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화 (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화

‘잘 추잖아?’

일렉트로닉 음악의 비트에 딱딱 맞춰서 몸을 이리저리 꺾어가며 춤을 추고 있는 선우주.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이었다.

엄청난 실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몇 개월만 투자하면 어지간한 메인댄서급이 될 잠재력이 보였다.

‘유연성이 조금 아쉽긴 하네.’

2년 동안 연습을 쉰 만큼 유연성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부드러워야 할 몇몇 동작이 거칠게 나오긴 했다.

그러나 유연성은 스트레칭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기에 박규호 대표는 댄스에도 합격점을 줬다.

과연 6년차 연습생다운 실력이었다.

‘이렇게 잘하는데 윤 실장은 왜 유난을 떨었던 거야?’

의아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박규호 대표는 가장자리에 앉은 윤석환 실장을 바라보았다.

눈을 휘둥그레 뜬 얼굴.

마치 귀신이라도 마주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돼.’

윤석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선우주가 누구인가.

TJ 엔터의 트레이너 사이에서 통나무, 로봇으로 통하던 아이였다.

노래를 잘하는데도 춤 실력 때문에 탈락한 비운의 연습생.

‘이걸 감격해야 되는 거야, 말아야 되는 거야?’

동생처럼 아끼던 녀석이 춤을 잘 추는 모습을 보니 기쁘긴 기쁜데, 솔직히 얼떨떨하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이었으니까.

운동 신경이 없어서 매일 밤을 새고도 월말 평가에서 춤에 낙제점을 받고 울적해 하던 사람이 선우주였다.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흐뭇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잘 커 버린 자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

‘2년 동안 이렇게 춤이 늘었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지.’

3주 동안 괜히 가슴 졸였던 게 허탈했다.

이윽고 종료된 프리스타일.

연습실 가운데서 숨을 헐떡이며 땀을 닦아 내던 선우주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하여간 얄미운 녀석.

윤석환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합격이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쳐다보는 심사위원들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오디션은 합격이라는 것을.

선우주의 춤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도 있다니, 세상에 참 별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며 윤석환은 웃었다.

*   *   *

오디션이 끝나고, 나는 레몬 엔터와 계약을 맺었다.

일단 3개월.

중간에 한쪽이 원하면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과 함께 문제가 없을 시 자동으로 연장한다는 계약이었다.

박규호 대표는 데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년 6월이요?”

데뷔 예정 시기는 2014년 6월.

며칠 뒤면 12월이니 남은 시간은 반년 정도였다.

“투자자들 성화가 말도 못해. 연습생들 방출되고 2년이나 지났으니까 이젠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거지.”

“저는 좋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일정이 조금 빠듯할 텐데.”

“괜찮아. 안 되겠으면 투자자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사정하지, 뭐.”

박 대표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만 해 줘. 알았지?”

“네. 그럴게요.”

“첫날이니 레슨은 내일부터 시작하고. 오늘은 애들이랑 인사 나눌래?”

“지금 바로요?”

“어차피 얼굴 볼 사이일 텐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나?”

“네, 좋아요.”

나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어차피 얼굴 보고 지내야 할 사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박규호 대표의 말은 옳았다.

지하 연습실.

박 대표가 먼저 들어간 뒤에 나는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들어오라는 손짓에 안으로 들어서자 호기심 어린 시선이 따라붙었다.

네 명의 연습생을 본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모두 비주얼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키가 크고 선이 굵은 미남과 미소년 분위기의 두 연습생.

그리고 아직 앳되지만 딱 보는 순간 ‘얘는 배우다’ 싶은 비주얼의 연습생이 있었다.

허공에서 서로를 관찰하는 시선이 얽혀 들었다.

“인사들 해.”

박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랑 같이 연습하게 될 친구야.”

대표님의 말에 서로에게 어정쩡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같은 말 따위가 오가는 동안, 대표님이 연습생들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막 이름을 말해 주시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차분하게 생긴 연습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대표님, 저 질문 있어요.”

“어, 그래. 비주.”

“저희랑 같이 연습하게 될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분이 그 사람인 거죠? 일전에 조규환 이사님이 뽑아 오겠다고 한 멤버…….”

“맞아.”

“정말 조 이사님이 데려온 거예요?”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습생들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밀물처럼 퍼져 나갔다.

나를 바라보는 눈이 뭐라고 할까.

그동안 애태우며 기다렸던 택배를 수령한 사람들 같은 표정이었다.

키가 큰 연습생이 물었다.

“저희 그럼 데뷔해요?”

“일정도 어느 정도 잡혔어. A&R이랑 매니지먼트 팀이 회의 중이긴 한데, 내년 6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야.”

“우와-!”

막내로 보이는 멤버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형들! 저희 데뷔한대여!’ 하더니 자기들끼리 얼싸안고 으쌰으쌰 한다.

그 모습에 대표님이 미소를 지었다.

뭔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축제 분위기인 연습생들을 보며 웃었다.

이 친구들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데뷔 엎어지고 2년이나 대기 탔으면 그럴만하지.

연습생에게 데뷔는 단순히 방송에 나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끝없는 터널에 나타난 한 줄기 빛.

설렐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바깥세상은 위험하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기분이 붕붕 뜬다.

터널 속을 달리는 사람들에게 데뷔란 그런 것이다.

기나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괜히 웃음이 나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안아 주고 싶은 기분.

나는 그들에게 공감했다.

“얘들아, 그만 진정하고.”

대표님이 웃으며 카드를 꺼내 들자, 자기들끼리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던 연습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마치 엑스칼리버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연습실 레일 등의 불빛에 대표님의 머리와 법인카드가 반짝거렸다.

“오늘은 새로 연습생도 왔으니까 환영회도 할 겸 요 앞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

왁자지껄한 환호가 이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첫 만남치고는 좋은 분위기였다.

*   *   *

식사를 하며 어색함을 푸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첫날.

본격적인 레슨은 이틀 차인 오늘부터 시작이었다.

연습실에 도착하고 불을 켰다.

오전 7시.

레슨은 9시부터 시작이지만 일부러 2시간 일찍 도착했다.

부족한 연습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많이 모자란 현 상태.

2년 동안 연습을 쉬었던 만큼 갈 길이 멀었다.

다리 찢기를 하는 등 몸을 가볍게 풀고는 AUX 케이블로 스마트폰을 스피커에 연결했다.

-Cold Brown : See You

최근 빌보드 차트에서 흥행하고 있는 곡이다.

R&B 장르에 댄스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노래.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본 미튜브 동영상이 이 곡의 퍼포먼스였다.

이윽고 예전에는 죽어도 안 됐던 동작이 내 몸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웨이브.

여러 단계로 구분되는 동작이 합쳐져 하나의 출렁거림이 되고 그 출렁거림이 팔에서 다른 팔로 전달된다.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작을 모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직감적으로 안다고나 할까.

신기하게도 이 능력은 노래에도 적용이 가능했다.

근육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모방할 수 있는 능력.

아마 성대도 근육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사실 오디션을 보기 이전에 본래 기량의 60퍼센트를 회복한 것도 이 덕이었다. 이런 속도면 앞으로 한 달 안에 최소한의 데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달칵-

춤으로 적당히 땀을 빼고, 한창 다리 찢기 3종 세트를 하며 끙끙대고 있을 때, 첫 번째 연습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얀 피부에 단정한 이목구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온순한 사슴이 떠오르는 인상이다.

김비주라고 했지. 아마.

피곤함을 이겨 내려는 듯 연신 하품을 하던 김비주가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찍 오셨네요, 형.”

“안녕.”

“첫날이라고 일찍 나온 거예요?”

“응, 첫날부터 지각하면 좀 그렇잖아.”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제 같이 식사를 하면서 관찰한 결과, 유순하게 생긴 이 연습생은 굉장히 차분한 성격이었다.

김비주는 내 옆자리에 곧장 앉아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다리가 학처럼 쭉쭉 찢어지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엄청 유연하네.

얘 포지션이 메인댄서라고 했나?

그룹에서 춤을 가장 잘 추는 멤버답게 동작 하나하나가 어딘지 모르게 부드럽고 우아하다.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친 김비주가 웃었다.

“왜 그러세요?”

“엄청 유연한 것 같아서.”

“춤을 초등학생 때부터 춰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춤은 좀 늘었는데 키가 안 크는 것 같아요.”

‘슬프죠 ㅠㅠ’ 하는 표정을 짓는 김비주에게 내가 웃어 보였다.

“걱정 마. 거기서 더 크겠지.”

“저 다다음달에 스무 살 돼요, 형.”

“어? 너네 다 고등학생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저랑 중현이, 그니까 그 키 큰 애랑은 내년에 졸업해요. 막내는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고요.”

키 큰 애라면, 살짝 거친 느낌의 멤버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소년스러운 외모 때문에 열일곱 정도로 오해했는데 생각보다 동안이다.

스트레칭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무래도 고작 한 번 본 사이다 보니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약간 ‘우와, 님 잘생겼네요, ㅎㅎ.’, ‘아니에요, ㅎㅎ. 님이 더 잘생김’ 같은 류의 대화라고 할까.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쯤.

안 되는 다리 찢기를 하며 끙끙거리는 나를 보면서 김비주가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우주 형.”

“……으흐응?”

“그 TJ엔터에 있었을 때요. 데뷔조로 뽑혔다가 춤 때문에 탈락했다고 했잖아요, 어제.”

“그랬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긴 한데요. 이번에는, 저희랑 꼭 같이 데뷔했으면 좋겠어요.”

“응?”

나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리야?”

“대표님이 내년 6월에 데뷔한다고 그랬잖아요. 이제 반년 정도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준비하려면 진짜 빡셀 거거든요. 춤이 안 돼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요, 알았죠?”

“그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모르잖아요. 중간에 하다가 힘들어지면 꼭 저한테 말해 주세요.”

김비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힘이 들어서 못 하겠다 싶으면 제가 밥도 사 줄 수 있고요. 어… 고민 상담 같은 것도 해 드릴 테니까요. 걱정 말고 언제든 말해 주세요. 춤이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도와줄 수 있어요.”

“고마워. 꼭 기억할게.”

하도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뭔가 했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얘는 그러니까 지금 겁이 나는 거다.

이전의 두 차례, 데뷔 직전에 멤버들이 나가 버려서 데뷔가 무산된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거다.

앞선 상황에서처럼 내가 나가 버릴까 봐 겁을 내고 있었다.

게다가 어제 춤 때문에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니, 자기 입장에서는 마음이 다급한 것이다.

데뷔를 하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내가 나가 버리면 곤란하니까.

어제 얘기를 잘못했나.

지금까지의 내 연습생 이력을 짧게 요약해서 말해 줬는데 아무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게 말한 모양이다.

얘한테 뭐라고 말해 주지.

초능력이 생겼으니 더 이상 춤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줄 수도 없고.

“…….”

뭔가 말하고 보니 민망했는지 김비주가 머쓱해하는 얼굴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달칵-

말없이 비주와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또 다른 연습생이 등장했다.

떡볶이 코트에 비니.

김비주와 마찬가지로 미소년 과의 외모였지만 느낌은 다르다.

김비주가 따뜻한 봄이면 저쪽은 쌀쌀한 겨울이었는데, 차분하고 단정한 김비주와는 달리 거만한 왕자 같은 인상이었다.

굉장히 쌀쌀맞은 느낌.

서리혁이었나. 얘는 확실히 기억나네.

워낙 인상이 세서 어제 식사를 할 때도 기억이 남았던 얼굴이었다.

내년에 열여덟이 된다나.

이어폰을 끼고 들어온 급식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고개를 까딱거리는 답례만 돌아왔다.

내가 눈을 깜빡이자 김비주가 속삭였다.

“원래 저래요.”

“시크하네.”

키는 김비주랑 비슷한 170 초반이지만 비율이 좋다.

날렵한 몸매와 지적인 얼굴.

벽에 기대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던 녀석은 내 시선에 잠깐 고개를 돌리고는 이내 무시했다.

까칠하구먼.

서리혁과 대화를 하게 된 건 내가 목을 축이려고 정수기가 있는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저기요.”

고개를 돌리니 날카로운 눈매가 보인다.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내 이름은 저기가 아니고 선우주인데.”

“아.”

“어색해서 이름을 부르기 힘들면 저기요, 도 괜찮아.”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게.

경험상 이렇게 성격이 있어 보이는 이들에게는 말투는 부드럽게, 내용은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먹히니까.

“선우주 형, 이라고 했죠?”

형 소리가 굉장히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있어요?”

“무슨 말?”

“어제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말이 있어서요.”

종이컵을 후후 불어 펼치고는 물을 따르면서 나는 상대를 향해서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카만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어제 그쪽, 아니 형이 춤 때문에 연습생을 포기했다고 했잖아요.”

“…….”

너희 무슨 의좋은 형제냐.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