자 나라가 맞아. 일개 지방 관리가 그렇게 큰돈을 축적할 수 있다니. 인도의 정치가들이 아무리 부패해도 그렇게 큰돈을 모을 수는 없을 거야. 인도는 가난하니까 말이야.”
칭찬과 비꼼과 인도를 비하하는 발언까지 한 번에 던져 버리는 옐리자베타의 솜씨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뭐. 인도 정치인들이 부패한 건 맞는 말 같아.”
유성은 두 여인의 기세 싸움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