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화 (1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화

머릿속의 공장이 작동하는 듯했다.

단조로운 음이 공장에 들어온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음표들이 여러 기계를 통과할 때마다 가공이 되어서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메인 테마를 뒷받침할 편곡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여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멜로디에 자극받은 내 뇌가 자동으로 무채색 음표들에게 색깔을 입혀 주고 있었다.

나풀나풀 춤을 추는 음표들.

그 아름다운 빛무리의 춤에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어이. 아저씨.”

“음?”

언제부터 눈을 감고 있었던 걸까.

눈을 떠보니 리혁이가 나를 툭툭 치고 있었다.

뭐지?

왜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걸까.

왜들 그러지?

장소원이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잔 거야?”

“예?”

‘제가요?’하는 말을 덧붙이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곁에 있던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5분 가까이 그러고 있었어요.”

“내가?”

“못 믿겠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든가요.”

“아닌데.”

내가 중얼거렸다.

“10초 정도였는데.”

“뭐, 피곤하면 잘 수도 있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인상을 쓰거나 기분 나빴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장소원이 유쾌하게 웃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말했다.

“선배님, 그게 아니에요.”

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편집해서.

정상적으로 들리게끔 ‘멜로디가 좋아서 잠깐 머릿속으로 편곡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진짜인데 왜 이리 변명처럼 들리는 걸까.

“흐음. 그래?”

장소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들으면 편곡이 막 떠올라?”

“아니, 이게요…….”

그녀가 쿡 웃으며 농담했다.

“우리 리더, 음악 천재구나? 내가 그동안 이런 천재를 몰라보고 있었네. 너희는 알았어?”

“네, 선배님.”

“저희끼리는 음악의 거장이라고 불러여.”

나를 놀리는 데 여념이 없는 멤버들이었다.

그래.

아주 건수 잡았구나. 너희.

“방금 들은 멜로디가 바로 너희를 부른 이유야.”

웃음기를 거둔 장소원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번에 싱글앨범 새로 내는 거 알지?”

“네.”

“세 곡 정도 수록하기로 했고. 그중에 타이틀이랑 다른 한 곡은 지금 믹싱까지 끝나서 거의 완성됐거든. 그런데 문제는 바로 요 녀석이야.”

장소원이 노트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메인 테마까지는 겨우 만들어 봤는데 여기서 더 진척이 안 되더라고.”

그녀가 설명을 이어갔다.

“멜로디 자체는… 언제 만들었더라? 작년 11월 중순이었나? 수능 날 즈음해서 눈이 내렸잖아.”

잘 알죠.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됐으니까.

장소원이 그때를 회상하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눈을 봤는데, 진짜 예쁜 거야. 낮인데 하늘은 어둑하고 하얀 것들이 소복소복 쌓이니까. 그거 보면서 생각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까 딱 꽂히더라고. 그 느낌 아니? 전기가 찌릿하면서 오싹한 느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멜로디를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이 바로 그거였으니까.

뭔가 통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다음 앨범 곡은 이거다 하고 메인 테마를 바로 썼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

“막히신 거네요.”

“맞아. 그러면 내가 왜 막혔을까?”

상대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이 멜로디는 산뜻하면서 서투른 느낌이 어울리니까요.”

“오, 너도 느꼈구나?”

장소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뭔가 깃들기 시작한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는데 알고 보니 진짜였구나,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에 반해 다른 녀석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중현이가 물었다.

“그게 무슨 얘기예요, 선배님?”

“리더가 설명해 봐.”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설명했다.

“선배님이 부른 멜로디는 세련된 느낌보다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가 더 어울리거든.”

“그게 어렵다는 거예요?”

“어렵지. 왜냐하면 전문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분들이 만져 주시는데 어설픈 느낌을 살리기 쉽겠어? 그분들이 곡을 만지는 순간, 그 곡은 엄청 세련되게 변할 텐데.”

쉽게 말해 약간 어설프고 풋풋한 분위기가 어울리는데 프로가 끼는 순간 그런 분위기를 살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너무 잘하니까.

내 설명에 동생들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때, 장소원이 말했다.

“리더 말대로야.”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아는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들한테 맡겼는데, 내가 원하는 느낌대로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너희를 부른 거야.”

그녀의 말은 이랬다.

자신이 만든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포기할 수 없었던 장소원은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주변 가수들도 수소문해 보고, 홍대를 방방곡곡 누비며 인디 밴드란 인디 밴드 공연도 다 들어 보고,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기도 했지만 이 멜로디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거였다.

‘할 일도 없어 보이니 심사위원으로는 네가 가라’는 대표님의 명령에 따라 연말 평가에 나갔을 때까지는.

“너네 편곡을 들으니까 삘이 쫙 왔지. 각자 보이스 컬러도 마음에 들고, 곡 해석 능력도 마음에 들었어.”

“저, 선배님.”

리혁이가 물었다.

“그 편곡을 이 사람이 했는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들으면 알아.”

“예?”

“프로듀서들이 전문적으로 만진 거랑 애들이 만진 거는 다르거든.”

그러면서 덧붙였다.

“오해할 수도 있는데 무시하는 말이 아니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느낌 차이가 있단 뜻이야. 아마추어는 그런 게 있거든. 돈 받고 하는 프로들은 시도하지 못하는 걸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하면 알려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우리도 대강 알아들었다.

이런저런 말을 듣긴 했지만, 결국 종합하자면 신곡 멜로디가 진척이 안 되던 차에 우리를 발견했단 이야기였다.

그날 왜 우리에게 명함을 주었던 것인지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뭐, 서론은 이쯤에서 끝내고.”

장소원이 손뼉을 치며 물었다.

“멜로디 어땠어?”

“좋았어요.”

“아니, 그런 거 말고. 각자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이 있었을 거 아니야. 아무 말이든 좋으니까 각자 하나씩 말해 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이윽고 비주가 먼저 운을 뗐다.

“저는 두 개의 선이 떠올랐어요.”

“선?”

“네, 선이 두 개가 있는데 각자 평행선이라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러니까 만날 듯하면서 못 만나는 느낌이요.”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네.”

장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핸드폰에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긴 손톱이 화면에 똑똑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동안 중현이가 입술을 열었다.

“랩하기는 어려운 비트 같았어요.”

“랩?”

“제가 래퍼라서요.”

“랩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야?”

“어… 아니요?”

중현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바꿨다.

“네, 랩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건방지게 느낄 수 있는 대답이긴 했지만, 시골 청년 같은 순박한 말투에 장소원이 웃었다.

“그래, 랩도 한번 고려해 보자. 노래는 어땠어?”

“선배님이 눈 내리는 걸 보고 썼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봄날에 벚꽃이 떨어지는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벚꽃?”

“네.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데 벚꽃 잎이 흩날릴 때.”

의외로 서정적인 구석이 있는 중현이었다.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보내자 눈이 마주친 중현이가 으쓱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본인이 말해 놓고 왜 뿌듯해하냐.

“그리고 다음은 우리 리영이?”

“리혁이요.”

“그래, 리현이.”

리혁이의 귀가 빨개지자 우리가 키득거렸다.

눈을 깜빡거리던 장소원이 물었다.

“참,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저, 리혁이요, 선배님. 서리혁.”

“미안, 미안. 헷갈렸어. 연말 평가 때 노래 제일 잘했던 친구 맞지?”

무표정해 보이지만 입꼬리가 금세 씰룩 올라간 것을 보니 기분 전환도 참 빠르다 싶다.

리혁이가 수첩을 꺼냈다.

아까 들을 때 뭔가를 빼곡하게 썼는지 그걸 읽어 내리는 리혁이.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저도 중현이 형이랑 느낌은 비슷했어요. 3월이나 4월 초에 어울리는 노래 같아요.”

“너희 다 비슷한 느낌 받았구나.”

장소원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본인은 겨울철에 눈을 보면서 예쁘다고 쓴 노래인데, 벌써 셋이나 되는 멤버들이 ‘이거 봄노래 같아요.’라고 말을 했으니 신기할 만도 하다.

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에 잠겼던 장소원이 막내를 불렀다.

“우리 잘생긴 애기는 어땠어?”

“저 애기 아닌데…….”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중딩이 중얼거리자, 모두 귀엽다는 듯 보았다.

지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라면요.”

“응.”

“좋아하는 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내가 모르는 뭔가 있나 싶어서 쳐다보자 지호가 발 빠르게 덧붙였다.

“생기면요.”

“그렇구나. 봄노래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들려주고 싶은.”

중얼거리며 메모를 하던 장소원이 마침내 나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멤버들과 내가 노래에서 받은 느낌은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공통점을 찾고 싶었다.

각자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했던 모든 말은 어딘가 일맥상통했다.

나무가 하나 있다고 치자.

각자 자기가 만지고 있는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나무가 뭔지는 말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고 싶었다.

입이 간질간질하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뭔가 잡힐 것 같은데.

내가 보고 있는 나무의 이름이 뭔지 안다면 작업할 때 정말 수월해질 텐데.

아!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두의 감상을 어우르는 한 단어.

-평행선상에 있어서 만날 듯하면서도 못 만나는 느낌이요.

-벚꽃 떨어지던 버스 정류장이 떠오르던데요.

-3월 말이나 4월 초에 어울리는 노래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들려주고 싶어여.

아이들이 말한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가던 내 생각이 마침내 나무의 이름을 발견한 것 같았다.

“저 역시 다른 친구들이랑 같은 의견이에요.”

“그래?”

뭔가 실망했다는 눈치의 장소원.

“그런데 멤버들이 말하고 있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응?”

“다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이걸 종합하면 결국 똑같은 주제가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게 뭔데?”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에게 내가 말했다.

“요즘 인터넷에 그런 말 많잖아요. 누구랑 누가 썸이 있다. 썸을 탄다.”

“계속해 봐.”

“아까 말한 걸 종합하면 봄철, 버스 정류장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그 사람은 나와 가까워질 듯하면서도 가까워지지 않은 사이고…….”

내가 생각한 결론이었다.

“그런 썸이 멜로디의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아, 그거네!”

어우. 선배님 눈알 튀어나오실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해답을 찾은 사람처럼 장소원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동생들은 ‘아……’ 하면서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멜로디 주제가 뭔지 찾고 있었는데 이제 알겠네.”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드냐고? 드는 정도가 아니고 정말 딱이야.”

신이 난 장소원이 말했다.

“제목도 이걸로 하면 되겠다. 뭐로 할까? 썸을 타다? 우리 사이? 비트윈? 으음…….”

선배님 천천히 가시면 안 될까요.

10억 년 동안 빨간불에서 기다리다가 마침내 신호가 바뀌자 광속으로 액셀을 밟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아이디어를 토해 내던 때, 리혁이가 손을 들었다.

“저 선배님.”

“그래, 리현이.”

“리혁이요.”

“아, 리혁이. 미안.”

“썸이 원래 영어니까, 영어로 썸씽(something)은 어떠세요?”

리혁이가 말하자,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다.

딱이다.

그렇게 우리가 같이 부르게 될 노래의 제목은 썸을 뜻하는 Something이 되어 버렸다.

제목이 정해지자 작업 회의는 급물살을 탔다.

원작자인 장소원도 적극적이지만 우리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연습생이지만 우리도 본업은 가수니까.

나 빼고도 편곡이 가능한 리혁이나 중현이가 있었기에 작사, 작곡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뭔가 그런 공감대가 깔려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나누는 그런 감정이 통했을 때의 신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참을 그렇게 토론하던 때였다.

꼬르륵-

우렁찬 위장 운동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중현이가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모두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곡 작업에 열중했는지 어느덧 2시,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내 정신 좀 봐. 너희 배 많이 고프겠네.”

“아뇨, 괜찮아요.”

“난 배고픈데. 너희 식사 생각해 둔 거 있어?”

내가 대답했다.

“혹시 몰라서 실장님한테 카드 받았거든요. 그걸로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 먹으면 될 것 같아요.”

“편의점으로 끼니가 되나.”

장소원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지?

늘씬한 체구 위로 벗어 두었던 와인색 코트가 올라간다. 모델처럼 우아하게 일어난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뭐 해?”

뒤이은 말에 우리는 환호했다.

“가자. 누나가 삼겹살 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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