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화
방송국으로 향하는 차량 안.
조용하다.
분명 자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몹시도 고요한 이곳.
왜 이런 분위기냐고?
그건 바로 오늘 우리가 음악 방송에 처음 나가기 때문이다.
첫 지상파 데뷔.
Something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방송국에서 느닷없이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1위 후보가 됐으니 출연하라고.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얼싸안고 기뻐하다기보다는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 우리가 1위 후보예요?”
“우리가 잘못 들은 거 아냐?”
“실장님, 잠시만요. 지금 1위라고 하신 거예요?”
“형들, 당연히 잘못 들은 거져.”
우리의 질문에 윤석환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짜예요?”
그 질문에 그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어버버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데뷔하기도 전에 1위 후보라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이다.
데뷔 3년차가 돼도 1위 한 번 못하는 그룹이 수두룩한데 데뷔도 못한 쌩신인이 1위 후보라고?
그것도 유력한 후보였다.
경쟁 후보인 TNT의 Blink가 앨범 판매량은 압도적일지 몰라도 음원 성적을 포함한 종합 성적은 우리가 우위였다.
그런 까닭에 방송국의 출연 요청도 ‘너희가 1위니까 나와서 받아 가’의 뉘앙스가 강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떡해요, 형? 저희 아무것도 준비 안 됐잖아요.”
연말 평가 때처럼 내게 멋진 해결책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눈빛의 동생들에게 난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기는. 뼈 부서질 각오로 해야지.”
모든 것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됐다.
연습 기간은 일주일.
수면 시간을 하루 30분 남짓한 정도까지 줄여 가면서 우리는 무대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여기에는 장소원 선배의 도움이 컸다.
음악 방송 유경험자다 보니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 그녀가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만 했다면 엄두도 안 났을 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정말 피 토할 각오로 연습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긴 했다.
과연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얘들아.”
조수석에 앉은 윤석환 실장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방송국에 내리면 사람들 되게 많은 거 알지? 기자도 있고.”
“네.”
“거기서 찍히는 사진들은 다 인터넷에 올라온다고 보면 돼. 한번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행동 꼭 신중히 하고.”
“네.”
“괜히 ‘1위 후보 한번 됐다고 으스대는 신인’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으면 처신 똑바로 해야 돼. 알았지?”
“명심할게요.”
“인사는 기본인 거 말 안 해도 알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무조건 고개 숙이고 다녀. 방송국에서 너희보다 낮은 사람 아무도 없어.”
우리가 걱정되는지 잔소리가 평소보다 배는 많았다.
30분 정도 이어진 주의사항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긴장이 조금 풀린 비주가 손바닥을 비볐다.
메이크업 때문에 히터를 약하게 틀은 터라 입에서 김이 나왔다.
“형, 저 진짜 떨려요.”
“나도.”
“떨리는 거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의심하는 비주에게 내가 말했다.
“진짜야. 심장에 손 올려 볼래?”
“형 가슴을 만지라고요?”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 같잖아.”
자기가 생각해도 어감이 이상했던지 비주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하얀 치열이 고르게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곁에 앉아 있던 리혁이가 못마땅하단 얼굴로 투덜거렸다.
“둘 다 긴장하는 척 좀 그만해요. 하나도 안 떨고 있는 거 다 보인다니까. 진짜 떨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거 염장이예요.”
“와.”
옆자리에서 리혁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호가 탄성을 질렀다.
리혁이가 미간을 모았다.
“뭐?”
“형, 오늘 얼굴 겁나 쩌네여.”
“그래? 메이크업이 잘 먹었나?”
칭찬으로 받아들인 리혁이가 지레짐작으로 흐뭇해할 때, 막내가 고개를 저으며 해맑게 웃었다.
“아녀. 눈꺼풀 겁나 떨리고 있잖아여. 분당 120회는 되는 것 같은데.”
“닥쳐. 이건 마그네슘이 부족한 거라고.”
“닥치라니. 울 리혁이, 귀여운 막내한테 그런 말 쓰는 거 있기 없기?”
“아오, 이걸 진짜.”
지호가 히죽 웃으면서 얼굴을 들이밀자, 리혁이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밀었다.
막내의 얼굴이 호빵처럼 찌그러진다.
둘이 투닥거리는 동안 나는 오디오가 하나 비었음을 깨달았다.
“중현이 자나?”
“자는 것 같은데요.”
“얘는 자는 거랑 안 자는 거랑 구분을 못 하겠어.”
비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웃었다.
“형은 모르는구나. 중현이 자는 거 구분법.”
“구분법이 있어?”
“있어여, 중현이 형 잠잘 때랑 안 잘 때 구분법. 발 보면 알 수 있거든여.”
막내가 끼어들더니 중현이의 발을 가리켰다.
신발을 벗고 있어서 양말 차림이다.
비주가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얘가 신발 신고 있으면 밖에서 잠을 못 자요. 그래서 잘 때 꼭 신발 벗고 자거든요.”
“별 특이한 습관이 다 있네.”
“중현이가 원래 좀 특이하잖아요.”
비주의 말에 다른 녀석들은 모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네.
4차원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런 의문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리혁이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겪어보면 알 거예요.”
“그래도 애는 착해요.”
비주가 날름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더 이상하게 들리잖아.
게다가 왜 표정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하는 견주 같은 표정인데.
* * *
PBS 방송국.
건물 앞은 음악방송 뮤직온(Music ON)에 출연하는 가수들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기다린 팬들로 북적거렸다.
가수가 출근하는 모습이 그대로 공개되는 곳.
수수하게 사복을 입은 내 가수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한 팬심으로 모인 이들과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옮기려는 직찍러들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
K-POP의 해외 인기 덕인지 드문드문 외국어가 들리기도 했다.
노란 라인 안에 모인 이들은 제각기 패션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쓰거나 미니 사다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밴에서 하나둘 내리는 가수들.
“안녕하세요! 라비앙 로즈입니다!”
“하나, 둘, 셋. 당신의 소녀와 함께, 안녕하세요, 가을소녀입니다!”
“안녕하세요! 틴스피릿입니다!”
포토 존에 선 가수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휘연이 형! 멋있어요!”
“유빈 씨! 유빈 씨!”
“노래 너무 좋아요!”
가수들이 들어오고 빠지는 동안 카메라를 든 직찍러들이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 신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지 않아요?”
“신인 중에 1위 후보도 있잖아요.”
“진짜요? 누구요?”
“뉴블랙 있잖아요. 장소원이랑 콜라보한 애들.”
“그거는 장소원 빨로 봐야죠. 뭐, 솔직히 걔네 이름으로 냈으면 들었겠어요?”
“슈가피쉬 네임 밸류가 세긴 하죠. 음원 강자였으니까.”
“화이 엔터도 너무해요. 장소원한테 신경 쓸 시간에 우리 온탑이들 노래 퀄이나 더 신경 써 주지. 이번에 의상이랑 음원이랑 총체적 난국이라니까요. 우리 애들 욕하는 것 같아서 내가 말을 아낄 뿐이지.”
“걸스온탑 팬이세요?”
“네.”
“요새 분위기 안 좋을 텐데. 힘내세요.”
“솔직히 다 식스티 세컨즈 때문이죠. 그 새끼들만 없었으면.”
식스티 세컨즈를 씹는 한 찍덕의 말에 주변에서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특히 주완 때문에 열애설에 휘말린 백유진과 주하나가 있는 라비앙 로즈와 걸스온탑의 팬덤은 더더욱.
“지금 걸스온탑 들어오네요.”
“온다! 온다!”
“하나 뺨 봤어요? 애가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으면 볼이 홀쭉해지겠어요. 불쌍해서 어떡해, 진짜.”
걸스온탑의 차례가 끝나면서 다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포토 존 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터줏대감들은 고개를 돌렸다.
“뭐지? 아직 TNT 들어올 시간은 아닌데.”
현재 보이그룹 중에서 가장 핫한 TNT는 뮤온 출근길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그들이 등장할 시간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찍덕들은 이내 웅성거림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와…….”
다섯 청년이 포토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일렬로 섰을 때 사람들은 잠시 감탄했다.
“얘네 누구지?”
“오늘 처음 나오는 애들인가 본데요?”
흔한 잘생김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미모였다.
오른쪽부터 나이가 어린 순서로 선 듯했다.
잘생겼지만 웃을 때마다 강아지상으로 변하는 막내 멤버.
매서운 눈매와 지적으로 생긴 멤버.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이라 남자답게 생긴 멤버.
미소년 같은 외모에 왠지 모르게 동작이 우아한 멤버.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한 멤버.
분명 같은 메이크업을 했지만 공작새처럼 눈에 확 띄는 인물이었다.
그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꽉 들어찬 게 신기할 지경이다.
‘진짜 현실감 없게 생겼네.’
‘콧대 자연산은 아니겠지? 분필 심었을 것 같은데.’
‘얘는 보정 안 해도 살아남겠네.’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에 잠겼을 때, 다섯 청년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 * *
후달린다. 엄청 후달리네.
어찌나 긴장했는지 순간 무릎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힘을 풀었다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긴장해 있었다.
휑한 주차장에 빨간 하트 방석처럼 생긴 포토존 위에 선 우리들은 최대한 떨린 가슴을 감추면서 섰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찰칵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꿀꺽.
침을 목으로 넘기면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제발 긴장한 티 안 내고 자연스럽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쪽부터 봐 주세요!”
그러나 처음부터 지적이 날아왔다.
우리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손 내려 주세요! 얼굴 안 보여요!”
브이도 해 보고 따봉도 해 보고.
차에 있을 때 별별 포즈를 다 생각했는데 긴장하니 몸이 굳어서 안 나왔다.
휑한 주차장.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들.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찍어 대고 있다.
연말 평가 때보다 수백 배는 더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무 어리바리한 신인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아니야.
이런 생각하면 안 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옆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비주를 보면서 나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이내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얼마간의 촬영이 끝난 후, 사람들 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감사합니다!”
우리 쪽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찌나 다들 긴장했던지 포토존 쪽에서 촬영이 끝났을 때,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비로소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방송국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양옆으로 나뉜 펜스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포토존 때의 긴장감만큼은 아니었다.
우리는 지나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종종 가벼운 인사가 날아오기도 했다.
“썸씽 잘 듣고 있어요!”
“화이팅!”
“노래 좋아요!”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사랑합니다.
정말로.
확실히 방송국이라는 실전 무대에 서서 그런 걸까.
사람들이 건네는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되어서 들어오는 기분이다.
물론 대부분은 호의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솔직히 새벽 네다섯 시부터 자기 아이돌 보려고 온 사람들에게 다른 그룹이 눈에 차기나 할까.
하지만 우리 모두 연신 활짝 웃거나 인사를 하면서 방송국까지 걸어갔다.
* * *
방송국에 들어와서도 정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지나가는 스텝이나 가수들에게 인사한 횟수가 몇 번이고, 그룹명만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는지.
아마 지금까지 내가 내 이름을 부른 횟수보다 많을 것 같다.
[대기실 - 장소원, 뉴블랙]
정신없이 오전 리허설이 끝나고 얼추 대기하는 타임.
장소원 선배가 잠시 나간 동안 우리는 우리끼리 음료수를 사러 나갈 사람을 뽑기 위해 내기를 하기로 했다.
평소 저질 체력답게 소파에 널브러진 리혁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난 안 나갈래요. 와, 기 빨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쳤냐. 어어, 안 돼. 너 머리 세팅한 거 망가진다니까, 실장님.”
“리혁아.”
내 부름에 윤석환 실장님이 리혁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머리 망가지면 헤어 비용 청구할 거야.”
“……죄송합니다.”
“얘는 그럼 빼고, 우리끼리… 다 자고 있네.”
불과 몇 분 사이에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다.
가장 늙은이인 내가 멀쩡한데 얘네들도 참.
나중에 헬스 트레이너님께 애들 체력이 부족하다고 귀띔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기실을 나섰다.
몇 명이더라?
장소원 선배랑, 스타일리스트 선생님들이랑 로드매니저 형까지 포함하면 열 명? 열한 명?
자판기 쪽으로 다가간 나는 익숙한 사람을 마주했다.
걸그룹 멤버.
뒷모습만 봤을 때 옷맵시가 너무 좋아서 누군가 궁금했는데, 그 사람이 뒤를 돌아봤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떨떠름해서 얼굴이 굳을 뻔했다.
길채경.
참하게 생긴 얼굴에 순간적으로 똥 밟은 표정이 스쳐갔다.
너만 그러냐.
나도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속이 어쨌건 나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드디어 음악 방송에서 뵙네요.”
“아, 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표정 관리를 못하기는 했지만 사극에 나오는 왕비 같은 온화한 미소가 돌아왔다.
세상 따뜻한 표정.
전과는 달리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노래가 현재 잘나가기 때문이다.
“1위 후보는 처음이겠네요. 축하드려요. 오빠.”
해석) 우린 1위 엄청 많이 했는데. 니들은 처음이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데뷔 전부터 1위 후보라니, 저희도 얼떨떨해요. 가끔 꿈인지 생시인지 한다니까요.”
해석) 응, 우리는 데뷔 전부터 1위 후보.
“그러게요. 좋으시겠어요. 참, 선배님이 뭐예요. 편하게 부르세요. 제가 중학생 때 데뷔해서 나이가 많이 어려요.”
해석) 넌 그 나이에 데뷔했지? 난 한참 어릴 때 함.
“그래, 채경아.”
갑작스러운 반말에 상대가 눈을 휘둥그레 뜰 때, 내가 미소를 지었다.
“……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선배시잖아요. 저는 예의를 지키자는 쪽이라서.”
한 방 먹은 길채경이 입술을 살짝 앙다물었다.
방금까지 띄웠던 온화한 미소가 싹 사라지며 상대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비켜 봐요. 음료수 뽑아야 되니까.”
어깨로 나를 툭 치며 자판기에 지폐를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얘는 왜 날 미워하는 거지?
지호를 미워하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왜 나까지 도매급으로 같이 미운 애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미운 애 옆에 있으니 미운 애, 그런 건가.
음료수를 뽑아든 길채경이 나를 힐긋 보더니 묘한 미소를 흘렸다.
“1위 하면 볼 만하겠네요.”
“뭐가요?”
“오늘 1위 후보가 TNT잖아요. 거기 팬들이 지금 그쪽 손봐주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던데. 알다시피 거기 팬들이 극성이잖아요. 1위 해도 조작이니 뭐니 엄청 악플 달걸요.”
“아.”
“뭐, TNT에 누가 우리 뉴블랙이랑 친해요, 그러지 마요, 하면 모를까.”
그때였다.
“길채경, 너 지금 우리 얘기하냐?”
목소리는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나와 길채경이 고개를 돌린 쪽에서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한 보이그룹 멤버가 서 있었다.
길채경이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어, 태현 오빠.”
그러나 태현이라 불린 이는 그쪽에 시선을 두지도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큼지막하게 벌어지는 눈동자.
“우주 형?”
“오랜만이다, 태현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눈알만 또르르 굴리는 길채경에게 나는 환하게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