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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화 (1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화

5장. 첫 노래를 만들다

10분 후.

우리는 화이 엔터 사옥에 도착했다.

같은 강남구에 있지만 레몬 엔터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위치였다.

엇비슷한 건물들이 가득한 골목.

일반 빌라처럼 보이는 우리 회사와 달리 화이 엔터의 사옥은 한눈에 보기에도 딱 눈에 띄었다.

“우와.”

막내가 감탄에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지? 겉보기는 그럴싸하다고.”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최첨단 IT 회사가 한국 지부를 세우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깔끔한 흰색 벽으로 된 건물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했던 감탄은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경악으로 바뀌었다.

뭐야, 이 음산한 분위기는.

초등학생 시절 군산 시내에서 보았던 오래된 건물이 떠올랐다.

뭔가 음산한 분위기였다.

슈가피쉬랑 걸스온탑으로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대체 그 돈은 어디로 흘러 들어간 것일까.

“난 사무실로 갈 건데 같이 갈래?”

윤석환 실장의 물음에 모두 손사래를 쳤다.

남의 회사에 온 것도 부담스러운데, 직원들이 있는 곳은 더더욱 사양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먼저들 올라가 있어. 장소원 씨, 조금 늦는다고 3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더라.”

“얼마나 늦는데?”

“몰라. 새벽에 스케줄이 있었다고 지금 끝나고 오는 중이라고 하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향해 갔다.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윤석환 씨가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엘리베이터 안 타고 가?”

“아, 뭔가 이래야 될 것 같아서.”

“뭐. 편한 대로 해. 이따 끝나면 연락해. 데리러 올 테니까.”

사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뭔가 이래야 될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비슷했다.

연습생 신분을 지닌 이들이 공유하는 그런 눈치라고 할까. 갓 들어온 이병이 부대시설 이용에 눈치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다섯 명의 소심이들은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조용한 복도.

그쪽으로 고개를 쏙 내민 우리들은 작전 회의를 하듯 대화를 주고받았다.

목소리를 낮추면서.

“야, 아까 어디서 기다리라고 했냐?”

“작업실이요.”

“작업실이 한두 개가 아닌데?”

대략 7개의 방.

게다가 죄다 창문도 없는 문들이라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열어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실장님한테 물어볼까요, 형?”

“그래.”

비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나만 바라보는 멤버들을 보았다.

“뭐야. 나 보고 물어보라고?”

끄덕끄덕.

혼남의 기억이 아직 남아서 그런 모양이다.

“형이 실장님이랑 친하잖아여. 호형호제도 하고.”

“맞아요.”

“됐다. 이것들아.”

고개를 저으며 석환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담당자와 미팅 중인지 답장이 없었다.

그때, 복도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문이 열렸다.

달칵-

우리의 첫 반응은 감탄이었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인형 같은 소녀들.

각자 개성 있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굳이 누군지는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걸스온탑.

TV에서 보던 얼굴들을 실제로 접하니 뭔가 신기하면서도 ‘TV랑 똑같이 생겼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아우라 같은 건 없다.

그냥 되게 신기한 기분?

“아, 피곤해.”

“매니저 오빠가 스케줄 밀렸다고 얼른 내려오라는데?”

“왜 이렇게 재촉질이야.”

녹음이 힘들었는지, 초췌한 안색으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던 이들은 이내 말을 멈추었다.

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치고 뭔가 서로 당황해하는 상황.

“…….”

자기들끼리 ‘뭐야’, ‘누구야, 쟤네?’같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이들이라 경계하는 눈치.

우리는 우리대로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서 허둥대고 있을 때였다.

그중 한 명이 나왔다.

“저기.”

새하얀 피부에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멤버였다.

주하나.

내가 군대에 있을 적 TV에 나올 때마다 선후임들이 괴성을 질러 대던 비주얼 멤버였다.

실제로 들으니 목소리 톤이 좀 높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내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다른 녀석들도 ‘안녕하세요’를 따라했다.

어차피 데뷔하게 되면 마주칠 사람들.

기왕이면 첫 인상을 좋게 하자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저희 장소원 선배님이랑 곡 작업하기로 해서 왔어요.”

그쪽에서도 어색하게 ‘안녕하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가수시구나. 신인인 것 같은데 데뷔했어요?”

“저희 아직 데뷔는 안 했고요.”

“……예?”

“저희 아직 연습생-”

“아. 뭐야.”

주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습생이었어?”

그 순간, 상대측에서 조심스러워하던 분위기가 싹 가셨다.

‘뭐야, 괜히 인사했네’ 같은 얼굴들이 보인다.

실시간으로 굳어지는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쓰는 동생들이 안쓰럽다.

나야 뭐, 멘탈에 별 타격도 없었지만.

급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연예계의 민낯을 살짝 맛본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주하나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까딱했다.

“아, 뭐… 그럼 수고하세요.”

그 말과 함께 주하나가 별로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우리를 지나갔다.

그에 맞춰 우르르 따라간다.

마치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따라 움직이는 사자 떼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쪽은 이름이 뭐였더라.

잘 모르겠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남아있던 걸스온탑 멤버의 시선은 오로지 왕지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적대적이다.

“야. 왕지호.”

“응?”

“선배 보면 인사부터 안 하냐?”

“선배?”

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가 왜 선배야? 우리 같은 학년이잖아.”

“이쪽에서는 내가 선배거든?”

까칠한 반응을 보이던 멤버가 우리를 슥 훑어본다. 그러더니 가시 돋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뭔가 말하려고 할 때였다.

멀찍이 엘리베이터 쪽에서 다른 걸스온탑 멤버들이 부른다.

“길채경! 니 빨리 안 오냐?”

“언니, 나-”

“야, 매니저 오빠가 빨리 오라고 난리 났어!”

길채경이 한숨을 푹 쉬더니 지호를 노려보고는 ‘나중에 보자’하는 눈빛으로 걸어갔다.

길을 막고 있던 지호의 어깨를 팍 치면서.

길채경이 마지막으로 탄 뒤로 멀찍이 보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3층에서 1층으로 쭉 내려가는.

우리는 타지 못했던 그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윤석환 실장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복도 마지막 방이래.

타이밍도 참 좋네, 윤석환 씨.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표정이 좋지 않은 동생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 말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끝내 적당한 말을 찾았다.

“우리는 저러지 말자.”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복도 마지막 방.

녹음실 겸 작업실이라는 공간이었는데, 사실상 창고 같다. 벽면에 기자재가 가득 쌓여 있다.

좁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을 때 비주가 입술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리는 걸까요? 아니면 여기서 작업을 한다는 걸까요?”

“기다리는 거겠지.”

중현이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설마 여기서 하겠냐.”

“중현이 형, 이 상황에 입맛이 돌아요?”

“스트레스받을 게 뭐 있어. 그냥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세상만사 태평하게 말하던 중현이가 리혁이에게 과자를 내밀었다.

“너도 하나 먹어.”

평소 같으면 입이 짧아서 거절했을 녀석이 냉큼 받아 들어 우물거린다.

스트레스가 만빵인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무런 말없이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막내를 보았다.

“지호야.”

“넹?”

“아까 길채경 말이야.”

순간, 손가락이 삐끗한 탓에 게임 캐릭터가 사다리를 올라가다 넘어진다.

GAME OVER.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르며 지호가 말했다. 시선은 화면에 고정한 채.

“왜여?”

“너한테 좀 심하게 굴던데. 둘이 무슨 사이야?”

“같은 학교 애예요.”

“단순한 같은 학교 동창 같지는 않던데.”

“…….”

다시 GAME OVER가 뜨자, 지호가 입을 열었다.

“이거 좀 흑역사인데…….”

“괜찮아.”

“왜 형이 괜찮아여? 내가 안 괜찮은데.”

평소와 다르게 삐딱한 말투에 내가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안 말해도 되고.”

“걔가 예전에 저한테 고백했었어여.”

갑자기 분위기가 고백이다.

뭔가 서럽고 억울하고, 그랬던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는지 형들의 표정에 흥미가 감돈다.

지호가 게임을 끄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거든여. 집이 근처라서 자주 놀았는데, 걔가 5학년 때였나. 노래방에서 놀고 집 가는 길에 좋아한다고 고백했거든여.”

“그래서?”

“싫다고 깠어여.”

“…….”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맨날 볼 때마다 시비 건다니까여. 학교에서도 남들 안 볼 때마다 와서 시비 터는데 진짜…….”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런데 고백 한번 까였다고 그 다음부터 원수가 되다니. 성격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잠깐.

뭔가 놓친 거 같다.

“잠깐, 거절을 어떻게 했는데?”

뜨끔하는 막내의 표정이 보인다.

“아니, 그게…… 그…….”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그때는 어릴 때여서 철이 없었다니까여.”

“너 설마 심한 말 하진 않았지?”

“……못생겼다고 깠어여.”

비주의 탄식, 그리고 옆에서 혀를 차는 리혁이, 중현이는 과자를 먹던 것을 멈추고 한숨을 쉰다.

“아까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인정이다, 진짜.”

“왜 그랬냐.”

“나라면 지금이라도 가서 머리 박고 사죄한다.”

형들의 질타에 막내가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아니, 사실 성격이 싫었던 거라니까여. 5분만 있어 보면 알아여. 맨날 문자 보내서 뭐 하냐고 귀찮게 굴고, 먹을 거 주면서 기분 나쁘게 ‘너네 집에선 이런 거 안 먹지?’ 막 이러고.”

“그거 딱 너 아니냐.”

“그러게. 이거 뭐라고 부르죠, 우주 형?”

“동족 혐오.”

내 대답에 멤버들이 키득거리자 막내가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근데 그건 네가 좀 심했어.”

“아니…….”

“나중에 만나면 사과하도록 해.”

“몰라여.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쌩 하고 가더니, 갑자기 다이어트하고 걸그룹 됐어여.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웃기고.”

“그래도 꼭 말해. 알았지?”

“……알았어여. 기회 되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막내를 보면서 나는 웃었다.

하여간.

지금도 철이 없다고 생각하는 판인데, 초등학생 왕지호는 과연 어땠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런데 신기하다.

나 초등학교 때는 연애 그런 거 없었던 거 같은데.

요즘 애들은 벌써부터 그, 뭐라고 부르더라?

남자랑 여자 사이에서 막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운 것, 연애는 아니고 그런 사이를 뭐라고 하더라.

몰라, 기억나겠지.

한참을 우리가 수다를 떨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꼬박 40분이 지나서야 주인공이 등장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들어오는 인물.

날카로운 눈매 아래로 매력적인 미소가 우리를 반겼다.

“안녕!”

우리가 모두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뭘 일어나고들 있어?”

장소원이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앉아, 앉아.”

“네.”

“미안, 너희 엄청 오래 기다렸지? 아침밥은 먹고 왔어?”

“네, 선배님은요?”

“난 스케줄 끝난 지가 얼마 안 돼서. 원래 아침 안 먹기도 하고.”

입고 있는 와인색 코트를 벗으며 장소원이 우리를 둘러보았다.

“난 커피 마실 건데, 너희는 뭐 마실래?”

그 말에 동생들의 고개가 동시에 나에게 돌아온다. 사 준다는데 먹어도 되는 거냐는 눈빛.

내가 눈짓으로 OK를 표현하자, 지켜보던 장소원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와, 리더가 니네 꽉 잡고 있구나?”

“그게 아니에요.”

얘네 눈치 없다고 아침에 혼나서 그래요.

장소원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규현 씨. 아직 회사 안에 있지? 미안한데, 나 커피 좀 부탁할게.”

그녀가 주문을 말하라는 듯 우리를 본다.

코코아 하나와 아메리카노 둘.

그리고 휘핑크림을 올린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 큰 사이즈로 하나.

“왜 그래여, 형?”

“……아니다.”

잠시 후, 매니저로 보이는 후드 티의 남자가 들어와 커피 박스를 건넸다.

커피를 마시자 어느새 분위기가 편해졌다.

장소원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더니 작업실에 있는 기기들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저희 여기서 작업하나요?”

“응.”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그녀.

“많이 좁지?”

“아뇨.”

“좋은 방은 다른 사람들이 다 쓰고 있거든. 뭐…….”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의도는 전달됐다.

회사에서 비인기 연예인의 대접인가.

만약 걸스온탑이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는 아마 주인 있던 녹음실도 빼서 줄걸.

“일단 이것부터 한번 들어 볼래?”

바탕 화면에 있는 폴더를 클릭하더니 그 안에 들은 [Main Theme Ver.1]라고 붙은 파일을 클릭했다.

“내가 며칠 동안 작업한 멜로디인데, 작업 시작하기 전에 너희한테 일단 들려주고 싶어.”

멜로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반주로 아는 메인 테마와 가사 음을 나열한 탑 라인.

그녀가 만든 것은 메인 테마였다.

산뜻하면서도 가벼운 멜로디.

단순한 음의 나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작 부분을 듣는 순간, 나는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발끝부터 시작된 소름이 쫙 올라왔다.

귀에 있는 솜털까지 솟는 느낌.

다른 애들은 덤덤하거나 집중하는 표정이었지만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맙소사.

나는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면서 입을 벌렸다.

이거 진짜 대박인데?

어둠 속에서 황금을 발견한 광부의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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