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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화 (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화

“미안한데 내가 머리가 나빠서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적당한 단어를 찾느라 고민하는지 서리혁의 대답이 늦어졌다

“포기하지 말란 뜻이죠.”

“아, 그래?”

“만약에 중간에 포기해 버리거나 갑자기 나갈 거라면, 그냥 지금이라도 나가달라는 거예요. 모두를 위해서.”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2년 전에 연습생 둘이 나가 버리고 데뷔가 무산된 일의 내막이 어땠길래 한 명은 조마조마해하고, 또 다른 한 명은 경계심이 가득하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어제 춤 때문에 포기했다고 말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 걸까.

엄청 방어적이네.

모두를 위해서, 라고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연습생끼리 우애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서리혁이 연습실 창문 너머 김비주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형은 아직 모르겠지만, 비주 형 하루에 13시간 넘게 연습실에 박혀서 살아요. 다른 멤버들도 비슷하고요.”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데뷔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번에도 틀어지면 정말 무슨 일 날지 몰라요.”

“그러니까 포기할 거면 지금 포기해라?”

“네.”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지금 포기할게.”

서리혁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뭐라고요?”

“중간에 포기할 거라면 포기하라며.”

태연자약하게 대꾸하며 ‘지금 짐을 챙겨야 되나’ 하고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서리혁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잖아. 안 그래?”

서리혁은 말문이 막힌 듯 대꾸를 못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기 싸움 경력이 얼마인데.

100명이 넘는 연습생들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 정도 상황은 우습지도 않았다.

물론 당사자는 형들이나 동생이 걱정돼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포기 안 하고 열심히 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지?”

“……네.”

“그래, 열심히 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서리혁도 얼떨결에 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

서리혁은 눈을 깜빡거리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린 것 같은데 어디서 말렸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표정이다.

그나저나. 애들끼리 우정이 대단하네.

두 명이나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자기들끼리 대단히 잘 챙기는 그런 분위기인 듯했다.

뭐. 아직은 내가 외부인처럼 느껴질 테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대놓고 ‘앞으로 우리한테 피해 주지 마’ 라는 말을 들으니 살짝 기운이 빠지긴 한다.

그런데 어쩌겠나.

아직 신뢰를 쌓을 만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게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데뷔에만 집중하면 해결될 일이기도 하고.

나는 서리혁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연습실로 돌아갔다.

“리혁이랑 무슨 얘기 나눴어요?”

“응?”

“형 표정이 조금 진지해 보여서요.”

“그냥 별 얘기 아냐.”

표정이 잠깐 드러났는지, 나를 바라보던 김비주가 무슨 일이 있는지 알겠다는 듯 웃었다.

“리혁이가 대인 관계에 조금 서투르거든요. 가끔 말을 오해 사게 하는 편인데 형이 이해해 주세요.”

“아니야. 친절하고 착하던데, 뭐.”

뭐가 웃긴지 착하다는 내 말에 김비주가 웃었다.

다시 들어온 서리혁은 나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는 김비주 옆으로 붙어 자리를 잡았다.

경계심 어린 시선은 여전했다.

무슨 길냥이를 집에 데려온 느낌이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은 점점 레슨이 시작하는 9시 즈음이 됐다.

시작하기 10분 전.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이가 보였다.

“형들! 저 왔어여!”

갓 태어난 아기처럼 우렁찬 고함을 토하는 이는 연습생 중 막내였다.

왕지호.

말투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은 친구였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왕지호는 정석적인 미남과였다.

좀 더 크면 TV에 나오는 재벌 3세 배역에 꼭 맞는 마스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서리혁이나 김비주와 키가 비슷하긴 했는데, 뼈대가 있는 걸 보니 성장기가 다 끝나면 나와 맞먹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주 형도 좋은 아침이에여.”

“안녕.”

“참, 형 주려고 뭐 가져왔는데.”

값 비싸 보이는 캐나다 구스 패딩을 뒤적거리던 막내가 조심스럽게 뭔가를 꺼냈다.

“혹시 초콜릿 좋아해여?”

“고마워, 잘 먹을게.”

“연습하다가 당 떨어지면 안 되잖아여.”

어느 브랜드인지는 모르겠는데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해외산 초콜릿이었다.

“야, 왕지호.”

서리혁의 눈썹이 날카로워졌다.

“왜 비주 형이랑 나는 안 주냐.”

“아, 죄송해여.”

막내가 해맑게 웃었다.

“오늘 급하게 나오다가 형들 거 깜빡했거든여.”

그러곤 주머니에서 꺼낸 초콜릿을 맛있게 냠냠하면서 먹는다.

형들 건 없지만 내 건 있다는 건가.

얘도 캐릭터가 참 특이하구나 생각하며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그러곤 내 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리혁에게 물었다.

“줄까?”

“아뇨!”

다급한 대답에 듣고 있던 김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리혁아, 거절을 왜 그렇게 다급하게 해?”

“저 원래 그러잖아요. 형.”

“에이, 형이 언제부터 그랬어여?”

시치미를 뚝 떼는 이를 본 왕지호와 김비주가 놀리기 시작했다.

귀가 달아오르는 서리혁.

나한테 까칠하게 경고해서 센 캐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이 동네의 유명한 동네북 같은 느낌이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팀의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한 명 더 있지 않았어?”

“누구요? 아, 중현이요?”

시계를 바라보던 김비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얘 또 지각인가.”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요.”

“중현이 형 아마 곧 올 거예여, 우주 형.”

중현이라면 아마 어제 봤던 그 키가 크고 훤칠한 연습생을 말하는 거겠지.

비주랑 함께 내년에 졸업한다던.

말하는 걸 들어 보니 평소에도 자주 지각하는 모양이다.

오전 9시.

정각이 딱 됐을 때, 문이 달칵 열렸지만 들어온 사람은 다른 연습생이 아니라 댄스 트레이너였다.

“안녕하세요!”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는 우리에게 선생이 대강 인사를 받았다.

굉장히 피곤하고 까칠하게 생긴, 내 인생이 피곤해 죽겠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댄스 트레이너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다들 앉아. 올려다보기 귀찮으니까.”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연말 평가 때문에 죽상일 줄 알았더니. 어째 표정들이 밝아?”

“저희 데뷔한데여, 쌤.”

“어휴, 너희 같은 애들이 데뷔라니. 말세다. 세상이 말세야.”

“왜 그러세요, 쌤. 언제는 저희가 제일 잘한다면서요.”

김비주의 말에 트레이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때고. 너희 지금 이런 실력으로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면 진짜 큰일 난다. 알았냐?”

“누가 물어보면 꼭 주예형 쌤 제자라고 말할게여.”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난 멀뚱멀뚱할 뿐이다.

“그나저나 하나, 둘, 셋… 잠깐만 김중현이는 어디 있어?”

그때, 멀리서 소떼가 다가오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어디서 들었더라.

라이온 킹에서 심바 아빠가 죽을 때였나.

달칵-

문을 거의 부수듯이 열고 들어온 연습생은 숨을 몰아쉬면서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주예형이 고개를 저었다.

“난리 났네. 난리 나셨어, 김중현 씨.”

“죄송합니다!”

“오늘은 지각 사유가 뭐야, 또 늦잠이야?”

“아아악……!”

댄스 트레이너에게 옆구리를 꼬집히는 김중현이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었고 다른 멤버들은 예삿일이라는 듯 웃었다.

“죄송합니다. 햄스터 밥 주다가 늦었어요.”

“그래. 햄스터 중요하지.”

“네, 오늘따라 밥을 잘 안 먹어서 끝까지… 아아악!”

늠름하고 듬직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가지고 있었던 어떤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다.

곁에 앉은 김비주가 내 표정을 보고 웃었다.

지각 때문에 혼이 난 김중현은 연습실 구석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는 내 바로 뒤에 와서 앉았다.

여전히 헐떡이는 숨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안녕하세요.”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건넨 인사에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김중현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댄스 트레이너는 뭔가 할 말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뉴 페이스, 손 들어 봐.”

내가 손을 들었다.

“다들 인사는 나눴지?”

“네.”

“그럼 소개할 필요는 없겠네.”

고개를 끄덕이던 주예형이 나를 관찰하듯이 면밀히 바라본다.

“다시 봐도 참 잘생겼네.”

“아,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해? 난 세상에서 잘생긴 인간이 제일 싫어.”

순간 벙 쪄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키득거렸다.

그냥 원래 이런 캐릭터인 모양이다.

잠시 농담거리를 주고받던 주예형이 레슨 진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쯤, 막내가 손을 들었다.

“지호, 또 왜.”

“쌤, 저희 그거 안 해여? 연습생 새로 들어온 김에 신고식이여.”

막내의 말에 어깨를 툭 치면서 눈치를 주는 서리혁의 모습이 보인다. 대강 ‘저 사람 춤 못 춰서 그만뒀대잖아.’하는 분위기였다.

“뭔 신고식이야, 또.”

2000년대 예능도 아니고, 하면서 투덜거리던 주예형은 마침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 마침 잘 됐네. 나와서 춤 좀 보여 줘라, 뉴 페이스.”

“예?”

“너 춤 좀 추잖아. 간만에 애들 자극도 될 겸 보여 줘 봐.”

트레이너의 말에 연습생들은 의아한 기색이었다.

분명 내가 춤을 못 춰서 그만뒀다고 들었는데, 댄스 트레이너는 ‘얘 춤 잘 춘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서로 간에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생긴 가운데 일어서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뭔가 민망하네.’

댄스 트레이너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니네도 잘 봐. 춤선이 어떤지, 동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대형 기획사에서 온 애라 그런지 2년 동안 쉬어도 잘한다니까.”

졸지에 대형 기획사의 대표가 된 것 같아 부담스럽다.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중하는 시선을 느끼며 스마트폰을 스피커에 연결했다.

보여 줄 곡은 오늘 아침에 연습한 Cold Brown의 See You였다.

*   *   *

김비주는 의아했다.

‘춤을 잘 춘다고?’

어제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선우주는 간략하게 자신의 연습생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결국에 춤이 잘 안 돼서 포기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려가 되긴 했다.

보컬은 대강 AR의 도움으로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모자라도 되지만 댄스는 육안으로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조규환 이사의 안목을 믿기로 했다.

‘조 이사님이 뽑았다면 이유가 있겠지.’

레몬 엔터에 소속된 이들에게 조규환은 충무로의 흥행 보증 수표와 같은 인물이었다.

손에 대는 것마다 성공시키는 마이더스의 손.

연습생들은 천재 작곡가의 눈을 믿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6년 동안 했는데도 춤이 잘 안 늘어서 그만뒀다는 것도 문제인데, 2년 동안 연습을 쉰 연습생을 반년 만에 데뷔 수준까지 끌어올려서 데려가야 한다니.

앞길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때, 연습생들 앞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어?”

막내 왕지호가 입 모양으로 ‘오’를 만들었다.

깔끔한 춤 선이었다.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춤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김비주가 입가에 손을 올렸다.

‘2년 동안 쉰 사람한테서 나올 수 있는 동작이 아닌데.’

마치 유명 댄서가 눈앞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R&B 비트에 어울려서 선우주의 몸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는 모두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막내가 서리혁에게 속삭였다.

“와, 형보다 더 잘 추는 것 같지 않아여?”

“조용히 해, 왕지호.”

“사실을 사실대로-”

손날로 목젖을 탁! 치자 막내가 켁켁거린다.

입 모양을 비죽이던 서리혁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조용한 두 형.

가타부타 말이 없는 이들에게 서리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아니라고 안 해 줘요?”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두 형.

메인보컬의 마음속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이윽고 춤이 끝나자,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몸을 움직이던 선우주가 멈추고는 미소를 지었다.

한편 박수를 치는 연습생들의 미소는 어색했다.

‘사기당했어.’

김비주는 아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몸을 비틀었다.

폐지 줍던 할아버지에게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건네줬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 회장이었다, 같은 시나리오라고 할까.

허탈한 기분.

다른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했다.

고민거리를 하나 덜어 낸 셈이었으니까.

“자자, 구경은 끝내고 이제 레슨 들어가자.”

손뼉을 친 주예형이 레슨을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레슨이었다.

하지만 연습생들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뭐야.’

트레이너가 무슨 동작을 보여 줄 때마다 그걸 고스란히 흡수하는 선우주.

그것도 한 번만에.

인간 복사기 수준으로 안무를 카피하는 그를 보던 연습생들은 처음에는 신기해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괴물을 보는 것처럼 경악스러워했다.

레슨이 끝났을 때, 서리혁은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느낌에 물었다.

“저기, 혹시 노래도 잘해요?”

“아니.”

웃으면서 ‘아마도?’하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설마 노래도 잘하겠어.’

하지만 메인보컬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   *   *

오후 5시. 보컬 레슨 시간.

보컬 트레이너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연습생들은 한곳을 바라보았다.

차분하게 발라드 곡을 부르고 있는 선우주.

“표정 연기 쩐다. 윤찬혁 선배님 같지 않아여?”

“중현이보다 잘 부르네.”

“야, 김비주. 난 래퍼잖아. 김밥집 가서 우동 찾으면 나오냐?”

“나와요.”

“오, 진짜? 이따 가서 사 먹자.”

이게 대체 무슨 대화일까.

어이가 없어서 웃은 김비주는 레슨실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는 선우주를 일별하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이제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2년 동안 쉬었는데 이 정도면 원래는 얼마나 잘했다는 거야?’

본의 아니게 오해가 깊어지는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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