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화 (1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화

숙소 밖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린다.

“실장님 왔나 보다. 내려가자.”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칼같이 우리를 픽업하러 오는 윤석환 씨였다.

괜히 잔소리 들을까 무서워 부산스럽게 옷을 입고는 어지럽게 널린 신발을 주인들이 찾아갔다.

그나저나.

분명 그제 비주가 다 정리해 놨는데 언제 또 개판이 됐지.

“지호야, 그거 내 거 아니야?”

“형! 그게 제 거예여.”

현관 신발 지분의 90퍼센트를 차지한 범인들이 한 편의 꽁트를 찍는 동안, 리혁이가 신발장을 열며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동안 비주는 가스와 전기 코드를 확인했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내려가 1층에 있는 스타렉스에 몸을 맡기면 그것이 우리 아침 일과의 끝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예여, 실장님.”

최근에 회사 인력이 줄줄이 퇴사한 터라 윤석환 실장이 숙소에서 연습실까지 픽업을 담당한 실정이었다.

물론,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댄디하게 갖춰 입은 윤 실장.

우리 또한 평소의 추리닝이 아니라 제법 멋 부린 사복 차림이었다.

“다들 준비됐어?”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윤석환의 눈꼬리가 올라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콜라보 작업을 위해 화이 엔터테인먼트로 가는 날.

콜라보레이션.

다른 아티스트와의 공동 작업을 뜻하는 업계 용어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서로 다른 장르나 음악적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흔히 노래에 ‘feat. 홍길동’ 같은 식으로 표시되는 피쳐링(featuring)과 다른 점은 상대 뮤지션을 곡 일부분에만 참여시키는 피쳐링과 달리 콜라보는 두 뮤지션의 비중이 대등하다는 것이다.

사실 큰 의미는 없다.

편의상 구분일 뿐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헷갈리는 부분이니까.

“피쳐링 용어 문제로 진짜 고생했지.”

윤석환 실장이 화이 엔터와의 협상에 얽힌 비하인드를 꺼냈다.

“그쪽이랑 협상하다가 탈모 오는 줄 알았다니까.”

“누구여? 대표님이여?”

딴청을 피우다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막내로 인해 차 안에 있는 모두가 웃음이 터져 버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윤석환이 차량에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를 빼면서 웃었다.

“내가 쟤 때문에 맨날 블랙박스 녹음 지우고 다닌다니까. 누가 들으려면 어쩌려고 진짜.”

“그거 기능 꺼 줄 수 있는데.”

“됐어. 어차피 가끔 써먹을 때가 있어서.”

핸드폰에 메모리를 끼우면서 윤석환은 끊겼던 말을 이어갔다.

“노래 제목 때문에 회사끼리 힘겨루기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화이 엔터에서는 데뷔도 안 한 애들이 무슨 아티스트냐고. 제목에 ‘Feat’로 하자고 하고, 우리 쪽에서는 동등한 비중이 당연하다고 하고.”

“그런 걸로도 싸우는구나.”

“이러려고 기획사가 있는 거야, 인마.”

“실장님.”

뒷자리에서 바나나를 우적거리고 있던 중현이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적당히 매듭지었지. 그쪽 담당자한테 우리 애 중에 작곡에 재능 있는 애가 있다고 그랬거든.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곡 작업에도 같이 참여할 거라고.”

윤석환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게?”

“……잘하라고?”

“그렇지. 가서 잘해야 돼. 노래 제목이 ‘장소원X뉴블랙’이 될지 아니면 장소원 ‘Feat. 뉴블랙’이 될지는 이제 너희 손에 달린 거야.”

왠지 부담감이 팍팍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나저나 화이 엔터는 처음 가 보네여.”

“너 안 가 봤어?”

“리혁이 형, 저는 원래 배우 오디션 보러 다녔잖아여. 우리 회사도 처음에 그래서 오게 된 거였는데.”

원래 꿈이 배우였구나.

어쩐지 볼 때마다 배우상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내가 리혁이에게 물어봤다.

“너는 화이 엔터 가봤어?”

“이중에서 나만 가 봤을 걸요. 예전에 보컬 오디션 본다고 갔어요.”

“아, 그 10초 만에 광탈했다고 한 거여?”

“10초 아니거든?”

“형이 그랬잖아여. 오디션 장소 딱 들어가자마자 탈락했다고.”

“왜 탈락했는데?”

내 물음에 리혁이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답했다.

“……노래 잘 부르게 생겼다고 춤부터 춰 보라고 했어요.”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웃었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뉴블랙 댄스 서열 5위 서모 씨가 합리화를 하듯이 말했다.

“원래 와 달라고 해도 안 들어갈 회사였어.”

“호오, 그래여. 형?”

“넌 제발 좀 조용히 해…….”

진심 어린 부탁에 막내가 미소를 짓는 동안, 리혁이가 화이 엔터 사옥에 대한 말을 꺼냈다.

“시설 때문에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시설?”

“밖에는 그럴싸한데 안에 들어가면 좀 이상해요. 연습실 들어갔는데 거울에 치약 얼룩이 묻어 있고.”

“뭐. 오래 전 일이잖아.”

내가 정리하듯이 말했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지.”

“근데 화이 엔터면 돈도 많잖아여. 연말 평가에 참가한 회사 중에서 우리랑 DNS 다음으로 클 텐데 연습실이 왜 그랬지?”

“그러게.”

“그때 당시면 슈가피쉬 선배님들 잘나갈 때 아니에요?”

비주의 말에 우리 모두 의문을 품었다.

화이 엔터테인먼트.

한때 슈가피쉬 소속사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아! 라고 할 만큼, 전성기 슈가피쉬의 포스는 당시 원탑 걸그룹을 위협할 정도였다.

그때 당시 돈도 엄청 벌었을 텐데 시설이 왜 그랬을까.

곱씹을수록 뭔가 엉성한 회사 같다.

공식 홈페이지도 없네.

보통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면 아티스트 사진이 담긴 홈페이지라도 있기 마련이지만 화이 엔터는 그런 것도 없었다.

뭐.

사실 별 의미는 없다.

어차피 화이 엔터는 그때나 지금이나 꽤나 잘나가는 기획사 중 하나니까.

널 위해 준비한 춤사윌 보여줄 거야

따라와 Honey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렉트로닉 비트가 잔뜩 섞인 걸그룹 노래.

브릿지 파트가 끝나고 익숙한 후렴구가 귀를 즐겁게 간질였다.

Baby Lalala Baby Lalala

비주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다른 멤버들도 따라 부르고 있는 이 노래는 최근 차트에서 핫한 노래 였다.

가수는 바로 걸스온탑.

화이 엔터가 바로 그들의 소속사였다.

“걸스온탑 진짜 핫하네. 이거 계속 1위 아니야?”

“맞을걸.”

“아니에요. 음방 1위는 첫 주에 한 번 하고 끝이었어요.”

“그래?”

“2주차에 스칼렛 컴백했잖아요. 기간 내내 2등 했을 걸요.”

그래서 최근에 별명이 콩스온탑이었던가.

걸스온탑.

잘나가는 4년차 걸그룹.

일반 대중에게는 예능이나 드라마의 활약으로 유명하고, 업계에서는 노래 좋기로 유명한 그룹이다.

소속사 선배 슈가피쉬를 잇는 음원 강자 라인.

데뷔 앨범이 폭삭 망하긴 했지만 그 이후 모든 타이틀곡이 죄다 차트 10위권 내에 들어갈 만큼 대중성 하나는 끝내주는 걸그룹이다.

굳이 단점이라면 노래들이 죄다 비슷한 분위기라는 것 정도?

걸스온탑은 2인자 마케팅으로 성공한 그룹이었다.

1등 자리는 노리지 않고 2등으로서 이미지를 굳히는 전략.

이 전략 덕분에 걸스온탑은 1등 자리가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친근한 2등 걸그룹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다음 해 스칼렛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2012년, 조규환 이사가 내보낸 신인 걸그룹 스칼렛이 등장한 이후부터 조금씩 2인자 자리에서 밀리는 분위기였다.

콩스온탑이라는 별명도 그렇고 예능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

그러나 여전히 잘나가는 걸그룹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생각해 보면 화이 엔터는 걸그룹 라인업 대단하다, 진짜.”

“아마 회사를 먹여 살릴 걸요.”

“그러겠지.”

“근데 슈가피쉬가 더 쩔지 않았어여? 저 초딩 때 엄청났는데.”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90년대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가피쉬.

한때 전성기 원탑으로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했지만, 그 화려한 영광은 짧았다.

멤버들의 논란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가 남자친구랑 대마초를 피우다가 경찰에게 체포됐었지, 아마.

당시 엄청나게 쇼킹한 사건이었다.

전날까지 음악 방송에서 노래만 잘 부르던 걸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가 다음 날 신문 사회면에 나왔으니까.

여차저차 해당 멤버를 내보내고 활동을 이어 가려고 했던 슈가피쉬는 얼마 안 가 또 다른 멤버가 영화감독과 불륜이라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완전히 생명 줄이 끊겼다.

5인조.

장소원 선배는 그중에서 남겨진 3인 중 하나였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인기 가수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장소원이 재기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싱어송 라이터의 길.

본인의 작곡 능력을 활용한 장소원은 인지도가 저조한 비인기 멤버였다는 점을 살려 새로운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다섯 중에 가장 잘나가는 멤버였다.

드라마 OST도 참여하고 싱글 앨범도 족족 내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대박이라고 할 만한 노래는 없었다.

내가 오디션에서 불렀던 이나 연말 평가 때 편곡으로 써먹었던 등의 평균적인 성적은 월 70위.

물론 데뷔도 못한 우리가 보기엔 엄청난 업적이었다.

“다른 슈가피쉬 선배님들은 어떻게 됐어여?”

“장소원 선배 말고는 모르겠네.”

“듣기로 백향 선배는 그만두고 뭐 학교 다닌다고 들었는데. 리사 선배님은 뮤지컬 배우로 살고 있고.”

“다들 잘 살고 있구나.”

“그럼 나머지 두 사람은여?”

“모르지. 잘 살고 있지 않으려나.”

이야기의 화제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아무래도 연예계에 발을 걸친 연습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저마다 들은 루머가 꽤 있는 듯했다.

그걸 풀어 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이런 걸 이야기하나.

TV에 나오는 연예부 기자들이 ‘A양’, ‘B군’ 같은 식으로 가십거리를 떠드는 느낌이라 거북했다.

그리고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 듯했다.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석환 형의 찡그린 눈.

얘네 이러다 혼나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윤석환 씨가 선수를 쳤다.

“얘들아.”

서슬 퍼런 목소리에 차가운 공기가 아예 얼어붙는다.

뒷좌석에서 떠들던 네 연습생이 눈을 땡글땡글 떴다.

평소와 다르게 화가 나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다.

“너희 지금 뭐 하니?”

매섭게 바라보는 매니저의 눈빛에 멤버들이 돌처럼 굳었다.

“내가 물어보잖아.”

폭풍전야를 앞둔 분위기였다.

“너희 지금 뭐 하냐고.”

“…….”

“대답 안 할 거야?”

“……저희, 이야기 중이었어요. 실장님.”

비주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고 윤석환은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싸늘한 정적.

조수석에 앉은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

한참 동안 말없이 운전이 이어졌다.

마치 너희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라는 듯한 침묵이었다.

눈치를 못 챈 막내나 중현이와 달리 리혁이는 한숨을 내쉬었고, 비주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윤석환이 차분하게 말했다.

“얘들아.”

다행히도 조곤조곤한 말투였다.

“너희끼리 연예계 가십거리 떠드는 건 좋아. 그럴 수 있지.”

“…….”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너희끼리만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보기 안 좋은데 남들 눈에는 어떻겠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 나만 있으면 상관없지. 너희가 무슨 실수를 하든 난 그걸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데뷔 안 할 거야? 이제 좀 있으면 로드 매니저나 코디가 붙을 텐데 그때도 이럴 거냐고.”

이쯤 되자 중현이와 지호도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드 매니저 진짜 힘들다, 얘들아. 연예인이 매주 천만 원씩 땡길 때 걔네 한 달에 벌어야 백이야. 단돈 십만 원 더 받겠다고 이직하는 것도 다반사고. 그런 사람들이 다른 데 가면 너희가 했던 말 안 옮길 것 같아?”

윤석환이 강조하듯 말했다.

“연예계 좁아, 얘들아.”

“…….”

“너희가 아직 안 경험해 봐서 그래. 차에서 잠깐 한 얘기가 다음 날 촬영장 전체에 도는 곳이 연예계야.”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둘러본 윤 실장이 막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호.”

“……네?”

혼날까봐 어깨를 움츠러뜨린 막내였다.

“아까 대표님 이야기도 경솔했던 거 알지?”

“죄송해여.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계속 어리다, 어리다 넘어가는데 조심해. 알았어?”

뇌를 거쳐서 말하라는 윤석환 씨의 강조에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이 나면 사람에 따라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었지만, 차분하게 말하는 어조에 우리 모두 납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실어 말하는 게 아니라 너희가 이런 점을 잘못했으니 앞으로 이런 식으로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거였으니까.

매니저다운 조치였다.

뭘 해도 사랑으로 안아 주는 팬과 달리 매니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가수에게 할 말을 해 줘야 하니까.

“그리고 선우주.”

“네, 실장님.”

올 것이 왔군.

“네가 제일 실수한 거 알지?”

“죄송합니다.”

“동생들이야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 있어. 그런데 군대까지 다녀왔으면 뭐가 문제 되는 발언인지 알잖아. 이런 상황이 있으면 앞으로는 네가 나서서 조치하도록 해. 알았어?”

원래 그러려고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잘못이 맞기에 수긍했다.

그랬기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잘 좀 부탁한다, 우주야.”

차창 밖을 바라보는 석환 형의 눈빛이 평소보다 울적해 보인다.

“내가 언제나 곁에 있어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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