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화
원래대로면 면담을 하러 갈 시간이었지만, 꼭 다 같이 뭘 해야 직성이 풀리는 누구 덕분에 잠깐 앉았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리혁이 형, 여기 형을 위해 준비한 특별 쌈이에여.”
“어, 그래. 너도 이거 먹어라.”
웬일이래.
막내와 리혁이가 사이좋게 보쌈과 족발 쌈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
“푸흡-! 야! 왕지호, 너 뭐 넣었냐?”
“콜록! 형, 이게 콜록- 뭐예여?”
그럼 그렇지.
각자 고추나 마늘을 왕창 집어넣었는지 얼굴이 벌게져서 물을 벌컥 마셔대는 애들이 보였다.
가끔 느끼는 건데.
어쩌면 쟤네는 서로를 암살하도록 DNA 레벨부터 프로그래밍된 애들이 아닐까.
“형, 이거 드세요.”
비주가 어미 새처럼 내 앞 접시에 족발이나 보쌈 중에 제일 먹음직스러운 부분들을 올려놓았다.
출출해서 그런가.
입맛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입에 들어오니 살살 녹는다.
맨날 투닥거리는 동생 라인과 달리 맞은편에 앉은 형 라인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 중이었다.
족발을 뼈째로 흡입하던 중현이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우주 형.”
“응?”
“대표님 무찌를 때 쓴 기술이요.”
비주랑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레가 들릴 정도로 웃던 비주가 동갑내기를 웃으며 타박했다.
“김중현, 가만히 있는 대표님을 왜 무찌르냐. 대표님이 악당도 아니고.”
“아, 그렇네. 그럼 대표님을 습격…?”
적당한 어휘를 찾기 위해 고전하는 래퍼를 보며 리혁이가 혀를 찼다.
“형은 랩 메이킹이 직업인데 어휘력이 딸려요?”
“내가 지금 먹는 데 집중해서 그래. 아무튼 그 대표님 바닥에 메다꽂았을 때 쓴 기술이요. 그거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미튜브 이것저것 보고.”
“그걸로 돼요?”
“저 형, 춤도 바로 보고 배우잖아여.”
막내의 지적에 모두 ‘아….’ 하며 납득했다.
그러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한데, 하도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걸 많이 보다 보니 그러려니 하네요.”
“처음에 편곡 하루 만에 했을 때도 진짜 이상했다니까여. 외계인인 줄.”
“맞아. 나 그때 엄청 놀랐어.”
“갑자기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형이 ‘너희 다 틀렸거든’하면서 편곡 하루 만에 된다고 했을 때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여.”
“그게 이상했냐.”
오, 서리혁. 내 편 들어 주는 거냐.
“엄청 이상했지.”
“…….”
“처음에는 적응 못 해서 얼떨떨했는데 보다 보니까 이제는 그냥 적응하는 것 같아요. 아, 저건 선우주가 선우주했네, 하고.”
“내가 그렇게 이상했나?”
내 혼잣말에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진짜 이상했어여.”
“우리 도와줄라고 온 외계인인 줄 알았다니까.”
“춤 못 춘다고 엄살 부리더니, 춤 잘 춘다고 칭찬 듣지. 갑자기 일주일 치 편곡 하루 만에 하고, 연말 평가에서 장소원 선배한테 작업하자고 이야기 듣지. 막상 작업하러 갔더니 갑자기 기타 치면서 뚝딱 편곡하고 그 곡이 1위를 하지를 않나.”
“듣고 보니 진짜 이상하긴 하다.”
젓가락을 물고 있는 비주의 동조를 마지막으로 나는 웃었다.
칭찬인 건지, 욕인 건지.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벌어진 일들이 하나같이 다 이상하긴 하다. 이게 인과 관계가 맞물리기는 하는데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래도 이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조규환 이사님의 신기가 아닐까여.”
막내가 괴상한 이론을 꺼내들었을 때, 나는 잊고 있었던 약속이 떠올랐다.
아, 맞다.
조 이사님이랑 면담 약속 잡고 있었는데.
“내 정신 좀 봐. 늦었네.”
“어디 가세요?”
“조 이사님이랑 면담 약속 잡았거든.”
“면담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멤버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았다.
시간도 애매하고.
어차피 이런 고민은 나 혼자 짊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금방 돌아올게. 조금 있다가 보자.”
* * *
CEO 룸.
분명 조 이사와 면담을 하기로 하고 올라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대표님 사무실이었다.
“건배~”
얼굴에 붉은 빛이 감도는 아저씨들이 맥주 캔을 부딪친다.
나는 누구고 왜 여기 있는 것인가.
대표님이 사람 좋은 미소로 캔을 내밀었다.
“우주도 한잔할래?”
“대표님, 큰일 날 소리 마세요. 얘 내일 음방 뛰어야 돼요.”
조 이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제로 콜라를 홀짝일 때 박규호 대표가 내게 보쌈을 먹여 주었다.
“우주 고생 많았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연말 평가 때부터 느꼈지만 우주가 오고 나서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 하하, 규환이에 이어서 우리 회사 복덩이 넘버 투네.”
“맞아요.”
조 이사가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 경영 지원팀장이 신나서 노래 부르던데요. 이번 분기 음원 수익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 같다고. 그 양반이 웃는 거 영화 천만 찍었을 때 이후로 처음 봅니다.”
“우주가 정말 큰일을 했지. 윤 실장도 뿌듯하겠어.”
“아유, 다 대표님이랑 이사님 공이시죠.”
“이게 무슨 내 공인가. 우주도 잘해 주고, 애들도 잘해 주고. 모두가 잘해 준 결과지, 핫핫.”
“대표님이 화이 엔터랑 딱 매듭지어 주지 않으셨으면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했겠습니까.”
윤석환 실장의 혓바닥이 움직일 때마다 대표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역시.
이 형도 공짜로 저 자리 먹은 건 아니구나.
윤석환 실장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칭찬을 늘어놓던 박 대표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참, 이번에 돈도 많이 들어올 텐데. 저작권료로 뭘 할지 생각해 봤어?”
“아직은요.”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저축하려고요. 지금까지 이 정도 큰돈을 관리해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원래 연습생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돈이 계속 쌓인다.
쓰는 법도 모르고, 쓸 곳도 없으니까.
“굳이 쓴다면 할머니를 위해 쓸까 해요.”
“좋은 생각이네. 조 이사는 첫 대박곡이 나왔을 때 뭐 했더라? 부모님 집을 사 드렸나?”
“집은 나중이고요, 대표님. 전 차를 바꿔드렸죠.”
“그랬지.”
잠시 어른들끼리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용히 보쌈을 먹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데 낄 화제가 없었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 찔러서 보니 윤석환 씨가 내게 모종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대표님. 허리는 괜찮으세요?”
“조금 욱신거리기는 하는데 괜찮아질 거야. 파스 좀 붙이면 되겠지.”
“정말 죄송합니다.”
“아냐. 놀래 주려고 어깨를 붙잡은 내가 잘못이지. 누가 그러잖아.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라고. 하하!”
다행히 대표님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어가 주었다.
나는 조용히 젓가락질을 하는 피해자 2를 바라보았다.
“형은?”
“나 허리디스크 환자야, 인마.”
“…진짜 미안.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꼭 책임질게.”
“됐다, 이것아. 너나 아프지 말고 건강해.”
윤석환이 퉁명스럽게 손사래를 치는 동안, 대표님이 자연스럽게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듣자하니 원래 이 시간이 면담이었다면서.”
“아, 네.”
“기왕 이리 된 거 우리도 들어 볼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사님에게 하는 이야기는 대표님 귀에 흘러 들어가기 마련이다.
무엇을 말하든 어떠랴.
나는 조심스럽게 최근 품고 있던 고민을 꺼냈다.
살짝 술에 취한 아저씨 삼인방은 내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이어진 침묵.
처음으로 말을 꺼낸 건 조 이사였다.
“멤버들이 노래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네?”
눈을 깜빡거리는 나에게 조 이사가 말했다.
“음원 차트 순위도 역대급이고 음악 방송 순위는 뭐 말할 것도 없지. 매체에서 장기 집권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니까. 너희 데뷔 곡이면 모르겠는데 프로젝트 음원 아닌가? 어차피 예정에도 없는 인기인데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
조규환 이사가 다소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끝마쳤다.
뭔가 대답 잘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는 내 생각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이어서요. 그리고 지금은 욕심을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예정에 없던 인기라지만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회가 아니잖아요. 이걸 최대한 살려 보고 싶어요.”
조규환 이사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눈을 보면서 뭔가를 파악하려는 듯 바라보던 조 이사가 이내 씩 웃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좋은 대답이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대표님과 윤석환 씨가 귀엽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태를 눈치챘을 때쯤 조 이사가 말했다.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서 떠본 거야, 미안해.”
“아…….”
“사실 조금 신기했거든.”
그가 웃었다.
“윤 실장님이랑 내가 똑같은 내용으로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러셨어요?”
“뉴블랙의 이미지를 형성할 기회인데 리혁이를 빼면 주목을 받지 못하니 우리로서는 당연히 아쉽지. 네 말대로 우리 애들 실력은 어지간한 가수와 견주어도 크게 손색이 없으니까.”
하긴.
내가 하는 고민을 어른들이라고 안 했을까.
“우리도 네 말에 동의해. 연예계에서 성공하려면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살리는 게 필요하지.”
그 말에 동의하듯 다른 이들도 끄덕였다.
“실장님, 우주한테도 말씀해 주시죠.”
“예.”
윤석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류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왔다.
‘뉴블랙 활동 계획’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서는 깔끔하게 정리된 기획들로 가득했다.
“원래 일정 픽스되면 말해 주려고 했는데 너한테만 미리 말해 주는 거야.”
“뭘요?”
“네가 말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우리도 고심했거든. 그리고 찾았어.”
벌써 찾았다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윤석환이 대답해 주었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사람들에게 뉴블랙이라는 그룹을 소개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죠.”
“예능 같은 프로그램에는 나갈 수가 없어. 지상파는 더더욱. 장소원 없이 우리만 단독으로 불러 줄 곳도 없을뿐더러, 아직 너희한테는 이야깃거리를 풀 만한 경험도 부족하니까.”
그건 당연했다.
분량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는 예능판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은 고인물 가득한 게임에 뉴비가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너희가 음악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도 부담 없이 출연할 수 있는 곳이 하나 있어. 노래 솜씨도 보여 줄 수 있고.”
“라디오인가요?”
“아니, 음악 방송.”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음악 방송이라면 우리가 매일 나가는 그곳?
눈을 깜빡거리는 내 모습에 윤석환이 종이에 적힌 프로그램명을 가리켰다.
“하승주의 뮤직카페…? 아!”
하승주의 뮤직카페.
PBS 방송국에서 12시를 넘긴 시각에 방영하는 심야의 음악 방송이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하승주가 진행하는 뮤직카페는 늦은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MC인 하승주가 진행을 잘하기로도 유명하고 라이브 무대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뮤직카페에 출연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실력을 보장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뮤직카페 같은 경우 단순히 무대만 하는 음방과 달리 MC가 초청 가수의 매력을 살리는 토크를 하기 때문이다.
왕초짜 신인 뉴블랙이 좋은 이미지를 남기며 활동을 마무리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가 출연할 수 있을까요?”
뮤직카페는 출연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듣기로는 인기 가수라도 라이브 실력이 별로라고 판단하면 거침없이 커트한다고 하던데.
“승주 형이랑 내가 아는 사이기도 하고, 윤 실장님도 담당 PD님과 안면이 있어서 출연은 어렵지 않을 거야.”
“며칠 동안 열심히 기름칠해 놨죠.”
“이제 너희가 방송에서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 주냐만 남은 거지. 어때, 이제 고민은 좀 풀린 것 같아?”
“네.”
“그런데 말이야, 우주야.”
조규환 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한테 얘기하기 전에 멤버들이랑 상의는 했니?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걔네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그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차.
실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네가 리더잖아. 우리는 네가 이야기를 할 때 애들을 대표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미안할 일은 아니지. 팀을 위해서 그런 거니까. 하지만 다음에는 멤버들과 미리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
그가 웃으며 말했다.
“뉴블랙은 너 혼자 있는 그룹이 아니잖아.”
* * *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석환 실장이 희소식을 들고 왔다.
“너희 뮤직카페 출연 확정됐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우리가 나오기로 한 분량은 고작 10분 남짓이었지만 그 하나를 위해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토크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작가님들과 사전 인터뷰를 해야 했고, 라이브를 위한 색다른 무대 준비도 필요했다.
거의 매일 밤을 새며 레퍼토리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힘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기회는 아쉬운 사람이 노력해서 잡아야 하는 법이다.
3분짜리 무대를 위해 12시간을 쓰는 음방도 있는데 이런 준비야 별로 힘들다고 말할 것도 없었다.
음악방송 인기가수 대기실.
“뮤직카페?”
당연한 이야기지만 뉴블랙의 출연은 장소원과의 공동 출연이었다.
썸씽을 빼고는 아직 우리 노래가 없었으니까.
뮤직카페에 출연하기로 한 그녀는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녀에게는 이미 고민 상담을 하며 밑밥을 깔아 놨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 잘됐다.”
장소원은 수플레와 커피를 먹으며 반색했다.
“내가 너희한테 달린 댓글 보고 어이없어서 답댓글 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까. 앞으로 다시는 꽃병풍 소리 같은 거 못 하게 이번 기회에 화끈하게 보여줘.”
“같이 나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가 주기는. 이제 활동 마무리하면 잘 만나지도 못할 텐데 얼굴 볼 수 있을 때 봐 둬야지.”
그녀가 웃었다.
“그것보다 같이할 무대가 기대되는데. 어때? 이번에는 뭘 준비했어?”
* * *
PBS 방송국 공개홀.
4월 초를 맞이하여 봄꽃이 예쁠 무렵이 하승주의 뮤직카페 녹화 날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음방 활동을 마무리했다.
여전히 망고 차트의 월간 1위를 쭉 고수하고 있긴 했지만 4주차에 컴백한 솔로 가수와 인기 아이돌에게 밀려 1위 후보에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양측 소속사는 이제 활동을 정리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활동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해 있었다.
“와… 엄청 크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백 스테이지로 왔을 때 우리는 무대 사이즈를 보고 기겁했다.
스케일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음악 방송 스튜디오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함이었다.
그만큼 긴장감도 배가됐다.
비주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기를 반복했고, 리혁이는 손에 배어 나온 진땀을 티슈로 콕콕 닦아냈다.
평소였다면 긴장했냐고 리혁이를 놀릴 우리 막내도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현이만 보살처럼 평온할 뿐.
얘는 내가 대표님을 엎어치기했을 때도 깜짝 놀란 다른 녀석들과 달리 ‘오, 저 기술 쩐다.’라고 생각한 애니, 뭐.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스태프를 뚫고 나타난 FD가 우리를 불렀다.
“뉴블랙 팀.”
“네!”
인터컴을 착용한 FD가 지시를 듣더니 우리를 둘러보았다.
“누가 우주 씨죠?”
“저예요.”
“먼저 올라가서 리허설 진행할게요. 피아노 사운드부터 체크할 거고요. 2분가량 진행한 다음에 곧바로 팀 리허설 진행하겠습니다. 무대 올라갈 때 미리 알려드린 대로 동선 주의하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그 뒤에도 1분 동안 주의 사항을 속사포처럼 다다다 말한 FD는 금세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
“어… 나 긴장해서 까먹은 것 같은데.”
“중현아, 넌 들었지?”
“아, 딴생각하느라.”
혼란에 빠진 동생들은 자연스럽게, 아니 이게 왜 자연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난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기.”
“……?”
“녹음해 놨으니까 들어.”
“……!”
구세주를 보듯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무대로 올라갔다.
가운데 세팅된 그랜드 피아노.
무대 아래쪽에서는 고쳐야 할 점을 찾기 위해 수첩을 들고 있는 작가님들과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제작진이 보였다.
카메라 위치부터 확인하고.
피아노 의자 시트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