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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화 (1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화

12월 28일.

마침내 대망의 연말 평가 날이 밝았다.

스타렉스 안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는 연신 침을 삼켰다.

패딩과 목도리, 모자까지 꽁꽁 싸매고 있음에도 온몸이 떨렸다.

말없이 손난로를 흔들거나, 바싹 마르는 입술을 핥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등 방법은 다르지만 제각기 긴장감에 대처하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차가운 손을 손난로로 녹이는 쪽이었다.

차 안은 추웠다.

자칫 성대가 건조해지기라도 할까 봐 한겨울인데도 히터를 안 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석환 형에게 말을 걸었다.

“분위기가 나 수능 보러 갈 때 같아, 형.”

“그때만큼 긴장 돼?”

“그만큼 예감이 좋다는 거지.”

“잠깐만.”

윤석환이 눈매를 좁혔다.

“너 시험 못 보러 가지 않았냐?”

“아, 맞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한편, 앞좌석의 유쾌한 분위기와 달리 뒷좌석은 고요했다.

평소 신나게 떠들어 댔을 막내가 침묵할 정도면 오죽할까.

“야, 김비주. 나 어떡하냐. 이번에 잘해야 되는데.”

“왜?”

“아버지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온대잖아. 마을분들 버스까지 대절해서 온다고.”

늘 태평하던 김중현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긴.

나 같아도 마을 사람들이 버스까지 빌려서 온다고 하면 밤에 잠도 안 올 것 같긴 하다.

“힘내.”

김비주가 말했다.

“누나 온다고 긴장했는데 난 아무것도 아니었네.”

“난 여동생만 와요.”

“저희 집은 아마 가족들 다 올 것 같아여. 아버지가 바빠서 못 올 수도 있긴 한데, 제발 못 와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연출하는 막내의 말을 들으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신나게 연습만 했지, 서로에 대해서 아는 부분은 없구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들끼리 사정을 아는 이 녀석들과 달리 나 혼자 모르는 거긴 했다.

석환 형이 나를 힐끔거렸다.

“할머님은 뭐라고 하셔?”

“응?”

“올라오신대?”

“좀 있으면 터미널 도착한다나 봐. 이따 길 알려줘야 돼.”

내가 스마트폰으로 할머니에게 오는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안, 김비주가 앞자리로 머리를 쏙 내밀었다.

“실장님.”

비주가 물었다.

“저희 심사위원은 누가 나와요?”

“글쎄, 나도 정확히 몰라. 아마 우리 쪽에서는 윤찬혁 씨가 나갈 거야. 그리고… 화이 엔터 쪽에서는 장소원이 나온다고 했나?”

“장소원 선배님이요?”

“왜?”

“큰일 났다.”

무슨 멸망의 징조라도 되는 양, 근심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에 석환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치에 내가 답했다.

“이번 연말 평가 곡으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장소원 선배님 곡이거든.”

“어이구, 고생 좀 하겠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경연에서 심사위원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모 아니면 도다.

가수는 돈을 받고 노래를 부르는 프로다.

노래에 관해 빠삭한 전문가 앞에서, 그것도 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게 말해 장소원의 노래를 장소원 앞에서 부른다는 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교수 앞에서 그 사람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PPT를 해야 하는 학부생의 상황과 같았다.

에이.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나도 긴장되잖아.

움츠러드는 어깨를 쭉 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장소원이라.

그러고 보니 오디션 때도 장소원 선배 곡을 불렀었는데.

긴장되면서도 내가 오디션 때 불렀던 Red Moon의 주인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장소원.

내가 고등학생 때 데뷔한 걸그룹 슈가피쉬의 멤버다.

지금은 해체된 그룹 출신인 장소원은 싱어송 라이터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멜로디 라인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다.

애초부터 퍼포먼스 곡으로 장소원의 노래를 고른 것도 이런 취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 앞에서 그 가수 노래로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니.

떨리지만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참, 너희들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윤석환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별일은 아니고. 오늘 케이넷에서 리얼리티 촬영한다고 협조 공문 보냈더라.”

“촬영이요?”

뒷자리에 있던 서리혁이 눈썹을 모았다.

“무슨 촬영이요?”

“너희도 알지? 스트릿 보이즈라고 DNS 쪽에서 데뷔하는 보이그룹. 걔네 리얼리티 촬영한다고 와서 몇 장면 따 간대. 꼴랑 카메라 한 대 와서 찍는 거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하하.”

실시간으로 석고상이 되어 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미술실에서 봤던 아그리파가 따로 없었다.

석환 형은 ‘이게 아닌데?’하며 당황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라디오 틀어 줄까?”

라디오 버튼을 누른 손이 위아래로 FM 주파수를 맞춘다.

『 … 5289님이 보내 주신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3년째 TBC 뷰티풀 모닝을 듣고 있는 청취자입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 되니 외국에 있는 첫째 딸 생각이 자꾸 나는 것 같아요. 』

차분한 목소리가 사연을 읊었다.

팽팽한 끈처럼 긴장감이 감돌던 스타렉스 내부가 살짝 이완됐다.

『 그런 큰 아이가 오늘 중요한 시험을 치른다고 하네요. 지금 시험을 보고 있을 시간이라 제 말을 들을 수 없겠지만, 라디오를 빌려서 마음속에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성은아, 엄마는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고 있어. 잘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엄마는 널 믿는다. 』

가뜩이나 각자 가족 때문에 긴장하고 있던 상황.

외국에 있는 성은 씨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부담 가득한 MC의 말투에 애들이 딱딱하게 굳었다.

『 5289님의 신청곡, 가족사진을 들려 드리겠…… 』

석환 형이 채널을 AFN으로 돌려서 강렬한 랩이 흘러나왔지만, 분위기는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터였다.

동시에 멀찍이 고등학교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

분위기 어쩔 거야. 진짜.

*   *   *

태화고등학교 대강당.

비어 있는 강당에 한기가 몰아쳤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우리가 일등인 듯했다.

“후우.”

무거운 심호흡과 함께 연습생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나에게 김비주가 다가왔다.

“우주 형.”

“응?”

“걱정이 돼서 그러는데 우리 무대, 정말 잘 될까요?”

한 달간 연습을 수없이 했어도 불안감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하긴.

퍼포먼스는 같이 짰지만 편곡은 전적으로 나 혼자 했던 작업이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신이 없을 만했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사실 나도 완벽한 확신은 안 선다.

무대라는 건 워낙 돌발 변수가 많아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되는 대로 해야지 뭐.

하지만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속마음과 달리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었다.

“자자! 미리 동선 좀 맞춰 보자.”

우리가 일찍 온 까닭은 미리 연단 위에서 합을 맞춰 보기 위함이었다.

춤을 추고 노래를 흥얼거리자, 점점 굳은 몸이 풀린다.

처음에는 낯선 곳이라서 기량이 안 나왔지만 반복할수록 연습실에서 했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실전에서도 이만큼 나오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일 때였다.

덜컹.

강당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함께 들어온 한 무리의 남자들.

오버 사이즈로 입은 널널한 옷이나 금목걸이 등 힙합 느낌이 충만한 패션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누군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트릿 보이즈.

DNS 미디어에서 새로 나온다는 보이그룹이자 이번 연말 평가에서 우리가 경쟁자로 여기고 있는 라이벌이었다.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고 웃던 스트릿 보이즈는 이내 우리를 발견한 듯했다.

“…….”

허공에서 두 기획사의 연습생들의 눈빛이 얽혀 들었다.

공기가 차갑게 식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0.5초 동안 날카로운 눈빛 교환이 이뤄졌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간다.

신경전을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실망했을 장면이겠지만 현실이 이런 걸 어쩌랴.

대본이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에 적대감이 생기긴 어려웠다. 소속사가 경쟁 관계니 쟤네를 이겨야겠다 하는 느낌 정도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강당 한구석에서 연습하는 동안 그쪽도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9인조라서 그런지 우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활기차다고 할까.

인원이 많아서 오디오가 비지 않을 뿐더러,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약간 오버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들과 함께 온 K-Net 제작진 때문인 듯했다.

ENG 카메라를 짊어진 카메라맨과 피디, 작가들.

연습을 하는 동안 그들은 카메라를 향해 애교를 부리거나 윙크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우리 아이들의 눈빛에 부러움이 폭발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분홍 머리의 멤버가 카메라 앞에 섰다.

“저희 스트릿 보이즈가 연말 평가 공연을 위해서 이곳 태화고등학교 강당에 왔습니다.”

“와아아-!”

멤버들이 자체 박수로 오디오를 메우는 가운데 수첩을 들고 있는 작가가 질문을 던졌다.

“연말 평가가 뭐야?”

“아, 연말 평가는요. 저희 회사를 포함해서 다섯 회사가 진행하는 월말 평가입니다. 회사 관계자분들과 가족을 초청해서 공연을 하는 행사인데요. 오늘 아주 멋진 모습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리더의 마지막 말에 맞춰 나머지 여덟 명도 카메라에 대고 V를 그리거나 ‘피스!’ 같은 구호를 외쳤다.

“Go Street!”

다 같이 구호를 외칠 때가 돼서는 우리 뉴블랙 멤버들의 사기가 0을 뚫고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는 게 느껴졌다.

데뷔 무산에 대한 트라우마나 자격지심 때문일까.

자꾸만 작아지려는 멤버들의 주의를 환기하려고 손뼉을 쳤다.

“얘들아, 정신 차려.”

“네?”

“우리 연습해야지. 놀고 있을 거야?”

“아, 네.”

다시 연습을 이어 갔지만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저쪽에서 떠들고 웃을수록 우리 애들은 그걸 의식하고 있었다.

악순환의 반복.

이걸 어쩐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안무 동선을 천천히 체크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꼈다.

내가 별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실력이 변화한 것이다.

잘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나 혼자만 엄청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멤버들도 잘하기 시작했다.

김비주는 안무를 근사하게 소화했다.

김중현은 랩 파트에서 손동작이 현란해졌다.

서리혁의 목청에서 갑자기 3단 고음이 나왔다.

그리고 애교 넘치는 안무를 120퍼센트로 소화하는 막내.

역시 우리 팀 애들이 잘하긴 하네.

그래. 이럴 줄 알았어.

흐뭇하게 웃던 도중, 나는 근처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저쪽도…?

스트릿 보이즈 쪽.

그쪽도 얼굴에 웃음기를 싹 거두고 아까보다 2배는 더 열심히 안무 연습에 임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왜들 그러지?

여기저기서 우오오- 하는 3단 고음 애드리브가 나오고 쓸데없는 댄스 브레이크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단체로 스팀 팩이라도 맞았나.

이 미스터리에 대한 의문은 얼마 안 가서 풀렸다.

“감독님. 저쪽 연습생들도 카메라에 담아 주세요. 강당 전체가 풀샷으로 담기게.”

“알았어요.”

“이야. 연습생들이 수준이 높네요.”

카메라 때문이었구나.

스트릿 보이즈의 리얼리티 카메라가 우리 쪽을 향할 때마다 서리혁의 고음이 폭발하고.

김중현의 랩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개업 인형처럼 춤을 추는 김비주와 눈에 불꽃을 피우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왕지호를 바라보았다.

K넷 스탭들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이야. 열정들이 참 대단하네.”

“젊음이 좋아.”

“벌써부터 저러면 땀 안 나나?”

그 말을 들은 걸까.

마치 뙤약볕에서 연습한 것처럼 양쪽 연습생들이 땀을 훔치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

카메라에 진심인 연습생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방송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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