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세계의 공장과 뉴 홍콩
“인도의 경제 성장이 지금까지와 달라진다면,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전 세계에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겠지요.”
“물론이지. 아직까지는 그저 남아시아에서만 국한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인도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언제까지고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중국과 인도 사이의 우호 관계를 조금씩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중국과 인도의 우호 관계라니. 그건 중국과 대만 사이의 우호 관계만큼이나 어려운 일 아닐까?”
“중국 본토와 중국 타이완 사이의 관계도 지난 2000년대 초에는 제법 괜찮았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셰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도에 대해 날선 비난을 언급하던 사실을 잊은 듯, 똑부러지게 중국과 인도의 밀월을 언급했다.
사실 그녀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인도가 경제 대국으로 일어나게 된다면, 중국도 인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편이 양국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중국은 그동안 여러 나라들에게 좋지 못한 이미지를 잔뜩 만들어 놓았다. 인도에게만이라도 이미지를 개선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사이에 쌓여 있는 악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는 아주 근원적이고 어려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중국 사회가 어디까지나 탑다운, 그러니까 최고 결정권자가 결정을 하면 상의하달로 널리 퍼져 가는 것이 당연한 곳이니, 위에서 그렇게 하겠다 결정을 내리면 인도와의 경제 협력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경제 협력의 목적이 딱히 상호 국가의 경제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당사국의 지도자들에게 두둑한 자금을 찔러 주고 중국의 미래 이권을 챙겨 가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미 중국과의 경제 협력으로 오히려 국익을 상실한 나라들이 잔뜩 있는 만큼 중국 측의 경제 지원에 경각심을 지닌 나라들이 많다는 점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인도의 경제 개발에 도움을 준다면 그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
유성도 셰넌의 숟가락 얹기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지적하기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을 받아 내고, 두 강대국의 경쟁심을 부추겨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만들어 갈 생각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은 이제 겨우 20대의 평범한 여인들이 아니다. 각기 중국과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영애이며, 유진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각기 자국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만일 두 사람이 자신의 부친을 설득할 수 있다면 정말로 러시아와 중국이 인도 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날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인도 경제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에 대해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이 자리에 없지만,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인도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
셰넌과 옐리자베타가 돌아간 뒤, 이제 형제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까보다는 훨씬 더 내밀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아무래도 인도의 지방 권력자들과 부딪치는 데서 오는 난관이 커.”
여인들이 있을 때와는 조금 달리, 유성은 솔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민당 수뇌부와는 그래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야. 당장 총리가 인도 경제 개발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지역을 개발하고, 어떤 산업에 치중해야 할지 각론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난장판이 펼쳐지지.”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같이 광대한 영토를 지니고, 수억에 달하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대국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한 개의 국가로 인식하면 안 되는 법이지.”
“맞아. 사실상 수십 개의 국가가 합쳐진 연합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더라고. 각 지방 정권에, 지역 토호들에, 거기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인종, 종교, 계급 문화가 무수히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어.”
인도에서는 국민 통합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장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는 종교만 보아도 인도의 주된 종교는 힌두교이지만, 이슬람 또한 무려 2억 명에 달한다.
12억과 2억. 비교도 되지 않는 수적 열위이지만, 2억에 달하는 이슬람 교도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도 없다.
계급 문제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내려온 계급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인도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많을 거야. 뭐. 그런 이유로 인도가 지금까지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제대로 된 발전을 해 오지 못한 거겠지.”
“맞아. 10억 인도인들이 100년 동안 해결 못 한 문제를 낯선 외국인이 해결한다는 게 사실상 어불성설이지.”
물론 두 사람은 인도를 대단한 선진국 대열에 올려 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인도가 지금보다 열 배쯤 발전해야 가까스로 동아시아 선진국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도가 내부적으로 지닌 모순이 너무나 많다.
사실 어느 나라이건 이런저런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인도는 그야말로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역시 해변의 열두 지역 위주로 좀 더 개방적으로 해외 자본을 받아들이고, 내륙으로는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가야할 것 같아.”
셰넌과 옐리자베타가 있는 자리에서는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통제가 불가능한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숨겨져 있기에, 인도를 통째로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지. 인도를 중국으로 만드는 것은 확실히 시기상조야. 하지만 인도에 홍콩과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한 나라의 경제를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충분한 자본과 지도자의 의지가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입증되었다.
하지만 인도처럼 거대한 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대륙을 개발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진이 지닌 부는 사실 홍콩과 싱가포르를 통째로 사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니 인도 아대륙 곳곳에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도시 국가 수준의 경제 구역을 만들어 가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총리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야.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이념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이고, 종교적으로는 힌두 내셔널리즘이라니. 끔찍한 일이지.”
“맞아. 사실상 파시스트나 다름없어.”
유성도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정치와 종교를 결합한 근본주의적 파시스트.
그게 지금 인도 정치계의 주류를 잡고 있는 집권당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경제 개발에는 도움이 될 거야. 지난 시절 국민회의 정책이라면 뭐든 바꿔 버릴 생각들이니까.”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간디와 네루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국민회의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인도의 정권을 독점하며,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인도가 독립할 당시 극도의 가난과 사회 혼란을 생각한다면 그 선택이 옳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제 인도인들은 그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개 파시시트들이 초기 경제 개발에는 유리한 면이 있잖아.”
나치 독일이 그랬고, 파시스트의 원조 이탈리아가 그랬다.
비슷한 의미에서 스탈린의 소비에트는 당시 낙후되어 있던 소비에트 연방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외된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도에는 오히려 소외되지 않은 사람이 더 드물다.
“가능하다면 인도가 좀 더 중앙집권적이었으면 좋겠지만, 뭐. 남의 나라이니 어쩔 수 없지.”
중앙집권 국가라면 최고 수뇌부와의 협상으로 아주 많은 일들이 해결될 것이다.
“그래도 해 볼만은 해. 손해는 보지 않을 거야.”
유성은 꽤나 즐거워 보였다.
15억 인구를 가진 거대한 대륙을 발전시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나라를 만들고, 외국인인 유진 형제들이 그 과실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난이야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는 계산이 선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몸은 조심해. 평범한 나라가 아니니까.”
유진은 인도의 현대화를 무척 바라고 있다.
다가오는 시대에 이제는 더 이상 인건비가 저렴하지도 않고, 통제하기도 어려운 중국의 생산력을 대처할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도가 제격이다. 여전히 인도는 아시아에서도 특출나게 인건비가 낮은 반면, 고급 인재들은 또 많은 나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 공과 대학 출신의 뛰어난 두뇌들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활약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실리콘 밸리 창업자의 15%, 나사 직원의 35%, 그리고 미국 의사의 15%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인도 공과 대학에서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인도 공과 대학 졸업생들은 인도 내에서 매달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도에는 이런 대단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공과 대학이 아주 많다.
인도 내에 충분한 직장만 보장되면, 영어에 능숙한, 뛰어난 인재들을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인프라 구축과, 공장을 만들었을 때의 판로 개척 따위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유진의 힘으로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부분이다.
유진은 머지않은 시일 내로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이 맡아 왔던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를 인도에 넘길 생각이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거대한 공업 단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서 만들어진 상품은 새로운 항구 도시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될 것이고.
이미 중국의 광저우와 선전시,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 등 참고할 만한 좋은 예가 많다. 거기에 유진이 지닌 자금력이라면 해 볼 만한 도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생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나도 안전에는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 솔직히 나와 함께 다니는 경호원 수준이나 숫자가 인도 총리 못지않을걸?”
“그 총리마저 몇 명이나 살해당한 나라니까 그렇지.”
인도에서 정치인이 암살당하는 일은 꽤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인도의 위대한 사상가인 마하트마 간디마저 힌두교 광신도에 의해 살해당했다.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독립 이후에는 수십 년 동안 인도의 현대화를 이끈 자와할랄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라지브 간디도 암살로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인디라 간디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살해당했다.
“온통 광신도투성이에, 자기 사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는 놈들로 가득한 곳이니까 말이야.”
마하트마 간디의 암살범은 힌두 광신자, 인디라 간디의 암살범은 시크교도, 그리고 라지브 간디의 암살범은 스리랑카 타밀족 반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