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59화 (359/363)

359화 타밀의 선전

종교 간 갈등, 인종 간 갈등, 계층 간의 등, 수많은 갈등 속에서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때문에 유진은 동생의 안위가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아무리 백악관 경호실 출신의 경호원들로 벽을 쌓고 다닌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인도였다.

“그래도 외부에서는 탱크처럼 튼튼한 차를 타고 다니고, 차에서 내리면 적어도 열 명이 날 둘러싸고 있으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

유성 자신도 안전에 대한 걱정은 있는 모양이지만, 그의 뜨거운 피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테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내에만 꽁꽁 갇혀 있는 삶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

유진도 걱정은 되지만, 그걸 빌미로 동생의 행보를 막아설 생각은 없었다.

“어려운 일은 없고?”

“뭐. 전혀 없지는 않아.”

유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밀나두주의 관료들이 상당히 부정적이야. 아무래도 중앙 정부와 오랜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이겠지.”

“그건 꽤 문제가 되겠네.”

유진도 인도 최남부의 타밀나두주와 인도 중앙 정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거대한 나라인 인도는 남부와 중부, 그리고 북부의 인종 구성이 모두 다르다.

인도 중앙 정부를 구성하는 북부의 경우 백인 계통의 인도 아리아인이 상당수이며, 남부의 타밀나두주의 경우는 피부가 까만 타밀족이 대부분이다.

인도 공화국의 수립 과정에서도 많은 갈등을 빚었고, 현재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다.

이번에 유진과 유성 형제들이 추진하는 인도 현대화 계획 역시 중추는 북부의 중앙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인지, 타밀나두주에서는 적지 않은 투자를 미끼로 내밀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타밀나두는 무척 매력 있는 지역이야. 지금도 인도의 중공업과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니 적절한 투자만 있다면 상당히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말하자면 한국의 울산이나 포항 같은 포지션을 가진 지역이다.

“나게르코일에 대형 항구를 건설하면 지리적 요충지로 발전할 요소도 많고.”

인도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를 개발해 남인도 최대의 항구로 만든다면 타밀나두에서 생산한 상품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기 좋았다.

개발 여부에 따라 싱가포르 못지않은 국제적인 해양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아라비아해를 통해 석유를 수입하기도 용이하고,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북부와 달리 남부 쪽은 그 고약한 카스트의 영향도 적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잔혹한 종교적 습성도 훨씬 덜한 편이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인도의 많은 끔찍한 사건들은 대개 아리아 계통이 주류인 인도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다.

남부로 내려오면 힌두교뿐 아니라 이슬람, 기독교도들도 적지 않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고, 카스트 상위 계급이 하위 계급을 착취하는 일도 좀처럼 보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개발 국가 특유의 부조리가 전혀 없다기엔 무리가 있으나, 북부처럼 사회 정치적인 혼란 때문에 산업의 발전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해.”

사실 유진도 인도 남부 쪽 사람들과 그다지 큰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연결해 보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럴게. 해 보다가 정 안 되면 형이 나서야지.”

유성은 약간의 고난이 있다고 해서 금세 쪼르르 형에게 가 부탁할 만큼 나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오랜만에 들른 뉴욕에서 인도 경제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색하고, 도움을 받을 사람들을 찾아보며 일주일을 바쁘게 보내고는 다시 인도로 돌아갔다.

“타밀나두는 인도 현대화의 본거지가 될 겁니다.”

다시 남인도 타밀나두주의 수도 첸나이로 날아간 유성은 여전히 자신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게르코일이 인도의 선전이 될 겁니다. 저는 나게르코일이 인도 남부의 경제 중심지가 될 때까지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중국 현대화의 가장 극적인 모습을 보려면 역시 선전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남부, 홍콩의 바로 위에 있는 선전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저 홍콩에 붙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징도 발전도 없는 지방 소도시였다.

하나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에 따라 개발이 시작되고, 홍콩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면서부터 눈부시게 발전을 시작해 겨우 10년 남짓한 시간 사이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선전시는 이미 2010년대에 대만의 소득 수준을 넘어서 중국 본토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도시가 되었고, 2020년에 들어와서는 이웃한 홍콩과도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에, 국내 총생산은 홍콩을 완전히 넘어서 버렸다.

중국이 세계로 수출하고 있는 각종 전자 제품 중 상당수가 이곳 선전에서 만들어지고 있거나, 관련 기술 기업들이 본거지를 두고 있다.

상하이가 뉴욕과 같은 중국의 금융 중심지라면, 선전은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처럼 기술과 산업 분야의 주도권을 지니고 기술 발전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인도의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히 2차 산업 육성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중국이나 대만, 한국, 일본처럼 각 분야에 있어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합니다. 급속히 변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중간 정도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누구도 대처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중국이 자처해 왔던 세계의 공장 자리를 이제 인도가 물려받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유진의 공격적인 투자로 인해 원래의 역사보다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임금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만 되어도 이제 슬슬 로봇을 가동하는 비용이 인건비를 충당할 수준이 되어가고 있지만, 저개발 국가의 임금 수준은 여전히 로봇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업용 로봇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이고, 그 외에 일본과 독일 등 전통적인 기술 강국에서 점차 로봇이 인간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이제 중국 또한 중간 규모 이상의 공장에서는 점차 로봇으로 기존 인력을 대처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이 중국에서 굉장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아직 한국이나 일본처럼 산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14억이나 되는 인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정권을 유지하는 가장 중대한 정책인데, 미래를 위해서는 로봇 산업에도 충분한 투자를 해야 하니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로봇 산업의 발전이 일자리의 감소를 불러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의 로봇 산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투자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 줄 수 없는 상황 속에 중국 정부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인도는 훨씬 더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로봇 산업이 발전한다 해도 적어도 수십 년 동안은 인도의 저렴한 노동력과 비교해 경제적 이점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리라는 게 그것이다.

그러니 자국 내 산업을 진흥시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에만 방점을 두면 된다.

문제는 인도가 중국과 같은 개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아주 많은 난관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도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의 1/4에도 미치지 않는 저렴한 인건비와 뛰어난 인재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저력을 모두 갖춘 얼마 되지 않는 나라죠.”

물론 유성은 지금은 인도가 가진 내재적 문제에 대해 거론할 때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좋은 말이로군요. 저도 선전시에는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높은 고층 빌딩이 가득하고, 수백만 달러짜리 저택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더군요.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우리 타밀나두에도 선전 같은 선진 도시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당장은 선전을 목표로 하지만, 진정한 목표는 선전 이상의 도시, 그리고 선전이 가진 경쟁력을 우리가 전부 가져오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모두가 타밀나두를 부러워할 겁니다.”

유성의 말에 총리와 주지사 두 사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중국이 지닌 경쟁력을 가져오겠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한데 굳이 나게르코일이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나게르코일은 상당히 개발 정도가 낮은 곳입니다. 차라리 첸나이가 그런 개발에는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주지사가 의문을 제시한다. 광역인구 1,000만에 달하는 첸나이는 타밀나두 최대의 도시로, 당장이라도 개발만 하면 인력을 수급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에 비해 나게르코일은 겨우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한국이라고 해도 30만 인구라면 그다지 입지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15억 인구를 지닌 인도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나게르코일의 지정학적 위치가 무척 훌륭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게르코일이 아직 개발 전인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첸나이처럼 인구 천만 명의 도시를 배후로 갖고 있으면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행정이나 모든 면에서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개발을 위한 적당한 부지를 마련하기 쉽지 않고, 이미 기존의 지역 유지들이 지닌 권한이 너무 커서 개발 과정에 아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바다 건너 스리랑카에서 내전을 벌이는 타밀 반군들이 잠시 몸을 숨기기 위해 쉽게 드나드는 곳이니만큼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유성과 유진이 마련한 엄청난 액수가 투자되는 개발 지역은 기존의 도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도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유진과 유성의 기본적인 태도이다.

기존 지역 유지들이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관여를 해 오고, 시비를 걸고, 없는 문제까지 만들 것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지역을 개발하면 이와 관련된 수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도시를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로 채우고, 도시의 행정은 주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꾸려 나가게 한다면, 지역 유지나 토호들로서는 쉽게 훼방을 놓기 어려울 것이다.

“나게르코일에서 첸나이까지의 새로운 교통망과 도시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 개발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그다지 현명한 계획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정치인들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8천만 명에 달하는 타밀인 중 1천만 명이 첸나이에 살고, 더 많은 이들이 주변 도시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서야 당장 첸나이를 개발해 자금이 흐르게 하는 쪽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해 나게르코일의 개발은 한두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도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결국은 모든 게 이권의 문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