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화 (2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화

우리는 길채경이 지호 옆에 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꿍꿍이가 뭐지?

지호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활달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등을 지고 있는 터라 지호의 표정은 안 보였다.

우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길채경이 뭐라고 하자 웅성거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진 것처럼 물결이 사방으로 쫙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향하는 시선들.

“왜 쳐다보지?”

“깜짝이야. 왜 이러는 거야?”

당황하는 애들과 달리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길채경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지호를 디스하려다가 실패했다는 것.

우리나 지호를 디스하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인지도 차이밖에 없을 텐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일 거고.

그런 추론이 완성되자 리혁이를 불렀다.

“리혁아.”

“네?”

“검색창에 우리 이름 검색 좀 해 줘.”

“아저씨는 손이 없어요?”

스마트폰을 꺼내든 리혁이가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음?”

검색창에 뉴블랙을 검색한 리혁이가 눈썹을 모으더니 기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부릅뜬 눈.

지켜보던 비주와 중현이도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나와 달리 그 둘은 심상치 않은 반응에 긴장한 듯했다.

“리혁아, 왜 그래?”

“우리 무슨 일 생겼어?”

리혁이는 대답 없이 손가락을 놀렸다.

익숙한 노란색과 함께 음원 사이트 망고(Mango)의 화면이 보일 때였다.

“…어?”

어찌나 놀랐는지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녀석.

하품을 하고 있던 내 눈에 그 장면이 포착됐다.

힘이 풀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내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 뒤꿈치를 들어올린다.

툭.

제기차기처럼 뒤꿈치에 맞은 스마트폰이 위로 튕겼다.

그걸 낚아채 리혁이에게 건네주었다.

“와.”

옆에 있던 중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

동작 모방 능력을 이용해 틈날 때마다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을 익히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는 여전히 얼이 나가 있는 리혁이를 불렀다.

“리혁아.”

“…….”

“서리혁.”

“예?”

“폰 받아야지.”

“형들.”

나와 눈이 마주친 리혁이가 반쯤 얼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 대박 났어요.”

“대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봐요.”

리혁이가 스마트폰을 들어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망고 차트 실시간 순위]

1. 장소원X뉴블랙 - Something

2. TNT - Blink

3. TNT - Don’t Smile

4. TNT - Pretender

5. 틴스피릿 - 나나나

Something의 실시간 차트 순위는 1위였다.

*   *   *

우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그 원인을 추적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주 주말 예능이었다.

가상 결혼 프로그램에서 서로 간에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우리 노래가 배경 음악으로 쓰인 것이다.

석환 형이 PD한테 좀 써 달라고 사정했다고 하던 게 이거였나.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TV를 보던 사람들이 ‘노래 좋네.’하며 넘겼을 뿐.

진짜 시작은 하이라이트 장면이 편집되어 SNS상에 돌아다녔을 때였다.

-우빈이 지은이 행쇼!

-달달하다.. 진짜 최고 ㅜㅠㅠㅠㅠ

-근데 이거 브금 제목 아시는 분 없나요?

-나도 궁금. 얼마 전부터 라디오나 카페 같은 데서 은근 나오던데

-이거 장소원 싱글 곡이에요! 제목은 something

알음알음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여기까지는 부족했다.

그러나 한 동영상이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한 인터넷 방송 BJ가 다른 BJ와 듀엣으로 Something을 부른 커버 동영상이 SNS상에 퍼진 것이다.

순식간에 퍼진 입소문.

바이러스처럼 SNS로 공유된 동영상 덕에 우리의 노래는 급격한 관심을 받게 되었고, 어제 새벽부터 순위가 계속 상승하더니 오늘 아침 시간대가 되어서는 비로소 1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 고침만 100번 가까이 한 것 같다.

“이거 꿈은 아니겠죠?”

“꼬집어 줄까?”

“형이 먼저 꼬집어 봐요.”

비주와 내가 서로의 옆구리를 꼬집었지만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솔직히 꿈이면 어떤가.

깨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꿈인데.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는 법이 없는 중현이도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니 오죽할까.

리혁이는 어깨를 움츠리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다.

“어우, 심장 떨려.”

“괜찮냐?”

“바닥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요. 다리가 후들거리고. 형은 실감 나요?”

“니가 갑자기 형이라고 부르니까 실감이 안 나긴 하네.”

리혁이가 나를 째려보았다.

웃고 있을 때, 비주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형. 회사 지금쯤 엄청 난리 났겠죠?”

*   *   *

레몬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불이 났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여기저기서 전화기가 울려 댔다.

“야! 누가 좀 전화 좀 받아라!”

“예, 갑니다!”

“보도 자료 정리는 얼마나 돼 가고 있어?”

“기자들에게 보낼 초안은 정리했고요. 30분 내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래. 빨리 끝내고.”

“지호 졸업식에는 누구 안 보내도 될까요?”

“아직 기자들이 그 정도로 우리 애들한테 관심이 있진 않을 텐데?”

“아뇨. 거기 걸스온탑 멤버 때문에라도 있을걸요?”

“뭐?”

“팀장님, 모르셨어요? 길채경이 지호랑 서일중 같은 반이잖아요.”

홍보팀장이 다급하게 전화기를 찾았다.

“야! 누구 빨리 좀 아무나 졸업식 현장으로 가 봐! 기자들이랑 말 몇 마디 하다가 우리 애들 실수라도 하면 큰일 나! 특히 지호 걔는 폭탄이야.”

“팀장님! 매니지먼트 쪽 윤 실장이 출발했답니다.”

“언제?”

“소식 듣자마자 달려갔다는데요.”

“오케이. 윤 실장이 있으면 그쪽은 한숨 돌렸고.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정신 없는 홍보팀.

그들도 갑자기 순위가 치고 올라오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솔직히 최고 성적이 30위권이던 가수가 낸 솔로곡이 1위를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 2주 동안 아무런 낌새도 없던 터라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요즘 10대 애들이 인터넷 방송, 인터넷 방송 해서 무시했는데 장난 아니구먼? 노래 하나를 완전 띄우고.”

“뜰 노래가 뜬 거죠.”

“솔직히 노래는 엄청 좋았잖아요. 우리가 자본이 부족해서 그렇지.”

“너무 들뜨지는 마. 반짝 1위하고 내려가는 경우도 다반사니까.”

“팀장님.”

차트를 바라보던 누군가 입술을 열었다.

“이거 내려갈 생각을 안 하는데요?”

*   *   *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현실로 이끌어 준 것은 막내였다.

“형들!”

강당 입구에서 꽃다발을 잔뜩 안아 든 막내가 리트리버처럼 달려왔다.

“저 이제 중딩 아니에여!”

“어이구, 다 컸네.”

“봤어요? 우리 차트 순위?”

막내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봤고 말고.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우리에게 막내가 카드 하나를 꺼냈다.

“우리 밥 뭐 먹을까여? 아빠한테 카드 받았는데 이거 진짜 한도 없는 카드거든여. 엄마가 백만 원 이내로만 쓰면 뭐든 좋대여.”

스케일 보소.

음원 성적에 업되기도 하고, 졸업식이란 행사가 끝나기도 해서 뭘 먹을지 신이 나서 떠들고 있던 때였다.

“저기 지호야.”

우리가 고개를 돌리니 이 학교 학생들이 보였다.

넷이서 있을 때는 다가오지 못하다가 자신들에게 친숙한 지호가 보이니 비로소 다가온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우리가 굉장히 어색하게 굳어 있긴 했지.

“같이 사진 찍어도 돼?”

“나도!”

“나도!”

우리는 셀카를 찍어 주었다.

처음에는 살짝 어색했지만 수십 번 넘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왔다.

SNS에 올려도 되냐며 묻는 학생들.

한참 동안 당황스러운 사진 요청에 응한 우리들이 숨을 돌리려고 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릴 찾았다.

“뉴블랙이라고 했죠?”

“예?”

“안녕하세요, 스타데일리 기자예요.”

길채경의 졸업 인터뷰를 마친 이들이 죄다 우리 쪽에 몰려들었다.

뉴스거리가 된다고 판단한 모양일까.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미는 터라 어버버하고 있을 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윤석환.

한동안 얼굴 보기 뜸했던 우리의 매니저였다.

“이 친구들이 인터뷰가 처음이라서요.”

기자들에게 사정을 설명한 윤석환이 우리 곁에 서 주었다.

어려운 질문이 날아올 때마다 커트를 하거나 옆에서 코치를 해 주면서 우리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잘 끝내긴 했지만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당황스럽다.

갑자기 막 질문을 던지는데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하고.

솔직히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다.

멀찍이서 우리를 바라보는 길채경.

사진을 같이 찍자는 이들에게 웃으며 응하고는 있지만 자세히 보면 입가를 파르르 떨고 있다.

자신에게 와야 할 관심을 모두 뺏긴 상태.

자신을 보라는 듯 연예부 기자들 주변에서 맴돌았지만 몇몇을 빼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취재가 끝난 졸업식보다는 갑자기 SNS상에서 빵 뜬 노래가 더 뜨끈한 기삿거리였으니까.

애꿎은 모래를 걷어차며 운동장을 나서는 길채경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쌤통이다.

*   *   *

2월 중순부터 시작된 마법 같은 시간.

음원 차트 1위를 한 다음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Something’ 일냈다.. 주간 차트 1위

-장소원의 화려한 부활

-‘Something’의 차트 질주, 가요계 콜라보 붐은 오는가

라디오에서는 연애 관련 사연이 나올 때마다 우리 노래가 신청곡으로 들어왔고, TV도 마찬가지였다.

예능 프로그램, 길거리, 카페 할 것 없이 우리 노래가 흘러나왔다.

진짜 희한한 기분이었다.

유명한 TV 프로그램에서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썸씽을 보거나 아니면 출연자들이 우리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현실감이 없었다.

장소원 선배가 단톡방에 올린 어떤 클립에서는 출연자들끼리 우리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메라가 설치된 자동차 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 손을 잡고~

-그게 무슨 노래예요, 형님?

-야! 진우야! 너는 이것도 모르냐? 요즘 핫한 노래야, 이게.

-그래요?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에 나오다니.

노래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물론 노래 대박과 우리 인지도는 무관했다.

-Something 같이 부른 신인 가수 뉴블랙은 누구?

-장소원, “뉴블랙은 정말 뛰어난 친구들”

-레몬 엔터측, “뉴블랙에 대한 문의 쇄도”

우리를 궁금해하는 기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찔끔찔끔 나올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노래가 좋다고 가수에 대해서 알아보는 사람은 적으니까.

유명한 영화 OST를 흥얼거려도 그 가수 이름이 누군지는 잘 모르는 것이 일반 대중이었다.

한 번은 석환 형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진짜로 우리가 누군지 문의가 쇄도해?”

대답은 간단했다.

“쇄도하겠니?”

“…….”

이렇게 인기와 인지도 사이에 괴리가 있지만 우리는 상관없었다.

노래 자체의 성공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갭을 즐긴다고 할까.

휴대폰 대리점 앞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그 파트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편의점을 들러 우리 노래가 나올 때면 ‘이거 누구 노래예요?’ 하면서 묻곤 했다.

뭘 해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특히나 나에게는.

조규환 이사를 통해 경영지원팀의 저작권료 수익 예상치를 들었을 때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뭘 그 정도로 놀라?”

“이, 이사님… 그렇게나 많이요?”

“당연하지.”

조규환 이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썸씽은 작곡가한테 평생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곡이야. 네가 운 좋게 가져간 거지.”

“심장이 벌렁벌렁하네요.”

“축하해. 이제 진짜 작곡가가 됐네.”

장소원 선배와 비율을 나눴는데도 그 정도 저작권료가 들어온다니.

조 이사님 말로는 이게 시작이라고 했다.

이 기세로 가면 아마 상반기 내내 히트곡이 될 것이고, 노래방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음원 다운로드 수익까지 합치면 외제차를 살 수 있을 거라나.

어찌 됐건 믿기 힘든 일이었다.

매일매일이 얼떨떨하고 기쁘고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물론 세상일이 그러하듯 갑작스러운 성공에 시기의 시선을 보내는 자들도 존재했다.

-썸씽 음원 차트 조작 의심되지 않아? 추이도 이상하고.

인터넷에 꾸준히 이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글 진짜 악의적으로 썼네

-음원 조작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이런 관점으로 보면 모든 음원이 주작임

-주작무새 안 사고요

-이런 얘기가 통하기에는 음원이 역대급으로 좋아

-ㅇㅇ 나도 주변 사람들이랑 노래방 갈 때마다 요즘 이거 부른다

-문제는 레몬이랑 화이랑 그럴 회사가 아님. 레몬은 존심 존나 강해서 그런 짓 못하는 타입이고 화이는 그냥 ㅅㅂ 내가 말을 말자..

-ㅋㅋㅋㅋㅋㅋ 주하나 때도 대응 어버버하던 화이가 주작? 이 새기들 멍청해서 니가 말하는 만큼 똑똑하게 주작 못함

-오오 하면서 스크롤 내리다가 화이에서 짜게 식었네

혹시나 문제가 될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런 이야기는 인터넷 일각에서만 오갈 뿐 오프라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찾아왔다.

한창 연습 삼매경이던 지하 연습실로 윤석환 실장이 내려왔다.

“얘들아.”

올 것이 왔다는 얼굴로 그가 말했다.

“너희 음악 방송 출연 픽스됐다.”

그것도 1위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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