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화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가 그랬다고 한다.
“찾은 것 같네요, 마지막 멤버.”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의 윤석환 씨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조규환 이사가 꽂힌 사람이 바로 자기가 연락처까지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진짜 깜짝 놀랐어. 신기하지 않냐?”
“응, 신기하네.”
“어째 반응이 좀 떨떠름한 것 같다?”
왜 표정이 밝지 않은지 의문을 품는 윤석환 씨에게 설명했다.
“형은 그 조규환 이사랑 아는 사이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제3자인 내가 듣기에는 좀 이상해서.”
“어디가?”
“솔직히 그렇잖아. 점쟁이처럼 잘 맞춘다는 이야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갑자기 TV에 나오는 얼굴 보고 딱 꽂혀서 뽑는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 사례가 없진 않아. 유명한 배우들 캐스팅 일화 알지? 뉴스 인터뷰에 잠깐 나온 걸로도 고등학교까지 찾아가는 게 캐스팅 담당자들이야.”
“……그런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고기가 동이 났다.
식당 아주머니가 된장찌개와 공깃밥을 내오는 동안, 잠시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공깃밥 뚜껑을 열면서 상대가 입을 열었다.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래?”
“응?”
“오디션 말이야. 보러 올 거야, 말 거야?”
잠시 머뭇거리는 내 반응이 걸렸는지 석환 형이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냥 편하게 와서 보면 돼. 연습 2년 동안 쉰 거 다 아니까 거창한 실력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야.”
“아, 그것 때문에 망설인 게 아니고.”
내가 머뭇거린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었다.
뇌진탕 때문에 오늘 하루만 유효할 수도 있는 능력 아닌가.
갑자기 며칠 뒤에 ‘짜잔, 체험판이 종료되었습니다.’ 할 수도 있는 마당이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그랬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보러 갈게.”
“정말이지? 회사에다 일단 그렇게 얘기한다.”
“근데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신이 나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 상대방에게 내가 말했다.
“시간이 좀 필요해.”
“무슨 일이라도 있어?”
“며칠 정도 지켜봐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정리되는 대로 보러 갈게.”
석환 형의 눈에 호기심이 보였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했다.
* * *
수능이 끝난 후, 나는 2주 동안 추이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그날 생긴 능력은 이제 익숙한 손님처럼 눌러 붙었고, 쉽사리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섰을 때 오디션 날짜를 잡았다.
그럼에도 연습할 시간은 부족했다.
2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70대 노인 구한 의인 수험생, 경찰 표창 받는다
-KG그룹, ‘갈현동 의인’에게 3,000만 원 후원
-하이퍼스터디, 의인 수험생에게 1년 무료 강좌 후원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기사들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방송이 대단하긴 하네.
뉴스에 한 번 나왔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후원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최대 입시 업체에서 인터넷 강좌 무료 수강권을 제공하는가 하면 KG그룹에서는 3,000만 원이라는 후원금을 보냈다.
3,000만 원.
어지간한 회사원 연봉이 통장에 찍힌 것을 보니 입을 떡하니 벌어졌다.
이상한 능력에다가 후원금까지.
어찌 보면 수능을 못 본 것이 더 이득이었다.
후원금으로 받은 3,000만 원을 몽땅 할머니에게 송금했을 때의 뿌듯한 감정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됐다고 하면서도 끝내 못 이기는 척 받았다.
하여간 우리 김덕순 여사,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딩동.
메신저 알림에 스마트폰 화면을 전환했다.
킹갓김덕순 [시험,, 잘보고]
킹갓김덕순 [겸손하게. 건방떨면 못써]
킹갓김덕순 [이모티콘]
머리에 띠를 동여매고 주먹을 꽉 쥐는 ‘화이팅’ 이모티콘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애교 가득한 답장을 보내고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이곳은 신사동 골목.
레몬 엔터 사옥이 위치한 곳이었다.
핸드폰 지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중간에 나온 건물 유리창을 거울 삼아 옷가지를 살펴보았다.
청바지에 회색 코트, 그리고 목도리.
인터넷에서 추천 받은 면접용 의상이었다.
스프레이를 바른 머리를 살짝 매만지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첫 인상은 문제없고.
남은 것은 실전뿐이었다.
길을 쭉 따라가니 얼마 안 가 레몬 엔터의 사옥이 나타났다.
평범하게 생긴 5층 건물.
레몬이 그려진 검은 간판에 노란 글씨로 Lemon Entertainment라고 쓰여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석환 형에게 전화를 걸 때였다.
“선우주 씨?”
듣기 좋은 중저음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든 남자.
키가 훤칠하고 코트를 입었는데 그 핏이 모델을 해도 될 수준이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만나서 반가워요. 나 조규환입니다. 윤 실장 통해서 이야기는 들었죠?”
“아, 네네. 안녕하세요.”
매너는 기본.
고개를 꾸벅 숙여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선우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리기는. 오히려 내가 잘 부탁한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조규환 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천재 작곡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골방에서 작업하는 감성 충만한 예술가 같은 인상을 떠올렸는데 완전 딴판이다.
오히려 잘나가는 회사원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점쟁이 같은 이미지와는 더더욱 안 어울린다고 할까.
잘생기긴 했는데 묘하게 티벳 여우가 떠오르는 이목구비였다.
그가 말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죠? 갑자기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해서.”
“네, 조금.”
“사실 저도 이런 일은 오랜만이에요. 누군가를 보고 딱 이 사람이다, 하는 일이 드문 편이거든요.”
“영광이네요.”
내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 기대에 부응할 만한 실력이 돼야 할 텐데.”
“부담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요. 지금 이 자리는 실력이 아니라 잠재력을 보는 자리니까.”
부드럽게 웃던 조규환 이사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선물을 까먹고 있었네요.”
“선물이요?”
“왠지 마주칠 것 같아서 선우주 씨 것도 준비했거든요.”
그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내밀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그럼 먼저 들어갈 테니까, 천천히 들어오세요. 지하 1층에 있는 연습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저희가 내려갈 겁니다.”
길쭉한 다리를 자랑하듯 조 이사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고는 어정쩡하게 웃었다.
커피는 술과 함께 내가 못 마시는 음료였다.
카페인이 많이 들어가면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려서 말이지.
하지만 종이컵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안에 들은 내용물을 보고 당황했다.
……어라?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연기는 코코아 향기였다.
핫 코코아.
내가 자주 마시는 음료였다.
얻어걸린 거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석환 형이 말했던 점쟁이 별명이 떠오르자 기분이 묘했다.
뭔가 구미호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한 느낌.
뭐. 그냥 우연이겠지.
코코아를 호로록 들이마시면서 지하에 있는 연습실을 찾았다.
문이 열린 곳이 하나라서 찾는 것은 쉬웠다.
연습실에서 직원들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대강 둘러보니 견적이 나왔다.
연습실.
이곳에 어떤 설비가 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는 말처럼 연습실에는 회사의 씀씀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곳에 있는 건 모두 최신 장비였다.
이 정도 환경이면 상위 1퍼센트는 되려나.
연습생에 대한 지원이 꽤나 빵빵한 듯 보여서 내심 오디션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사람들까지 좋다면 완벽할 텐데.
그런 기대를 할 때쯤, 회사 임직원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명이 곧장 나에게로 걸어왔다.
“반가워요.”
대머리에 안경을 쓴 중년인이었는데,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인상 좋은 사람이었다.
말투에서 희미한 부산 사투리가 느껴진다.
“레몬 엔터의 대표 박규호라고 해요. 여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겠네. 군산에서 왔다면서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오늘 좋은 시간 가져 봅시다.”
박 대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윽고 자리에 앉자, 그가 심사위원석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조규환 이사.
윤석환 실장.
신인 개발팀 팀장.
보컬 트레이너.
댄스 트레이너.
나를 평가하는 듯한 시선에 잠시 긴장되긴 했지만, 이내 심호흡을 하며 표정을 풀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첫 번째 관문은 카메라 테스트.
소위 말하는 카메라 빨이 받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아무리 미남, 미녀여도 TV에 나오는 모습과 실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카메라 테스트는 그걸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런저런 표정이나 자세를 취하다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초등학생 때였나.
TJ 오디션 3차에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었는데 결과가 어땠더라?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어유, 훌륭하네.”
박 대표가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실물도 좋은데 카메라에서도 보기 좋네. 하기사 오디션 빡세기로 유명한 TJ에서 있었으면 당연하지.”
그 말에 심사위원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예상대로 카메라 테스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합격이었다.
심사위원들의 만족한 표정이 그걸 증명했다.
특히 신인 개발팀장님은 내가 1등급 한우라도 되는 양 입맛을 다셨다.
비주얼과 더불어 나만이 지닌 특이 사항 때문인 듯했다.
“특이 사항에 육군 병장 만기 제대가 있네요?”
“네, 성인이 되자마자 곧바로 입대를 해서요. 전역은 수능 보기 얼마 전에 했습니다.”
“그럼 병역이 문제가 안 되겠네?”
군대 때문에 활동이 끊길 일이 없다는 말에 모든 심사위원이 만족했다.
나는 웃으면서 적당히 호응했다.
회사에서 점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임 받는 조규환 이사의 캐스팅이라 그런지 사실상 내정자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언제나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내 얼굴이나 노래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지던 이들도 춤을 추면 안색이 달라지곤 했으니까.
그런 트라우마가 떠오르자 입이 바싹 말라왔다.
이번엔 잘 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 * *
잠시 쉬는 시간.
다시 카메라가 설치되고 심사위원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지원자를 보았다.
선우주.
올해로 21세.
특이사항은 TJ 엔터 연습생 6년과 육군 병장 만기 전역.
그리고… 잘생겼다.
박규호 대표가 실제로 메모지에 적은 단어였다.
길거리를 걸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고, 비 오는 날 문밖에 서 있으면 점원이 자기 카드로 음식이나 우산을 사 줄 것처럼 생겼다.
트렌디한 잘생김보다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흥할 만한 외모.
묘하게 앳된 느낌의 얼굴이기도 했다.
춤을 못 추는데도 TJ에서 6년 동안 버텼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한편, 왜 굳이 아이돌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비주얼이었다.
“그럼 준비한 노래를 들어 볼까요?”
“네.”
“무슨 노래를 부를 거예요?”
“장소원의 Red Moon 부르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머릿속으로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선곡 잘했네.’
6년차 연습생다운 관록이 보이는 선곡이었다.
오디션에서는 지르는 후렴이나 고음이 많은 곡을 택한다고 합격 확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매일같이 현직 가수를 보는 게 엔터 관계자들이다.
오디션에서 묘기라도 펼친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들을 매일 보는 이들이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에게서 충격을 받거나 감탄할 일은 없다.
‘레드 문이면 음역대가 다양하지.’
Red Moon은 지금은 해체된 걸그룹 슈가피쉬의 멤버 장소원이 낸 솔로곡이다.
강렬한 후렴구는 없지만 음역대가 다채롭고 변화가 많은 곡.
전반적인 보컬 수준을 점검하기 좋은, 그야말로 오디션에 적절한 곡이었다.
여자 키인 것이 흠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
선우주의 스마트폰과 연결된 스피커에서 남자 키로 어레인지된 전주가 흘러나왔다.
오디션을 위해 일부러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센스 있네.’
선우주가 차분하게 입술을 뗐다.
어서 사라져 주길 바래
왜 그러냐곤 묻지 마
상처받은 마음은 이미
Six feet under
첫 소절을 들으면서 박 대표는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재능이 있어.’
객관적으로 잘하는 실력이다.
2년 동안 연습을 쉬었을 텐데도 어지간한 연습생보다 낫다.
군대에서 노래방 관리병이라도 했나?
‘3개월 정도만 빡세게 트레이닝시키면 원래 실력이 나오겠네.’
일단 호흡과 발성은 완벽.
기본기가 완벽할 정도로 탄탄한 창법이었다.
단점이라면 기교가 하나도 없는 것이지만 어차피 개인 파트가 30초도 안 되는 아이돌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시선 처리와 표정도 안정적이고. 사람의 시선을 끄는 뭔가 있어. 하긴, 이러니 춤을 못 춰도 대형 기획사에서 안 놔준 거겠지.’
남이 버린 원석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뿌듯한 한편 불안해졌다.
TNT에서도 메인보컬 내정자였다고 하던데.
아이돌 업계에서 정말 구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메인보컬 포지션이었다.
배우급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지고도 데뷔조에서 탈락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춤을 못 췄던 걸까?
문득 오디션 전에 윤 실장이 했던 경고가 생각났다.
-춤은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예요.
이제 노래가 끝나고 프리스타일 댄스를 선보일 차례였다.
박규호 대표는 윤석환 쪽을 바라보았다.
다가올 참사를 예감한 듯 질끈 눈을 감은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못 하길래…….’
괜히 보는 사람이 초조해진다.
박 대표는 생수를 벌컥 마시고는 다가올 댄스 퍼포먼스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 이사가 자신이 선곡한 노래를 스피커로 재생했다.
가사가 없는 일렉트로닉 음악.
‘……어?’
선우주가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박 대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