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인도가 세계를 지배한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건, 내게 먼저 연락을 해 오는 사람이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은 거의 다르지 않았어. 야당이든 여당이든 말이야.”
그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유성은 유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부자이다.
그리고 유성이 인도에 와 있는 이유는 형인 유진과 함께 아주 커다란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인도인들이 모를 리 없었다.
“다들 국익을 말하면서도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먼저 생각했어.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드물었지. 어찌 보면 사업하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더 이기적이더라.”
“그건 인도가 아니더라도 어디나 비슷해.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그런 정치인이 쉽게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는 이상 어디든 그런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거야.”
유진의 말에 셰넌은 이번에는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인 모양이다.
“대체 그런 나라가 있기는 한가요? 여기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잖아요?”
옐리자베타가 물었다. 그녀도 러시아 정치인들의 부패 문제는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어떤 측면에선 중국이나 인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난장판인 곳이 러시아이다.
적어도 인도에서는 국영 기업을 그렇게 측근들에게 마구잡이로 나누어 주고,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가들을 숙청해 기업을 빼앗고, 암살까지 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그렇지. 미국도 정치인들과 만남을 가져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자신에게 돌아갈 이익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그래도 북유럽 쪽은 훨씬 낫더군. 정치인이 재정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니까.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해타산에까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인도에서는 그조차 없어. 형 말처럼 부패한 정치인을 가려내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문제는 과연 인도에 그런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느냐 하는 거겠지.”
사업하는 사람에게 있어 진출하려는 국가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기업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런 부패 관행을 아주 적절히 이용해 다른 기업들에 비해 우위에 서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유성은 그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절대로 안 돼요.”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셰넌과 옐리자베타가 거의 동시에 단언하듯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인도의 부패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 사람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둘 다 입을 닫고 말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인 두 사람의 부친들은 각기 개혁과 젊은 피를 가장 큰 무기로 들고 있지만, 정치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두 사람 모두 사실상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러한 문제들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어쩌면 두 여자는 자국보다 인도의 현실이 훨씬 더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고생이 많겠어요. 인도 정치인들은 두 분이 인도에 얼마나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더 이상 인도에 대한 비난을 꺼내 화살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 셰넌은 슬쩍 화제를 돌리려고 해 본다.
적어도 중국은 유진과 유성 두 형제와 함께 역사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그래도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이어지는 유성의 말은 꽤 의아스러웠다.
“그런가요? 나도 사실 그쪽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인도인들을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쪽 사람들이 여자나 아이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잘 알고 있어요.”
옐리자베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얼마 전에도 미신 때문에 자기 아이를 생매장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 대체 얼마나 끔찍한 인간들이어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랬었나?”
오히려 인도에서 살다 온 유성이 되물었다.
“인도에서는 그 정도의 일은 그다지 기사화도 되지 않는가 봐요?”
“아니. 워낙 많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잖아? 인도는? 어디선간 그런 엽기적인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겠지. 15억이나 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고, 또 서구세계나 동아시아에 비하면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까.”
유성은 굳이 중국에서도 바로 얼마 전까지 농촌 지역에서 인신매매가 일어나 한 동네 사람들이 여자를 공유했던 일이 기사로 난 것 따위를 거론하지 않았다.
인도만큼이나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중국에서도 아주 다양한 엽기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또 그런 일들이 해외의 기사로 보도되어 중국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라고 대단한 문명 국가인 것은 아니다. 매년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구타당하고, 또 수만 명의 여자가 살해당하는 곳이 러시아였으니까.
유성은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셰넌과 옐리자베타와 토론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로 성공한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요즈음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
유성은 셰넌과 옐리자베타가 가진 인도에 대한 혐오를 바꿀 생각도, 그렇다고 맞장구쳐 줄 생각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꺼내놓고 있을 뿐이었다.
“인도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려면 인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아야겠더라고. 그러다 보니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어.”
셰넌도, 옐리자베타도 잠자코 유성의 말을 들었다.
“인도 사람들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인간형은 없다는 사실이야. 당연하겠지. 무려 15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인데. 중국 사람은 어떻다고 뭉뚱그려서 말할 수 있는 특징을 찾을 수 있겠어?”
유성이 셰넌에게 물음을 던지자, 그녀는 이내 수긍했다.
“음…… 확실히 그러네요.”
“더군다나 우리는 인도를 한 나라라고 부르지만, 사실 인도는 아주 최근에 와서야 겨우 정말 하나의 나라가 되었지. 사실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지역마다 전혀 다른 풍습과 수많은 인종, 그리고 계급으로 분화되어 각자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인도는 미국이나, 중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모습을 지니고 있더라고. 특히 신앙과 관련해서는 더하고.”
유성이 살짝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야. 인도인들은 다들 신앙이 있는데, 그 신앙의 대상이 전부 달라. 그런데도 하나로 뭉뚱그려 힌두라고 부르지. 그렇게 오래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각자가 가진 신분이나 종교에 따라 윤리관이 서로 달라. 엄청나게 말이야.”
정말 다양한 모습의 신앙을 보고 왔는지, 유성은 한껏 강조하여 말했다.
“그러니까 미국이나 중국에서처럼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한 가지 특별한 주의라는 게 존재할 수 없는 거야. 애국이라는 것도 와 닿지 않고, 도덕의 기준조차도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이나 지역, 종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어.”
“굉장히 복잡하군요?”
“그래. 정말 한 나라가 아니라 대륙…… 아니, 내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상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유성의 얼굴에는 또 다른 종류의 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인도인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그런데 여기 있는 우리가 인도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재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오만한 거야.”
“상당히 많은 깨달음을 얻었네.”
유진은 동생의 발전이 기꺼웠다. 앞날을 위해서라도, 한 나라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응. 그런 거 같아. 사실 인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문화는 상대적이니까 외부인의 시각에서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직접 사람들을 마주하고 보니, 그런 생각조차 무의미해지더라고. 거기선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
유성은 자신이 기대한 것은 아주 작은 크기의 글로벌 스탠다드였다고 말했다.
세계 어디서나 기준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규범 혹은 규칙, 그러니까 보편적 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대할 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든지,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합의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나 인도에서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계급과 종교로 서로 분리되어 살아 온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서로가 서로에게 큰 믿음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의 내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아. 살인이 나쁘다거나, 거짓말은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조차 포기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거야. 그렇게 보면 결국 세상에는 보편적인 윤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런 인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네요.”
그랬다. 셰넌은 유진과 유성 형제가 중국과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두 형제가 중국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할수록 중국 경제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미국 정계에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유진의 도움이면 미중 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리라는 기대에서였다.
더군다나 이제 중국 못지않은 인구를 보유한 인도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언젠가는 중국과 아시아의 패권,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국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도의 경제 발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도도 이제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차례가 왔죠.”
옐리자베타는 반대였다. 시베리아 전쟁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긴장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유전에서 발생한 핵폭발로 인한 오염은 이제는 거의 해결이 된 모양이지만, 양국 국민에게 남긴 상처는 여전히 크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통적으로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의 성장은 러시아로서는 나쁠 게 없다.
더군다나 인도의 경제 성장이 가져올 에너지 소비의 증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의 수출을 통해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어차피 인도와 경제 대국을 놓고 경쟁하는 것도 아닌 러시아로서야 인도가 남아시아 방면에서 중국을 견제해 주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인도가 발전해야 이 지구가 살아날 테니까.”
유진은 두 사람이 듣기에는 전혀 생뚱맞은 소리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