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화
“어우, 잘생겼다.”
“어디 소속사라고 했지?”
기교는 없지만 정석적인 노래.
방금 전까지 풋풋한 매력을 풍기던 왕지호와 달리 이쪽은 어딘가 모르게 능숙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난 여기에 있어요
이리 와 줘요 내게 와 줘요
왜 그대 오지 않는지
내게 말이라도 해 주오
첫 파트가 관심을 집중시키는 용도였다면 두 번째 파트는 감성을 전달하는 파트였다.
게다가 고음이 적은 까닭에 아직 기량이 완전하게 올라오지 않은 선우주가 맡기에 제격인 파트였다.
조금씩 쌓여 가는 감정과 함께 노래가 고조되어 간다
나 이젠 기다림도 못 하겠는데
그댄 와 줄 생각을 않네요
하이라이트에 달하는 순간 선우주가 잽싸게 사이드로 빠졌다.
마침내 등장한 메인보컬.
서리혁이 마이크를 잡고 무대 중앙에 섰다.
사랑아 어디 있느냐
내 너를 찾아 이 세월을 헤맸는데
손이나 잡아 보자꾸나
앞서 노래를 부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
노래를 듣던 모두가 감탄했다.
보컬은 애절함과 트렌디함을 잘 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메인보컬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댄서처럼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다섯이지만 무대가 꽉 찰 정도로 알찬 퍼포먼스였다.
그러는 동안 장소원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이거 편곡 누가 했대?”
“왜?”
“오빠는 안 들려? 지금 노래 톤이 바뀌고 있잖아.”
귀를 기울이던 윤찬혁도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트로트 사운드로 시작한 노래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톤이 달라져 있었다.
점점 대중가요 느낌으로 바뀌는 분위기.
그래서 그랬던 걸까.
메인보컬이 트로트의 후렴구를 부르는데도 특유의 트로트다운 느낌이 확연하게 줄어 있었다.
천천히 이뤄진 변화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변화를 상징하듯 1절이 끝나자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백 스테이지로 빠지고 래퍼가 등장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전하는 묵직한 랩.
힘들 때 함께해 준 그대
언제나 미안했었어
무엇 하나 사 주지 못해
미안했던 내 마음
자랑스런 모습 보여 주고 싶었어
큰 선물은 아니더라도
무대 위에 선 내 모습
그대의 마음에 담아 주기를
정확한 발음 덕분에 김중현이 전하는 랩은 속속들이 전달됐다.
부모에게 전하는 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부모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함께해 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레몬 엔터테인먼트의 다섯 연습생이 택한 주제였다.
무대를 보러 와 준 부모님과 형제자매에 대한 고마움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였다.
당신께서 좋아하는 이 노래
prepare for you
So, Let me tell you something
우리가 하고 싶은 단 한마디
한 템포 쉬어가는 순간.
김중현은 시원한 웃음과 함께 랩을 마무리 지었다.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다시 시작된 노래.
1절의 트로트와는 다른 노래가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노래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 내 노래잖아?”
장소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냈던 첫 싱글 With You가 댄스 버전으로 나오고 있었다.
랩이 끝나자마자 무대로 진입한 다섯 멤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중심은 단연 김비주였다.
소년스러운 외모, 그에 대비되는 고난이도 안무.
그 갭에서 오는 임팩트에 관객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Thanks and thank you
고마운 마음 접어
편지가 됐으니
네 마음을 열어 줘
1절과 달리 2절부터는 20~30대가 반응했다.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반주가 즐거우면서도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1절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이어진 2절.
이윽고 후렴구가 끝나고 3절로 이어지는 브릿지 파트.
잔잔한 반주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물결이 천천히 움직이듯이 손가락 끝까지 일치하는 군무가 이어졌다.
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그들이 이 동작 하나를 위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안무였다.
이윽고.
마침내 반주가 고조되어서 터지려고 할 때쯤.
가장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던 선우주가 물살을 거스르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점점 빠르게.
가속하던 그의 다리가 유연하게 움직여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슬라이딩하듯이 움직인 선우주의 몸이 우아하게 움직였다.
마치 물살을 가르는 돌고래처럼 밑으로 샤악 미끄러지다가 가운데로 서는 우아한 동작.
곳곳에서 소리 없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 * *
제일 긴장했던 동작이 끝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됐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잘못했다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던 파트를 무사히 소화한 것이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믿는다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팀 뉴블랙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들 마음이 놓이나 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과 춤 선이 그걸 증명했다.
즐겁다.
무대 중에 그런 무대가 있다.
준비했던 것보다 더 잘 나오는.
100퍼센트를 넘어 120퍼센트가 나와서 곡이 끝난다는 게 아쉬워지는 그런 무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아쉬워하고 있었다.
말없이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발산하려는 모습들이 보였으니까.
그러는 동안 내 마음에서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달 가까이 연습을 하면서도 나와 멤버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벽이 있었다. 그런데 이 무대를 통해 그 벽이 마침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의 벽이 무너지는 듯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한다는 하나의 공감대.
그 속에서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는 마지막 파트를 펼쳤다.
Thanks and thank you
고마운 마음 접어
편지가 됐으니
네 마음을 열어 줘
서리혁, 아니 리혁이가 후렴구를 부르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마지막처럼.
이 무대를 끝으로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 것처럼.
가만히 움직이기만 해도 손동작 하나까지 척척 맞는 가운데 마침내 우리는 무대의 마지막을 고했다.
무대 위에 서서 숨을 헐떡거리는 우리들.
“…….”
2초 정도 정적이 흐르고 이윽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아니었다.
솔직히 이게 무슨 세기의 무대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좋은 무대인 것은 맞았다.
이번 연말 평가에서 가장 훌륭한 무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우리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반응이 어쨌든 상관없었다.
또 다른 소득이 있었으니까.
연습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무대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그냥 기분이 좋다.
이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해방감?
아니면 기쁨?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기분. 뭐든 해낼 수 있고 뭐든 같이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객석 중간에서 할머니를 발견한 나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머니.
나 여기 있어요.
* * *
“잘하네! 잘해.”
박수를 치던 김덕순 여사가 눈물까지 글썽거리자, 지켜보던 윤석환이 웃으며 말했다.
“어떠세요, 할머님. 손자, 노래 잘하죠?”
“흠흠.”
손자가 무대를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들었는지 헛기침을 한다.
“뭐, 숭하지는 않네. 전국 노래 자랑 정도는 나가도 되겄어.”
“방금 엄청 좋아하시지 않았어요?”
“아, 그럼 좋지! 실장님 같으면 안 좋아?”
“예, 저도 기뻐요.”
윤석환 실장이 말했다.
“저도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거든요.”
혹여 지난 상반기 평가처럼 실수를 연발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잘 해냈다.
‘고생했어. 얘들아.’
그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 * *
스트릿 보이즈는 우리 무대에 기가 빨린 듯 보였다.
처음부터 멘탈이 반쯤 나간 상태.
-안녕하…….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인사부터 합이 안 맞는다고 할까.
연습을 엄청 했던 모양인지 실수는 없었지만 무대가 밋밋했다.
대중성을 겨냥한 우리 무대가 의식됐던 걸까.
힙합과 락이 섞인 퍼포먼스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자신감이 결여된 듯한 분위기였다.
결국 2013년 연말 평가의 1위 자리는 자연스럽게 레몬 엔터테인먼트의 뉴블랙에게 들어왔다.
* * *
“이사님! 저희가 일등이에여!”
-잘했어, 얘들아.
싸구려 트로피를 들어 보이자, 영상 통화 중인 조규환 이사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막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저희 고기 사 주세여! 고기!”
-대표님한테 말씀드려 봐. 오늘은 사 주실 거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축하하고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얘들아.
곧이어 찾아온 대표님은 기분이 업되셨는지 연신 크게 웃으면서 회식을 예고했다.
가족 상봉의 시간도 있었다.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발견하자마자 다다다 달려가서 꼭 안았다.
“놔! 이것아!”
“좀만 이러고 있자. 나 진짜 할머니 냄새가 엄청 그리웠거든.”
“으이구.”
할머니도 투덜거리면서 이내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나는 할머니 어깨를 붙잡은 채로 눈을 초롱초롱 떴다.
“어땠어요? 나 잘했지?”
“뭐. 자, 자… 알 했어.”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아! 잘했다고!”
아이, 깜짝이야.
이렇게 각자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 동안에도 우리 멤버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같이 있고 싶다고 해야 하나.
서로 바라보는데 기분이 좋아지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느낌이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얘들아.”
“형도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와, 진짜 처음에 트로트한다고 그래서 엄청 걱정했는데 진짜…….”
“신의 한 수였지.”
“맞아여, 진짜 신의 한 수.”
“진짜 고생 많았어요, 형.”
“아냐, 너희가 고생이 많았지.”
다섯 명이서 누가 제일 낯간지러운 말을 잘하는지 콘테스트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삼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녕.”
우리 사이를 파고든 사람을 본 순간 모두 얼어붙었다.
코트를 어깨에 걸친 미녀.
눈매가 살짝 매섭지만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를 띄고 있는 가수, 장소원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엇,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노련미를 풍기는 이분은 우리가 소화해 낸 곡의 원작자였다.
주말 교회 캠프에 갑자기 예수님이 등장한 듯한 상황에 우리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무대 잘 봤어. 재미있게 구성했더라.”
“감사합니다!”
내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자,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재빨리 파도타기처럼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아유, 귀청 따가워. 그냥 편하게들 있어.”
“아니에요.”
“그냥 무대 잘 봤다고 인사하러 온 거야. 원작자로서 감사 인사는 해야 예의일 것 같더라구.”
장소원이 웃으며 우리를 훑어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찾는 포식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나저나 편곡은 누가 했대? 솜씨 보니까 회사에서 만져 준 것 같지는 않고 너희끼리 한 것 같던데.”
내가 손을 들었다.
“제가 했어요.”
“그래? 정말 네가 한 거야?”
“네.”
“잘 됐다.”
장소원이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내가 연락처를 주려고 하는데 너희 중에 리더가 누구지?”
“리더요? 저희 아직…….”
안 정했는데요, 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네 멤버가 장소원에게 내 쪽이라고 눈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소원이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을 보였다.
“네가 리더구나? 어쩐지.”
그녀가 포스트잇에 번호를 써서 건넸다.
“받아. 내 연락처야.”
“이걸 왜 저희한테?”
“내가 이번에 콜라보레이션 곡으로 싱글 준비하는 중이거든. 마침 같이 부를 가수를 구하는 중이었는데.”
“저희랑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장소원이 우리한테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는 거야?
“편하게 생각해. 회사랑 이야기도 나눠 보고.”
“네, 네.”
“기다리고 있을게.”
손 모양으로 전화를 표현한 장소원이 우리에게 웃어 보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는 그 뒷모습에 대고 황송하게 고개를 꾸벅 숙일 뿐이었다.
“대박.”
그녀가 멀어졌을 때 모두가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멤버들은 장소원의 연락처를 절대 반지라도 영접한 것처럼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야, 선우주!”
누군가 달려와서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석환 형이 상기된 얼굴로 나와 멀리서 사라져가는 장소원을 번갈아 보았다.
“너 지금, 아니, 그러니까 다른 가수한테 콜라보 제안받은 거지?”
“……어? 어.”
“이 기특한 놈!”
석환 형은 돈도 안 들이고 공짜 홍보를 하게 됐다며 좋아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아, 저리 가!”
질색팔색하는 내 반응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듣기 좋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