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화 (2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5화

무대가 밝아 오르면서 세트가 나타난다.

두 개의 벤치.

각각 뉴블랙 멤버들이 나뉘어 앉아 있다.

왼쪽은 김비주와 김중현.

오른쪽은 선우주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앉아 있다.

희고 기다란 손가락이 움직이자, 청량한 기타 소리와 함께 노래의 반주가 시작됐다.

그와 동시에 뜨는 TV 자막.

[장소원X뉴블랙 - Something]

레몬 엔터의 홍보팀 직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야, 선우주.”

“기타 친다고 말만 들었지, 저렇게 잘 치는 줄은 몰랐네. 언제 연습했대?”

“원래부터 악기 좀 잘 다룬대요. 집안 내력이라고.”

“저게 잘 치는 건가? 솔직히 학원 세 달만 다니면 다 저 정돈 쳐요.”

“예예.”

“아니, 진짜라니까.”

“쟤는 어디 가서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얼굴이 열일한다.”

방송에 나오는 선우주의 모습은 굉장히 그럴싸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

평소의 잘생긴 얼굴과 풀 메이크업이 합쳐져 웬만한 배우는 뛰어넘는 미모가 탄생했다.

순간적으로 ‘오’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한 클로즈업 샷이었다.

이어서 나오는 장면 전환.

벤치에 앉은 세 남자 앞에 있는 두 남녀.

장소원과 서리혁.

대학생처럼 차려 입은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 소절은 능숙하게 서리혁 쪽으로 다가가는 장소원이었다.

능숙한 무대 매너와 보컬 실력, 거기에 부드러운 가사 전달력까지.

넌 내 맘 몰라 나도 네 맘 몰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잖아

아직 덜 익은 우리 사이

그 사이로 흐르는 Something

부드러운 노래였다.

사람들이 없는 첫사랑도 떠올릴 정도로 살랑살랑한 음과 함께 청량한 보컬이 현장에 있는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살짝 투정 부리는 듯한 노래.

그러나 밉지는 않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에게 하는 말이었다.

장소원이 마이크를 살짝 내리면서 파트는 서리혁에게 넘어갔다.

얼음 같은 인상.

겨울철 눈처럼 도도하면서도 어딘지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마침내 파트가 돌아왔을 때, 순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냉기가 가시고 얼굴에 드러나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미소. 마이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봄바람 같았다.

처음엔 봄바람인 줄 알았어

내 어깨에 붙은 꽃잎 말고

내 가슴을 간질거리는 넌 누구니

친구 사이라고 했지만 난 달라

신인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인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사이가 뭘까 난 아직도 헷갈려

그래서-

장소원과 서리혁이 함께 마이크를 잡으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썸에 빠진 남녀의 사랑스러운 눈길.

오늘부터 나는 너와 썸을 탈 거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너를 잡고

너와 내 사이를 좁혀갈 거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 손을 잡고

연애와 친구 사이에서 줄을 탈 거야

두 번째 파트부터는 나머지 뉴블랙 멤버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라이브로 들으니까 더 좋다

-그런데 메인보컬 말고 나머지는 코러스만 함?

-이럴 거면 둘만 나오지ㅋㅋㅋ

-장소원 잘하는 건 알았는데 얘네도 쩐다.. 화음 잘 넣네

나머지 뉴블랙 멤버들이 왜 나왔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온오프라인 모두 현장 반응은 좋았다.

일단 썸씽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히트곡이었고.

멤버들의 참여 유무와 무관하게 장소원과 서리혁의 라이브 실력은 공연을 살리고 있었다.

물론 파트 분배가 메인보컬인 서리혁에게 몰빵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처음 파트 분배.

박애주의 정신에 따라 공평하게 N분의 1로 파트를 나누어 녹음을 진행했을 때 모든 것이 완벽했다.

멤버 개개인의 색깔을 잘 살린 보컬도 훌륭했을 뿐더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 노래.

그러나 뉴블랙 멤버들과 장소원 모두 완성본을 들은 다음에 파트 분배를 새롭게 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소원의 한마디.

“아무리 봐도 내가 어장 관리녀 같지 않아?”

그게 문제였다.

노래 퀄리티 자체는 흠 잡을 수 없이 완벽한데 주제가 썸이라는 것을 간과했기에 발생한 문제점이었다.

썸.

남녀 사이의 밀당.

그런 관계에서 서로 개성이 특이한 남자 보컬 넷이 여자 하나와 함께 등장하니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자는 네 남자를 동시에 유혹하는 것 같고.

나머지 네 남자는 어장 관리에 걸려들어서 여자와 썸을 탄다고 말하는 이상한 풍경.

그래서 다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로.

그런 결과가 바로 지금의 Something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너와 썸을 탈 거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너를 잡고

너와 내 사이를 좁혀갈 거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네 손을 잡고

연애와 친구 사이에서 줄을 탈 거야

후렴구에 같이 화음을 넣으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   *   *

데뷔 공연이 끝나면서 긴장이 풀렸다.

어찌나 긴장했었던지 기타를 들고 백 스테이지로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올라오려고 대기하던 보이그룹과 부딪힐 뻔했다.

중현이가 내 뒷덜미를 잡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사고를 칠 뻔했다고 할까.

나만 긴장이 풀린 게 아니라 다른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리혁이는 영혼이 털린 표정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고생했어, 아가들!”

대기실로 돌아온 장소원이 우리를 하나씩 안아 주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지친 것은 마찬가지여서 대기실 소파에 널브러지다시피 앉으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살짝 상기된 얼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으로 받으며 현장의 열기를 받다 보니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그건 리혁이도 마찬가지였다.

“고생했어, 리혁아.”

“고생은 무슨.”

“고생했지. 아침부터 엄청 떨어서 걱정했는데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더라. 데뷔 무대 한번 제대로 살렸어.”

“내가 언제 긴장을 했다고 그래요? 아, 뭐야. 왜 다들 웃어?”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막내는 만면에 비웃음을 머금고 있을 정도.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서 20분 앉아 있던 게 누구더라.

말투로는 최대한 대범한 척하고 있지만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빨간 홍조가 떠오른 것을 보니 뭔가 귀엽다.

사납게 생긴 애기가 엄마 화장품을 잘못 바른 것처럼.

소원 선배가 웃으며 말을 거들었다.

“맞아, 리혁이가 제일 잘했어.”

그녀의 칭찬 공세에 리혁이가 완전히 함락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내 어깨 위로 가벼운 뭔가 얹혀졌다.

“형, 저 졸려여.”

“지호야, 지금 자면 안 돼. 얼굴 붓는다.”

“5분만여.”

“안 된다니까.”

어깨를 들썩였지만 끄떡도 없이 수면을 시도한다.

얘는 전쟁터에서 총알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참호 안에서 투구를 베개 삼아 잘 만한 위인이다.

“근데 너 머리 진짜 가볍다.”

“욕이에여, 칭찬이에여?”

“칭찬이야. 웬만한 여자애보다 더 가벼운데?”

“음? 형이 여자 머리 무게를 어떻게 알아요?”

비주의 그 말에 나머지 녀석들의 시선이 하이에나처럼 돌아간다.

몰아가기를 시전하려는 작당 모의 눈빛들이 0.1초 만에 교환된다.

“이 형 소싯적에 놀으셨네. 많이 놀았어.”

“솔직히 말해 봐요. 그 어깨를 몇 명이나 거쳐 갔어요?”

“이제 보니 썸씽이 본인 얘기였네.”

“그래? 가사에 쓴 게 네 이야기였어, 리더?”

호기심을 드러내는 장소원에게 나는 두 손을 흔들면서 부인했다.

이것들이 진짜.

허탈하게 웃으면서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간식을 집어 들었다.

“오, 이거 맛있다.”

“저거 말 돌리는 거 봐.”

“진짜야. 너희도 먹어 봐.”

그나저나 이거 진짜 맛있네.

포근포근한 감촉이 느껴지는 빵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특이한 간식을 동생들에게 건넸다.

다들 비슷한 반응이다.

“이거 무슨 과자예요, 선배님?”

“아. 그거.”

장소원이 말했다.

“수플레라는 디저트야.”

“수플레.”

나중에 기억해 뒀다 사먹어야지, 하면서 나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그게 어떤 일로 이어질지 상상도 못한 채.

*   *   *

1위 후보 결정의 시간.

엔딩을 앞두고 장소원 선배와 우리 멤버들은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옆에는 TNT가 서 있다.

한태현이 이야기를 했는지 무대를 올라올 때 몇몇이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눈인사를 하면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섰다.

맨 앞줄.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가 선배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살짝 움츠러든 채였다.

“이번 주 뮤직온 1위 후보입니다. TNT의 Blink와 장소원과 뉴블랙의 Something.”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특히 저 앞쪽 객석을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TNT 팬덤 때문에 더더욱. 보이는 플래카드 대부분이 TNT 팬덤의 플래카드다.

“디지털 음원 점수, 선호도 점수, 방송 점수, 음반 점수. 그렇다면 과연 1위의 주인공은?”

TV로 보고 있었다면 화면에 비교 창이 뜨면서 각종 점수가 올라오고 있었을 텐데 지금 우리의 시선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MC의 목소리만을 기다리는 상태.

“네, 장소원X뉴블랙의 Something! 축하드립니다!”

Something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이 정지한 듯한 기분이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로 커다랬고.

하늘에서 반짝이 종이들이 떨어졌다.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 때문일까.

천국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는 것만 같다.

반짝이 가루를 보면서 곁에 선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비주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입을 막았고, 중현이는 반짝이 가루를 잘못 들이켜서 콜록거린다.

리혁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울음을 참는 모양이었다.

막내는 뭐가 좋은지 히죽거리고만 있었다.

MC 전유빈이 장소원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관객석과 곁에 선 동료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박수를 쳤다.

빨간 좌석에 앉아 있는 가수들의 팬들은 흘러나오는 Something에 따라서 자신들의 응원 봉을 흔들어 주었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장소원이 마이크를 붙잡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수상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뭐라고 하는지 내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현실이 믿기지가 않기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마이크가 순식간에 내 손에 와 있었다.

뉴블랙을 대표해서 수상 소감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반집에서 TV를 틀고 있을 우리 할머니와 대기실에서 바라보고 있을 윤석환 씨와 소속사 사람들, 현장에 있는 가수들과 관객들, 그리고 우리 멤버들.

사람들의 면면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0.1초 멍 때리는 동안 지나간 생각들이었다.

나는 마이크를 붙잡고 웃으며 미리 준비한 소감을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데뷔하기 전부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그건 사실이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으니까.

불과 작년 11월에만 해도 나는 수능을 준비하고 있던 평범한 20대였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상파 방송국의 음악 방송 현장에서 1위 현장에 서 있었다.

한때 내가 꿈꾸던 무대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

그만큼 겸손해야 하는 자리.

소속사 사람들과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 내가 소감을 마무리 지었다.

“썸씽 많이 사랑해 주시고 저희 수플레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받는 사랑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지?

장소원이 귓가에 속삭였다.

“리더야, 너 방금 수플레라고 했어.”

그 느낌을 아는가.

온몸의 솜털이 쭈뼛 솟는 느낌.

박장대소를 하는 동료 가수들과 관객 앞에서, 나는 실수를 수습하려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태블릿…….”

아앗.

“뉴블랙 많이 사랑해주세요~!”

나 대신 마이크를 가져간 소원 선배가 말을 대신했다.

분명 말실수를 했는데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시선이 날아들었다.

신인이라 귀엽게 봐준 모양이다.

당장 주변에 서 있는 TNT는 물론이고 다른 그룹들이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고, 관객석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망했다.

이거 영원히 박제돼서 돌아다닐 텐데.

수치스러움을 치사량까지 들이킨 느낌이다.

*   *   *

-저희 태블릿 어……

“모지리 같은 놈.”

백반집에서 김덕순 여사는 양파를 까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나가다 꼭 옘병한다니까.”

“왜 그래요? 나 같으면 손자가 테레비 나가서 트로피 받으면 어깨춤부터 출 것 같구먼.”

“모르면 말을 말어. 저것이 얼마나 속을 쌕였는데.”

“뭔 속을 썩여?”

같이 양파를 까던 주방 이모가 물었다.

“속을 썩이게 생긴 얼굴이 아닌데. 그리고 속을 썩이면 어때. 언니, 요즘은 잘생긴 게 제일이유. 첫째도 얼굴이고, 둘째도 얼굴이고.”

“얼굴만 다인가.”

“얼굴이 저러면 미운 짓을 해도 덜 밉지. 우리 손자를 보셔. 걔 이쁘게 생겼잖아. 근데 내가 지난번에 놀러가니까 뭐라는 줄 알아? 글쎄 할매 좀 그만 오라는 거야. 지 엄마 힘들다고 그런다는데, 내가 욕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참았다니까.”

“하긴.”

제 아빠엄마를 닮아 잘생기긴 했다.

“생긴 게 저러면 옘병할 짓을 해도 덜 옘병하게 보이긴 허지.”

김덕순 여사는 밑에 자막이 흘러가는 뮤직온의 엔딩에 나오는 손자를 바라보았다.

오지게 찍어 발랐구만.

가뜩이나 얼굴값 하는 놈이 화면 속에서 더 잘생기게 나온다.

눈물이 복받쳤는지 눈이 시뻘개서 있는 꼴을 보자니 뭔가 꼴값 같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양파가 옘병하게 맵네.”

“언니, 물안경 끼고 까면서 뭐가 매워?”

“맵다면 매운 거지! 너는 왜 토를 달고 그러냐!”

“아유, 성질머리…….”

그때,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백반집 문이 열렸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가 커다란 화환과 함께 백반집 안으로 들어섰다.

“김덕순 씨, 계세요?”

“나요.”

김덕순 여사가 물안경을 벗고 다가갔다.

“뭔 일이래요?”

“여기 사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꽃 배달인데요. 보내신 분 성함이 선우주라고 되어 있네요.”

“예, 우리 손자예요.”

“손자분이 지금 시간에 딱 맞춰서 배달을 해 달라고 부탁하셔서요. 여기에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배달원은 사인을 받자마자 바로 백반집을 나섰다.

“언니, 그건 뭐유?”

“아, 몰라도 돼!”

곧바로 다가온 주방 이모가 개업 화환처럼 커다란 화환을 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손자가 보낸 거야?”

“아, 몰라.”

화환 왼쪽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김덕순, 고맙고 사랑해요.]라는 말과 함께 오른쪽에는 [누군지는 비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이구.”

김덕순 여사는 새초롬하게 웃었다.

“옘병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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