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화
2장. 레몬 엔터테인먼트
댄스.
운동 신경이 최악이라, 연습생 시절 6년을 바쳐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던 춤이 정복 가능하다면 어떨까.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놓친 데뷔 기회만 해도 셀 수가 없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친구가 먼저 데뷔를 하기도 했고.
데뷔조까지 가까스로 올라 놓고 방출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춤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돌의 꿈을 접은 것도, TNT 방출은 빌미를 제공했을 뿐 주된 원인은 바로 춤이었다.
그런데 만약 춤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걸 알기 위해 방금 전과 똑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원래 알던 춤을 일단 춘다.
그리고 미튜브에서 해당 춤의 원작자가 하는 것을 보고는 뒤따라서 2차 촬영을 한다.
결과물을 살폈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맙소사. 되잖아?
혹시나 했던 생각이었는데 정말로 가능했다.
동영상을 찍은 간격이 1분도 되지 않았건만 내 동작은 놀라울 만큼 달라져 있었다.
“…….”
그야말로 할 말을 잃은 기분이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내게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득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내 평생의 한이자, 데뷔조에서 잘리게 됐던 원인이 이리도 쉽게 해결이 되어 버렸다니, 꿈일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딱딱한 겨울철의 모래 바닥에 청바지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지만 나는 멍하니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총총 떠오른 별들.
반쯤 구름에 잠긴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그 모든 걸 눈에 담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어르신을 구하고 병원에서 액션 영화를 봤을 때부터.
인터뷰를 하고 운동장으로 와 능력을 시험하기까지.
이 모든 건 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실험을 하면 할수록 점점 확실해졌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내게 어떤 능력이 생긴 게 분명했다.
일종의 초능력.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실성한 듯 그렇게 한참을 웃던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석환 형에게는 아이돌을 포기할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TJ 엔터를 나오고 나서도 몇 번이고 오디션을 보긴 했다.
그리고 번번이 낙방했지.
내 비주얼과 가창력에 함박웃음을 짓던 심사위원들은 통나무처럼 삐걱거리는 내 춤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고, 연습생 기간을 듣고 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6년을 했는데 그것밖에 안 되면 더 해도 안 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게 춤은 더 이상 난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시 걸어갈 수 있다.
접었던 꿈을 다시 꿀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내가 포기했던 그 길.
아이돌.
어쩌면 이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 * *
“빨리 먹어. 고기 타겠다.”
“어? 어.”
나는 석환 형의 재촉에 정신을 추슬렀다.
석환 형이 내게 찍어 준 고깃집은 은평구에 위치한 맛집이었다.
연습생 시절에는 한 번이라도 가 보고 싶어 침만 꼴깍 삼키던 곳이었는데, 내 한을 알고 있었던 건지 석환 형은 이곳으로 장소를 잡았다.
나는 잘 구워진 꽃등심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소하면서도 숯불에 구워진 소고기 특유의 느끼한 풍미.
황홀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집게를 든 석환 형이 짠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삼 일은 굶긴 줄 알겠네. 천천히 먹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해?”
“아니었어?”
“뭐?”
“나 잡아가려고 온 거 아니었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1인분에 5만원짜리 눈꽃등심을 5인분이나 시켰는데도 동요가 없잖아. 그 말은 개인 카드가 아니라는 뜻이고, 그리고 아까 법인 카드 들고 나온다며. 그러면 사적인 용건은 아니고 공적인 용건이라는 거 아냐?”
“아주 셜록 홈즈 납셨네.”
“아, 해 봐, 형.”
물주에 대한 답례로 정성스럽게 싼 쌈을 먹여 주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잡아가면 잡혀가 줄 거야?”
“봐서.”
내가 메뉴판을 슬쩍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계란찜 하나 추가해 주면 내 마음이 흔들릴지도 몰라.”
윤석환은 웃으며 계란찜을 추가했다.
고기를 먹는 사이 뜨끈한 계란찜이 나왔다.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 후후 불면서 입가에 가져다 대는데 석환 형이 내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괜찮냐?”
“뭐가?”
“수능 시험 말이야. 기사 보니까 군대에서부터 2년 동안 준비했다면서? 모의고사 성적도 최상위권이고.”
“아쉽기는 한데, 어쩔 수 없잖아.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꿔.”
“속이 말이 아니겠어.”
“괜찮아. 이제 이런 일은 익숙해.”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언제는 내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나? 원하는 대로 다 이뤄졌으면 지금쯤 아시아의 별이 됐게. 공부한 게 아깝긴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일어난 일은 바꿀 수도 없는데 감정 소모해 봐야 나만 손해야.”
“다이아몬드 같은 멘탈은 여전하구나.”
“다이아몬드는 아니고 금 정도 되려나. 그것도 진짜 금 말고 약간 불순물 섞인 그런 거 있잖아.”
내 우스갯소리에 석환 형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할머님은 뭐라셔?”
“뭐라기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누었던 통화를 떠올린 나는 몸서리를 쳤다.
“영장류가 구사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하던데. 친칠라가 무슨 동물인지 알아, 형?”
“친칠라까지 나왔어?”
“할머니가 욕한 동물로 황도 12궁은 만들 수 있을걸. 내가 우리 할머니 아니었으면 고소했어.”
“다 걱정하는 마음에 하신 소리겠지.”
“나도 알아.”
그러니까 미안하고 신경이 쓰이는 거지.
늙은 나이에 손자만 바라보는 할머니한테 못 할 짓을 한 기분이니까.
“형, 그나저나 우리 다른 얘기하면 안 돼? 술맛 떨어지는데.”
“뭔 소리야. 너 지금 콜라 마시잖아.”
“콜라도 술이야.”
“언제부터 콜라가 술이 됐냐?”
“몸에 안 좋고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면 술이지.”
“소주는 내가 먹었는데 헛소리는 왜 니가 하냐.”
나는 콜라를 들이키며 캬 소리를 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마시는 순간부터 ‘얘 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얼굴이 벌게지니까.
“짠이나 하자.”
잔을 부딪히고는 나는 고기를 한 점 집었다.
“형.”
“응?”
“그래서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인간 대 인간으로 나는 윤석환이란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별개였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석환 형은 치열히 살아가고 있는 사회인이었다.
간만에 전화해서 소고기를 먹이는 걸 보면 추억 여행이나 하려고 부른 건 아닐 것이다.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솔직히 인터넷에서 내 얼굴 봐서 만나자 했다는 건 핑계일 거고.”
“그건 맞는데.”
“뭐?”
“너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유명해.”
“에이.”
“오늘 하루 인지도만 보면 어지간한 중위권 아이돌이야.”
“자꾸 비행기 태우지 말고.”
내가 손사래를 칠 때였다.
“저기요.”
“네?”
고개를 돌리니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온 한 여자가 보였다.
나이는 20대.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듯 눈이 반짝거린다.
“맞으시죠, 갈현동 의인?”
갈현동 의인이라니.
활자로 볼 때는 무감각했는데 직접 들으니 부끄러움이 솟아올랐다. 실시간으로 오그라드는 내 표정에 석환 형이 키득거렸다.
“예, 맞긴 한데 무슨 일이세요?”
“와, 대박!”
상대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웬일이야, 오늘 인터넷에서 봤거든요. 진짜 신기하다.”
“아, 예…….”
“실물이 더 잘생기셨어요.”
“감사합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사진이요? 네, 괜찮아요.”
왠지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카메라 어플을 키기 전에 여성분의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장식한 유명 아이돌 그룹 식스티 세컨즈의 화보 사진이 보였다.
아이돌 팬이신가.
사진을 찍고 나서 그녀는 ‘페북에 올려도 되죵?’ 하고는 유유히 떠났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나온 모양인데 그쪽 테이블을 흘깃 바라보니 남동생이 수험생인 듯했다.
가채점 결과가 좋았는지 연신 화기애애한 가족을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나 진짜로 얼굴 팔렸나 보네.”
“이제 믿기지?”
“조금은.”
“우리 의심쟁이께서 ‘왜 만나자고 했냐?’고 물었지? 용건이 뭐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연예…….”
“안 해.”
말하기도 전에 대답하는 나를 보며 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말은 끝까지 들어라, 이 자식아.”
“배우 하라는 거잖아. 안 봐도 뻔하지.”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꽃등심을 기름장에 푹 찍자, 핏물이 살짝 배어 나와 기름 속에 둥둥 떴다.
느끼하면서도 쫄깃한 1++등급 소고기의 맛을 즐기며 입술을 뗐다.
“TJ에서도 그랬잖아. 나 자르면서 아이돌이 대수가 아니다, 너 정도 마스크는 어딜 가든 먹힌다. 그러니까 배우로 전향하는 게 어떠냐 하고.”
“배우가 그렇게 하기 싫어?”
“아니.”
소주병을 들어 석환 형의 잔을 채워 주었다.
“이제는 배우든 아이돌이든 무슨 상관이랴 싶은데. 사실, 오늘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거든.”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구해 주다가 빙판에서 굴렀더니 이상한 능력이 생겨 버렸다.
어떤 동작을 보기만 해도 곧바로 카피할 수 있는 능력.
학교 운동장에서 시험 삼아 이것저것 시험해 보았을 때 파악했다.
내가 복사할 수 있는 동작에는 한계가 없었다.
펀치나 킥 같은 격투 기술은 물론이고, 체조 선수의 동작, 비보잉, 아이돌 댄스 등 춤까지.
6년 동안 골칫덩이었던 춤이 해결됐다는 것은, 내가 굳이 배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직 확정한 건 아닌데, 다시 아이돌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야.”
“이제 와서?”
“스물다섯에 데뷔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스물하나면 조금 늦긴 했지만 아직 도전할 수는 있는 나이잖아.”
“수능은 그냥 포기하려고?”
“고민 중이야.”
뭔가 멋쩍은 기분이라 뺨을 긁적였다.
“말했잖아, 아이돌 도전하는 것도 확정은 아니라고. 수능도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내렸어.”
“그러니까 일단 아이돌이 하고 싶긴 하다는 거지?”
“음?”
석환 형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하다.
눈을 반짝거리는 윤석환 씨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됐다, 우주야.”
“뭐가?”
“너 아이돌 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 와라.”
“잠깐만.”
손을 들어 석환 형의 말을 끊었다.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배우 하라고 온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응?”
“네 멋대로 착각한 거잖아. 그러니까 사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지.”
“미안, 내가 잘못 알았네.”
윤석환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레몬 엔터테인먼트 실장 윤석환]
나는 석환 형의 새 명함에 적힌 문구에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실장? 승진했구나.”
“승진은 무슨. 대기업에서 부장 달고 이직하면 중소기업에서 이사 다는 거랑 비슷한 거지.”
“축하해. 좋은 회사 들어갔네.”
레몬 엔터테인먼트는 중소 기획사긴 해도 나름 내실이 튼튼하다고 평가받는 검증된 기획사였다.
배우 전문 기획사로 시작해서 지금은 가요계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했나.
최근에 여기서 데뷔한 유명 걸그룹도 있다.
“스칼렛이 레몬 엔터 맞지?”
“맞아.”
스칼렛은 잘나가는 4인조 걸그룹이다.
작년이었나.
혜성처럼 등장해서는 실력파 걸그룹으로 이미지를 확고하게 잡았었지.
“이번에 스칼렛 이후로 보이그룹 하나 준비 중이야. 그러니까 와서 오디션 한번 봐 보라고.”
“진심이야?”
내 질문에 석환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지, 내가 너한테 비싼 고기 먹이면서 장난치겠냐.”
“나 춤 엄청 못 춰서 잘린 건 기억하지?”
“내가 그걸 까먹겠냐.”
“그런데도?”
어딘지 미심쩍어 석환 형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석환 형은 픽 하고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토해 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 불러 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말한 게 네 춤 실력이야. 괜히 엄한 사람 또 좌절시키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런데 윗선에서는 상관없다고 꼭 불러오란다.”
“윗선?”
“아차차, 내가 아직 이야기를 안 했구나.”
윤석환이 술잔을 꺾고는 운을 띄웠다.
“너 작곡가 중에 조규환 씨라고 알아?”
“당연히 알지. 작곡 공부하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인데.”
“하긴 그 양반이 유명하긴 하지.”
조규환.
노래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히트 곡을 다수 보유한 천재 작곡가.
젊은 나이에 매년 저작권료로 수억 원을 번다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레몬 엔터에서 제작 이사를 맡고 있거든. 대표님 다음으로 사실상 2인자 역할인데, 주로 배우나 가수 캐스팅, 그리고 프로듀싱을 맡고 있어. 스칼렛도 이 사람 작품이고.”
그가 말을 이었다.
“근데 이 사람이 진짜 특이한 사람이거든. 별명이 점쟁이야.”
“점쟁이?”
“뭐가 뜨고 뭐가 망할지 기가 막히게 잘 안다고 해야 되나. 거의 적중률이 99퍼센트야.”
“그게 말이 되나.”
“진짜야, 인마.”
말도 안 된다며 웃는 나에게 윤석환이 발끈해서 몇 가지 사례를 알려 줬다.
모두가 망할 거라는 노래를 타이틀로 꼽은 일.
망할 게 분명한 마이너 소재의 영화가 뜬다며 회사 소속 배우를 넣자고 강력하게 설득했던 일.
망할 거라는 노래는 하루 만에 차트 1위를 찍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작품에 출연했던 남자 배우는 천만 배우가 되어 버렸단다.
“대부분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긴 한데, 스칼렛 캐스팅은 나도 옆에서 지켜봤거든.”
실력파 걸그룹으로 유명한 스칼렛 멤버들의 캐스팅도 그런 식이었다나.
홍대 인근을 돌아다니다가 얼굴을 슥 보고 뽑았다거나.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에게 명함을 건네거나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줍듯이 만든 스칼렛은 2012년에 가장 히트를 친 신인 그룹이 되었다.
석환 형은 그때를 떠올렸는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조규환 이사가 레몬 엔터의 새로운 보이그룹 멤버로 너를 뽑고 싶대.”
“뭐?”
“말 그대로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석환 형을 빤히 바라봤다.
“형.”
“응?”
“솔직하게 말해 줘. 지금 나한테 들어오라고 하는 보이그룹 말이야. 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지?”
“……응? 상태가 안 좋다니?”
“문제없는 그룹에 갑자기 새 멤버를 뽑겠어? 분명 내부적으로 어디 문제가 있으니까 새 멤버를 뽑겠지.”
석환 형의 제안은 혹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마이다스의 손이 제작하는 보이그룹에, 마이다스의 손이 나를 직접 넣고 싶다고 한 것이니까.
하지만 세상사 어디 좋게만 흘러가나.
정말 엄청난 기회가 다가왔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이 기회가 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남아 있었는지.
특히 지금처럼 연습생도 아니고, 수험생인 내게 기회가 떨어졌을 때면 더더욱.
“뭐, 문제까지는 아니고.”
석환 형이 콧잔등을 긁적이며 말했다.
“사정이 조금 복잡해.”
그가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원래 레몬 엔터에서 준비 중인 아이돌 프로젝트는 보이그룹이 먼저였다.
조규환 이사가 야심차게 스칼렛을 프로듀싱하는 동안, 회사 매니지먼트 팀은 독자적으로 보이그룹을 준비하고 있었다.
목표는 7인조.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연습생 중 하나가 인성이 좋지 않아 지속적으로 다른 연습생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회사에서 방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만이었다면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출로 상황이 일단락되나 싶더니 데뷔를 앞두고 멤버 6명 중 2명이 나가 버렸다.
문제는 그 이탈이 데뷔 프로필 사진까지 찍은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거다.
남은 4명은 멘탈이 무너졌고.
그 상태에서 지금까지 2년이 흘렀다는 이야기였다.
“올 초에 스칼렛이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조규환 이사가 보이그룹 프로듀서를 맡게 됐어.”
“그래서?”
“원래 7인조로 잡았던 프로젝트를 대폭 수정해서 5인조로 데뷔하기로 결정했지. 오디션도 엄청 돌렸는데 안타깝게도 조 이사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나 봐. 오늘까지는 말이야.”
오늘까지는, 이라니.
설마…….
“점심 먹을 때, 식당 TV에서 네 얼굴이 나왔는데 그 사람이 널 바라보는 눈빛이 범상치가 않더라고.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말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