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나는 아직 배고프다
“그건 무슨 엉뚱한 소리예요?”
셰넌이 물어 왔다.
“인도의 인구가 벌써 중국 인구를 추월했잖아?”
대답한 쪽은 유진이 아닌 유성이었다.
“그런데요?”
셰넌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인도의 총 인구가 중국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중국 사람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인도의 인구가 중국을 추월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중국인들은 홍콩, 마카오, 대만의 인구까지 들어가며 아직 중국인이 더 많다며 반발하고는 했다.
무엇이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는 지금의 중국인들에게, 인구수에서 2위로 떨어지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다.
“중국의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중국의 출생률이 확 줄어들어 버렸지. 지금에 와서는 중국도 인구 감소 국가로 분류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주 조금은 꺾였다고는 하지만, 인도의 출생률은 여전하잖아? 아마 다시 20년쯤 지나면 20억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고.”
유성의 말에 셰넌은 조금 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옐리자베타는 이 낯선 주제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중동 지역도 마찬가지야. 이미 2000년대로 들어오며 대다수 중동 국가들도 인구 증가율은 한풀 꺾여 버렸지. 지금도 열심히 인구가 늘어나는 곳은 아프리카 대륙이나 인도뿐이야.”
“그렇기는 하지요.”
“지구의 인구는 이미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어. 지금보다 더 많은 인구가 태어나면 지구는 버티지 못하고 인류는 물론 자연에까지 매우 커다란 보복을 할 거야.”
“온실가스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런 거지. 사실 지금도 이미 꽤 늦은 감이 있는데 어찌어찌 선진국에서 조치하곤 있지만, 중국이나 인도 같은 인도 대국은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잖아?”
“그렇기는 하죠.”
옐리자베타의 고국 러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난화 문제로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시베리아가 농사가 가능한 지역이 되면, 훨씬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테니.
더군다나 아직 시베리아 곳곳에는 찾아내지 못한 천연자원들이 얼마나 숨겨져 있을지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인도도 중국처럼 인구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야. 하지만 인도의 상황은 중국처럼 정부 시책으로 인구 조절 같은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지.”
“그럼 어떻게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가요?”
“결국은 경제 발전뿐이지. 지금껏 모든 국가에서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사회적 삶이 보장되면 인구 증가가 감소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불안할수록 출생률이 높아져. 중국도 경제가 발전하고, 경제가 안정되면서부터 출생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잖아?”
“그렇죠.”
셰넌은 유성으로부터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받은 것에 기꺼워하며 답했다.
“그렇다면 인도의 경제가 지금보다 나아지면 인구 증가가 멈출 거라는 거예요?”
옐리자베타는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처럼 어중간한 수준의 발전이라면 문제가 많지.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에너지 소비량도 함께 늘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인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지구 온난화에 굉장히 치명적인 역할을 할 거야. 그러니 생각보다 빠르게 인도를 개발해야 해.”
유진이 살다 온 미래에서 인류는 온난화라는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문제가 늘 그러하듯 각국의 입장은 무척이나 판이했고,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특히 인도나 인도네시아처럼 많은 인구를 지녔으면서 여전히 재개발 국가에 머무르는 경우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사실 지금까지 서방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연을 망쳐 놓고, 이제 와 인도와 같은 나라에게 같은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불공정한 일이라는 것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그리고 일본, 한국, 중국, 대만, 네 나라에서 사용한 화석 연료들이 지금의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니, 그 책임 또한 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서방 국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기금을 마련해 저개발 국가들을 돕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온난화 방지를 위해 감수해야 할 여러 가지 것들에 비하면 그 금액이라는 것이 그렇게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은 돈 문제이다. 저개발 국가는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선진국에서는 인색한 푼돈을 내놓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온난화는 더욱 큰 문제를 만들어 내고, 인류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당장 인류가 멸종하는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유진이 겪어 본 미래는 그랬다. 단지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고통받을 뿐이다.
“그래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도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인구를 줄여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겠다는 건가요?”
셰넌이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그 정도의 명분은 있다는 거야. 단순히 인도 경제의 잠재력 때문에 거액의 투자를 하고, 인도에 수많은 공장을 짓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유성이 웃으며 말했다. 유진 형제의 인도 투자는 다른 여느 나라에서처럼 특정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인도 전역에 인프라를 깔고, 인구와 경제 수준에 비해 미흡하기만 한 2차 산업을 육성하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놀라운 비전을 두고 있다.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엄청난 대역사가 될 것이다.
물론 유진이 지닌 자본은 이미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을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선 지 오래다.
현금 동원력이라는 점에서 볼 때, 미국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나라도 유진이 움직일 수 있는 자본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세계 제일의 국부펀드인 일본 정부연금투자기금(GPIF)이 2조 달러 수준이고, 2위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가 1조 5천억 달러, 그리고 3위인 중국 국부펀드(CIC)가 1조 3천억 달러 수준이다.
유진은 마음만 먹으면 이 세 개의 국부펀드를 모두 합친 것 이상의 현금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인도의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8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인도의 2차 산업을 국가 규모에 걸맞게 바꾸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인도의 GDP는 겨우 4조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 거의 20억 달러에 육박하는 중국에 비교하면 겨우 1/5 수준이야.”
유진 형제의 투자로 인도가 중국 같은 성장에 돌입하게 되어 중국의 절반까지만 올라선다 해도 인도의 경제력은 엄청난 수준에 이를 것이다.
당연히 투자자인 유진과 유성이 인도 경제에서 가지게 될 영향력은 그때 가서는 돈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터였다.
중국과 달리 아직 개발의 여지가 잔뜩 남아 있는 인도에서의 투자는 투자비용 대비 창출할 수 있는 수익 또한 무서운 수준이다.
말하자면 아직 동전주 수준의 인도에 엄청난 투자를 해 대주주가 되어서, 우량주가 된 뒤의 결실을 독식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런 수익 따위가 아니다.
중앙집권 국가로 모든 권력이 중국 공산당 정부에 귀속되어 있는 중국에서는 유진이 아무리 영향력을 키운다 해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 행사하는 것이 전부이다.
반면 인도의 경우는 어엿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앙 정부의 힘보다는 지역 자치에 의한 분권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여전히 수십 개의 주로 분할되어 주마다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이어 가고 있다.
더군다나 각 주는 다시 수많은 지역으로 나뉘어 있고, 그 지역마다 토호들이 여전히 건재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서방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어렵지만, 여전히 과거 토후국의 군주들이 지금도 한 지역의 왕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지닌 권한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지, 전국적인 영향력을 지니지는 못한다.
그렇게 복잡한 상황에 놓인 인도에서라면, 인도 경제에 큰 투자를 해 인도 경제계를 손아귀에 넣을 경우 중국과 달리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돈이라는 거네요?”
셰넌이 웃으며 물었다. 물론 그녀의 말은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공산국가 최고 지도자의 영애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와 돈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애초에 미국으로 건너온 것도 자본주의의 첨병인 월스트리트 전사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럼. 돈은 아주 중요한 거니까.”
이번엔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유진의 야망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 말하는 것처럼 그의 야망은 더 많은 돈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는 않다. 지금의 그에게 돈은 수단일 뿐이다.
“물론 그 와중에 세계적인 기후 위기를 늦추는 데 공헌하고, 인도인들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좋은 의도도 실현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겠군요?”
옐리자베타도 거든다. 유진의 의도가 무엇이건, 가장 지지해 줄 사람은 아마 그녀일 것이다.
그녀가 전 대통령이 풀어 놓은 사냥개들을 피해 안전하게 미국으로 넘어올 수 있던 것도, 그녀의 부친이 러시아의 지도자가 될 수 있던 것도 모두 유진의 도움 덕분이다.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여전히 인도는 결코 쉬운 나라가 아니라는 거겠죠?”
옐리자베타의 눈이 반짝였다. 전통적으로 서방 세계의 일원인 인도와 러시아는 무척이나 친밀한 관계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며 민주화가 되었지만, 인도의 정권을 획득한 인도 국민 회의가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 국민 회의가 집권 기간 내내 인도 내에서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펼쳐 온 것에도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러시아도 인도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중국과 대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최근 들어 러시아와 인도 사이의 관계는 과거보다 오히려 더욱 긴밀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러시아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는 것도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어요.”
“그렇지. 러시아와 인도는 여러 면에서 서로 상호 보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시베리아를 포함한 아시아 북부의 광활한 영토와 지금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인도인의 결합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인도인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당장 러시아 내 수많은 미개발 지역의 개발에 인도인들의 노동력이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중국이라고 꼭 인도와 갈등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옐리자베타가 반기는 모습을 본 셰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