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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화 (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화

3년이란 시간은 짧으면서도 길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어쩜 21개월이 이리도 긴지.

고작 21개월이 6년 연습생 생활보다 더 길게 느껴질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군대는… 아니다.

터미널에서 헤어지기 전에 석환 형이 했던 말이 이해됐다.

3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할머니 가게에서 일을 돕고 살던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돈도 못 버는데 식비나 축내기 싫어서였다.

진로도 그때 고민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아이돌이 좌절된 터라 한동안 방황을 거쳤던 나는 마침내 장래 희망을 수정했다.

바로 작곡가.

악기 연주자였던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인지, 내게는 나름대로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살리기 위해 작곡가를 선택했다.

아이돌을 할 수 없다면 아이돌 음악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있기도 했고.

작곡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프로듀서로 진출하는 것도 제법 멋진 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수능을 준비했다.

작곡가가 되려면 좋은 음악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장애물도 많고.

6년 동안 아이돌 하나에만 꽂혀서 공부를 게을리한 내게 검정고시와 수능 공부는 엄청난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연습생 시절 영어와 중국어를 마스터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도 수능 준비를 하고 있었을걸.

처음부터 다시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2년의 공부.

무수한 문제집과 모의고사를 거치고 이제는 수능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2013년 겨울. 현재.

회사를 나온 지 3년이 지난 지금,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21살의 나 선우주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었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

매년 수능 날이 되면 갑자기 추워진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으. 춥다.

제대하면서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훑어보면서 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직 새벽녘.

가로등 불빛이 여전히 빛을 밝히는 때였다.

[오늘 수능 보는 스타는 누구?]

포털 연예란에 있는 기사를 누르니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TNT 한태현, 라비앙로즈 전유빈, 기타 등등.

TJ 엔터에서 오다가다 봤던 얼굴들이 화면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죄다 아는 얼굴들이다.

그중에서 내 눈에 띈 것은 TNT의 한태현이었다.

TNT.

내가 잘리고 멤버가 추가된 후, TNT는 곧바로 데뷔했다.

결과는 대성공.

그냥 성공도 아니고 초대박이었다.

그해 신인상은 물론이고 상이란 상은 다 쓸어 담고, 역대 최고의 신인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지.

솔직히 그 정도로 잘될 줄은 나도 몰랐다.

뭐.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심호흡을 길게 내쉬고는 눈앞의 언덕길을 바라보았다.

어제 눈이 내려서 그런가.

시험장까지 올라가는 언덕길에 빙판이 깔려 있었다.

이걸 어떻게 올라가냐.

잠시 멘붕에 빠져 있었던 나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덜컹-

맨홀 뚜껑과 바퀴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리어카를 미는 할아버지가 언덕을 올라가려고 고군분투하시는 중이었다.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 걸까.

군산에 있는 우리 할머니와 겹쳐 보였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고는 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휘청거리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도와드려야 되나?

새벽녘인 만큼 입실 시간은 넉넉했다. 군대에서부터 쓰던 전자시계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복도 받아야지.

혹시 모르지 않은가.

하늘에 계신 높으신 분이 내 모습을 보고는 ‘좀 갸륵한 녀석이군’ 하면서 축복이라도 내려줄지.

그런 생각을 하며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

“선생님.”

“…나 부르는 거여?”

힘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힘드시죠? 제가 좀 힘이 남아돌아서 그런데 언덕 끝까지 모셔드릴게요.”

“도와준다고?”

“네.”

“얄쌍해서 힘도 없어 뵈는구먼.”

“걱정 마세요. 제가 이래 보여도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흐읍…!”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미는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어라?”

“왜 그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핫!”

겉으로는 웃지만 패딩 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게 실화냐.

얼마 안 가 충격적인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

종이 박스만 담겨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에 라디오, 폐가전 같은 고물이 잔뜩 담겨 있었다는 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리어카를 미는 할아버지의 팔에 근육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다 바지가 펄럭일 때마다 드러나는 우람한 장딴지까지.

혼자서도 거뜬한 사람에게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는 낭패감이 들었다.

“학생, 괜찮아?”

“이게 엄청 무겁네요. 보기에는 가벼워 보였는데.”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학생. 세상에 쉬운 일이 있나.”

“맞는 말씀이세요.”

“이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녀. 노하우가 있어야지.”

“리어카 몇 년차신데요?”

숨이 차서 아무 말 대잔치가 나왔다.

“평생 해 왔지.”

“헉, 헉… 대단하세요.”

고물상 할아버지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피어 올라왔다.

“내가 이걸로 아들내미 대학도 보내고… 아이고, 벌써 힘이 다 빠졌어? 젊은 사람이 이래 가지고 어따 써먹겠어?”

마침내 리어카가 언덕 끝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릎을 부여잡았다.

와, 이거 미쳤다.

패딩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오면서 구레나룻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오늘 얻은 교훈 하나.

다시는 리어카를 무시하지 마라.

“고마워, 학생. 도움은 안 됐지만 마음씨가 참 곱네. 생긴 것도 곱상하고. 아주 예뻐 죽겄어.”

“예예, 고생하셨어요.”

“학생은 이제 어디로 가시는가?”

“저 앞에 학교로 시험 보러 가요.”

“아, 수능?”

“예.”

“아이고, 수험생이 늙은이 돕겠다고 고생혔네.”

할아버지가 내 손을 꼭 붙잡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좋은 일 했으니 복 받을겨.”

“감사합니다.”

그다지 보탬은 안 된 것 같지만 보람은 있었다.

이런 맛에 봉사 활동 같은 걸 다니는 걸까.

어르신과 훈훈한 덕담을 주고받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갈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곧 시험장 입구였다.

하지만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걷던 나는 또 다시 괴상한 소리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아앙!

그건 멀찍이서 질주하는 자동차였다.

뭐야? 제정신이야?

학교 쪽 샛길에서 흰색 세단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자가 술을 마셨는지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차가 향하는 방향은 분명….

“선생님!”

성난 듯 달리는 자동차의 경로에는 좀 전의 어르신이 리어카를 세워 두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할아버지!”

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귀가 잘 안 들리는지 거의 고함을 지르듯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자동차는 리어카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내 심장은 초조하게 뛰기 시작했다.

‘안 돼!’

생각이고 뭐고 할 틈이 없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감각을 느끼며 리어카 할아버지에게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그동안 자동차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조심- 하세요-!”

번호판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할아버지를 밀쳤다.

콰앙!

순식간에 리어카를 박살 낸 자동차는 미용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괜찮으-.”

바닥에 쓰러진 할아버지는 다행히 상태가 멀쩡했다.

문제는 나였다.

“으헉-!”

할아버지를 밀치느라 전력으로 달렸던 내 발이 헛발질을 하고 있었다.

어어?

뭐야 이게?

빙판을 밟은 것이 화근이었다.

순식간에 무게 중심이 등 쪽으로 옮겨 가면서 내 몸이 일시적인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이다.

마치 바이킹이 하강하는 듯한 느낌.

그다음은 순식간이었다.

쿵-!

어딘가에 한 번 부딪친 내 몸이 언덕을 굴렀다.

회전이 멈췄을 때 소가 해맑게 웃고 있는 고깃집 간판이 보였다.

아. 머리 아파.

시야가 희미해진다.

‘등심 3인분에 45,000원….’

그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이었다.

시간은 10시.

입실 시각이 한참 지나서 시험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지.

매번 이런 식이다.

인생이 잘 풀리나 싶으면 매번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인다니까.

7살 생일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려고 연습을 시작했더니 할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데뷔하기 직전 데뷔조에서 탈락하더니.

이제는 수능 날 사람을 구했더니 시험을 못 본단다.

할머니한테 뭐라고 말하지?

손자 수능 대박 나라고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을 할머니를 떠올리니 막막하다.

돌겠네.

다년간 불행을 경험한 덕분인지 다행히 멘탈은 금방 회복이 되었다.

사실 이번은 그나마 나은 축이었다.

다른 때는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보람도 없이 찾아온 불행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사람 목숨을 구했으니 보람은 있었다.

정말 딱 목숨만 구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콜록!”

응급실 옆 침대에 어르신이 누워 계셨는데 기침을 할 때마다 괴로운 듯 몸을 웅크리셨다.

내가 밀쳐 갈비뼈가 부러진 탓이다.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에 내가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아유, 그런 말하지 마세요.”

보호자로 오신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그 옆에 선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주 씨가 아니었으면 저희 아버지는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아들 부부라고 했다.

아드님이 교수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함을 받으니 정말 대학병원 교수였다.

할아버지 성함은 최익현이고, 아드님 이름은 최용재라나.

“최 씨 성에 함자가 익현이요?”

“예, 저희 아버지 성함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아무것도 아니예요.”

문득 수능 교재에서 본 위정척사 운동의 대명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몸은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기적적으로 멀쩡하다네요. 오늘 하루 푹 쉬면 괜찮을 거래요.”

“병원에서 쉬는 건 어때요? 아직 사례비도 제대로 못 드렸고, 저희가 병원비도 내 드릴 테니까….”

“괜찮습니다. 사례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에요.”

계속해서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는 이들에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분들과 웃으며 식사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들 부부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할 때, 병상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학생….”

갈비뼈가 부러져서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없고 그렁그렁하다.

“내가 미안해.”

“네?”

“내가 큰 죄를 지었어. 그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하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는 늙은이한테 걸려서… 내가 못 할 짓을 했어. 정말.”

“그런 말씀 마세요.”

죄책감이 가득한 듯, 눈물을 글썽거리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리며 말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시험은 다시 볼 수 있지만 사람 목숨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진짜 괜찮아요.”

안심시키기 위해 씩 웃어 보이자, 할아버지가 눈가를 훔쳤고 곁에 선 아들 부부도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나중에 봬요.”

식사 한번 하자는 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나는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1년 더 공부해야 되는 거 실화냐.

의도치 않은 재수생 확정에 막막한 기분을 느낄 때, 병원 로비에 걸린 TV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채널에서 액션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다.

군대에서 본 영화였다.

주인공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파이였는데 기억을 잃고 도망치는 설정이었던가.

영화 속 장면은 초반부였다.

경찰관이 주인공에게 총을 겨눈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터라 총 앞에서 순순히 양손을 들어서 항복한다.

이내 경찰이 다가와 어깨를 붙잡는다.

그리고 바로 이때.

자기도 모르게 몸에 무술이 배어 있던 주인공은 반사적으로 상대를 엎어서 메쳐 버린다.

…음?

익숙한 영화 장면을 보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5감이 아닌 색다른 감각이었다.

그 기묘한 감각을 파악하려던 내 생각은 핸드폰 진동에 끊겼다.

“여보세요.”

-선우주 씨 되십니까?

묵직한 목소리였다.

“예, 누구신데요?”

-안녕하십니까. 은평 경찰서 교통 조사계 장경일 조사관이라고 합니다.

“아, 네.”

-예예, 다름이 아니라 오늘 아침 교통사고 조사 관계로 피해자 진술을 받아야 하는데요. 혹시 지금 계시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병원 이름을 대자 상대 쪽에서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됐네요. 제가 마침 병원 로비에 있거든요.

“예? 저도 로비에 있는데요.”

-지금 전화 통화하고 계시는 키 큰 남자분 맞죠?

“어디 계시는데요?”

“저 바로 여기-”

뒤쪽에서 목소리와 함께 내 왼쪽 어깨로 누군가 손을 올리는 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라?

마치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는 듯한 느낌.

그 손을 붙잡은 내가 몸을 번개같이 돌리고는 순식간에 상대를 바닥에 메쳐 버렸다.

쿵-!

이윽고 병원 로비에 싸한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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