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화 (2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0화

레몬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장소원과의 콜라보곡 Something이 발매를 앞둔 가운데, 레몬 엔터의 홍보팀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뮤직 비디오에 우리 애들 나오나?”

“어떤 거요, 썸씽이요? 그거 타이틀곡이 아니라서 없잖아요.”

“아쉽네.”

“어차피 만들었어도 자기네 애들만 내보냈을걸요.”

“그렇겠지. 승희 씨?”

“……예?”

칸막이 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빼꼼 내민 사람은 며칠을 밤을 샌 듯 눈이 퀭했다.

“부르셨어요?”

“회사 미튜브에 올릴 동영상 제작은 잘되고 있어?”

“예.”

그녀가 답했다.

“그, 지호한테 받은 장소원이랑 곡 작업하는 영상, 어느 정도 편집은 대부분 끝냈는데 이제 자막만 입히면 돼요.”

“오케이. 되는 대로 업로드해 줘.”

홍보팀장이 시선을 돌렸다.

“애들 그룹 공식 트위터랑 SNS 계정은 만들었지?”

“예, 만들었어요.”

“일단은 음원 관련 홍보 문구만 싣고, 반응이 좀 괜찮다 싶으면 그동안 애들 연습 찍은 동영상도 올리자고. 노래 듣고 기웃거리는 사람들 입덕시킬 수도 있으니까.”

“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그것이 바로 레몬 엔터 홍보팀이 내세우는 철학이었다.

“언론 쪽에 뿌릴 소스는 다 준비됐고.”

“팀장님, 저희만 뿌린다고 될까요?”

“왜?”

“아뇨. 얘기 들어보니까 화이 쪽에서는 아무런 홍보가 없대요. 오히려 타이틀도 아닌 3번 트랙 가지고 홍보하는 우리가 더 열정적이라니까요.”

“왜 그러지.”

“거기 이상한 회사에요, 진짜.”

“맞아요. 얼마 전 술자리에서 기자들이 그러던데요.”

“뭐라고요?”

“화이 엔터는 대처를 진짜 못한대요. 다른 회사는 뭐가 터지면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여긴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요. 기자들이 뭘 터뜨려도 밍기적거리다가 사태 다 악화되고 나서 나온다고.”

“슈가피쉬 때도 그러다 망하지 않았나.”

“그죠.”

“근데 뭐 이해는 가는 게 거기 메인은 걸스온탑이잖아요. 이번에 장소원도 앨범 투자액 줄어서 싱글로 내는 거라던데.”

금세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홍보팀장이 손뼉을 쳤다.

“자자, 일단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내일 오전부터 뿌릴 언론 보도 자료를…….”

“팀장님!”

인터넷을 모니터링하던 홍보팀 직원이 외쳤다.

“팀장님, 저희 아무래도 내일 홍보 못 할 것 같아요.”

“뭐?”

“인터넷 봐 보세요.”

“인터넷 어디?”

“어디든지요.”

어디든지?

뜬구름 잡는 소리였지만 워낙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라 팀장은 군말 없이 스마트폰을 켰다.

연예 뉴스란.

그곳에 있는 메인 뉴스를 보는 순간,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화이 엔터가 왜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한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못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 보이그룹 ‘식스티 세컨즈’ 막말 녹취록 ‘충격’

-녹취록서 멤버 주완과 ‘걸스온탑’ 주하나 열애 밝혀져 충격

-KM 엔터 측 묵묵부답 ‘상황을 파악하는 중’

역대급 대형 사고가 터졌다.

*   *   *

-식스티 세컨즈 ‘막말’ 녹취록 파문.. 소속사 “사실관계 파악 중”

[인기 보이그룹 ‘식스티 세컨즈’가 사상 초유의 논란에 휩싸였다.

오늘 오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막말 녹취록 때문이다. 자신을 익명의 관계자라고 밝힌 닉네임 ‘왕밤방빵’은 게시판에 1분가량이나 되는 녹취록을 올렸다.

녹취록은 식스티 세컨즈가 방송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녹음된 것으로 보인다. 멤버들이 동료 연예인에 대한 뒷담화를 하거나, 음담패설과 욕설을 담고 있는 해당 녹취록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현재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에 대해 네티즌은 ‘헐 식스티 세컨즈 인성 미쳤네’, ‘사람이 할 말이 아닌 듯’, ‘애들이 인성이 덜 됐네’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식스티 세컨즈가 출연하기로 한 모든 방송 게시판은 현재 하차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식스티 세컨즈의 소속사 KM 엔터테인먼트 측은 “현재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중에 있으며 해당 녹취록이 정말 식스티 세컨즈 멤버들의 녹취록인지 확실하지 않다”며 “근거 없는 악플에 대해서 법적으로 조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5,000개 가까이 달린 댓글창은 살벌했다.

-미친새끼들 내가 듣다가 귀가 썩어들어가는 줄 알았네

-사실관계 파악은 무슨 ㅋㅋㅋㅋㅋㅋ 멤버들 실명으로 부르는 목소리 다 나왔는데 발뺌이야 ㅋㅋㅋ 도랐나

-지금 하차가 문제가 아님. 이런 새끼들은 연예계에서 퇴출이 답

-나 식티 4년 동안 팬이었는데 시발

-가만히 있던 주하나만 존나 피 봤네 ㅋㅋㅋㅋ 얘네 녹취록 하나로 대체 몇 명한테 피해주는 거냐 진짜

사건 개요는 단순했다.

식스티 세컨즈.

잘나가는 1군 보이그룹.

4대 기획사인 KM 엔터가 기획한 식스티 세컨즈는 독특한 음악성과 힙한 느낌을 극대화한 그룹이다.

아이돌 제조기라는 별명은 지닌 프로듀서 허강민이 직접 키워 낸 그룹인 만큼 데뷔 초기부터 큰 화제를 몰았고, TNT와 함께 보이그룹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는.

문제는 이들이 차량에서 내뱉은 욕설, 음담패설, 뒷담화 등이 유출됐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음?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상상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우리 모두 첫 대사부터 버티지 못하고 꺼 버렸다.

차마 입으로 담기 어려운 내용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식스티 세컨즈는 천하에 둘도 없는 대역죄인이 되어 활동을 중단했고 팬덤은 아예 박살이 났다.

그나마 멤버 한 명은 낮은 수위의 발언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인터넷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라며 도매급으로 묶이는 중이다.

1분마다 수십 건씩 쏟아지는 기사와 살벌한 댓글들을 볼 때마다 제3자인 우리가 무서워질 지경이다.

숙소에서 기사를 보던 우리는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너희가 아직 안 경험해 봐서 그래. 차에서 잠깐 한 얘기가 다음 날 촬영장 전체에 도는 곳이 연예계야.’

이런 사태를 미리 경고한 윤석환의 혜안이었다.

“실장님이 혼냈던 게 진짜였구나.”

“큰일 날 뻔했네. 우리도 나중에 이럴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리혁이가 대꾸했다.

“우리가 아무리 막말을 해도 이렇게 더러울 것 같아요? 텍스트로만 봐도 현기증이 나는데.”

“하긴.”

내가 대답했다.

“우리들이 전반적으로 동년배들 중에 말이 고운 편이긴 하지.”

“형, 요즘 사람은 동년배란 말 안 써요.”

아.

“진짜. 우주 형. 우리 아니었으면 큰일 났다.”

“맞아여. 늙었다고 아무도 안 놀아 줬을 텐데, 이렇게 어린 사람들이 잘도 놀아 주고.”

동생들의 놀림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스마트폰의 기사를 읽었다.

망했네.

그냥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

수능 날에 이어서 이번에도 신의 농간인 걸까.

앨범 발매일 전날 이런 대형 사고가 터지다니.

홍보팀에서 열심히 만든 자료들은 지금쯤 아마 분쇄기에 갈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앨범 홍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치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망할 거, 핑계라도 얻은 셈이니까.

*   *   *

앨범 발매 당일.

식스티 세컨즈 사건은 여전히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식스티 세컨즈 녹취록

-주완 백유진

-주완 주하나

-백유진 주하나

어째 녹취록 내용보다 식스티 세컨즈 멤버 주완과 열애설이 터진 걸그룹 멤버들에게 시선이 가는 느낌이었다.

언론과 네티즌의 관심은 이상한 쪽으로 돌아갔다.

-‘팬들과 연애한다’는 주하나 과거 발언 조명

-백유진 측 ‘주완과의 열애? NO. 법적으로 조치할 것’

-컴백 준비하는 걸스온탑 적신호 켜지나

주완이 사귀었다고 언급한 백유진과 주하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 것이다.

언론은 걸그룹 멤버들의 사생활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때다 싶어 악의적으로 편집된 자료들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일부는 더러운 루머를 퍼뜨리다가 법적으로 조치를 한다는 말에 게시글을 지우고 있었다.

거기다 더 자극적인 뒷내용이 있다는 루머에 ‘녹취록 풀버전’이 검색어에 오르는 등 개판이 따로 없었다.

이쯤 되니 네티즌들 사이에서 ‘올린 놈도 문제 아니냐’는 말이 나올 때.

얼마 안 가 이 모든 혼란을 일으킨 장본인의 정체가 드러났다.

원한을 품은 매니저라는 등, 코디라는 등 이야기가 돌았지만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차량 정비 기사.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스케줄이 끝난 후 차량에 이상을 발견한 매니저는 정비를 맡겼다.

척 보기에도 연예인 차량 같아 보였던 SUV를 수리하던 정비소 직원은 호기심에 블랙박스 메모리를 가져가 복사를 했다.

그리고 그걸 들어 보던 직원이 놀라서 친구들에게 공유한 게 화근이었다.

누군가 한 명이 그걸 인터넷 커뮤니티에 재미로 올린 것이다.

정비소 직원이 자수하면서 밝혀진 사실이었다.

“와, 진짜 장소원 선배 관련 기사는 하나도 볼 수가 없네.”

1면부터 12면까지 식스티 세컨즈 관련 기사로 도배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음원 사이트 망고로 바꿨다.

-2월 3일

바야흐로 5분 뒤인 오후 12시에 장소원의 앨범이 공개될 예정이었다.

1분 전.

한참 동안 새로 고침을 하던 우리는 노래가 뜨자마자 다운로드를 눌렀다.

장소원의 싱글앨범 Wishful Thinking 수록곡 3곡을 모두 다운받은 우리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Something.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앨범 아트였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두 남녀의 뒷모습.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낀 모습이었다.

전반적으로 온화한 베이지색 파스텔톤 배경.

남녀의 시선은 색연필로 그린 듯한 파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장소원X뉴블랙 - Something]

 작곡 : 장소원, 우주 

 작사 : 장소원

작곡에 붙은 내 이름을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진짜 우리 노래구나.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나오는 순간 우리는 감탄했다.

믹싱과 마스터링이 뭐 얼마나 중요하겠냐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녹음하고 들었던 최종 버전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

사람 얼굴에서 미세한 차이가 그야말로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듯이 Something은 완벽하게 세련된 곡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새삼스레 엔지니어 분들의 대단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음미했다.

정말 좋았다.

듣고 있으면 간질간질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풋풋하면서도 따뜻하다.

그것이 내가 받은 감상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 손을 잡아

너와 내 사이를 좁혀갈 거야

장소원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오는 후렴구를 들으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노래 퀄 진짜 잘 뽑았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홀린 사람처럼 듣고 있었다.

분명 우리 목소리인데도 믿기지가 않는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그간의 작업이 떠올라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우리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는 거니까.

식스티 세컨즈 이슈가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지금, 우리는 뉴블랙의 첫 노래가 나왔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기로 결정했다.

앨범 발매일.

타이틀곡 ‘소년, 그리고 소녀’가 90위권에 간신히 발을 걸쳤지만, 다른 곡은 차트 인에 실패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실망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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