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화 (2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화

7장. 저희 가수예요

첫 음악 방송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 안.

“푸하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비주가 막내를 부추겼다.

“지호야, 그거 다시 해 봐. 그거.”

“이거요?”

“그래, 그거.”

모두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가운데 연기파 막내가 헛기침을 하고는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흠흠.”

이윽고 누군가를 완벽하게 모사해낸다.

“저희 수플레 많이 사랑해 주세효~.”

애들이 자지러지듯이 웃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아마 묘비에 [선우주, 수치스러워서 죽다]라고 써야 하지 않을까.

고통스럽다.

수치스러움이 Max를 찍어서 죽고 싶을 지경이야.

“와, 진짜 똑같다.”

하도 웃어서 눈물까지 훔치는 비주에게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비주야, 이게 뭐가 똑같냐.”

“네? 이거 완전 똑같은데…….”

“아니, 내가 봤을 때는 하나도 안 똑같-”

“원래 본인이 보면 잘 몰라여, 형.”

막내가 끼어들었다.

“안 똑같으면 비교해서 보여 드릴까여? 마침 오늘 뮤온 클립도 이제 인터넷에 떴을 텐데.”

“아냐, 아니다.”

“그렇게 나오면 더 하고 싶자나.”

막내의 핸드폰을 뺏어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중현이가 동영상을 띄웠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화면.

현장의 박수 소리와 함께 [1위 Something]이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화면 속에 있는 나는 몹시도 긴장한 얼굴이다. 풀 메이크업을 해서 새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선명하다.

내가 봐도 괜찮다 싶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뱉는 대사.

-저희 수플레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동생들에게 나는 한탄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잘해 주기는. 옷이나 제대로 개세요, 아저씨.”

“맞아여.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으면서 맨날 ‘지호야, 물 좀 떠와라’ 막 이러구.”

이때다 싶어 끼어드는 막내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막내, 그동안 형한테 불만이 많았구나?”

“네, 엄청 미웠져. 맨날 구박하고, 집안일 시키고.”

“그렇구나. 형이 큰 잘못을 했네.”

“맞아여. 지금이라도 저에게 미안함을 느끼… 아야!”

나에게 딱밤을 맞은 막내가 이마를 감싸 쥐고 울상을 짓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소하다는 듯 사진을 찍는 리혁이는 덤이다.

다들 웃는 동안, 옆자리에서 집중한 얼굴로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는 중현이가 보였다.

“넌 뭐 하니?”

“동영상들 저장 중이예요.”

중현이가 웃으며 답했다.

“이것도 다 추억이잖아요. 기록으로 남겨야지.”

“아니야…. 안 남겨도 돼.”

가뜩이나 수치스러움을 치사량까지 들이켰는데 얘네는 아예 내 관짝에 못질까지 하고 있었다.

윤석환 씨도 즐거운지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석환 형.”

“왜.”

“나 계약 해지 안 되나? 이 배은망덕한 아이들과 멀어지고 싶은데.”

“우주야, 7년만 참아.”

윤석환의 너스레에 애들이 맞장구를 쳤다.

“아, 어디 가요.”

비주가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우린 형 없으면 안 된다니까.”

“맞아여. 이게 누구 작곡으로 성공한 건데.”

“그걸 아는 애들이 이러냐.”

“에이, 형을 좋아하니까 그런 거져. 몰라서 그래여?”

얼렁뚱땅 엉겨 붙는 막내를 보고 째려보는 척을 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왠지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 없는 사이에 집을 개판으로 만들어서 화가 났는데, 와서 치근덕거리며 애교를 부리면 마음이 금세 풀리는 것이다.

리혁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손자 재롱에 기분 풀어지는 할아버지 같네요.”

“우리 리혁이 말 참 이쁘게 해.”

“나도 알아요.”

“마음씨도 그 얼굴만큼 고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 뻔뻔한 대사에 지호가 입맛이 뚝 떨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쩜 저런 말을 얼굴에 철판도 안 두르고 하지?”

“닥쳐, 왕지호.”

“자기 불리할 때마다 닥치라고 말하기 있기 없기?”

서열 4위와 5위가 개싸움을 벌이는 동안 형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 웃었다.

아니.

막상 투닥거리는 메인보컬과 서브보컬도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다들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어쩌면 인생 최고의 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고 할까.

숨을 깊게 내쉴 때마다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풀려 나갔고, 열린 차창에서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지금 기분과 맞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답은 정말 달콤했다.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와 처음으로 빛을 봤으니 무슨 일이든 기껍고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람을 쐬는 나에게 중현이가 폰을 내밀었다.

“형, 이거 봤어요?”

“뭔데.”

“인터넷에 형 얘기가 꽤 나왔어요.”

“그래?”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뉴블랙인가? 리더 개연성 쩔게 생겼음]

어디 넣어 놔도 말이 될 것처럼 생김

-개연성 뭔데 ㅋㅋㅋㅋㅋㅋ

-도랏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래하는데 기타 치는 애 얼굴만 보이더라

-진성 얼빠로서 오늘부터 덕질 시작하겠읍니다

오늘 1위 소감 덕분에 내 얼굴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 아래 수상소감 게시글을 클릭했다.

-장소원이 이렇게 예뻤었나?

-소원 언니 절 가져여..

-신인 같지 않고 라이브 잘하긴 하더라 ㅇㅇ

-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보다가 빵 터졌음 ㅋㅋㅋㅋ 존나 웃겨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걱정했던 TNT 팬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얘가 태현이랑 사진 찍은 애구나ㅋㅋㅋ

-TNT로 데뷔할 뻔했다고 그러던데.. 서로서로 기분이 묘하긴 하겠다.

-난 아직도 차트 추이 미심쩍긴 한데 뭐.. 뒤에서 우리 애들 발표나자마자 좋아하는 거 보면 좋게좋게 잘 풀린 듯

-태현이 저렇게 빙구처럼 웃는 거 오랜만에 봄ㅋㅋㅋㅋ 진짜 절친인가

얼마 전까지 음원 조작이 아니냐며 난리를 치던 이들이 부드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태현이가 SNS에 사진을 올린 덕분인 듯했다.

어쩐지 아까 방송국에서 사진을 계속 찍자고 하더니.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하니 고마웠다.

나 [고마워]

아까 교환한 번호로 톡을 보내자 답이 곧바로 날아왔다.

한태현 [^^]

한태현 [고마우면 술 사]

한태현 [아ㅋㅋ 맞다 형 술 못 마시지]

한태현 [그냥 밥 사]

한태현 [우리 B조 애들끼리 모이자]

한태현 [곧 단톡 파겠음ㅎ]

대강 답장을 보내면서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5년차 아이돌 한태현.

지호보다 더 눈치가 없었던 녀석이 연예계 생활을 겪고 눈치가 이렇게 빨라졌다니. 우리 철부지 막내도 언젠가 이런 식으로 변하려나.

내 시선을 느꼈는지 지호가 히죽 웃었다.

“왜여?”

“응?”

“왜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길로 봐여?”

“…….”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   *   *

뮤직온에서 첫 1위를 거머쥐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운이 참 좋다.

음원 차트에서 계속 1위를 하긴 했지만 팬덤이 짱짱하게 뒷받침된 선배 그룹들과 싸워서 과연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까.

행운이 따라 준다면 2주 차까지 1위를 하고 내려오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Something’의 거친 질주, 3주 연속 음악 방송 1위

-래퍼 헤이션 컴백, ‘Something’의 장기 집권 끝낼까

-숨 막히는 3월 가요 대전, 최종 승리자는 ‘Something’이었다

음악 방송 4관왕.

지상파 3사와 음악 전문 채널까지 우리는 3주 연속 1위를 거머쥐었다.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음원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3월에 무명 아이돌과 비인기 가수의 콜라보레이션이 1위를 차지할 줄이야.

놀라움을 넘어서 황당할 지경이었다.

연예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일주일마다 하는 음악 방송 1위가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왕초짜 신인 뉴블랙에게는 엄청난 결과였다.

게다가 우리는 그 결과물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일단 스케줄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음악 방송이 나간 이후로 곳곳에서 소소한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감자나 고구마 등이 들어간 처음 들어 보는 지역 축제도 있는가 하면 이름을 들어본 뮤직 페스티벌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단연 학교 행사였다.

4월 말부터 시작하는 대학 축제를 대비해서 대학 측에서는 Something을 라이브로 듣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Something의 주제는 바로 썸.

SNS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화제였다.

한 음악 평론가는 Something의 성공을 ‘썸이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가장 먼저 선점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했다.

공감 가는 주제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합쳐진 Something은 2014 상반기 최대 히트곡이 될 예정이었다.

현재 대학가에서 가장 핫한 노래 Something.

이러하듯 서로 자기네 학교에 와 주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장소원과 뉴블랙을 둘러싼 신경전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경쟁이 심한지 석환 형을 통해서 대학 측에서 부르는 행사비를 들었을 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놀란 중현이가 캔을 움켜쥐는 바람에 음료수가 터졌을 때, 바닥을 닦는 우리에게 그가 설명했다.

“보통 행사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가 있어. 거기에서 한우처럼 등급을 매기거든. 얘네가 음방에서 1위를 얼마나 했는지, 음원 차트 순위는 어떤지, 최근 화제 지표는 어떤지 다 확인하고 급을 매기는 거지. 음방 1위가 그만큼 중요한 거야. 너희 선배 스칼렛만 해도 1위 하고 나서 행사비가 곧바로 2배로 뛰었을걸.”

윤석환이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인기 좋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 너희가 유지할 수도 없고, 유지해서도 안 되는 인기니까.”

그가 한 말은 사탕발림이 아니라 현실적인 축하 인사였다.

유지할 수도 없지만 유지해서도 안 되는 인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월간 차트 1위나 3주 연속 음방 1위는 앞으로 우리가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인 기적이었다.

가수에게 앨범은 스포츠 경기와 같다.

저번 경기에서 MVP로 뽑혔다고 해서 다음 경기에 반드시 MVP로 뽑힌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수능에서 배웠던 독립 시행의 확률이라고 할까.

앞선 결과가 성공이어도 다음 결과는 성공이 나올지 실패가 나올지는 전혀 확실하지 않았다.

Something의 인기는 노래의 인기다.

애초부터 뉴블랙의 인기가 아니기에 유지할 수 없는 인기인 것이다.

그럼 유지해서도 안 되는 인기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솔직히 장소원이 다 했죠 ㅎㅎ 원래 본인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기도 했고. 신인 그룹은 솔직히 꼽사리 끼워 준 거고

-뉴블랙은 메보 빼면 음방 나와서 화음만 넣고 나가던데

-솔직히 왜 나오는지 모르겠음.

-어른들 사정이죠 ㅋㅋ 애들이 뭘 아나요

-그중에 하나가 작곡 참여했대용

-인터뷰 보니까 공동 작곡이라고 그러던데.

-장소원이 좋게 말해 준 거죠 ㅎㅎ 솔직히 아이돌이 무슨 작곡이에요. 회사에서 프로듀서들이 다 해 주는 거지

-음원 잘돼서 아직 데뷔도 안 된 애들 헐레벌떡 나온 티가 좀 나던데..

-알고 보면 노래 연습이 덜 된 거 아니에요? ㅋㅋ

내가 보고 있는 인터넷 댓글들만 해도 이랬다.

우리의 인기는 장소원 선배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스케줄 대부분이 그랬다.

화이 엔터에서 장소원 이름으로 들어오면 우리 매니지먼트 팀에 연락을 해서 나눠 가지는 식이었다.

3월 동안 있었던 모든 스케줄.

장소원 선배와 함께 찍은 잡지 화보 촬영과 인터뷰, 그리고 섭외가 들어온 행사 대부분이 그랬다.

혹여 우리 쪽으로 연락이 먼저 오더라도 ‘조건은 장소원 씨가 함께 왔을 때 기준으로 드리는 겁니다.’ 같은 식이었다.

윤석환이 유지해서도 안 되는 인기라고 말한 뜻은 이것이었다.

애초에 뉴블랙의 인기가 아니었으니까.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지금 인기가 장난 아닌데 이게 우리 인기는 아닌?

물론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상태에서 이 정도 관심을 받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니까.

멤버들도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하루하루 행복해하는 동생들의 표정이 어찌나 좋은지 가만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다.

기왕이면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지 않겠는가.

뉴블랙의 첫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인 만큼, 리혁이를 제외한 넷이 단순히 꽃병풍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도 가수로서 능력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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