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화
8장. Untitled
뮤직카페 녹화 이후 일주일.
공식적으로 우리는 방송 활동을 종료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바로 행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Something은 엄연히 상반기 최대 히트곡이었고 그만큼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회사에서는 신이 나서 스케줄을 잡는 중이다.
새벽에 일어나 남부 지방을 한번 찍었다가, 강원도도 한번 들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 반복됐다.
눈을 감았다 뜨면 경기도고, 다시 뜨면 서울이고.
그러다 보니 공간 감각이 사라지곤 한다.
“역시 강원도가 공기가 좋아.”
“여기 서울이에요, 아저씨. 정신 차려요.”
차 안에서 기지개를 키던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 뭐야.
진짜 서울이네.
빌딩이 가득 들어찬 도시를 보는 순간, 방금까지 차창으로 들어왔던 신선한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진다.
“그래. 이게 바로 플라시보 효과라는 거야, 얘들아.”
지호가 내 옆자리에서 싱글벙글 웃었다.
“형이니까 플라시보 말고 수플레 효과라고 해야겠네여.”
“얘가 아직 뮤직카페 방송 안 탔다고 기고만장하네.”
다음 주에 방송이 되니 이제 일주일 남았나.
내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두고 봐. 너 우는 거 클립 뜨면 내가 사방에 다 퍼뜨릴 거야.”
“나도 도와줄게요.”
리혁이가 냉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막내는 그런 말에도 의기양양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럴 일은 없어여. 형들.”
“왜?”
“제가 뮤직카페 작가 누나들한테 치킨 기프티콘 왕창 쐈거든여.”
요컨대 자기가 우는 장면을 빼달라고 로비를 잔뜩 했으니 그게 방송이 안 될 거라는 말이었다.
“…….”
리혁이와 내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가운데, 내가 입을 열었다.
“방송 된다에 오백 원.”
“받고, 클로즈업까지 된다에 오백 원 추가요.”
“클로즈업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리 둘을 보며 막내는 방송국에 대한 되도 않는 믿음을 다시 전파하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보니 본인도 안 믿는 것 같다.
당연하지.
방송국이 어떤 곳인데 고1짜리가 기프티콘 뿌린다고 방송을 안 하겠냐.
“방금 생각난 건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현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제 팬이 좀 생길까?”
“네?”
“그래도 한 달 가까이 음악 방송 뛰었잖아. 이제 뮤직카페도 곧 있으면 방송 될 텐데. 팬이 좀 붙을까 싶어서.”
그 말에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의문이었다.
뭐라고 할까.
팬이란 단어는 엄청 근사한데 비싼 옷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지나가면서 쇼윈도로 힐끔힐끔 거리기는 하는데, 막상 입어 보라고 하면 내 주제에 입어도 되나 싶은 그런 옷.
뉴블랙은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음악 방송을 뛰고, 기자와 인터뷰도 하고, 화보도 한번 찍어 보고, 행사도 뛰고.
하지만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보여 준 게 별로 없었다.
방송 노출이라고 해 봐야 음악 방송이 전부.
그나마 뮤직카페에 출연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사람들이 리혁이만 노래하는 줄 알았을걸.
문제는 그것도 아직 방송이 안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뭘 했어야 팬이 붙죠.”
리혁이가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했다.
“썸씽도 장소원 선배 노래로 알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잖아요.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뉴블랙 이름 물어보면 아무도 모를걸요. 그렇다고 우리가 어디 예능에 나간 것도 아니고.”
“그런가.”
중현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태평한 어조로 말했다.
“난 긍정적으로 생각할래. 우리 좋아하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겠지.”
“맞아여. 분명 다들 어딘가 숨어있을 거라구여. 우리가 아직 발견을 못 했을 뿐이지.”
“지호야, 우리 팬 생기면 뭐부터 할까.”
래퍼와 막내가 신이 나서 김칫국을 마시는 동안, 리혁이가 뒤에서 혀를 차면서 말했다.
“팬이 있어야 팬 서비스를 고민하죠, 이 사람들아. 팬을 만들 방법부터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멀뚱멀뚱 리혁이를 바라보던 중현이가 지호에게 속삭였다.
“쟤 또 재 뿌린다.”
“오, 라임 좋은데여. 믹스 테이프에 넣어 봐여. 형.”
‘쟤 또 재 뿌리네~’를 흥얼거리며 랩으로 승화시키는 둘을 보면서 리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나는 리혁이에게 공감하는 편이었다.
팬이 생길 방법이라.
데뷔 후에는 조금씩 팬분들이 늘겠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조수석에 앉아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석환 형.”
“어?”
“우리가 나갈 수 있는 데는 없겠지?”
“너희 뮤직카페도 겨우 나간 거 알지? 그것 때문에 나랑 이사님이랑 얼마나 애를 썼는데.”
“……알지.”
“게다가 너희들 신분도 미묘하고.”
레몬 엔터는 배우 쪽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획사이지만 가요계에 있어서는 중소 기획사다.
물론 예능 출연도 못 잡을 정도로 구멍가게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딘가를 나가려면 방송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우리 배우를 요구할 텐데.
배우 출연을 조건으로 우리를 밀어주기에는 상황이 이래저래 미묘했다.
방송국 쪽에서는 현재 우리를 Something으로 데뷔한 신인 아이돌로 대우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식으로 데뷔한 가수라고 하기에는 글쎄….
그 때문에 회사 입장도 이해가 갔다.
본격적으로 앨범이라도 나왔다면 ‘그래, 뉴블랙 한번 홍보해 보자!’하며 통 크게 회사 연예인들과 예능 출연을 트레이드할 텐데, 썸씽은 홍보하기에는 이미 유명한 곡이다.
게다가 다른 소속사 가수가 메인이고.
그리고 우리가 예능에 출연해서 성과를 거둔다고 해도 문제다.
유명세만 얻을 뿐 실익이 없었다.
부를 노래가 썸씽밖에 없으니까.
이거 뭔가 딜레마 같네.
노래가 없으니 홍보를 할 수 없고, 홍보를 해도 불러 줄 노래가 없고.
결국에는 노래가 문제인 건가?
하지만 이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될 노래는 회사 A&R팀이 전적으로 감독하니까.
그렇다면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뭘까.
“일단 예능은 불가능하고. 뭐가 있지, 리혁아?”
“글쎄요. SNS 같은 건 어때요? 우리 공식 SNS 개설되어 있잖아요. 그걸로 게시글 올리고 팬들이랑 소통해도 될 것 같은데.”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서민기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어때요, 실장님?”
우리 실장님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민기야, 그거 관리 네가 해야 돼.”
“SNS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얘들아.”
로드 매니저의 태세 변환에 우리 모두 웃었다.
비겁하지만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보통 이 정도 인원이면 로드 매니저가 둘은 기본으로 붙는데, 우리는 민기 형이 혼자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SNS도 보류.
머릿속 리스트에서 SNS 칸에 엑스 자를 쳤다.
중현이가 우리 일상을 담은 자체 리얼리티는 어떠냐고 의견을 냈지만 윤석환 선에서 커트당했다.
최근 회사 배우들이 나온 영화 홍보도 그렇고 홍보팀이 전반적으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영상 편집을 맡은 직원도 한 명이라서 일이 밀려 있다나.
“비주야, 너는 어떻… 노래 듣고 있구나.”
비주에게 의견을 구하려고 했지만, 우리 팀 메인댄서는 이어폰을 낀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고개를 다시 돌리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주머니 쪽으로 간 이어폰 잭이 핸드폰과 분리되어 있다.
노래도 안 나오는데 그냥 끼고 있는 건가?
눈동자 초점도 멍한 것이 어딘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행사 때문에 많이 피곤했나?
예의 주시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윤석환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주 너한테 섭외 들어온 예능이 하나 있긴 한데.”
“진짜요? 나를?”
“널 눈여겨본 사람이 있더라고. 연습생이어도 상관없다고.”
“오오!”
“그런데 아무래도 네가 안 좋아할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리는 매니저에게 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형. 우리 이름 알리는 거잖아. 그게 정글이나 극한체험 프로그램이어도 나는 나갈 자신 있어.”
“정말이야?”
“당연하지. 뭐든 할 수 있어.”
굳은 결의를 표하는 나를 보며 석환 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프로그램명이 튀어나왔다.
“군대 체험 예능, 사나이가 간다.”
“절대 안 해.”
그 순간 비주를 제외한 모든 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춘천에서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숙소로 가는 대신 평소처럼 곧장 회사로 향했다.
레슨과 연습 때문이었다.
이제 방송 활동을 공식 종료한 만큼 본격적으로 데뷔 준비도 해야 하니까.
“……주야. 선우주?”
댄디하게 입은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녹음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규환 이사에게 작곡 레슨을 받는 곳.
“왜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군대에 다시 가야 되나 생각 중이었어요.”
괴상한 표정을 짓는 조 이사님에게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이사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 나름 심각해요, 이사님.”
진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사님은 계속 웃을 뿐이었다.
이 아저씨가 진짜.
내가 바라보자 상대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이사님, 저 진짜 눈 감고 딱 한 번 나가 볼까요? 그렇게라도 해서 우리 그룹 이름 알릴 수 있으면 이득이잖아요.”
“글쎄…….”
조규환 이사가 턱 끝을 쓰다듬었다.
“그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본질이요?”
“네 말마따나 데뷔하기 전부터 팬이 붙으면 좋긴 하지. 아이돌의 힘은 팬덤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래서 요즘 기획사들이 데뷔 리얼리티 같은 데 목을 매는 거고.”
가까운 예시로는 연말 평가 때 우리 경쟁자였던 스트릿 보이즈가 있었다.
“팬을 늘리겠다는 너희들 아이디어는 좋아. 그런데 문제는 그 방향성이 틀렸다고 해야 하나.”
“역시 군대 예능으로는 어필이 힘들겠죠? 안 나가는 게…….”
“아니, 아니.”
뉴블랙의 프로듀서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방향을 이야기하는 거야. 우리 회사가 배우 기획사니, 한번 배우로 예시를 들어보자. 만약에 네가 배우야. 그래서 네 인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그럼 뭘 해야 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좋은 작품에 나가려고 할 것 같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대본이나 연출이 좋은 작품… 아!”
“이제 왜 본질에 어긋났다고 하는지 알겠지?”
“네, 알 것 같아요.”
우리 프로듀서님이 하는 말의 요지는 간단했다.
배우가 작품으로 인기를 얻듯 가수는 노래로 팬을 모아야 한다.
예능이나 다른 자잘한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물론 가수는 무조건 노래로만 승부해야 한다는 90년대 얘기를 하는 건 아니야. 가장 쉬우니까 권하는 거지.”
“쉽다고요?”
“뮤직카페 출연했을 때 어땠어. 방송 쉽지 않지?”
“예, 좀 까다로웠어요.”
“실제 예능은 그보다 더해. 나도 방송 한번 출연한 적 있는데 예능인들 기에 눌려서 한마디도 못 하겠더라.”
뭔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김칫국 마시다 들킨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군대 예능에 나가서 내가 활약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잘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그랬지.
연말 평가, 썸씽의 성공, 뮤직카페 출연 등 연이은 성공으로 자만했던 걸까.
“쉬운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쉽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일이 잘 풀릴 때는 누구나 그래.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따뜻한 말에 나는 새삼스레 이사님을 바라보았다.
이사님은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그룹의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든든한 조언자 같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든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썸씽이 잘 안 풀려서 고민했을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문득 고마운 감정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감사합니다. 역시 이사님한테 여쭤보길 잘한 것 같아요.”
“아니야. 너야말로 잘 물어봤어.”
그가 웃었다.
“난 너희끼리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특하거든. 이런 생각은 누가 하라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가 여태껏 제시했던 해답을 내 입으로 말했다.
“결국에는 좋은 노래로 승부를 봐야겠네요.”
“그렇지. 그게 바로 우리가 이런 수업을 하는 이유기도 하고.”
그 말과 함께 수업이 재개됐다.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작곡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런저런 테크닉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났을 때, 조 이사가 서류철을 정리하며 말했다.
“혹시 매니지먼트팀한테 전달받은 거 있니? 이번 데뷔 앨범, 4곡 내외로 싱글 앨범으로 가기로 했는데.”
“아뇨. 처음 들어요.”
“아직 얘기가 전달이 안 된 모양이네. 뭐, 그렇게 결정됐고. 나머지는 너한테 양해를 구해야 하는 부분인데…….”
그가 물었다.
“수록곡 중 한 곡은 네 자작곡으로 갈까 하는데 어때?”
“자작곡이요?”
“타이틀은 아니고, 수록곡이니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하긴, 슬슬 내 곡을 만들어 볼 때가 되긴 했지.
군대에서도 작곡 공부를 틈틈이 했었고, 조 이사님으로부터 본격적인 작곡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도 벌써 작년 12월이었으니까.
타이틀도 아니고 수록곡이면 나름 도전할 만하다 싶었다.
“네, 해 볼게요.”
그리 대답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
예능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팬을 만들 계획을 짜는 것보다는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게 우선인 거다.
역시 군대 예능은 아니야. 아니고말고.
“그래, 자세한 부분은 이따가 A&R팀이랑 협의하고.”
조규환 이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애들이 올 때가 됐는데.”
“애들이요?”
내가 의문을 품을 때였다. 노크와 함께 멤버들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왔다.
밝게 웃는 비주를 필두로 멤버들이 조 이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뒤에는 윤석환과 서민기도 서 있었다.
지금 보니 민기 형은 작은 핸디캠을 들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뭐 찍기로 한 기억은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조규환 이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널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