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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61화 (361/363)

361화 인도식 민주주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눠 봤어요. 중국도 인도의 현대화에 공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셨어요.”

유성이 인도로 돌아갈 무렵, 중국에서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떠났던 셰넌이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중국 최고 지도자의 의향을 전달하기 위해 온 듯했다.

“지금까지 인도와 좋지 못한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대국으로서 언제까지나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시죠.”

물론 어디까지나 명분이라는 것은 말을 하고 있는 그녀도, 듣고 있는 사람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명분은 중요하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중국과 인도 사이의 갈등이 봉합되는 건 좋은 일이지.”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은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의 중추인 티벳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다.

지금도 중국과 인도의 국경에서는 언제 피가 튈지 모르는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다.

“인도에서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에요.”

인도와 중국 사이의 문제를 유진에게 말하는 데에는 그가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간의 갈등 때문에라도 유진처럼 대단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중간에 끼는 쪽이 원활한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도 쪽에서도 나쁘지만은 않다. 새로운 개발 계획을 앞둔 인도에서 필요로 하는 자본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15억 인도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선 1조 달러나, 2조 달러의 자본으로는 그리 대단한 성과를 올릴 수 없다.

현 정권이 펼친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사업은 인도 전역에 깨끗한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정책의 결과로 적어도 수억 개에 달하는 화장실이 시골에서부터 도시까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만 수백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 겨우 화장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러니 화장실보다 규모가 큰 하수 처리장이나, 하천 정화 사업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도의 자랑인 갠지스강은 오물로 더러워진 지 오래고, 이걸 다시 깨끗하게 만들려면 얼마나 큰 비용이 들지 알 수 없다.

거기에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를 세우고, 각 지역에 산업 기반 시설을 확충하려면 아마도 인도 GDP의 몇 배는 되는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인도 인민당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고, 중국이라는 물주가 지갑을 열어 준다면 반가운 일이다.

물론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기에, 인도 정부에서 쉽사리 중국과의 협상에 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인데, 나도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지.”

하나 유진이 중간에서 중국과 인도의 요구 사항을 조율한다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은 명백하다.

“인도의 공업 발전을 위해 중국의 사업가들이 인도에 진출해 다양한 산업 단지를 개발하고, 지금까지 쌓아 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싶어요.”

최근 중국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인건비 때문에 점점 더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때문에 과거 일본이나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기업가들도 해외 공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중국 산업 지도는 대략 40여 년 전의 일본이나, 30여 년 전의 한국의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처럼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에 생산 기지를 만들고, 자신들의 노하우로 저렴하게 생산된 물건을 세계 시장에 팔겠다는 계획이다.

“아마 많은 조율이 필요할 거야.”

“물론이지요.”

셰넌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 측에서도 이번 사안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인도에 산업 단지가 만들어지면 유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의 기업들이 가장 먼저 달려들고, 인도 정부에서도 한국 기업에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할 것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한국 기업들은 이미 90년대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각국에 진출해 산업 기반을 만들었던 엄청난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 진출하는 나라마다 분쟁을 일으키는 데 비해, 한국의 기업들은 대개 진출 국가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인도 정부로서는 어떤 흉계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중국보다 한국 기업들에 호의적일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중국은 인건비 상승의 여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점차 수출 물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여전히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자국의 공산품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인도의 경쟁력이 강화되면, 그만큼 중국의 입지가 줄어들 것 또한 틀림없는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유진과의 협력을 통해 어떻게든 인도에 진출해 자신의 영역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유진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인도 진출을 원하는 중국과 더 많은 투자를 원하는 인도 모두를 만족시켜 준다면 그 중간에서 얻어 낼 이익은 막대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유성 씨의 말을 들으니, 인도의 정치 문제가 상당히 번거롭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인도가 너무 커다란 나라이기 때문에, 유진을 통해 인도 중앙 정부의 허락을 받는다고 해도 각 지역에 진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런가 봐. 30개에 달하는 지역이 각기 큰 권한을 지니고 있으니 유성도 엄청 바쁘게 움직여야 하나 보더라고. 더군다나 지방 선거도 끼어 있어서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고 말이야.”

“선거라…….”

셰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국에서는 선거라는 게 없지?”

옐리자베타가 조금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선거가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대단한 걸 알고 있지는 않지만, 인도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거든. 근데 그 나라 정치는 정말 혼돈의 극치잖아?”

“그래도 선거를 통해 정책을 펼칠 사람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보다 훨씬 더 선진국이지.”

셰넌이 곧장 반박해 보았지만, 옐리자베타도 지지 않았다.

인도는 틀림없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 중 하나이고, 군부에 의해 정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겪지 않은 아주 희소한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이 물러난 뒤 국민 회의가 장기간 집권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차지한 것이었다.

5년마다 인도 전역에서 10억에 달하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가 치러지고, 후보자들은 선거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선진국이라고? 대체 어떤 선진국이 아직도 화장실 하나 없는 곳이 태반인데? 지금도 인도에서는 만들어 준 화장실을 놔두고 일부러 길에서 볼일 보는 사람이 넘쳐난다고.”

그렇게 묻고 있는 셰넌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자신의 나라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유진은 대략 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 중국의 중소 도시에 방문했다가, 그곳의 화장실 문화를 보고 놀랐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국의 현대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으나, 돌이켜 보면 겨우 수십 년 전의 중국은 지금의 인도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사실 그 수십 년 전의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시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시대의 발전이라는 커다란 흐름은 세계 곳곳에 비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사람들은 외면하고는 한다.

그저 자기보다 발전이 느린 곳을 미개하다고 치부할 뿐이다.

그건 고등 교육을 마친 셰넌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혐오와 편견은 교육 수준의 여부와는 상관없는 모양이다.

“인도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대단히 모범적이라면, 지금 인도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셰넌이 공격적으로 물었다. 사실은 그녀도 중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약간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의 위치에선 결코 그걸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셰넌의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는 겉으로 보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보이지만, 또 한 꺼풀 벗겨 들여다보면, 아주 재미있는 점이 많기도 하다.

인도의 유권자들은 단순히 경제적인 발전만을 기대하며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사실 중앙의원을 뽑는 선거이건, 지역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이건, 훌륭한 경제적 성과를 이룩한 후보가 다음 선거에서 선출되는 일은 오히려 드문 편이다.

낙후된 지역에 훌륭한 인프라를 유치한다거나, 지역의 총생산을 늘려 놓았다고 해도, 다음번 선거에서는 그를 비난하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인도 유권자들이 선택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자신이 속한 종교, 계급, 가문 등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인도 유권자의 70%가 아직도 농촌에 머물고 있어 유권자들 대부분은 이러한 경제 정책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당선된다면 특정 지역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이 효과를 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주변에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등 위협적인 이웃을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주변 국가들에 대해 강압적인 정책을 펼치겠다고 주장하는 지도자가 더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정권을 차지해 온 국민회의가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인도의 산업 기반을 만들고 서민들에게까지 돌아갈 수 있는 사회 정책을 마련했기 때문이 아니라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이를 이간질하고, 파키스탄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자신의 실질적인 삶에 도움을 주는 정책보다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 그러니까 이슬람교 교도나, 시크교 교도 등 힌두교가 아닌 이들을 탄압하는 것에 더욱 열광하고 있다.

지금의 집권 여당인 인도 인민 회의가 인도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경제 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힌두교도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정책의 결정자는 당장의 성과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위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는다.

당장 자신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주겠다고 약속하거나,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에 훨씬 더 열광한다.

사실 이런 면은 꼭 인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선진국인 영국도 난민에 대한 혐오로 브렉시트를 결정하고,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은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그의 주장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물론 미국같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택한 나라도 있지만, 때로는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셰넌이 단언하듯 말했다.

“사상 최악의 정권인 나치를 뽑은 것도 결국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였잖아요?”

“그렇지.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은 아닐 거야.”

유진도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보면 결국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셰넌의 얼굴에 한껏 뿌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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