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화
뮤직카페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는 당연히 Something이었다.
처음에는 고민했다.
편곡을 하거나 리메이크를 해서 새롭게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때 조규환 이사가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관객이 늘 새로움만 찾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익숙한 무대를 함부로 바꿨다가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어.”
장소원 선배도 동의했다.
“슈가피쉬 때 그렇게 해 봤거든? 근데 관객들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 무대도 하나의 쇼거든. 영화랑 비슷해. 관객이 기대하는 게 있다면 일단 그걸 먼저 충족을 시켜 줘야 해. 반전이나 새로운 건 그 다음에 보여 주는 거고.”
그 조언에 따라 지금까지 해 왔던 그대로 Something 무대를 준비했다.
오늘부터 나는 너와 썸을 탈 거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너를 잡고
너와 내 사이를 좁혀갈 거야
후렴구를 부를 때는 관객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작은 행사에서도 이렇게 관객과 함께 노래를 부른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많은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 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온다고 할까.
첫 무대가 끝나고 MC인 하승주와 함께 토크 코너에 들어갈 때까지도 우리는 그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멋진 무대였죠? 다시 박수 한 번씩 보내주시죠.
MC의 멘트와 함께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그동안 우리는 세팅된 의자에 앉았다.
TV 화면을 기준으로 장소원 선배가 가장 왼쪽, 그 사이에 멤버들이 있고 내가 하승주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토크 코너를 잘 넘겨야 할 텐데.
인터뷰는 해 봤지만 이런 식의 토크는 처음이었다.
혹여 말실수를 할까 봐, 석환 형이 우리를 방에 가두고 토 나올 정도로 연습을 시켰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에 든 마이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물들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할까요?
-예, 안녕하세요. 가수 장소원입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중간에 어떤 남자가 ‘누나 사랑해요!’하면서 외치는 바람에 객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설마 우리 로드 매니저 형은 아니겠지.
장소원은 눈웃음을 흘리며 여유롭게 받아 줬다.
-여기도 제 팬이 있는 줄 몰랐네요. 네, 반갑습니다. 저는 장소원이고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신 그 그룹 메인보컬 출신입니다.
슈가피쉬는 마약 사건 이후 아예 출연이 금지된 터라 일종의 볼드모트 취급이었다.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어두운 과거를 미소로 승화시킨 그녀에게 보내는 격려였다.
-장소원 씨도 정말 오랜만에 뵈네요.
-네, 이런 음악 프로는 정말 오랜만에 뛰거든요. 제가 원래 무대 나오면서 긴장하는 체질이 아닌데 오늘은 엄청 떨면서 나왔어요.
-그래요?
-네, 존경하는 선배님도 계시고 그러니까.
-소원 씨가 이러면 저 마음 약해져요. 원래 분량 칼같이 지켜야 되는데 더 챙겨 주고 싶잖아.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보셨죠, 여러분? 제가 이렇게 정에 약해요.
방송 유경험자끼리 너스레를 주고받는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왔다.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뉴블랙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우주입니다.”
-메인댄서를 맡고 있는 비주입니다.
-래퍼를 맡은 중현입니다.
-메인보컬을 맡은 서리혁입니다.
-막내와 비주얼을 맡고 있는 지호입니다. 사랑해요.
얘는 소개를 하랬더니 애교를 부리냐.
잘못하면 과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막내 특유의 표정 연기 덕에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MC인 하승주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소개가 개성이 있는 팀이네요. 그런데 지호 씨, 제가 작가분들에게 듣기로 비주얼 멤버는 우주 씨라고 들었는데요?
-아녀. 저예여.
지호의 대답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가 그렇다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주 씨?
“저도 저희 막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로요?
“사실…….”
내가 짐짓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이렇게 말해 줘야 숙소 돌아가서 안 삐치거든요.”
-그럼 비주얼이 아니라는 건가요?
“예, 저 친구는 자칭 비주얼이지 않나.”
장난스러운 내 대꾸에 관객들이 웃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마디 더 던져도 되겠는데.
누구한테 던질까. 그나마 눈치 빠른 녀석이 나을 텐데.
판단은 빠르게 끝났다.
“사실 진짜 비주얼은 비주라고 생각해요. 처음 봤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보면 볼수록 아우라가 넘치는 친구거든요.”
나와 눈빛 교환이 끝난 하승주가 감을 잡았다는 듯 토크의 방향을 틀었다.
-그렇군요. 비주 씨, 의견은 어때요?
“아니예요.”
비주가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순하게 생긴 미소년의 웃음에 일부 관객들이 술렁이는 것이 보인다.
녀석의 섬세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공개 홀에 울려 퍼졌다.
“저는 저희 팀 메인보컬인 리혁 씨가 제일 잘생긴 것 같아요.”
-그럼 리혁 씨는 어떠세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챘는지 리혁이도 손가락으로 중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래퍼님이 비주얼이죠.”
-아, 그럼 중현 씨로 넘어가 볼까요?
예상대로 중현이는 나를 지목했다.
서로 외모 칭찬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소외된 막내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형들에게 배신당한 막내의 표정 변화가 화면에 실시간 중계되면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진심은 아니었다.
방송이니 어디까지나 보여 주기 위한 표정일 뿐이다.
지호가 진짜로 서운한 표정을 지었으면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 났을걸.
-은근히 능글거리는 매력이 있네요, 뉴블랙.
깨알같이 어필을 해 주면서 MC인 하승주가 다음 토크로 넘어갔다.
주제는 당연히 Something이었다.
공동 작곡자인 장소원 선배와 내가 날아다닐 시간이었다.
-듣기로는 썸씽의 작곡 과정에서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면서요?
-네.
장소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연말 평가라는 행사가 있어요.
-연말 평가요?
-아이돌 연습생들은 매달 월말 평가를 진행하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인데…….
-수험생들이 보는 모의고사 같은 거군요?
과연 MC 짬밥은 허투루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승주의 비유에 관객석에서 알아들었다는 듯 ‘아~’하는 소리가 나왔다.
-연말 평가는 저희 회사랑 근처에 있는 네 회사가 함께, 진행하는 연합 평가예요.
-일종의 쇼케이스군요.
-예. 거기서 뉴블랙과 우주 군을 처음 만났죠.
-가수 대 가수가 아니라 가수와 연습생 신분으로 만났던 거였군요?
-네, 그렇죠.
-뉴블랙의 어떤 매력이 장소원 씨를 콜라보레이션으로 이끌었나요?
소원 선배는 연말 평가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연습생 대다수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점철된 무대를 선보였는데, 갑자기 트로트로 무대를 시작한 팀이 나타났다.
그런 신선함이 일단 시선을 끌었다나.
-트로트라니, 어떤 무대였는지 궁금하네요. 살짝 맛보기로 볼 수 있을까요?
“제대로 기억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신인다운 어조로 대답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대본에도 (뉴블랙 퍼포먼스)라고 적혀 있는 레퍼토리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연습을 해 온 터였다.
지호, 나, 리혁이로 이어지는 짧은 트로트 메들리에 관객들이 짧은 박수를 보내 왔다.
-어우, 트로트를 시원하게 부르네요. 장소원 씨가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아요.
-탄산처럼 톡 쏘는 팀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뉴블랙의 편곡을 담당한 게 전문 프로듀서가 아니라 멤버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아, 진짜요?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던 MC가 관객석을 향해 설명했다.
-알다시피 작곡보다 편곡이 더 어렵거든요. 왜냐하면 편곡은 악기에 대한 이해나 화성학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진행이 되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리면서 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닌데…….
-그때부터 우주 군이랑 작업을 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운명 같은 만남이라고 할까요.
-썸씽의 성공 신화를 생각하면 정말 그러네요.
-사실, 썸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우주 군이었어요.
-그래요?
작곡에 얽힌 일화를 설명하는 동안, 하승주의 눈빛이 관심이 가득해졌다.
그러고는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한 듯한 시선에 나는 움찔했다.
-장소원 씨 이야기를 들으면 우주 씨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은데, 우주 씨는 공동 작곡을 하면서 어땠어요?
“사실 선배님이 좋게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 노래는 장소원 선배님으로 시작해서 장소원 선배님으로 끝난 노래라고 생각해요. 저는 잠깐 손을 보탰을 뿐이고요.”
-서로 띄워 주고. 참, 겸손한 콜라보레이션이네요. 여태까지 나온 콜라보레이션 중에 가장 겸손한 듀오 같아요.
하승주의 우스갯소리에 사람들이 웃었다.
나와 소원 선배는 작곡이나 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중간중간 멤버 얘기를 섞었다.
그 파트를 부를 때는 비주가 어떤 동작을 제안했다, 리혁이가 보컬 디렉팅을 했다 등등.
효과는 조금 애매했지만 말이다.
* * *
“잘하네.”
부조정실에 앉아 있는 피디가 감탄하듯 말했다.
“생방송이라서 마냥 떨 줄 알았는데, 신인치고 이 정도면 괜찮아.”
“괜찮은 편이 아니라 잘하는데요.”
“리액션도 잘하고, 토크하는데 잘 받아먹을 줄도 아네. 나중에 다른 프로 피디한테 소개시켜 줘도 되겠어.”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대상은 선우주였다.
“잘생겼는데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요.”
“비주얼만 보면 웬만한 아이돌은 압살할 것 같지 않아요? 제대로 히트 치면 팬 좀 모으겠는데.”
“팬 장사가 잘생겼다고 되나. 요즘에는 그 자진모리……? 뭐 그런 상이 유행한다면서.”
“덕후 몰이상이요, 피디님.”
“그래, 그거.”
“근데 저건 취향을 안 타는 얼굴이잖아요.”
작가진의 흐뭇한 미소에 피디는 헛웃음을 지었다.
화면 속 선우주를 바라보며 작가 하나가 감탄했다.
“진짜 열심히 하네요.”
“신인이 뮤직카페 나오기가 쉽나. 당연히 죽을 각오로 해야지.”
“그렇긴 하죠.”
“조금 아쉬운 건 리더가 주워서 먹여 주는데 애들이 생각만큼 따라와 주질 못하는 것 같아요.”
“저게 보통이죠. 신인 때는 카메라 불만 들어와도 벌벌 떨잖아요.”
그 말대로 선우주는 적절하게 동생들에게 멘트를 먹여주고 있었다.
장소원과 세트로 어미 새와 아비 새 같다고 할까.
하지만 방송이 처음인 멤버들은 살짝 더듬을 때가 있었다.
-어…….
지금처럼 예상 못 한 질문에 한 멤버가 2초 정도 머뭇거리는 식이었다.
그 경우, 하승주가 다시 그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릴 것처럼 매정하게 다른 이에게 질문을 돌리곤 했다.
“승주 씨도 냉정하다니까.”
“자기 분량은 자기가 챙겨야죠, 뭐. 라디오에서는 정적이 3초를 넘기면 방송 사고인데.”
“원래 하승주 씨가 리액션 잘 받아먹는 친구들한테 집중하는 타입이잖아요.”
그날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불행한 방식이었지만, 오늘날의 뮤직카페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재미를 뽑아 먹는 진행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피디님?”
“뭐가?”
“승주 씨가 특정 게스트 분량을 늘려 달라고 한 적은 처음이잖아요?”
“허용 범위 내에서 해 주는 거잖아. 5분 정도. 뭐가 문제야?”
“전례가 없던 일이잖아요. 다른 팀이 불만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한 스태프의 말에 피디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었다.
“출연자 중에서 우리한테 뭐라고 할 급이 있나?”
“아뇨.”
“분량 늘이고 줄이는 건 방송국 고유 권한이잖아. 그리고 분량도 그냥 챙겨 줘? 앞으로 나올 내용은 그만큼 화제성이 있을 거야. 문제없어. 그리고 뒷말 나오면 어때?”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장땡이지.”
* * *
작곡에 관한 이야기나, 자잘한 신변잡기 토크가 끝나고 이제 남은 무대는 두 개였다.
-자, 이제 중간 무대를 볼 시간이군요.
MC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준비됐냐는 눈빛이었다.
내 눈짓에 하승주가 말을 이어갔다.
-우주 씨가 피아노에도 재능이 있다고 들었어요.
“아, 아니에요.”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쳐 와서 익숙할 뿐이지, 부족한 실력이에요.”
-여러분, 속으시면 안 됩니다.
하승주가 객석을 보면서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아까 리허설 중에 몰래 들어와서 지켜봤는데, 저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지만 저 나이 때 저런 감성을 주지는 못했거든요. 우주 씨의 피아노는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흥행사의 적절한 대사에 관객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감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이윽고 나는 여유롭게 그랜드 피아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떨린다.
표정 연기의 대가, 왕지호 씨에게 전수 받은 여유로운 표정을 얼굴에 띄웠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대라는 놈은 참 희한하다.
좀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떨림이 찾아온다.
내가 멤버들의 의자 앞을 지나갈 때, 녀석들은 힘내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후우…….”
보이지 않게 얕은 심호흡을 한 후에 나는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차가운 감촉.
의자 시트의 감촉은 몹시 차가웠다.
“…….”
관객석은 조용하다.
호기심과 기대를 품은 눈동자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나를 지켜본다.
묵직한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관객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승주가 피아노로 칭찬한 건 처음인데. 얼마나 잘 치는 거지?’
그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집중됐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잘생긴 아이돌 멤버.
피아노에 한 팔을 올리자,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객석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살짝 긴장했는지 선우주의 목젖이 두어 번 올라갔다 내려간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됐다.
전설적인 재즈 명곡 ‘Route 66’를 피아노 버전으로 어레인지한 것이었다.
몹시 경쾌한 선율.
첫 소절이 들린 순간부터 관객들은 연주에 매료됐다.
그것은 아마도 선우주 본인이 연주에 몰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잔뜩 긴장하며 피아노 앞에 앉은 것과는 달리 막상 연주를 시작하니 사람이 확 달라졌다.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피아노에서 음표가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관객들은 홀린 듯 선우주를 바라봤다.
음악을 즐기는 얼굴이었다.
어깨가 자연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고, 페달을 밟는 무릎도 사뿐사뿐하게 움직였다.
희고 검은 건반 위에서 손가락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유쾌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Route 66’의 편곡에는 어딘가 모르게 멜랑콜리한 맛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이별한 연인을 유쾌하게 노래하는 신사를 보는 것 같았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선우주를 단순히 잘생긴 아이돌이라고 인식하던 관객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선우주의 무대 그 자체를 감상했다.
“리허설 때보다 두 배는 잘하네.”
부조정실에서 지켜보던 피디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인터넷에 클립 올릴 때 반응 좀 괜찮겠어.”
“저 그룹도 실전 타입인가 봐요. 리허설 때는 바짝 쫄아 있던 것 같은데, 그런 기색이 온데간데없네요.”
“그러게, 관객들 반응은 어떤 것 같아?”
화면 너머로 관객들 표정을 지켜보던 조연출이 대답했다.
“대성공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PD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선우주를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니까.”
아까 하승주와 이야기를 나누며 선우주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하승주가 뉴블랙의 분량을 늘리자고 했을 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눈살을 찌푸렸던 그도 선우주의 아버지에 대해 듣고는 곧바로 납득했다.
시청률을 높일 만한 화젯거리였으니까.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뭐…….’
이윽고 연주가 끝났다.
카메라가 관객들의 박수를 담는 동안, 선우주는 자리로 돌아왔다.
하승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말 근사한 연주였어요. 본인이 직접 편곡을 하신 거죠? 정말 작곡부터 시작해서 음악적으로 재능이 많은 친구네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선우주에게 MC인 하승주가 큐카드를 보면서 짐짓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런 음악적 재능은 타고나신 건가요? 물론 본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예술이라는 게 재능도 중요한 거잖아요?
-아, 그게요.
선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이신 아버지를 어린 시절부터 많이 봐 왔거든요.
-혹시 성함이?
-선명주라고…….
그 이름에 관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선명주.
15년 전,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피아니스트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