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화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괜찮으세요?”
대리석 바닥에서 끙끙대는 경찰에게 황급히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괘, 괜찮습니다.”
“제 손 잡고 일어나세요.”
젊은 남자가 내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더니 생판 모르는 남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상대도 얼떨떨한 기색이었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시전했던 엎어치기 동작은 방금 전 TV에서 영화로 보았던 바로 그 동작이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병원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은평서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이번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짧게 친 스포츠 컷.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이 굵은 외모라 형사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 ‘교통 조사계 경장 장경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저, 그것보다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괜찮아요.”
장 경장이 쿨하게 웃었다.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유도부였어요. 이 정도로는 끄떡도, 아아아…!”
“괜찮으세요?”
“아아… 않는다는 이야기죠.”
굉장히 아픈 것 같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엎어치기 한번 대단하데요.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던데, 무의식적으로 나올 정도면 선수했었나 봐요?”
“아, 네….”
“이야, 어쩐지.”
거짓말이었지만 여기서 ‘저도 모르게 영화에 나오는 기술을 따라 해 버렸네요, 하핫.’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곧이어 상대는 수첩을 꺼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충실히 대답했다.
짧은 질의응답이 끝나고 나는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혹시 음주 운전이었던 건가요? 차가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던데.”
“음주 운전은 아니고요. 뇌전증 환자랍니다. 이 양반한테 사정을 들어보니까, 딸을 시험장에 내려주다가 발작이 왔다네요.”
“뇌전증 환자도 운전면허를 소지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자리에서 설명을 드리기에는 내용이 복잡하지만, 면허 취득과 관련해서는 법적으로 문제 될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수능을 못 보게 된 이유가 나와 같은 수험생의 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씁쓸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요?”
“입건해야죠. 경우가 어쨌건 사람 둘을 보내 버릴 뻔했으니까.”
나 정말 죽을 뻔했구나.
질주하는 자동차 앞에 뛰어들었던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이제야 실감 났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장담 못하겠다.
내 목숨도 소중하지만 이 세상에는 나만 보고 사는 사람이 하나 있기에.
“가족들한테 연락은 하셨어요?”
“군산에 외할머니가 계세요. 연락을 넣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다네요. 아직 절에서 수능 기도 올리시는 중인가 봐요.”
“아…….”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짓던 젊은 경찰관이 머쓱한 듯 화제를 바꿨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그렇습니다마는, 정말 훌륭한 일 하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말만 오늘 몇 번째더라.
대략 26번째는 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경찰관은 남들과는 다른 말을 했다.
“지금은 억울하고 원통하실 거예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공짜가 없잖아요. 베푼 만큼 돌아오고.”
“예?”
“당분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수첩을 챙기며 웃는 이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병원이랑 경찰서의 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글쎄요.”
“소문이 무진장 빠르게 퍼진다는 겁니다.”
그가 내미는 손을 맞잡아 악수를 나눴다.
소문이 퍼진다니 무슨 소리일까?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남긴 장 경장을 따라 병원 카페를 나서려고 할 때였다.
나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어? 나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성별도, 복장도 제각각이라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나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진 이를 보는 순간 무슨 일인지 감을 잡았다.
누군가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선우주 씨. KTN 노용기 기자라고 합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멀뚱멀뚱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이해했다.
그 뜻이었구나.
병원과 경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가 퍼진 것이 분명했다.
하긴, 내가 봐도 좋은 이야깃거리긴 했다.
-수능 날, 시험을 보러 가던 학생이 리어카를 끌던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다.
나는 기자들이 내민 명함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시간 되죠.”
수능 공부를 하면서 본 영어 교재에 이런 속담이 있었다.
하느님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하늘이 위기를 주면 그것을 기회로 바꿔 버리라는 뜻의 속담.
그래. 기왕 벌어진 일이면 즐겨야지.
나는 기꺼이 레모네이드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KTN 이브닝 뉴스.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중년 앵커가 TV 화면 속에 있다.
[2014 대입 수능]
그런 스크린을 배경으로 앵커가 입술을 뗀다.
-인터넷 세상 속 이슈를 살펴보는 이슈 톡톡 코너입니다, 홍아란 앵커.
-네.
오른쪽에 떠오른 화면에 앵커가 나타난다.
그녀는 인터넷 검색어 순위가 쓰인 스크린 앞에 서 있었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치러진 오늘, 안타까우면서도 가슴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죠?
-네. 그렇습니다.
홍아란 앵커가 터치하자, 인터넷 검색어 1위가 확대된다.
-이슈 톡톡에서 오늘 다룰 인터넷 검색어는 바로 ‘갈현동 의인’입니다. 오전부터 계속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주인공인데요. 관련 동영상 한번 보실까요?
흐릿한 화질의 영상 한쪽에는 출처가 적혀 있었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 녹화 영상이라고.
영상은 힘겹게 리어카를 끄는 노인이 화면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노란 패딩을 입은 청년이 등장해서, 손잡이를 같이 밀어 주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CCTV 화면으로 바뀐다.
승용차가 질주하기 시작하고 걸어가던 청년이 달려가 노인을 밀친다.
쿵!
소리는 없지만 리어카가 순식간에 박살나고, 그 안에 담긴 폐지가 여기저기 날아간다.
공회전을 하다가 이내 멈추는 자동차.
화면은 다시 브리핑 룸으로 돌아왔다.
-이 사고는 오늘 오전 6시경, 은평구 갈현동에 있는 한 고등학교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차량이 질주하면서 사고를 일으켰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운전자는 지난해부터 뇌전증을 앓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발작이 일어난 상태로 액셀을 밟은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피해자는 없었습니까?
-네, 보셨다시피 리어카를 밀고 있던 70대 노인, 최모 씨가 참변을 겪을 뻔했지만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에게 구조가 되었습니다.
-구조자의 인적 사항이 오늘 하루 화제가 되었죠?
-네. 그렇습니다.
홍아란 앵커가 스크린을 터치하자 동영상 썸네일이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노란 패딩을 입고 있는 청년.
-70대 노인을 구한 의인은 오늘 수능 시험을 치러 가던 수험생이었습니다. 오늘 낮에 노용기 기자가 입수한 최초 인터뷰 보실까요?
카페에 앉아 있는 청년.
노란 패딩을 벗어 두고 검은 스웨터를 입고 있다.
살짝 피로하지만 잘생긴 얼굴이 역력히 드러났다.
[선우주 / 갈현동 의인] : 아깝지 않느냐고요?
청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주 / 갈현동 의인] : 조금 아깝기는 해요. 하지만 사람 목숨이 먼저잖아요. 다음 해에도 볼 수 있는 시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기자] : 구하러 가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선우주 / 갈현동 의인] : 아아, 그때요? 글쎄요. 그냥 아무 생각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더라고요.
인터뷰 중간을 짤막하게 보여 준 뒤, 화면은 브리핑 룸으로 돌아왔다.
홍아란 앵커가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갈현동 의인, 선 씨의 인터뷰였는데요. 다행히 선 씨는 언덕에서 굴렀음에도 가벼운 뇌진탕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한편, 의인이 지난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수차례 평균 1등급의 성적을 거둔 사실이 밝혀져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가슴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다른 피해자는 어떻습니까?
-피해자 최모 씨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요.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부상을 제외하면 경미한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 사태로 도로교통공단의 부실한 면허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죠?
나는 그쯤에서 DMB 화면을 껐다.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니, 뉴스 사회면에 내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다.
-수능 날, 수험생이 70대 노인 목숨 구해…
-‘갈현동 의인’ 선우주 씨, ‘한 일에 비해 큰 관심이 부담스럽다.’
-서울 경찰청, 갈현동 의인 표창 검토 중
나는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아이돌 연습생이었을 때 매일 그런 상상을 했다.
무대에 올라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내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나를 알게 될 정도로 유명해지면 기분이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그랬다.
물론.
일시적인 관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연습생보다 유명했다.
게다가 의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외에도 다른 부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듯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는 내 인터뷰 캡쳐 사진.
-와 존잘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동안이다.. 고딩인 줄
-내가 재수학원 원장이면 당장 1년 치 수강료 내주고 초빙함
외모에 대한 칭찬이 민망할 정도로 줄을 잇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관심받아서 좋긴 한데 기분이 묘하다.
어쨌거나 2년 동안 했던 공부가 물거품이 됐다는 건 사실이니까.
“후우….”
찬바람에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메신저 알림이 뜨고 있었다.
무수한 알림.
친한 친구부터 가끔 연락하는 지인들, 거기에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평소에는 잠잠하던 휴대폰이 쏟아지는 연락으로 불을 뿜어냈다.
아마도 뉴스나 인터넷을 보고 안부를 묻는 듯했는데 일단은 그 모든 것에 답장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보다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손에 들린 야구공을 바라보았다.
텅 빈 운동장.
수능 날 밤이라서 학교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공을 쥐었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
그것이 뭔지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실험을 위해 운동장 스탠드로 야구공을 던지려는데, 스마트폰이 갑작스럽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연락한 거지?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 받았네?
의외라는 투에 내가 입술을 비죽였다.
“받았네는 또 뭐야, 형.”
-이야, 그래도 형이라고 불러 주고. 아직까지 내 이름은 안 까먹었나 보다?
“당연히 기억하지.”
-역시 나의 인맥 관리 능력은 죽지 않았어.
“이상한 소리 하는 거 보니까, 아픈 건 다 나았나 보네.”
발신자의 이름은 윤석환.
연습생 생활 동안 나를 돌봐 줬던 매니저였다.
“몸은 좀 괜찮아, 형? 나 나가고 얼마 안 가서 허리 디스크로 그만뒀다며.”
-어떻게 알았어?
“태현이한테 들었어.”
한태현은 함께 TNT 데뷔조에 들었던 연습생이었다.
그만두고 한동안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난 후로는 TV로 근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
-다 나았어. 너 군대 간 사이에 일도 다시 시작했고.
“TJ 엔터?”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내 자리를 이미 채웠다더라. 큰 회사들이 다 그렇잖아.
“그 회사가 좀 그렇긴 하지.”
회사에 대한 흉을 보며 잠시 우애를 다졌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우리가 용건이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야?
“응.”
-…….
“용건 있어서 연락한 거잖아. 나쁘게 생각 안 해.”
-제안하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어.
“전화로 할 수는 없고?”
-너도 참. 여기 업계 일이라는 게 사람 얼굴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게 관례잖냐. 오늘 약속 있어?
“아니, 없어.”
-그럼 나와, 인마.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만나자. 내가 밥 살게.
꿀꺽.
그러고 보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저녁도 못 먹은 상태였다.
꾸르륵거리는 위장을 느끼며 헛기침을 했다.
“비싼 데 아니면 안 가.”
-법인 카드 준비해 놨다. 어디든 말해.
“꽃등심.”
-꽃등심?
“응, 그냥 꽃등심 말고 눈꽃등심.”
-너 돼지고기파 아니었냐?
그건 사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기는 한데.
새벽에 빙판에 굴렀을 때 마지막 기억이 유난히 선명했다.
등심 3인분에 4만 5천 원.
그 기억만 아니면 삼겹살을 먹자고 했을 거다.
-하여간 공짜 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돼. 그럼 내가 기가 막힌 소고깃집 하나 알고 있는데 거기로 갈래? 너 지금 은평구 맞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기는.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니 얼굴 돌아다니는데.
그 정도였나.
-톡으로 고깃집 주소 보낸다.
“형, 그런데 나 좀 시간이 걸릴 건데.”
-얼마나?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볼일이 있어서 그래.”
-오케이. 출발할 때 연락해라.
전화 통화를 종료하고 일어났다.
한 손으로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면서 다른 손으로는 미튜브를 검색했다.
[MLB top plays]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이 펼친 최고의 경기들이 클립 영상으로 편집되어 올라와 있었다.
영상을 클릭하자 BGM과 함께 재생되는 경기들.
나는 숨죽인 채 영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영상이 끝나면서 광고가 흘러나올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기묘한 느낌.
영상을 보는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 기관이 자극받는 기분이었다.
굳이 표현을 한다면….
오감을 넘어선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하는 실험은 그것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대강의 플레이 영상을 지켜본 나는 스마트폰을 촬영 모드로 놓고 스탠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한참 물러나 거리를 벌린 뒤 투구 자세를 취했다.
공을 던지려는 의도를 품은 바로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움직였다.
오전에 경찰관을 패대기쳤을 때와 같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후욱-
내 유연성을 뛰어넘은 각도 때문에 순간 고통이 느껴졌지만 잠시뿐.
오른팔이 호쾌한 선을 그렸다.
파앙-!
스탠드에 부딪힌 야구공은 몇 번 튕기고는 또르르 굴러갔다.
그것을 줍는 대신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확인했다.
[첫 번째 동영상]
MLB 영상을 보기 전에, 비교를 위해 찍어 놨던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이 시작되자 민망함에 몸서리쳤다.
영상 속의 나는 모든 동작이 어색했다.
연습생 시절 ‘로봇’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뚝뚝 끊기는 동작부터 어정쩡한 팔다리 위치까지.
팅.
공도 볼품없이 날아간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공을 더 던졌지만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뒤로 가기를 눌러 영상을 나가고는 다음 영상을 눌러 들어갔다.
[ 두 번째 동영상 ]
영상이 재생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헛숨을 토해 냈다.
저게 정말 내가 맞아?
다르다.
시선 처리부터 첫 번째와 다르다.
어설프지만 어딜 가도 ‘야구 좀 하셨나 봐요?’ 라는 말을 들을 만큼.
동영상을 찍은 간격은 5분이었다.
그런데 고작 5분 만에 당사자인 내가 보기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자세가 달라진 것이다.
두 동작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단 한 가지.
내가 프로들의 투구 동작을 봤다는 거였다.
의심은 심증으로, 심증은 확신으로 굳었다.
한 번 본 동작을 그대로 구사할 수 있는 건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뇌진탕으로 인해서 머릿속의 신경 세포가 변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좋은 일에 대한 하늘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윽!”
허벅지가 욱신거렸다.
프로 선수의 투구 동작을 따라하느라 올렸던 다리가 유연성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뻐근한 허벅지를 주무르며 인상을 썼다.
몸이 동작을 못 따라가네.
세상에 완벽한 공짜는 없다는 것.
그것이 첫 번째로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