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화 (2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화

멤버들의 노래 실력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 기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음악 방송을 출연하고 3주 동안 내가 정리한 피드백은 대강 이랬다.

-비주얼은 탑급이네. 개성 있어서 각자 배우해도 될 듯.

-왜 메인보컬만 노래 부름?

-나머지 애들은 뭐 하러 나오는 거지? 노래를 못 불러서 그러나?

-그룹 끼워 팔기 아님?

애초부터 애매한 상황에서 시작된 문제였다.

썸의 작곡은 사실상 나와 장소원 둘이서 함께 했다.

그런데 막상 녹음에 들어가니 문제가 발생했다.

썸을 다루는 데 여자는 하나고 남자는 여럿이니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보컬을 하나로 통일했고 그게 리혁이었다.

그런데 그쯤 돼서 ‘장소원X리혁 - Something’으로 제목을 정하자니 뭔가 미묘했다.

각자 기여도가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음원이 이 정도로 잘나갈 줄 모르고 했던 작업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처음 음방 출연이 확정되었을 때, 두 기획사는 리혁이만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딴 식이면 나 안 해요’라는 장소원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다 같이 나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좋긴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왜 남자 여럿이 나와서 화음만 넣고 들어가는 걸까? 노래를 못 부르나?’하는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우리 애들 노래 잘 부르는데.

문제는 그걸 증명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애들 실력 보여 주자고 음방 레퍼토리를 바꿀 수도 없고.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을 때 로드매니저 서민기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흘깃거렸다.

“피곤해?”

“아뇨.”

“인터뷰가 많이 힘들었나 봐.”

“분위기는 괜찮았어요.”

음악 방송이 끝나고 나 혼자 있는 단독 스케줄이었다. 장소원 선배와 함께하는 썸씽의 공동 작곡자 인터뷰였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난처한 질문이 몇 개 있긴 했는데, 인터뷰도 하다 보면 짬이 붙나 봐요. 처음 했을 때보다는 덜 떨리기도 하고. 어려운 질문이 나와도 옆에서 장소원 선배님이 서포트를 해 주시기도 해서.”

“소원 씨가 슈가피쉬 때도 그랬지. 동생들 도와주고.”

“그리고 뭔 말만 해도 기자님이 리액션 잘해 주시던데요. 신인이라 까칠하게 대하실 줄 알았는데 엄청 친절했어요.”

“나는 왠지 알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기자분 여자였잖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서민기는 됐다는 듯 키득거렸다.

“모르면 됐어, 인마. 난 그냥 네가 피곤해 보여서 물어본 거야. 인터뷰 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요즘 고민하는 뉴블랙 실력 보여 주기에 대해 말하려던 나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직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아니던가.

지나가는 가로수를 보며 나는 웃음을 흘렸다.

“긴장이 좀 풀렸나 봐요.”

“풀 때도 됐지. 3주 연속 1위면, 뭐.”

“그래도 아직 신인이잖아요. 긴장해야죠.”

상대의 얼굴을 보고 마침 까먹었던 게 떠올랐기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형, 오늘 장소원 선배님이 형한테 주라고 선물 하나 챙겨 주던데요. 자기 팬한테 주라고.”

“그래? 어디 있는데?”

“여기요.”

텅 빈 손바닥을 바라보던 민기 형이 눈을 깜빡거린다. 이건 뭐지? 하는 표정이다.

내가 손바닥을 접었다 다시 폈을 때 초콜릿이 등장했다.

“짜잔.”

“어, 방금 뭐야?”

“마술이에요.”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얼마 전에 미튜브 보고 배웠거든요. 근데 써먹을 데가 없어서.”

동작 모방 능력을 통해서 익힌 마술.

솔직히 춤을 제외하면 일상에서 써먹을 데가 없어서 이런 잔재주라도 익히며 놀고 있었다.

초콜릿을 건네주자 수더분하게 생긴 인상이 활짝 웃는다.

하루치 피로가 다 녹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현장 매니저 분이 요새 스케줄도 바빠서 그런지 당 떨어져 보인다고 초콜릿 전달해 달래요. 벨기에? 그쪽에 사는 친구분한테 받았다던데.”

“벨기에면 리사 씨가 보내 준 거구나.”

“네?”

“슈가피쉬 리사 씨, 뮤지컬 배우하다가 그만두고 벨기에로 갔잖아.”

맞다, 이 형 최애가 슈가피쉬 리사였지.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화이 엔터로 이직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흐음, 그럴 걸 그랬나.”

“에이, 어디 가요. 저희랑 계속 일하셔야죠.”

내 장난스러운 대꾸에 민기 형이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운전에 집중했다.

차가 달릴 때마다 가로등이 깜빡거리듯 스쳐갔다.

밤 10시.

우리는 지금 회사로 가는 중이었다.

“숙소로 바로 안 가도 돼? 내일도 새벽부터 음방이잖아.”

“조 이사님이랑 면담하기로 한 날짜가 오늘이라서요.”

“이 시간에?”

“넵, 저도 바쁘고, 이사님도 바빠서 시간 맞는 날 겨우 찾은 거예요.”

용건은 당연히 요즘 내가 고민하는 실력 보여 주기였다.

그라면 내 의문에 대해서 어떠한 답을 내어 주지 않을까.

지이잉-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A-Yo. 수플레 맨~

막내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인터뷰는 잘 끝났어여?

“잘 끝났지.”

-대답 완전 성의 없네. 귀여운 막내가 전화를 했는데 무심한 투로 대답하는 거 있기 없기?

“귀여운 막내라니. 나는 그런 막내를 둔 적이 없어.”

-왜 없어여. 여기 있는데.

“끊는다.”

-와, 엄청 서운하다. 내가 형을 얼마나 잘 키웠는데.

어이가 없는 대사에 웃음이 터졌다.

“야, 네가 언제 날 키웠어?”

-밥도 먹여 주고, 잠도 재워 주고. 형, 기억 하나도 안 나여?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죠?

“그래, 기억이 나네. 2주 전이었나. 속옷 없다고 나한테 와서 ‘하… 하나만 빌려주세여.’라고 했던 게 그때였지?”

-기억력이 왜 이렇게 좋아여?

“집안 내력이야. 우리 할머니는 나보다 더해.”

‘누구랑 통화해? 지호야?’라고 묻는 서민기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수화기 반대편이 급격히 침울해진다.

-매니저 형도 들었죠?

“응.”

-이거 진짜 비밀이라고 말해 주세여. 형들이 알면 죽을 때까지 사골 곰탕처럼 우려먹을 거예여. 특히 서리혁 그 독사 같은 인간은….

“너 하는 거 봐서.”

-아잉.

“누구부터 톡을 보낼까. 리혁이부터 할까?”

-스톱! 스톱! 우주 형 매너 좀….

항복 선언한 막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픽 웃었다.

귀여운 놈.

지호와의 대화로 인해서 피곤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전화는 왜 했어? 오늘도 야식 먹기로 했어?”

-오늘은 안 먹기로 했어여.

“왜?”

-리혁이 형, 뾰루지 올라올 거 같다고 안 먹는대여.

“너희끼리 먹으면 되잖아.”

-비주 형이 그건 안 된데여. 음식 먹을 때 누구 빼놓고 먹는 거 예의가 아니라고.

대강 말을 들어보니 앞으로 나올 용건이 짐작 갔다.

“너 간식 먹고 싶구나?”

-넹.

“톡으로 메뉴 보내. 회사 들어갈 때 사다 줄게.”

-사랑합니다, 행님~

통화가 끝나자마자 톡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떡볶이나 소시지, 과자 같은 류의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그걸 훑어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메뉴가 다른 날보다 조금 간소하다.

다 합쳐서 만 원도 안 될 것 같다고 할까.

평소 간식 한번 먹을 때 3만원 가까이 나오는 녀석들이 웬 일이려나.

*   *   *

레몬 엔터테인먼트.

밤 10시가 넘어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시간대지만 이 시간에도 연습실의 불은 켜져 있을 것이다.

쉴 틈이 없지.

음악 방송을 뛰면 새벽 리허설부터 저녁까지 그야말로 하루를 잡아먹는다.

그런다고 남은 시간 동안 쉴 수도 없었다.

연습은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썸씽을 라이브로 뛴다고 해서 평소 하던 군무나 보컬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겪어보면 알 거다.

스트레칭을 하루만 쉬어도 다음날 춤선이 거칠어지거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뉴블랙은 매일같이 음악 방송이 끝나면 회사로 돌아와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아니.

원래는 그런 편이었다.

“불이 왜 꺼져 있지?”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등이 다 꺼져 있어서 녹색 비상등을 제외하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떠듬떠듬 계단을 내려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명이 나갔나?

작년 12월부터 주구장창 오르고 내린 계단이라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모방 능력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감각이 예민해질 때면 이런 식으로 상황에 필요한 동작이 알아서 자동으로 나오곤 했으니까.

복도도 어둡고. 얘네는 어디에 있는 거야?

연습실 문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오늘은 모든 조명이 꺼져 있었다.

이상하다.

애들이 연습실에 없다면 나한테 이야기를 해 줬을 텐데.

스스슥-

핸드폰 라이트를 키려고 할 때 앞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바퀴벌레가 빠르게 걸어가는 듯한 소리.

뭐지……?

스스슥-

이번에는 뒤였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뭔가 이상했다.

슬쩍 뒷걸음질을 치려고 할 때쯤 뭔가 내 어깨 위로 턱! 올라왔다.

“으어어……!”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내 몸이 다시 반응했다.

수능 날 능력을 각성하고 경찰관에게 엎어치기를 시전했을 때와 같았다.

똑같은 동작이 몸에서 흘러나왔다.

쿵-!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뭔가 내 몸을 잡으려고 뻗었다.

또다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내 몸.

심심할 때마다 미튜브로 보았던 격투기 동작이 자동으로 나왔다.

슬리핑(Slipping).

복싱에서 상체를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기술이었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된 내 몸은 상대의 팔을 붙잡고 유도 선수처럼 메쳤다.

“으악!”

으악?

“야야! 불 켜! 불!”

“왜여?”

“야! 왕지호! 불 키라면 좀 키라고!”

“대, 대표님 괜찮으세요?”

익숙한 목소리들과 함께 복도 불이 탁! 하고 켜졌다.

이윽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머리에 온화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 바닥에서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윤석환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조규환 이사는 놀랐는지 벽에 치킨집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예여…?”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뉴블랙 어린이들.

고깔 모자를 쓴 녀석들이 케이크를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지금 벌어진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다들 토끼처럼 눈만 땡글땡글 뜬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예고도 없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는 내게 심부름을 시켜 지하로 내려오게 만든 장본인을 찾았다.

“왕지호, 어디 있냐.”

“……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봐.”

쓰러진 두 남자를 일으키고 나서야 나는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애들이 들고 있는 생크림 케이크.

그 위에 ‘3주 연속 1위 축하!’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서프라이즈 파티.

음악 방송 3주 연속 1위를 기념할 겸 깜짝 축하 파티를 계획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누가 이런 계획을 짠 거야?”

“대표님이요.”

“아유, 훌륭한 계획이었네.”

잠시 어수선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노래와 축하 말이 오가고 난 후 어른들은 우리에게 미리 주문한 야식을 안겨 주고 떠났다.

사이좋게 허리를 부여잡고 가는 윤석환 씨와 대표님의 모습이 짠하다.

애들이 내 얼굴에 바른 생크림을 닦아 내려고 할 때, 옆에서 누군가 티슈를 내밀었다.

“여기요.”

“아, 고마워.”

리혁이가 물었다.

“어째 좀 얼떨떨해 보이네요.”

“좀 놀라서.”

“놀란 건 우리가 놀라야 할 것 같은데. 자칫했으면 대표님 병풍 뒤에서 향 맡으실 뻔했어요.”

“갑자기 뒤에서 막 잡길래…….”

구레나룻을 긁으며 뻘쭘해하는 나에게 보이는 리혁이의 표정은 그야말로 ‘ㅉㅉ’를 형상화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놀랐어. 갑자기 날 축하한다고 해서.”

“왜긴 왜겠어요.”

우리의 메인보컬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작곡했으니까 고마운 의미로 축하를…….”

“그래? 나한테 고마웠어?”

“그걸 입으로 꺼내야 알아요?”

“독심술도 아니고 말을 해야 알지. 기왕 말 나왔으니 한번 들어보자. 어서 고맙다고 말해 봐.”

“고…….”

말을 꺼내던 리혁이가 바닥에 떨어진 편의점 봉투를 주웠다.

“고구마 말랭이 사 왔네요. 잘 먹을게요.”

“야.”

고구마 말랭이 봉지를 들고 튀는 녀석.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비주가 다가와 새삼스러운 일이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리혁이가 좀 감정 표현이 서투르잖아요.”

“쟤 성격 진짜 이상해.”

“그래도 보면 볼수록 착해요.”

비주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얼른 와요. 형. 보쌈이랑 족발 진짜 많이 있어요. 오늘 대표님이 양 걱정하지 말라고 많이 사셨대요.”

연습실 바닥에 신문지와 함께 세팅된 보쌈과 족발 세트를 세팅하는 중현이와 지호가 보였다.

겉절이 김치와 비빔국수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비주 형, 먹어도 돼여?”

“아직. 다 같이 먹어야지.”

“와, 저 형 완전 공산당…!”

비주가 나에게 얼른 가자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 저기… 비주야.”

“네?”

“나 아무래도 같이 못 먹을 것 같은데. 곧 면담…….”

급격하게 시무룩하게 변한 표정에 말을 바꿔야 했다.

“아무래도 조금 먹고 가는 게 낫겠지?”

“잘 생각했어요. 형.”

다시 화사한 미소.

비주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뭔가 다들 하나씩 이상하다.

꼭 뭔가를 다 같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애, 밖에서 잘 때도 신발 안 벗으면 잠을 못 자는 애, 감정 표현에 애로 사항이 있는 애.

그리고 막내는 어휴…….

역시 이 그룹에 정상인은 나밖에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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