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화 (2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1화

6장. 뜰 노래는 뜬다

음원 발매 후 일주일.

평소처럼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는 2층 녹음실에 앉아 조규환 이사에게 레슨을 받는 중이었다.

쉬는 시간.

커피를 들고 온 조규환 이사가 날 보며 웃는다.

“어째 표정에 힘이 없네.”

“네?”

“노래 성적이 생각보다 별로 안 나와서 그래?”

“아니에요.”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마음속으론 과정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과에 집중하게 된다.

계속된 차트 아웃.

어쩌면 이런 결과가 의미하는 건 우리 노래가 별로라는 뜻이 아닐까. 그럼 우리 노력은 잘못되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요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내 기분을 알겠다는 듯 그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어진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너희 노래는 뜰 거니까.”

“예?”

“너희 노래, 뜰 것 같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비웃었겠지만 이 사람이 말을 하니 무게감이 달라진다.

조규환.

300곡 가까운 곡을 소유한 저작권자이자 레몬 엔터의 마이다스의 손.

그랬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구에 DTD라는 말이 있는데. 들어봤니?”

“아뇨.”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이야.”

조규환 이사가 말했다.

“가요계도 비슷해. 뜰 노래는 뜨게 되어 있어. 그게 이 바닥 순리고 내가 여태까지 경험한 사실이야.”

“말씀은 감사하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단순히 직감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작곡가가 설명을 이어 갔다.

“노래 자체가 좋아.”

“그래요?”

“응, 잘 만들었어.”

왠지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듀엣 파트 분배도 잘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노래 색깔이 좋아. 멜로디도 산뜻하고 미디엄 템포라서 다가올 봄 시즌 송으로도 손색이 없고. 무엇보다 지금 차트가 무주공산이거든.”

“무주공산이요?”

“팬덤 화력이 끝내주는 식스티 세컨즈가 고꾸라졌잖아. 걔네가 줄 세우기 하던 곡만 10곡인데.”

“아…….”

“걸스온탑도 주춤하고 있고. TNT가 곧 컴백하긴 하는데 걔네는 애초에 논외로 친다면, 그 외에는 별다른 적수가 없어. 잘만 하면 빈집 털이가 가능하다는 말이지.”

스마트폰으로 차트를 훑어보던 조규환 이사가 말했다.

“내가 봤을 때는 노래도 좋고, 뜰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 있어. 여기에, 적당한 계기 하나만 있으면 좋을 텐데…….”

“적당한 계기.”

그 말을 읊조리던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 계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응?”

“제가 뭘 하면….”

말을 하기도 전에 조 이사가 웃었다. 그러더니 다음에는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귀여워서.”

잘생겼다는 말은 수두룩하게 들었어도 귀엽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걸 네가 왜 고민을 해?”

“예?”

“네가 리더라서 자꾸 팀이 어떻게 하면 잘될지 고민하는 건 아는데, 너희 본업은 연예인이야.”

“아…….”

“기획사가 왜 있겠어. 너희 다른 거 다 생각 말고 연습만 하라고 있는 건데, 그것까지 네가 해 버리면 우린 먹고살 수가 없지.”

기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지금 윤 실장님이 방송국 여기저기 다니면서 너희 노래 영업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요?”

“요즘 얼굴이 뜸하다 했지?”

방송국에 가서 고개를 조아리면서 우리 노래 좀 틀어달라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을 윤석환 씨의 모습이 상상된다.

가뜩이나 허리 디스크라서 허리 굽히면 아플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면서 조규환 이사가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너희는 그냥 날갯짓만 하면 돼. 날개는 우리가 달아 줄 테니까.”

*   *   *

윤석환 실장의 발품 팔이 덕분일까.

가끔 라디오 선곡으로 Something이 흘러나왔고, 그럴 때면 100위권으로 잠시 진입할 때도 있긴 했다.

전반적으로 낮은 성적이 아쉽긴 했지만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의 인지도가 올랐으니까.

회사 미튜브 계정으로 올라온 우리 안무 영상이나 연말 평가 연습 영상, 장소원과 콜라보했던 작업 영상 등의 조회수가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레몬 엔터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누른 것이긴 하지만 가끔 Something을 듣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 봐야 세 자릿수 될까 말까 하지만.

뭐라고 할까.

여행지에서 일부러 남들이 안 가는 골목들만 찾아 맛집을 찾는 분들이라고 해야 되나.

-썸씽 잘 들었어요!! 뉴블랙 응원함!

-노래 듣고 궁금해서 검색했는데 ㅋㅋ 다들 잘생겼당

-한번 지켜볼게요 ㅋ

고작 5~6개 남짓한 댓글이지만 우리에겐 큰 힘이었다.

연습이 힘들 때면 그런 댓글을 보면서 힐링하는 게 요즘 들어 새롭게 생긴 습관이었다.

물론 가장 큰 소득은 따로 있었다.

나 [할머니, 손자 노래 나온 거 어때?]

킹갓김덕순 [좋드만]

킹갓김덕순 [카세트테잎있음 보내라 가게서 틀게]

나 [요즘에 테이프가 어딨어? 다 디지털이지]

나 [아무튼 좀만 기다려 봐]

나 [좀 있으면 돈벼락이 올지도 몰라 ^ㅇ^]

킹갓김덕순 [대단하셔요]

우리 할머니가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는데?

킹갓김덕순 [라고 헐줄알았냐 옘병할놈]

킹갓김덕순 [헛물키지말고 연습이나 피똥싸게 혀]

욕설 가득한 답장을 보고 나서야 편해지는 내 마음을 보니 아무래도 나도 정상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말만 이럴 뿐이지.

할머니가 주변에 얼마나 자랑하고 다녔을지는 눈에 훤했다.

‘우리 손자가 가수여! 아이돌 가수! 이번에 노래도 나왔어!’하면서 홍보하고 다닐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여태까지 아무 결과물도 못 냈는데.

손자만 바라보던 할머니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안겨 준 기분이라 좋다.

“형.”

비주가 옆에서 나를 쿡 찔렀다.

“응?”

“지호가 손 흔들어 달래요.”

“아.”

나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녀 틈바귀 속에서 우리 막내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2월 13일.

발렌타인을 하루 앞둔 오늘은 바로 지호의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   *   *

“쟤네들 뭐야?”

“연예인이래요. 연예인.”

“TV에 나와?”

“엄마, 저 사람들은 연예인 아니고 연습생이야. 회사에서 일하는 인턴 같은 사람들.”

“우리 수연이 별걸 다 아네.”

“엄마도 참.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다 알거든?”

“참 잘생겼네.”

“가운데 있는 애, 정말 착실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잘생겼는데 공부도 잘하게 생겼네.”

예, 접니다. 어머님.

“당신도 참. 딴따라가 딴따라지, 무슨 공부를 잘해?”

“아니, 생긴 게 그렇다는 말이지.”

“그래도 애들이 날티가 안 나서 좋네요. 연예인이면 껄렁껄렁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죄다 순하게 생겼어.”

여기저기서 우리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린 못 들은 척하면서 여유로운 몸짓으로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사실 다 듣고 있었다.

‘잘생겼다’나 ‘귀엽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광대가 씰룩거린다.

아, 행복해.

아이 러브 관심. 위 러브 관심.

“진짜 회사 바깥으로 나오니까 좀 대접받는 것 같네.”

“맞아요.”

비주가 대답했다.

“잘생겼다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니까요.”

“네가?”

“직원분들이 저 정도면 연예계에 깔린 얼굴이래요.”

“그 사람들은 거울도 안 보고 사나.”

그나저나 우리 막내 참 잘생겼네.

수백 명이 넘는 강당에서 얘 얼굴만 보인다.

지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여학생들도 한가득이었다.

가끔 지호가 손을 흔들 때마다 우리 쪽을 흘깃거리곤 했는데,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무슨 말을 소곤거리긴 했다.

뭐, 나쁜 말은 아니겠지.

반면 남학생들은 그런 여학생들의 반응을 보다가 우리를 흘깃 보고는 코웃음을 치곤 했다.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저 나잇대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게 또 눈에 훤히 보이기도 했고.

애들 진짜 애기애기하네.

피부도 뽀얗고 생기발랄한 분위기가 좋았다.

“역시 젊은 게 최고야.”

“또 늙은이 같은 소리한다.”

핀잔을 주던 리혁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지호네 부모님 왔으니까, 좀 있다 인사하러 가요.”

“어디?”

“저기 여자 네 명 있는 팀이요.”

“와.”

중현이의 감탄사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누나만 셋이라고 했던가.

풍채가 당당한 중년 사내와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 여성, 그리고 모델 같은 포스를 자랑하는 20대 여자 셋이었다.

유전자의 힘은 위대하구나.

미남미녀로 가득한 지호네 가족을 흘깃거리는 시선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지호 아버님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대기업 임원의 느낌을 풍기는 데다가 온몸을 명품 정장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지호네 아버님 말이야.”

“네?”

“치킨집 사장님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내 질문에 비주는 어색하게 웃었다.

“사장님이긴 하죠. 왜요?”

“느낌이 좀 대기업 임원 같다고 해야 되나. 지난번에 연말 평가 때는 안 오셔서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미지가 있었거든. 근데 실제로 보니까 TJ 엔터에서 박태준 회장님 봤을 때랑 비슷해.”

“비주 형.”

리혁이가 끼어들었다.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그냥 말해요.”

“뭘?”

“지호네 아버님 치킨 프랜차이즈 회장님이에요, 형.”

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비주가 검색창에 왕현탁이라는 이름을 입력하고는 보여주었다.

-57년생 기업인.

-호호치킨 회장.

호호치킨이라면 3대 치킨 프랜차이즈 중 하나 아닌가.

“…….”

어쩐지 지호가 쓰는 물건들 값이 범상치 않더라니.

치킨집 하신다는 게 그 치킨집이 아니었구나.

황당해하는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의 얼굴에 ‘우리도 처음에 그랬어요.’ 같은 공감의 표정이 떠올랐다.

진짜 부잣집 아들내미였구나.

인생에서 준재벌급 부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지호네 아버님을 신기하게 바라볼 때였다.

웅성웅성.

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다른 쪽으로 굴러갔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도 그걸 따라 움직였다.

강당 입구.

어디선가 들리는 셔터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카메라 떼가 등장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얼굴이었다.

“저쪽을 깜빡하고 있었네.”

“맞네. 지호랑 같은 학교였죠?”

걸스온탑의 막내 길채경.

지호에게 시비를 건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진짜 참하게 생겼네.”

“쟤가 걔잖아. 학교 올 때마다 우리 아들내미가 신이 나 가지고 얘기를 그렇게 한다니까.”

“여우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이쁘네. 우리 딸내미랑 닮았어.”

“쟤가 훨씬 이쁘지. 예서는 당신 닮아서 말상이야.”

“당신은 웬만하면 좀 입 좀 다물어요. 말할 때마다 열 받으니까.”

사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만큼 길채경의 외모는 뛰어났다.

선이 곱고 참하게 예뻐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인상.

걸음을 걷던 길채경이 우리에게 손을 드는 지호를 흘깃 보더니, 우리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미소였다.

“지호 옆자리에 앉는데요?”

“뭐?”

“자리가 넘치는데 왜 굳이 저리로……?”

뭐야. 뭔 속셈이야.

*   *   *

길채경은 몹시 불쾌했다.

논란이 터졌을 때 주완의 여친으로 지목된 주하나에게 쏠린 관심 때문이었다.

기자들이 모인 것에 들뜬 것도 잠시.

질문 대부분이 ‘하나 씨는 지금 어떤가요?’, ‘심경이 어때요?’ 같은 불쾌하기 그지없는 것뿐이었다.

‘내 졸업식에 관해 물어보라고.’

적어도 이날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는가.

논란 때문에 언니들이 졸업식에 못 온다는 사실도 열이 받고, 기자들이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왕지호가 형들과 행복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제일 싫었다.

‘꼴 보기 싫어.’

뭐가 즐겁다고 웃는 거야?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길채경은 일부러 왕지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엿 좀 먹여 줘야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같은 반 학생들에게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지은이랑 영선이, 안녕.”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본 사이.

하지만 같은 반 연예인이 자기들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는지 상대방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덕분에 길채경은 쉽게 친근한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런 애들은 껌이지.’

연예계 생활을 중1 때부터 한 길채경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아이돌에 환상을 지닌 또래 친구들을 순식간에 포섭한 길채경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지호도 안녕. 되게 오랜만이다.”

“응, 오랜만이네.”

“우리 회사에서 보고 또 보네? 여기서 다시 보니까 신기하다.”

그 말에 듣던 이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대박. 둘이 같은 회사야?”

“아니.”

“그런데 둘이 회사에서 어떻게 만난 거야?”

길채경이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

“지호가 이번에 우리 소속사 언니한테 곡 받으러 왔거든.”

엄밀히 말해 콜라보였지만 여기서 반박하면 왕지호만 없어 보일 뿐이다.

길채경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참, 노래도 나왔지, 아마?”

“진짜? 지호야, 우리한테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좀 부끄러워서…….”

하지만 길채경의 공작은 별로 효과가 없는 듯했다.

조금 얼굴을 붉혀야 할 지호가 강아지처럼 헤헤 웃고 있는 것이다.

“노래 뭐야? 아니, 그룹명 뭐로 나온 거야?”

“아직 유명하지도 않아서 좀 밝히기가…….”

듣고 있던 길채경이 낚아채듯이 대답했다.

“뉴블랙이야.”

“뉴블랙?”

“맞지, 지호야?”

이제 ‘누구지?’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할 때였다.

그러나 상황은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

뉴블랙이라는 말에 잠시 주변의 공기가 멈춘 듯했다.

‘뭐지?’

알 수 없는 적막과 함께 수군거리는 소리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뉴블랙이라고?”

곧이어 강당 전체로 퍼져나가는 수군거림 속에서 길채경은 멍했다.

‘뭐지?’

뭘까.

본의 아니게 거대한 홍보를 해 준 듯한 이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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