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화 (1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화

아침 8시 반.

다 모인 연습생들 앞에서 나는 편곡 완료를 선언했다.

“뭐라고요?”

서리혁은 자기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걸 하룻밤에 다 해요?”

“잘.”

“…….”

“농담이고. 하다 보니까 되더라.”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던 녀석이 물었다.

“제대로 한 거 맞아요?”

“그거야 들어 보면 알져.”

막내가 히죽 웃으며 끼어들었다.

“엉망으로 한 거면 무효예여. 간식 쏴야 됨.”

“야, 넌 이 판국에 간식이 중요하냐?”

“왜여, 형.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당연히 먹는 게 중요하져.”

막내와 메인보컬이 투닥거리는 동안 김중현과 김비주, 고3 라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강 ‘벌써 끝냈다고?’, ‘몰라, 일단 들어 보자.’ 같은 류의 대화 같다.

나는 이사님에게 받은 USB를 들고 그대로 스피커에 연결했다.

좀 불안하네.

이사님이 컴퓨터 작업을 해 놨다고 말은 했지만 그걸 내가 실제로 들어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호언장담했는데 갑자기 빵상 깨랑까랑 이런 거 나오면 어쩌지.

“자, 이제 틀게.”

다들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하루 만에 얼렁뚱땅으로 한 편곡의 퀄리티가 높아야 얼마나 높을까, 하는 것 같다고 할까.

하지만 반주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깔끔한 도입부에 김중현이 입 모양으로 ‘오’를 그렸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비주도 고개를 끄덕인다.

막내는 초콜릿을 씹는 것도 멈추고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었다.

서리혁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높은 퀄리티에 놀랐다가 이내 만족하는 눈치였다.

초반 30초는 평가의 시간.

하지만 30초가 지나고 나자 연습생들은 본격적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곡.

1절이 끝나고 곧바로 2절로 넘어가는 것이 그 중간을 연결하는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

다소 생소한 구간에 멤버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가 중현이가 랩을 할 구간이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특히 래퍼인 중현이는 대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사 쓰기 좋은 멜로디라면서.

이윽고 랩 파트가 끝나고 2절이 시작되었다. 1절에서와는 다른 음악으로 구성되는 2절.

다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귀를 기울이는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부에 모두 감탄하는 눈치였다.

“어땠어?”

노래가 끝난 후 내가 감상을 물었다.

“대단한데요? 처음에는 하루 만에 하겠다고 해서 조금 반신반의했는데, 이 정도로 퀄리티가 좋을 줄은 몰랐어요.”

“랩 파트 마음에 들어요. 착착 감기네.”

“간식은 아쉽지만 저도 좋아염.”

빈말이 아니라 다들 대만족한 눈치.

다행이었다.

사실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자신이 없긴 했다.

편곡도 2년 만에 해 보는 것이기도 하고 밤을 새서 급하게 만든 거라 반응이 나쁘면 어쩌지 하는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다.

“뭐…….”

서리혁이 마지막으로 입술을 열었다.

“내기는 형이 이긴 걸로 하세요.”

“그래.”

“퀄리티가 좋아서 승복하는 거예요.”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리혁이에게 난 미소를 보였다.

이제 원하는 목표는 얻었다.

나이나 연습생 경력을 내세우지 않고, 편곡 능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멤버들에게 신뢰를 얻어 냈다.

“약속대로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내가 전권을 가질게.”

나는 미리 계획했던 것을 떠올렸다.

“일단 역할 분담부터 하자.”

*   *   *

안무 작성은 메인댄서 김비주가.

보컬 디렉팅은 메인보컬 서리혁이.

랩은 당연히 유일한 래퍼인 김중현이 맡았다.

“그럼 저는여?”

“어… 글쎄.”

눈을 똘망똘망 뜨고 있는 막내를 보며 일순간 고민에 빠졌다.

쓸모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자라나는 새싹에게 나쁜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좋은 구실을 떠올렸다.

“넌 보급을 담당하자.”

“예? 보급이 뭐예여?”

“사람들 당 안 떨어지게 간식 담당하는 거.”

“아, 그건 자신 있어여.”

맡겨만 달라는 듯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우주 형.”

김비주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스프링 노트였다.

연습 노트라고 적힌 그것을 촤라락 펼치던 김비주는 빼곡하게 쓴 글씨들을 지나 중간을 펼쳤다.

“이게 뭐야?”

“어제 형이 말한 계획을 듣고 안무를 대강 얼개만 짜봤거든요. 혹시 파트 분배 아직 안 했으면 이건 어때요?”

“그래? 한번 보자.”

몇 페이지에 걸쳐서 졸라맨 그림들이 동선을 바꿔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조잡한 그림이었지만 뭘 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전달됐다.

그걸 보면서 나는 새삼스런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이걸 하룻밤 만에 만든 거야?”

“네.”

“너도 대단하구나.”

진심 어린 칭찬이었다.

TJ 엔터에 있을 때, 조별 월말 평가를 진행하면서 안무를 짠 적이 있기에 안무를 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그걸 하룻밤 만에 해 오다니.

게다가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에 감탄이 나왔다.

어쩐지 얘도 다크 서클이 깔렸더라니.

다른 연습생들과 달리 왜 혼자 눈가에 그늘이 깔려 있나 했더니 혼자 집에 가서 이걸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이걸로…….”

말을 이어 가려던 나는 잠시 멈췄다.

어?

김비주가 만든 안무 분배를 보고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모르고 있었다.

“잠깐만, 내가 어제 파트 분배 나눈 거 있거든.”

파트 분배.

그룹 퍼포먼스를 하려면 일단 노래에서 어떤 부분을 누가 부를 것인지 나누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걸 해야 안무도 짜는 것이다.

핸드폰에 저장한 파트 분배 개요를 꺼내 들어 김비주의 안무 분배와 대조하던 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왜 그래여?”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막내가 끼어들었다.

“이거 봐 봐.”

내가 핸드폰을 넘기자, 네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본다.

나와 마찬가지로 김비주의 안무 분배와 내가 만든 파트 분배를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눈을 깜빡거린다.

“뭐야. 왜 똑같지?”

김비주가 만든 안무 분배와 내가 나눈 파트 분배가 90퍼센트 가까이 일치했다.

현실적으로 있기 힘든 일이었다.

서로 텔레파시라도 나눴으면 모를까.

침대 위에서 혼자 안무를 나눴을 김비주와 연습실에서 편곡을 하던 내 생각의 주파수가 맞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

그 순간, 우리 모두 묘한 확신에 휩싸였다.

마치 대박이 나기 전의 징조 같다고 할까.

모든 것이 착착 아귀가 맞게 떨어지는 기분에 모두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갈까?”

내 물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도 되지 않아 파트 분배와 안무 분배, 그리고 역할 분담이 나눠지는 순간이었다.

그 말인즉 기본적인 틀은 완성됐다는 이야기였다.

“참, 우리 팀명은 뭐로 할 거예요?”

“팀명?”

내 물음에 김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소속사 별로 나오는 거라 팀명 만들고 나가거든요. 이번에는 멤버도 추가됐으니 바꿔서 하려고요.”

“전에는 뭐였는데?”

“레몬 보이즈요.”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까.

“좀 이상하죠?”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한데. 누가 지은 거야?”

“대표님이요.”

“다시 들어 보니 괜찮은 이름인걸.”

내 태세전환에 연습생들이 키득거렸다.

비록 임시로 쓰는 거라고 해도 팀명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데블스, 옐로 그린, 파이브 스타 등 온갖 아무 말 대잔치가 튀어나왔지만 그중에서 착 감기는 이름은 없었다.

야식 고르기 같다고 해야 하나.

야심한 밤에 내 입맛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딱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대강 정하자. 어차피 임시로 쓰는 거라며.”

“그럼 파이브 스타 어때요?”

“그건 말고, 중현아.”

아까부터 파이브 스타를 고집하는 김중현에게 내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빛으로 호소하던 녀석은 이내 멤버들의 매몰찬 거절에 축 늘어졌다.

서리혁이 내뱉은 말이 결정타였다.

“파이브 스타로 하세요.”

“진짜?”

“난 탈퇴하면 되니까.”

“…….”

분명 편곡도 하고, 파트도 나누고, 안무도 나눴는데 이름 고르는 것 하나가 이렇게 까다로울 줄이야.

한참을 고민하던 때, 막내가 뭔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우주 형.”

“응?”

“형, 그 맨투맨 어디서 산 거예여?”

“이거 K마트.”

내가 웃으며 물었다.

“왜 마음에 들어?”

“아녀, 저는 비싼 거 아니면 몸에 안 받아서.”

시큰둥하게 말하던 왕지호가 내 맨투맨을 가리켰다.

“형 맨투맨에 글씨 써져 있잖아여.”

“이거?”

“네, 저거 뭐라고 읽더라. 중현이 형, 읽어 주세여.”

“Chicken is the new black.”

김중현의 유창한 영어 발음을 들으며 나는 내 맨투맨에 써 있는 글씨를 바라보았다.

왕지호가 말했다.

“거기 써져 있는 거 어때여? 뉴블랙.”

“뉴블랙?”

“어때여?”

이름 하나가 나올 때마다 계속 태클이 나왔는데 의외로 이번에는 아무런 반발도 없었다.

무난했기 때문이다.

혹시 영어로 이상한 뜻은 아닐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까지 했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는 듯했다.

‘The New Black.’

영어로 새로운 유행을 뜻할 때 쓰는 표현이라나.

“그럼 뉴블랙으로 하는데 동의하는 사람?”

내 물음에 모두 손을 들었다.

그것으로 우리의 임시 팀명 ‘뉴블랙’이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뿐이었다.

*   *   *

2013년 12월.

모두가 한 해를 바쁘게 마무리하는 동안, 우리 역시 정신없이 연말 평가 준비에 몰두했다.

다행스럽게도 팀 뉴블랙의 멤버 모두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자, 안무부터 확인할게요.”

김비주는 며칠 만에 우리가 감탄할 만한 안무를 만들어 냈다.

전문가가 보기엔 미흡할지 몰라도 우리 취향에는 쏙 맞는 안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 때문에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지옥문이 열린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죽어 나갔다.

특히나 댄스 구멍 서리혁의 안색은 나날이 창백해져 갔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어다녔다.

“보컬 톤이 안 들리잖아요, 비주 형. 평소대로 하라니까요. 지금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있잖아요.”

“미안. 시작에 호흡을 잘못했나 봐.”

“다시 정박에 갈게요.”

어지간한 호랑이 선생님보다 무서운 디렉팅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할라 치면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드는 까닭에 우리의 실력은 강제로 일취월장했다.

“형, 랩 좀 들어 볼래요?”

래퍼인 김중현 역시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사 자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운율이 느껴질뿐더러, 가사를 뱉어 내는 플로우가 리듬감과 라임을 살렸다.

그렇게 랩이 끝나자 막내가 구급 요원처럼 다가와 김중현의 손에 초콜릿을 쥐여 줬다.

볼 때마다 귀여운 장면이었다.

이러하듯 우리는 각자 맡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2월 28일.

다가올 결전의 날을 위해서.

*   *   *

연말 평가를 하루 앞둔 12월 27일.

오랜만에 목소리도 들을 겸,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들리더니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우주냐!

“응, 할머니. 나예요.”

-니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내가 언제 용건 있어서 전화를 했나?”

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아, 할머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옘병하고 있네.

“또 욕한다.”

-허구한 날 욕먹을 짓 하니까 그러지.

“너무한다, 진짜. 손자가 할머니 생각나서 전화했다는데 이럴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투덜거림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내일 올 준비는 하고 있어?”

-준비는 다 혔지.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면 그냥 집에서 쉬어. 이게 뭐 대수라고 서울까지 올라오나.”

-보러 가야지, 그럼.

“그렇지?”

-그려. 그거 안 보러 가면 두고두고, 응, 할매, 나 그때 서운했어요, 그럴 텐데 어떻게 안 가냐.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사실 할머니가 보러 와 주면 좋긴 하지.”

-그치?

“응응, 내가 그래서 이번에 선물도 준비했어. 할머니 주려고.”

-뭐여. 너 또 영양 크림 같은 거 샀냐?

“아니, 다른 거야.”

얼마 전에 백화점에 가서 할머니에게 줄 옷을 산 터였다.

물론 내일까지는 비밀이었다.

“지난달에 영양 크림 사 준 거는? 그거 잘 쓰고 있어요?”

-애껴 쓰고 있지. 고거 외제라 좋더라.

좋아하는 목소리에 가슴이 뿌듯했다.

“더 사고 싶은 거 있음 말해 봐. 나 이번에 계약금도 받아서 부자야.”

-또 옘병한다.

“진짜라니까. 화장품도 팍팍 사고 그래요. 그래야 경로당 가서 할아버지들한테 데이트 신청도 받고 그러지.”

-됐다, 이것아. 내가 남자라면 질렸어. 니네 영감탱이 죽을 때까지 내가 피똥 싸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무래도 화제를 잘못 고른 모양이다.

투 머치 토커처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속사포처럼 토해 내는 할머니의 목소리.

“할머니, 나 이제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왜. 듣기 싫냐?

“아니, 연습할 시간이 돼 가지고. 동생들이 부르네.”

그 말은 진짜였다.

복도에서 통화를 하는 나에게 멀찍이서 막내가 강아지처럼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럼 내일 봐요. 할머니.”

그 말과 함께 나는 전화를 끊었다.

*   *   *

김덕순 여사는 통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으이구, 하여간 옘병할 놈.”

이 시간까지 뭘 해야 한다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아이돌이라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리는지.

포기한다고 했을 때는 내심 기뻤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하겠다니.

‘어쩌겄어. 지 팔자 지가 꼬는 거지.’

어릴 적부터 아이돌, 아이돌 하더니 끝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일 있을 뭐시기 평가였나.

입고 갈 옷을 꺼내 놓은 김덕순 여사는 자기 전에 스킨을 얼굴에 바르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화장대 서랍에 든 것.

두 번째 서랍에는 오래된 그림 하나가 들어 있었다.

김덕순 여사는 오래된 그림을 꺼내 들여다봤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은 도화지.

[2학년 1반 선우주]

투박한 글씨 밑에는 그림이 있었다.

노란 크레파스로 칠한 스포트라이트 밑에서 꼬마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장래희망 : 우주대스타]

[선생님 저는 세상에서 가장 뉴명한 사람이 될 꺼에요]

김덕순 여사는 그걸 보면서 가슴 속으로 깊이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부처님.

부탁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손자 좀 잘되게 해 주셔요.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