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화
환상적인 삼겹살로 마무리한 첫날.
서로의 음악적 성향이 잘 맞아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작업은 띄엄띄엄 이뤄졌다.
각자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레슨이 있었고, 장소원 선배는 선배대로 곧 방영할 드라마 OST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한번 만나면 즐겁게 작업을 했다.
“한번 들어 보세요.”
작업실에 있는 어쿠스틱 기타.
어느덧 내 손에 익숙한 기타를 잡고 줄을 퉁긴다.
숙소에서 잠잘 때마다 구상한 멜로디 진행을 따라 내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처음에 동생들은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신기해했다.
“형, 이제는 기타까지 쳐요?”
“원래부터 칠 줄 알았어.”
“잊을 만하면 새로운 능력이 나타나네요.”
그랬던 동생들도 이제는 익숙한 듯 내 연주를 듣는다.
고개를 까딱이거나 리듬을 타거나.
장소원 역시 눈을 감고 내가 보충한 멜로디를 집중하며 듣는다.
연주가 끝나고 내가 물었다.
“이런 식으로 탑 라인 멜로디 진행하면 어떨까요?”
“괜찮을 것 같은데? 한번 줘 봐.”
이제 기타는 장소원에게 넘겨지고, 그녀는 내가 만든 멜로디를 곧바로 변형해서 연주했다.
당연히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좋았다.
과연 프로라고 할까.
곧바로 내 멜로디를 카피, 변형해서 연주하는 장소원을 볼 때면 정말 감탄이 나왔다.
얼마 동안 연주를 끝낸 장소원이 웃으며 물었다.
“어때? 이러면.”
“진짜 좋았어요.”
내가 말했다.
“선배님 노래 중에 선플라워랑 비슷한 느낌 같은데요.”
“맞아. 네가 만든 거에 그쪽 사운드를 조금 추가했어.”
“네. 확실히 심플하면서도 어쿠스틱한 게 어울리네요.”
“다시 한번 연주해 볼래?”
다시 기타를 넘겨받은 내가 연주를 시작한다.
우리가 이럴 때면 동생들은 마치 탁구 경기를 보는 관중들처럼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며 ‘오’ 했다가, 저쪽으로 돌리고 ‘오오’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곡 작업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마치 배를 만드는 작업처럼.
처음에는 뼈대만 있던 곳에 나무가 덧대어지고, 철판이 씌워지고 마침내는 깃대까지 올라오는.
Something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도 신선하네.
TJ 엔터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배웠던 곡 제작 과정과는 전혀 달랐다.
어찌 보면 개판.
그냥 모여서 동네 반상회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사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 멜로디를 만들고 고친다.
엄숙하기는커녕 장난스러운 분위기.
그런 까닭에 장점도 많았다.
유쾌한 분위기라 자기 아이디어를 말하는 데에 거리낌도 없고 재미도 있어서 계속해서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었다.
정말 즐거운 경험.
작업 자체가 재미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슨을 하다가 트레이너 쌤들에게 호되게 혼날 때면 화이 엔터 사옥으로 와서 작업을 통해 힐링을 받곤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할까.
어디선가 순풍이 불고 있었다는 것을.
* * *
물론 모든 것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곡을 만들고 작사 작업까지는 즐거웠지만, 녹음을 할 때가 되니 일정이 상당히 촉박했다.
화이 엔터에서 2월 초를 발매 기일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때가 유일한 고비긴 했다.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원하는 퀄리티가 안 나와서 분위기가 살짝 험해질 뻔하기도 했다.
지호 같은 경우는 호랑이 선생님처럼 변한 장소원의 리액션에 결국 눈물을 한바탕 쏟기도 했지.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성공적으로 녹음을 해냈다.
그리고 최종 버전을 들었을 때, 우리는 긴가민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별로였기 때문이다.
장소원이 웃으며 물었다.
“들어 보니까 생각보다 별로지?”
“네? 아뇨.”
“얼굴에 다 써 있어. 요놈들아.”
그녀가 설명해 주었다.
“이게 아직 믹싱이랑 마스터링이 안 끝나서 그래.”
“마스터링요?”
“간단히 말해 곡의 밸런스를 조정하는 작업이야. 엔지니어 분들이 미세한 사운드 차이를 잡아서 수정하는 거지. 큰 차이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너희가 최종 완성본을 들으면 알 거야.”
“아…….”
“기대해도 좋아.”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정말 몰라볼 만큼 달라져서 나올 테니까.”
* * *
2014년 2월.
Something이 담긴 장소원의 앨범 발매를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저녁시간대에 숙소에서 휴식할 수 있는 일요일이기에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마치 교도소 재소자들이 푹 쉬는 것 같은.
아니.
왜 자꾸 감옥이 떠오르는 걸까.
스마트폰 인터넷을 키면서 잡생각을 떨쳤다. 검색창에 ‘뉴블랙’을 입력하자 곧바로 결과가 떴다.
-장소원, 신규 앨범 ‘Wishful Thinking’ 발매 임박
-신인 ‘뉴블랙’과 협업한 ‘Something’
-장소원과 협업하는 신인 보이그룹 ‘뉴블랙’은 누구?
기사 자체는 많았지만 워낙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사실상 종합하면 3~4개 정도라고 할까.
대부분 화이 엔터나 우리 회사가 내보낸 홍보 자료들이었다.
댓글은 당연히 없다.
있어 봐야 ‘소원 언니, 화이팅’ 같은 댓글이 있을락 말락 한다고 할까.
뉴블랙이라는 이름을 샅샅이 훑어보다가 별 내용이 없던 터라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잘됐으면 좋겠다.
매일 밤마다 멜로디를 어찌 꾸밀지 고민하며 정성을 기울인 만큼, 노래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만, 신인 주제에 성공을 바라는 건 욕심이 큰 거려나.
아니 그래도 장소원 선배 네임 밸류가 있는데 잘될 수도?
생각이 복잡하다.
복권 한 장 안 사고 1등 당첨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막상 발매를 앞두니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는 마음이었다.
사실 실망할까 봐 내가 무의식적으로 방어 기제를 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몰라.
스마트폰을 끄면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멍 때리는 동안, 바로 맞닿은 부엌에서 달콤하고 맛 좋은 냄새가 풍겼다.
닭갈비.
앞치마를 맨 비주가 주걱으로 열심히 프라이팬을 볶을 때마다 냄새가 풍겼다.
“냄새 좋다.”
발로 걸레를 밀던 막내가 히죽 웃었다.
“좋져?”
“응, 엄청 좋다.”
“울 아빠가 그러는데 창고에 보관한 닭 중에서 제일 좋은 걸로 보내 준 거래여. 형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비주가 볶는 닭갈비의 정체는 얼마 전 지호네 아버님이 보내 주신 거였다.
냉장고가 꽉 찰 정도로 많은 양.
가슴살, 날개 등 부위별로 가득한 닭고기는 앞으로 1년은 먹어야지 싶을 정도로 많았다.
“지호야.”
“네?”
“아버님이 뭐 하신다고 했지?”
“치킨집이여.”
“요새 자영업 힘드실 텐데, 이렇게 많이 보내 주셔도 괜찮으셔?”
“몰라여.”
막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빠가 알아서 하겠져.”
철딱서니 없는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철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 고생한다고 열심히 치킨 튀기고 계실 텐데.
지호네 부모님도 지극정성이다.
위에 누나만 셋이고 자기가 혼자 아들이라고 하니 짐작이 가지 않는가.
명품 로고가 붙은 티셔츠와 반바지.
손목에 걸친 고급 시계.
그걸 입은 채로 걸레를 미는 막내였다.
탁!
소파에 누운 내 얼굴 위로 뭔가 날아왔다.
“어푸푸-”
깜짝 놀라 얼굴에 덮인 것을 확인하니 내 속옷이다.
“뭐야? 누구야?”
“누구긴 누구겠어요.”
“리혁이니?”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이봐요, 아저씨.”
산더미 같은 빨래 옆에 앉아 있는 리혁이가 바닥을 탁탁 쳤다.
“빨래 개다가 왜 갑자기 쉬어요? 빈둥대지 말고 이리 와서 개요.”
“개고 있잖아.”
“그게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거야.”
소파에 누운 채, 왼손으로 빨래를 쏙 집어서 위로 올린다.
그럼 오른손으로 붙잡고.
그다음에 가볍게 한번 털듯이 접으면 완성.
리혁이는 잠시 말문을 잃은 듯했다.
“그 한 번 개는 게, 정말 개는 거라고 생각하, 아씨, 황당해서 말이 꼬이네. 그걸 지금 옷이라고 개는 거예요?”
“응.”
“집안일을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많이 했지.”
“그런데 빨래를 왜 그렇게 개요?”
“중요한 일이 아니면 뭐든 대강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 어차피 옷을 개면 뭐해. 다시 입을 거 아냐?”
나는 발가락으로 또 다른 빨래를 쏙 집었다.
“극혐이다, 진짜.”
“세상에는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는 거야, 리혁아.”
“예?”
“노래를 연습하면 노래를 잘하게 되고, 춤을 연습하면 춤이 늘지?”
“그렇죠.”
“그렇게 실력이 늘면 무대도 잘하고, 무대를 잘하면 팬들도 늘어나고. 팬들이 늘어나면 우리 인기도 높아지고. 그렇지?”
“그런데요?”
“노래를 연습하면 노래 잘하는 아이돌이 되지만, 빨래를 열심히 개면 빨래 잘 개는 아이돌이 되는 거지. 그리고 그건 우리 일에 도움도 안 되고. 그러니까 선택과 집중이다 이 말이지.”
내 말의 논리 구조를 따라가던 리혁이가 결론을 내렸다.
“그냥 빨래 개기 싫다는 거죠?”
“정답이야.”
“연습실에 있을 때랑 평상시랑 완전 다르구먼.”
리혁이는 내가 개판으로 갠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개고 있었다.
빨래를 갤 때도 1mm의 오차도 없이 장인처럼 개고, 욕실 청소를 할 때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닦아 내는.
참 힘들게 산다니까.
기지개를 키면서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완성되어 가는 닭갈비를 맛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다 리혁이가 개기 까다로운 옷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갤지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줘 봐.”
“네?”
정확히 3초.
훈련소 시절, 포상 점수를 받으려고 옷가지를 반듯하게 갰던 기억을 떠올리며 옷을 개었다.
그리고 건네주었다.
“……어?”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리혁이에게 내가 웃어 보였다.
뒤에서 ‘뭐야, 이거 어떻게 한 거야?’ 하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내가 갠 옷을 경쟁사 제품 보듯 연구하는 리혁이와 걸레를 설렁설렁 미는 막내를 지나 부엌으로 갔다.
“다 되어 가?”
“형, 마침 잘 왔어요.”
비주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제 다 돼서 간만 보면 되거든요. 한번 먹어 볼래요?”
“좋지.”
내가 흔쾌히 말하자, 비주가 주걱을 건네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맛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자, 비주가 불을 줄였다.
“지호야.”
“넹?”
“가서 중현이 좀 깨우고 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등장한 중현이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거실에 핀 상에 둘러앉았다.
식탁은 없었다.
아니, 좁아서 놓을 수가 없었지.
프라이팬에 있는 닭갈비를 먹으며 우리는 맛에 감탄했다.
“어때?”
요리사의 물음에 다들 칭찬하기 바쁘다.
뿌듯해하는 비주와 뿌듯해하는 재료 제공자의 아들.
밥을 먹으면서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우리의 화제는 2월 달의 행사들로 옮겨갔다.
“이야, 우리 막내가 중학교 졸업이라니.”
비주가 감탄했다.
“시간 진짜 빠르다.”
“진짜 처음 만났을 때, 내 허리에 올까 말까 했는데 많이 컸네.”
“과장하지 마요, 형. 쟤 그때 이미 엄청 컸다니까요.”
“맞아여. 그때 중현이 형도 덜 컸어여.”
“그래 봐야 2~3cm 차이지.”
나는 모르는 과거의 이야기들이라 조용히 닭갈비를 먹었다.
17인데 벌써 키가 175인 우리 막내.
얼굴만 앳되지 몸은 이미 꽤나 성장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 지호가 리혁이보다 더 크네.”
“아, 비주 형!”
밥맛 떨어진다는 듯 질색하는 리혁이를 보며 모두 웃었다.
그런데 진짜다.
체격 때문인지 이제 미세하게 더 커 보이긴 하다.
내가 물었다.
“둘이 키가 몇인데?”
“저 175요.”
“저 어제 보건소 가서 재 봤는데 174.6이래요.”
“응?”
중현이가 닭갈비를 흡입하다 멈췄다.
“아닌데, 지호가 더 큰데.”
“너 175 아니지?”
내 물음에 리혁이가 헛기침을 한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듯 막내가 물었다.
“그럼 일어나서 재 봐여, 형.”
“싫어.”
“그럼 제가 더 큰 걸로 알겠습니다.”
“어휴, 뭘 키 가지고 싸우냐. 그치, 중현아?”
내가 주먹을 내밀자 중현이가 씩 웃으며 부딪친다.
지호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당장이라도 쇠스랑을 들고 봉기를 일으킬 것 같은 표정이었다.
비주가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진짜 너무한다, 김중현.”
“응, 최단신.”
“닭갈비 먹기 싫으세요, 동기님?”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사이버 대학을 들어간다고 했던가.
군대 때문에 등록한 학교였다.
두 동갑내기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지호한테 말을 걸었다.
“맞다, 지호야.”
“네?”
“너 졸업 선물로 뭐 줄까?”
“저여?”
지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물은 말고 우리 노래나 잘됐으면 좋겠어여.”
“나도 그래.”
“이제 내일 음원 나오는데 잘되겠져?”
“글쎄.”
어느새 조용해진 녀석들이 내 입만 바라보고 있다.
무슨 점집 같다.
이런 건 나 말고 조규환 이사님한테 물어봐야 되지 않나.
“마음을 비워야지.”
“그게 안 돼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자꾸 보상 심리가 생겨서요.”
“잘되고 안 되고가 우리 마음에 달린 게 아니잖아. 장소원 선배 노래 중에 가장 잘됐던 게 선플라워인데 그게 30위대였나? 그랬을걸. 솔직히 차트 인만 해도 대성공인 거야.”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다.
음원 순위는 스트리밍을 돌려야 올라가는 건데 우리고 장소원 선배님이고 24시간 돌려 줄 팬덤이 없으니까.
타이틀 곡은 모르겠지만 트랙 리스트 3번인 우리 노래는 어렵지 않을까.
뭐.
갑작스런 행운이 생긴다면 모르지만.
“어?”
밥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보던 막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뭐야?”
“왜 그래?”
“형들, 이거 봐 봐여.”
지호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여 줬다.
우리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음원 발매를 하루 앞둔 오늘, 연예계에 핵폭탄 같은 이슈가 터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