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60화 (360/363)

360화 결국은 부동산

“타밀나두주의 사람들은 나게르코일 보다는 첸나이에 산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더욱 원하고 있습니다.”

협상은 한동안 공허하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유성은 이미 인도 사람의 화법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다지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선전시에 다녀오셨다면 아주 잘 아시겠군요? 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를요?”

“물론이지요. 인접한 홍콩에 비해서도 그리 낮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이더군요.”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미국과 무역 분쟁이 시작되고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하며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경제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며 부동산 시장 또한 그동안 멈춰 두었던 고공 행진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모든 도시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고, 선전과 상하이, 베이징 등 최일선 도시들에서만 과거의 최고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부동산 랠리와의 차이점이었다.

“300스퀘어미터짜리 콘도 한 채에 1천만 달러가 넘어가는 게 평균이더군요. 델리에서라면 그 다섯 배 크기의 대저택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인데 말입니다. 홍콩이나 뉴욕 맨해튼 부동산과도 겨루어 볼 만한 가격이라는 것에 사실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뜬금없이 선전시의 부동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지만, 주 총리는 자신이 선전 방문에서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의미이지요. 한편으로는 그러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중국의 경제를 견인했다고도 볼 수 있을 테고요.”

어느 나라이건 부동산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중국의 경우 부동산 관련 산업이 GDP의 20% 가까이 차지하는 일도 있을 정도이고,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

“인도의 경제 개방 정책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해외의 투자가 활발해지면 인도 각지의 부동산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솟구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80여 년 전 독립 이후 인도는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며 해외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산업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아 왔다.

거기에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고, 인도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소기의 역할을 해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도 산업의 고도화를 막는 걸림돌이 된 것 또한 분명했다.

하나 지금의 집권당과 인도 총리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해외 자본의 직접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일 인도의 경제 정책이 과거처럼 해외 자본에 대해 규제 일변도였다면, 유진은 인도 진출을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아직 첸나이 주변은 산업 공단을 개발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지역을 선택하든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타밀나두주 정부의 수반인 총리와 주지사는 첸나이 대신 나게르코일을 개발하려는 이유가 혹시 부동산 가격 때문인지 걱정했다.

과거의 인도는 외국인의 직접 투자는 물론이고, 부동산 취득에 대해서도 여러 제한을 걸어 놓았다.

특히 인도와 적대적 관계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중국 등의 국적자는 상대적으로 부동산 취득이 더욱 어려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과거와 비교해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의 인도 부동산 투자의 길이 훨씬 넓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기다 타밀나두주의 두 주요 정책 결정자들은 유진 형제의 투자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은 도시인만큼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여러분의 투자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이곳 타밀나두에서 세계 최고 부자의 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하게 둘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주 총리나 주지사처럼 투자를 받아들여 정치적 이득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중앙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에 타밀나두가 휘말리는 것에 불만을 지닌 사람들이다.

타밀나두의 수도인 첸나이에서도 적지 않은 토호들과 지주들이 다양한 핑계를 대며 여전히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때로 이 자리에 있는 총리나 주지사보다 수백 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려 온 명망 높은 가문의 주인들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주지사와 총리는 유성의 걱정을 덜어 주겠다는 듯 확언하며 말하고 있었다.

“안전 문제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발이 시작되면 개발 현장은 물론이고 공단 완성 이후에도 최선의 경비를 타밀나두 경찰이 책임지겠습니다.”

“저도 타밀나두의 경찰 행정력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발이 시작되며 많은 일자리가 생기면 현지 분들도 이 프로젝트에 더욱 공감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입바른 소리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유성은 고소를 멈추지 못한다.

인도의 수도나 대도시에서도 이따금씩 테러가 벌어지고는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민들에게 몽둥이나 휘두르는 것이 전부인 인도 경찰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미지수였다.

유진 형제는 인도의 경찰이나 행정부의 실력을 믿고 인도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사실 안전 문제를 고려한다면, 인도는커녕 제삼세계 어느 국가에도 진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했을 때의 일이지요. 첸나이는 아주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의 대화에서는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말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최근 여러 만남을 통해 배웠다.

“뱅갈루루와의 연결도 상당히 좋은 편이고, 인력 수급에도 매우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지요.”

뱅갈루루라는 말이 나오자 두 정치인의 얼굴에 미약한 긴장이 서린다.

남인도 최대의 도시는 타밀나두주의 수도인 첸나이가 아니라, 데칸 고원 한복판에 있는 뱅갈루루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뱅갈루루는 현재 인도의 첨단 산업을 이끌어가는 산업 중심 도시로, 최근에는 테슬라의 기가 팩토리가 들어설 정도로 해외의 투자도 잘 받고 있는 남인도 최대의 선진 도시였다.

그러니 첸나이와 뱅갈루루 사이의 연계는 충분한 시너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문제는 뱅갈루루가 타밀나두주가 아닌 카르나타카주의 대도시라는 사실이다.

뱅갈루루가 발전하는 것은 인도 전체로서야 좋은 일이지만, 타밀나두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이득은 없다. 더군다나 첸나이에 투자해서 뱅갈루루가 이득을 얻게 되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첸나이가 뱅갈루루의 배후 지역으로 계속 머물고 말 수도 있다는 한계도 있지요.”

유성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과 유성이 첸나이에 거액의 투자를 한다 해도, 남인도 최대의 인프라를 갖춘 뱅갈루루에 비해서는 여전히 여러 조건이 미흡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첸나이와 뱅갈루루가 너무 가깝게 있다는 점이지요. 차라리 이만큼 떨어진 나게르코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뱅갈루루와의 관계로 속 썩일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요.”

만일 두 사람이 첸나이의 책임자였다면, 기필코 첸나이 개발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구 8천만 명의 거대한 타밀나두주 전체를 선거구로 삼고 있다.

“겨우 30여 년 전만 해도 선전시는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적한 시골 어촌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발이 시작되고 겨우 10여 년이 흐른 뒤, 선전시의 부동산 가격은 중국 최고를 자랑하게 되었지요.”

유성은 다시 선전의 부동산 문제를 거론한다.

“지금 나게르코일 변두리 쪽의 부동산 가격은 제곱미터 당 겨우 100루피 수준입니다.”

대한민국의 30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지닌 인도에서 변두리 지역으로 가면, 한국식으로 계산하면 평당 몇백 원에서 몇천 원짜리 땅이 널려 있는 곳이 흔하다.

유성이 거론한 나게르코일도 마찬가지이다. 산업이랄게 따로 없는 지역이니, 수만 평의 땅을 겨우 천만 원쯤에 살 수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그렇지요. 인프라라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인프라이다. 그리고 남인도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이 도시는 그러한 인프라가 형편없다.

“개발이 시작되고 나면 10년 내로 나게르코일의 부동산 가치는 아마 인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고공 행진을 하게 될 겁니다.”

유성은 딱 거기까지만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주 총리와 주지사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계산에 빠른 인도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라도 이익을 얻어 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건 아래든 위든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인에게 좋은 사람이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내게 무언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내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남일 뿐이다.

처음 인도인을 접한 외부인이라면 소위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하지만, 인도인들에게는 생존이 걸려 있는 삶의 양식이었다.

“1만 제곱미터짜리 대지가 지금은 겨우 300만 루피에 불과하지만, 그때가 되어서는 3억 루피, 어쩌면 30억 루피가 될 수도 있겠지요.”

“흠…….”

유성이 방금 한 말들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도인들의 계산이 유성보다 빠를 것은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나게르코일의 어느 지역을 선점하고, 어느 지역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할지 그 훌륭한 두뇌로 빠르게 계산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결국은 이권이고, 결국은 부동산이다.

이 두 사람은 첸나이의 개발로도 충분한 이득을 얻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아마 유성이 첸나이 주변의 원하는 지역을 선택하면, 개발 지역이 발표되기 전에 적지 않은 땅을 사 놓고, 개발 후에 이익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첸나이는 이미 대도시인 만큼 땅을 구매하는 것도, 그리고 각 지역의 유력 토호들을 상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게르코일이라면 상황이 매우 다르다. 전형적인 농촌과 어촌 지역인 만큼 유휴지도 많고, 지금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한다 해도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물론 유성이 원하는 산업 단지의 경우 주 정부의 권한으로 대지를 일괄 매수해, 다시 유성이 세울 개발 기업에 적절한 이윤을 붙여 불하하는 형식이 될 테지만, 부동산 가격이 오르게 될 지역은 막상 산업 단지가 아니다.

언젠가 대도시의 중심 상업지역이 될 곳, 그리고 상류층이 모여 살 교통과 경치가 좋은 부촌 지역들은 대개 산업 단지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다.

게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도시이니, 개발의 성과가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기 10년 전인 지금 헐값으로 사놓았다가 그때 가서 막대한 가격으로 팔아도 정치적인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선전시라는 말씀이시죠?”

한참 만에 주 총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전을 뛰어넘는 대단한 도시가 될 겁니다.”

유성이 미소 띤 얼굴로 단언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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