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화 (3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포기한 소스를 가지고 작업하자는 말을 했을 때 동생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요? 나중에 포기하고 그러지 말고요.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쉬운 거부터 해요.”

뉴블랙에서 현실감각을 담당하는 메인보컬은 회의적이었고.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되기는 하는데, 형이 하겠다면 찬성할게요.”

메인댄서님은 걱정과 함께 지지의 미소를 보냈다.

중현이는 뭐, 네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막내는 피클을 집어 먹으며 두둑한 지갑을 자랑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여. 본인 마음이 젤 중요하지. 저는 작곡 같은 거 하나도 모르니까, 대신 간식이나 빵빵하게 쏠게여.”

투표 결과 찬성 3, 보류 1, 반대 1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데뷔 곡 작업에 대한 의견을 정리했다.

리혁이는 영 탐탁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수결이니까 따르긴 하겠는데, 정말 할 수 있어요? 객관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요.”

“형, 그 말 연말 평가 때도 똑같이 했던 거 기억나여?”

막내가 끼어들었다.

“그때 우주 형이 아이디어 제시했는데 형이 현실적으로 시간도 안 되고 어려울 거라고 했잖아여.”

“넌 진짜 보탬이 안 되냐. 누구 편이야?”

“저는 당연히 저에게 좋은 파트를 나눠 줄 작곡가님 편이에여.”

내 입에 피클을 먹여 주며 눈웃음을 치는 막내의 모습에 리혁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찬다.

그때 비주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말 평가 때도 궁금했는데. 형은 작곡이나 편곡할 때 어떤 식으로 작업하세요?”

“맞아. 나도 궁금했어.”

“그때 완전 이상했잖아여. 갑자기 내가 내일까지 끝낼게, 하더니 다음 날 아침에 편곡 완성본 들고 오지 않았어여?”

나는 피자를 디핑 소스에 찍으면서 대답했다.

“일찍 끝난 건 조 이사님 도움이 컸어. 나 혼자 했으면 아마 컴퓨터 작업 때문에 더 오래 걸렸을 거야.”

“그럼 편곡은 어떻게 한 거예요? 기계로 안 하면.”

“손으로 썼지. 대강 악보로 만들어서.”

동생들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손으로 했다고요?”

“응.”

“대체 어디서 살다 온 거예요? 19세기 유럽?”

“군대에서 그렇게 하긴 했지. 부대 컴퓨터에 로직이나 프로 툴스를 깔 수도 없고. 결국에는 손밖에 없으니까.”

군대 이야기를 꺼내자 동생들이 납득하는 것 같다.

뭐라고 할까.

자기들은 모르는 미지의 세계라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아마 얘네는 내가 부대 안에서 전투 멧돼지 사육사였다고 해도 믿을걸.

“그러면 형은 작업을 어떤 식으로 해요?”

중현이가 물었다.

“그걸 알아 둬야 저희도 어떻게 도울지 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작업 방식.”

나는 내가 평소 음악 작업을 할 때 쓰는 방식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무대를 만들고 그걸로 작업하는.

그런데 이걸 말하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다.

“미리 말해 두는 건데, 듣고 나서 이상하게 쳐다보지 마. 나도 내가 좀 특이한 거 아니까.”

“그냥 말해요, 아저씨. 더 이상 놀랄 게 뭐 있다고.”

“음… 그니까 어떤 식이냐면.”

나는 피자를 내려놓고 말했다.

“다들 눈을 감아 봐.”

내 지시에 다들 눈을 감는다. 그 와중에 막내는 실눈을 뜨면서 리혁이가 챙겨 놓은 피자 한 조각을 훔쳐 갔다.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눈 감았지? 그러면 이제 너희에게 익숙한 공간을 하나 떠올려 봐. 되도록이면 넓은 곳이어야 돼. 너희가 나온 학교 강당도 좋고, 우리가 공연했던 음방 무대도 좋고.”

감긴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들이 움직인다.

“됐네. 그럼 그 상태로 그 무대 위에 세션, 그러니까 악기를 설치하는 거야. 기타, 베이스, 건반, 색소폰, 첼로 같은 거. 드럼은 드럼만 있어도 돼. 다른 퍼커션은 일단 빼고.”

“형, 저 중간부터 까먹은 거 같아요.”

“난 기억도 못했는데. 야, 왕지호. 기억하냐?”

“……저는 대충 한 거 같아요.”

피자를 몰래 먹는 데 집중한 지호는 대답도 없고, 중현이 정도만 대강 내 지시를 따라한 것 같다.

“여기까지 왔으면 거의 다 온 거야. 그다음에는 쉬워. 우리 멤버 다섯을 하나씩 올리고 작업하는 거야. 그 상태에서 다들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 봐. 거기에 멜로디도 만들어 보고. 거기에 인스트루먼트도 깔아보고.”

“…….”

“거기서 반복하면 돼. 될 때까지. 연말 평가 편곡도 그런 식으로 머릿속으로 계속 구상한 거야.”

“이게 끝이에요?”

“어.”

멤버들이 하나둘 눈을 뜬다.

처음에는 빛에 적응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내가 말했잖아. 이상하게 들릴 거라고.”

“……이게 된다고요, 형? 머릿속으로 악기를 트는 게?”

“그럼 하루 만에 편곡을 어떻게 했겠어?”

다들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TJ 엔터에 있을 때도 이런 얘기를 하면 TNT 애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그게 말이 돼, 형?’ 그러면서.

나를 외계인 보듯 쳐다보는 동생들의 시선은 그때랑 똑같았다.

감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질린 듯한 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

다들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얼마나 흘렀을까.

리혁이의 목소리가 모두의 침묵을 깼다.

“뭐야. 내 피자 어디 갔어?”

*   *   *

작업실에서의 첫날이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행사, 연습, 레슨, 그리고 여기에 음악 작업이 추가됐다.

지방에서 장소원 선배와 신나게 썸씽을 부르고 회사로 돌아오면, 단체 PT나 보컬, 댄스 트레이닝, 외국어 교육 등이 이어졌다.

그게 끝나면 나와 중현이는 다른 동생들과 달리 숙소가 아닌 작업실로 향해서 밤을 지새웠다.

대부분 기술적인 작업들이었다.

멜로디를 어떤 식으로 깎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토론과 작업.

일단 컨셉은 확정됐고.

우리가 잡은 수록곡 컨셉은 여름 시즌송이었다.

Something으로 화려하게 봄 시즌의 서막을 알렸으니 데뷔하게 될 여름의 시즌송을 만들어 보자는 기획 의도였다.

물론 이건 이사님 앞에서 한 이야기고.

그냥 ‘여름이니까 여름 노래 고?’하는 단순한 아이디어였다는 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하고 청량한 곡.

그 컨셉에 맞춰서 중현이와 나는 ‘Untitled’의 멜로디를 계속해서 만졌다.

단순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그 멜로디를 어떤 식으로 만져야 할지 고민했는데, 막상 머릿속으로 몇 번 작업해 보니 의외로 쉬웠다.

물론 내 재능이 뛰어나서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멜로디의 미묘함을 완벽하게 그대로 살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몇 번 시도해 봤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래서 그 미묘함을 잃더라도 일단 응용이라도 해 보자는 의도하에 우리는 비트부터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맥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행사장에서 만날 때마다 장소원 선배에게 자문을 구하고, 조 이사님에게 레슨을 받을 때마다 의견을 구하고, 틈틈이 회사 A&R팀이나 연결된 작곡가들과 이야기를 나웠다.

그런 도움에 힘입어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스트루먼트는 어디서 참고할까? 좀 사운드를 세련되게 뽑고 싶은데.”

“빌보드 차트 100위까지 훑죠, 뭐.”

탑 라인 멜로디 아래 깔리는 사운드는 미국의 최신 트렌드를 참고하고.

“이번에는 중현이 네가 도입부 해 볼래?”

“제가요?”

“네가 리듬감이 좋으니까 밴딩이나 어택 포인트를 잘 찾잖아. 그럼 임팩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기 B 파트는 비주가 음색이 부드러우니까 들어가면 될 것 같고.”

“제 생각에는 형이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멤버들의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리혁이는 어떻게 할까요?”

“얘는 보컬 밸런스가 좋아서 어디 넣든 괜찮을걸.”

“그건 그렇네요. 이건 안무 나오면 생각해 봐야겠어요. 기왕이면 안무 적은 쪽에 넣어 줘야 하니까.”

아마 리혁이가 우리 얘기를 들었다면 귀가 새빨개졌을 거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곡의 파트를 누구에게 주느냐까지 의논할 만큼 제법 빠르게 작업을 진행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바로 그때였다.

“야, 중현아.”

“네.”

“너 근데 이거 머릿속으로 그려지냐?”

“……형만 할 수 있는 그 이상한 방법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그거 말고.”

내가 물었다.

“이거 무대에서 공연하는 거 머릿속으로 그려져?”

“어… 잠시만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길 10초, 이윽고 눈을 뜬다.

“안 되네요.”

“그치, 안 되지?”

문제는 바로 곡의 정체성이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데 아무리 들어도 ‘우리 노래’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Untitled’에 어떤 제목이 붙어도 뉴블랙과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

쉽게 말하자면 기술적으로 보석을 세공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그걸 가지고 뭘 만들어야할지를 모르는 거다.

보석은 있는데 목걸이여야 하는지, 반지여야 하는지 그걸 모르겠다.

“형은 뭐가 문제 같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노래를 만들 때, 우리 정체성을 염두에 안 둔 것 같아.”

“정체성이요?”

“썸씽이 장소원 노래였다면 이건 우리 노래잖아. ‘뉴블랙스러움’이 느껴져야 하는데… 너무 밋밋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는 바로 뉴블랙의 정체성이었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우리가 전하고 싶은 감정이나 코드는 무엇인가.

작업하는 내내 어떻게 해야 사운드가 좋을지만 연구했지, 우리가 어떤 그룹인지, 이 노래에 우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흐음…….”

작업실 안에서 중현이와 나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끼익 거리는 중현이의 악력기 소리와 내가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가 불협화음을 낸다.

동작 모방 능력으로 배웠지만, 뇌의 신호를 따라가지 못한 손가락 근육이 라흐마니노프 곡에 엉킨다.

마치 내 머릿속처럼.

시간은 계속 흘렀고, 악력기를 그만두고 작업실 바닥에서 푸시 업을 하던 중현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형, 그건 어때요. 우리가 좋아하는 거에 포커스를 맞춰 봐요.”

“좋아하는 거라. 괜찮은 것 같은데?”

“형은 뭐 좋아하세요?”

“나? 1위가 할머니, 2위가 돈.”

“어… 둘 다 별로 우리 노래랑 어울릴 것 같지는 않네요. 랩이라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Yo, 내가 좋아하는 거는 두 가지. 할Money와 Money. 이렇게?”

되도 않는 랩에 래퍼가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좋아하는 거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건 나름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취향은 우리가 누군지와 관련된 거니까.

“결국에는 우리가 어떤 가수냐, 라는 걸 생각해야겠네. 그러려면 우리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전 솔직히 모르겠어요. 우리가 팀 컬러라고 할 만한 게 있나?”

“그걸 지금부터 찾아야지.”

구레나룻을 긁적이던 녀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푸시 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애들이랑 얘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팀 컬러에 대한 문제니까.”

“그래야겠네. 이따 방송 끝나고 애들이랑 얘기 좀 나눠 보자. 좀 있다가 올라온다고 했지?”

“조금 더 걸릴 거 같아요. 비주가 동선 안 맞는다고 애들 연습 더 시키고 온다고 해서.”

작업실 벽에 달린 시계가 10시를 가리켰다.

오늘은 금요일 밤.

드디어 심야 음악 프로그램 ‘하승주의 뮤직카페’가 방송되는 날이었다.

*   *   *

밤 11시.

뮤직카페 방영을 30분 앞둔 시각, 작업실은 오랜만에 다섯 명의 인원이 모여 시끌시끌했다.

테이블 위에는 PBS 채널이 나오는 노트북과 함께 과자 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형, 저 한 모금만 마셔 보면 안 돼여?”

막내가 호시탐탐 맥주를 노렸지만, 중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학교에서 저만 술 안 마셔 봤다니까여. 다른 그룹 애들 얘기 들어 보니까 형이나 언니들이 다 한 모금씩 준대여. 심지어 길채경도 마셔 봤다는데.”

“넌 뭐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려고 하냐.”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리혁이가 고구마 말랭이를 질겅였다.

“그리고 바닥에 과자 좀 그만 흘려.”

“넹.”

웃으면서 과자 부스러기 묻은 손을 일부러 문질문질하는 막내.

“…….”

이윽고 고구마 말랭이가 그 얼굴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내가 작업에 몰입하긴 한 모양이다.

지금 막내랑 리혁이가 다투는 리듬을 가지고 나도 모르게 비트를 짜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 하나 드세요.”

정성스럽게 깎은 사과 한 조각이 내밀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과 껍질 가득한 쟁반과 비주가 있다.

“고마워.”

“엄마가 그러는데 피곤할 때는 사과가 최고래요. 작곡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생 많았어요.”

“역시 비주 너밖에 없다.”

감동하며 사과를 먹는 동안, 중현이가 마른 오징어를 내려놓고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나도 작곡 열심히 했는데.”

“여기.”

“아, 갈변된 거 말고. 우주 형 것처럼 깨끗한 거 없냐?”

동갑내기 친구의 말에 비주가 웃는다.

아니, 입만 웃고 있었다.

상대의 손에 들린 과도와 그 얼굴을 번갈아 보던 중현이가 헛기침을 한다.

“어우, 사과가 참 맛있겠네.”

비주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할머님이랑은 연락하셨어요?”

“지금쯤 TV 앞에 앉아 있을걸. 말 나온 김에 다들 인사라도 할래?”

단축 번호로 1번을 누르고 영상 통화로 전환했다.

화면 속에서 자기 머리 크기를 가늠하던 동생들이 슬금슬금 죄다 내 뒤쪽으로 물러난다.

이윽고 김덕순 여사의 얼굴이 들어온다.

-아이, 깜짝이야. 옘병, 이거 뭐여? 왜 니 얼굴이 나오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민망함을 느꼈다.

“오랜만에 영상 통화 걸어 본 거야.”

-그럼 말을 하고 걸어야지!

“예. 죄송합니다, 김덕순 여사님.”

웃으며 동생들을 소개했다.

“할머니도 우리 애들 다 기억하지? 작년 12월에 만났잖아. 얘들이랑 지금 뮤직카페 본방 보려고 왔어.”

-아, 그려요. 모두 얼굴 보니까 참 좋네.

날 보고 떨떠름했던 주름진 얼굴이 동생들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화사하게 폈다.

뭐야, 왜, 어째서.

내가 손자인데 얘네를 더 예뻐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동생들의 인사에 할머니의 얼굴이 더더욱 밝아진다.

-아이구, 예뻐라.

“할머니. 손자는 나야. 나한테 집중해.”

-허구헌 날 집구석에서 봤던 게 니 얼굴인데 뭘 또 봐. 사내놈이 속이 이렇게 좁아 가지고, 좀만 누구 예뻐하는 거 같으면 응, ‘할매 내가 서운해요’ 그러고.

“……할머니, 애들이 나 보고 웃잖아.”

리혁이와 지호는 입술을 앙다물고 웃음을 참고 있다. 내가 당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가.

하지만 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성격도 이상하지.

오히려 할머니의 욕이 들어간 구수한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할까.

방송이 시작할 때까지 우리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틈틈이 내가 회사에서 작업실을 따냈다는 걸 어필했지만 어쩜 칭찬 한번을 안 해 준다.

폐 끼치지 말라고만 하고.

마침내 노트북 화면으로 중계되는 TV 화면 우측 상단에 ‘하승주의 뮤직카페’라는 로고가 떴을 무렵.

“할머니, 나 이제 끊을게요. 내가 방송 끝나고 다시 전화할게.”

-7번 맞냐? 내가 요즘 작은 게 안 보여서.

“예, 7번 PBS 맞아요.”

-참, 우주야. 너 이번에는 말실수 안 했냐? 지난번처럼 이상한 빵…….

“어? 뭐라고? 안 들리네. 사랑해, 할머니.”

-야, 이…….

메아리처럼 아련한 ‘야, 이’를 끝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동생들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웃어…….”

한숨을 푹 쉬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에 전염됐다.

그렇게 별 이유 없이 웃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뮤직카페에 나올 아빠 이야기나 작곡에 대한 생각 등으로 복잡하던 머리가 조금 정리되는 기분이랄까.

지금은 막내의 흑역사가 될 장면이 기대될 정도다.

“어, 위에 로고 사라졌어요. 시작하나 봐요.”

노트북 모니터가 암전되었다가 스튜디오가 화면에 나타났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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