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화 (3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화

선명주.

15년 전 유명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이름이었다.

“아……!”

관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30대를 넘긴 관객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이었다.

선명주.

엄밀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전문 분야는 재즈.

국제 재즈 콩쿠르에서 최우수 연주자로 수상한 것부터 시작해서 선명주는 재즈계의 전설이었다. 각종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세계 유수의 음악 잡지 표지에 얼굴을 올리기까지.

그의 인생역정 또한 화젯거리였다.

혈혈단신의 고아가 피아노 연주라는 재능을 발견해서 세계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스토리.

한국에서 활동할 적에는 무명이었으나, 그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고향 땅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IMF 위기로 힘들었던 90년대 후반, 야구와 골프를 보며 현실을 잊던 국민들은 전 세계를 도는 그의 행적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대한민국 전체가 우울해하고 있을 때, 미주 대륙의 가장 화려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선명주는 많은 이들의 희망이자 자랑거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화려함도 오래 가진 못했다.

해외 투어를 위해 출국한 선명주는 부인과 함께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90년대 후반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랬기에 선우주가 아버지를 밝혔을 때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은 것은 당연했다.

한때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유명인의 아들을 가수로 만나다니.

하나 모두가 선명주를 아는 건 아니었다.

‘선명주는 또 누구야?’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방청하는 뮤직카페 특성상 선명주를 아는 이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방청하러 온 젊은 커플들에게는 낯선 이름이기도 했다.

일부는 핸드폰을 몰래 꺼내 검색창에 ‘선명주’를 입력하기도 했다.

이윽고 위키 같은 곳에서 내용을 일부 확인한 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곤 했다.

선명주와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면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 미국 대통령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인사들.

합성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그의 행보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와닿았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역시.”

부조정실에 앉아 있는 PD가 휘파람을 불었다.

“화제성이 있다니까.”

*   *   *

우리 아빠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하승주가 물었을 때 당황하긴 했어도 이내 담담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단지 조금 갑작스러웠을 뿐이었다.

뮤직카페의 MC 하승주에게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이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할머니?”

대기실 복도에서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고의 희생자는 아빠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금지옥엽으로 키우던 딸이 사위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자식이 비극적으로 죽었는데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어 가슴앓이를 했던 할머니를 난 기억한다.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면 반드시 그 사고도 사람들의 입에 오를 텐데, 그건 할머니의 오랜 상처를 헤집는 결과가 될 수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나에게 할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네 맘대로 혀.

“응?”

-네 마음 가는 대로 혀라고. 어차피 지난 일이고.

날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지난 일이라는 듯 덤덤하게 대꾸하는 할머니였다.

나는 그 목소리 한구석에 남아 있는 감정을 눈치챘다.

어딘지 주저하시는 듯한 느낌.

외동딸에 대한 그리움일까 생각했지만 할머니의 다음 말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런데 괜찮겠냐.

“응? 뭐가?”

-너 말이야, 이눔아. 네가 괜찮겠냐고.

그건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

당연히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5년.

얼굴도 희미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만약 이만큼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선명주 씨라니, 이것 참 놀랍네요.

하승주가 안경을 고쳐 쓰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웃었다.

역시 방송물 먹은 사람은 연기도 잘하는 구나.

-다른 멤버 분들도 알고 계셨나요?

관객들의 시선이 멤버들에게 향했다. 뉴블랙 멤버들은 그 질문에 모두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방송 전 대기실.

나는 장소원 선배와 멤버들을 불러 모으고,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걱정을 표현한 건 비주였다.

“안 돼요.”

“뭐가?”

“고작 분량 몇 분이랑 형 가정사랑 교환하는 게 말이 돼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늘 부드럽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제법 단호한 어조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석환 형도 입술을 뗐다.

“오늘 출연만 해도 충분해. 무리할 필요는 없어.”

말은 그리 하지만 눈에서 갈등이 엿보였다.

친한 형으로서 걱정되는 한편, 담당 매니저의 관점에서는 훌륭한 찬스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쌩신인의 방송 분량을 확 늘리는 것은 매니저들이 로비를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인 데다가, 우리 아빠에 관한 이야기는 좋은 의미로 화젯거리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난 부외자니까 빠질게.”

장소원이 일어섰다.

“내가 감히 가타부타 말을 꺼낼 만한 상황이 아닌 거 같네. 이런 문제는 식구들끼리 결정해야지.”

뒤에 서 있는 우리의 로드 매니저 서민기 씨도 최애의 말에 동감을 표현했다. 둘은 잠깐 자리를 비켜 주겠다며 대기실을 떠났다.

온전히 우리만 남은 대기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왠지 식구들이 반대하고 내가 설득하는 구도가 됐다.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잖아. 이걸 마무리로 활동을 끝낼 텐데, 기왕이면 관심을 더 받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리 같은 신인이 어디 가서 이 정도 분량 받는 것도 어려운….”

“형, 그건 매니저의 관점이고요.”

중현이의 묵직한 목소리에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형은 매니저가 아니라 멤버잖아요.”

“…….”

“잘되라고 챙겨 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저희 바보 아니에요. 뮤직카페 출연하게 된 사정도 알아요.”

“……알아?”

“실장님한테 들었어요.”

내 시선에 석환 형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이사님이랑 면담한 다음 날 얘네 넷이서 찾아왔거든. 활동 마무리하기 전에 이미지 좀 바꾸고 싶다고. 너랑 똑같은 고민 얘기하길래 네가 먼저 와서 이야기했다고 말해 줬지.”

“민망하네. 나만 그런 생각한 줄 알았는데.”

“사람 생각 다 거기서 거기예요.”

리혁이가 말했다.

“우리라고 그런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 몰래 그런 면담 하고 다녔다고 했을 때 배신감도 좀 느꼈는데.”

“야. 너희도 이야기 안 했잖아.”

“저희는 경우가 다르죠. 형.”

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가뜩이나 형이 인터뷰나 개인 스케줄 때문에 바빠 보여서, 걱정시키기 싫어서 말하지 않은 거예요.”

“나도 걱정할까 봐 안 말한 거야.”

“쌤쌤이네여.”

막내의 요약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우리는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정답이었다.

서로 의 좋은 형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으니 쌤쌤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그럼 앞으로는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하자고.”

내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안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TJ에서 연습생 동생들 챙겨주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너희들도 은연중에 동생처럼 보고 있었나 보네. 다 같은 멤버인데.”

“전 계속 어리게 봐 주세여. 귀여우니까.”

발랄하게 끼어드는 막내를 리혁이가 ‘분위기 파악, 이것아’하면서 주먹으로 콩 때렸다.

지호 때문에 할 말을 까먹어 버린 나에게 중현이가 말했다.

“방금 말했지만 꼭 저희 챙겨 주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형.”

“…….”

“이번만큼은 우리 리더도 아니고, 프로듀서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형이 원하는 대로 해요. 어차피 형 없었으면 이 자리도 없었을 거잖아요.”

“…….”

“왜 그러세요?”

“좀 새삼스러워서.”

매일 나무늘보처럼 지내던 김중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신기하고 새삼스럽다.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눈치가 없다고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에요. 형.”

나는 주변의 면면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비주, 중현이, 리혁이, 지호, 윤석환 실장, 민기 형. 분명 평소 보던 얼굴들인데 새삼스럽고 새롭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생겼었나.

어쩌면 나는 그동안 이 사람들을 단순히 내 이야기의 조연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움직이는 나와 달리 가만히 이야기 전개에 따라 반응하는 인물 정도로.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들 또한 나와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주연들이었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방송 분량을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팔아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연예계 습성이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면서도 내심 방송 분량이 늘기를 바랐을 텐데.

이들은 모두 나를 걱정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리혁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곤 대답했다.

“……얘기할래.”

왜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룹의 리더나 멤버로서 분량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   *   *

-…그만큼 유명한 분이셨죠.

아빠에 관한 소개가 끝나면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처음에 ‘선명주가 누구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도 이내 소개를 듣고는 호기심을 보였다.

-처음부터 궁금했거든요. 작곡에도 재능이 있고, 악기도 잘 다루는 아이돌이라고 해서 신기했는데 재능도 유전이네요.

사실이었다.

연말 평가 때의 편곡, 썸씽을 작곡할 때의 감각은 음악인이었던 아버지 쪽의 재능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아이돌이란 꿈도 혹시 그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하승주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말하고 싶었다.

TJ 엔터에서도 배우나 프로듀서를 하라고 권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돌을 하겠다고 뿌리친 이유를.

“어릴 적에 아버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피아노를 따라 쳤는데 너무 못 치는 거예요. 애기니까 페달도 안 닿고 낑낑댔거든요.”

어릴 적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지,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서 피아노를 포기했어요.”

-애기 때요?

“네, 그때가 아마 다섯 살 때였나? 쪼마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탕탕 두드리면서 ‘나 안 해!’라고 했거든요. 아, 제가 기억하는 건 아니고 할머니께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하승주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노래로 방향을 튼 것 같아요. TV에 옛날 1세대 아이돌 선배님들이 나오셨거든요. 그러면 제가 율동을 따라 하고 불렀어요. 그럴 때면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죠.”

-그때가 아이돌로서 우주 씨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네. 제 첫 기억이기도 해요.”

내 첫 기억은 팔다리를 뒤뚱뒤뚱 흔드는 기억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박수를 치면서 웃으며 뭐라뭐라 칭찬한다. 애기인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리면서 그걸 올려다본다. 그러면서 그 표정을 보석처럼 예쁘다고 생각을 했다.

그 표정을 따로 떼어 내서 액자로 걸어두고 싶을 만큼.

아마 그때부터 아이돌을 꿈꾸게 된 것 같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모님처럼, 내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해 짓는 그런 표정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꺼냈다.

-어린 시절 TV에서만 보던 무대에 직접 서게 됐군요. 우주 씨는 매일 꾸던 꿈을 이룬 셈이네요.

하승주의 멘트를 끝으로 부모님에 대한 화제는 마무리가 됐다.

그제야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너무 두서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막한 것 같기는 한데 괜찮겠지?

혼자 너무 감정 과잉인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뭐, 제작진이 알아서 편집해 주겠지.

뉴블랙에 대한 토크는 대충 그쯤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다뤄야 할 이야기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장소원.

그녀에게도 할 말이 있었으니까.

한때 국민 걸그룹의 위치까지 갈 뻔했으나, 멤버들의 구설수로 인해서 순식간에 해체된 슈가피쉬의 멤버가 드라마 OST 활동 등을 거쳐서 다시 무대로 복귀했다.

인생역정.

힘든 시절을 회상하던 장소원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을 때 관객들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졌다.

감성을 자극하는 야간 시간대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향에 휘말린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

-흐읍…….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우리 멤버 중 하나가 울음보가 터진 것이다.

넌 또 왜 우냐.

감성이 충만한 우리 막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두 줄기로 나오는 콧물이 진짜 눈물의 상징이었다.

아직 젖살이 남아 새하얀 찹쌀떡 같은 얼굴이 울고 있으니 왠지 귀여우면서 웃겼다.

장소원과 하승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야, 괜찮아?

-저기 죄송한데 지호 씨 콧물 때문에 집중이 안 되네요. 누구 스탭분 중에 휴지 있으면 가져다주세요.

-괜찮아여. 옷소매로 닦으면.

-야야! 그거 협찬!

-지호야, 그거 지지.

다급하게 말리는 리혁이의 돌발 대사와 비주의 아기 다루는 듯한 모습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폭발했다.

멈췄던 웃음은 지호가 코를 풀면서 다시 터져 나왔다.

크응 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기 온 이래 최고의 웃음 데시벨이었다.

조용히 닦으라고 준 휴지였는데 그걸 소리 내면서 풀어버린 막내의 행동에 나는 잠시 해탈한 기분을 느꼈다.

지호야…….

지금 녹화 중이잖아…. 정신 차려…….

백 스테이지에서 뒷목을 잡고 있을 윤석환 씨의 얼굴이 상상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객석에 있는 관객을 포함한 이 자리의 모두가 막내를 귀엽게 봐준다는 거였다.

그죠. 귀엽죠.

그러니까 누가 좀 데려가 주세요…….

-지호 씨가 눈물이 많은가 봐요.

-가장 어리기도 하고, 보기보다 여린 친구예요. 녹음할 때 저한테 혼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친구거든요.

장소원이 웃으며 답했다.

그녀가 누나처럼 지호의 어깨를 토닥여 주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리 이미지를 생각해서 걱정하고 있던 나도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즐거웠다.

1위 소감 때 뉴블랙을 수플레로 바꿔 말한 실수로 한 달을 울궈 먹은 녀석을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관점에서는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벼르고 있었네.

천연기념물 형조롱이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멤버들의 입가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비주까지 함박웃음을 지을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기대해라, 왕지호.

이제 한 달 동안 놀려 주마.

*   *   *

지금까지의 뮤직카페 녹화분은 성공적이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뉴블랙 나머지 멤버들의 분량을 다 합쳐도 내 분량이 될까 말까 한다는 점?

아빠 이야기도 있지만 멤버들이 토크를 살짝 버벅인 탓도 컸다.

그래도 첫 녹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뛰어난 편이다.

일반적으로 신인 아이돌은 녹화 인터뷰에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긴장하기 마련이니까.

오늘 방송을 점수로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 90점 되려나.

물론, 토크에 관한 점수였다.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이 따로 있듯이 토크가 필기라면 가장 중요한 실기가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바로 마지막 무대.

우리의 원래 목적인 ‘뉴블랙의 음악성을 보여 주자’는 취지로 꾸린 무대가 남아 있었다.

-이제 안타깝게도 장소원 씨와 뉴블랙에게 작별 인사를 고해야 할 시간이네요.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승주의 인사에 우리는 차례대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럼 마지막 무대 모셔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하승주가 잠시 사이드로 물러났고, 우리는 메인 스테이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장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명이 어두워진 상태.

이윽고 조명이 직사광선처럼 쏘아져서 눈을 부시게 만드는 동안 장소원과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원.

PBS 공개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 전주를 듣는 순간 객석에서 약간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

그럴 만했다.

그것은 첫 무대와 완벽하게 똑같은 전주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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