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9화
동생들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작업실에 남았다.
남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한번 필 받으면 그대로 몰아쳐야 하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어중간하게 끝내면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연말 평가 편곡을 준비했던 날처럼 홀로 남아 작업에 매진했다.
일단 우리의 음악적인 성향은 대강 파악했다.
노트북 메모장을 켜고 적어 내렸다.
-주제 : 사랑 (포괄적인)
-분위기 : 따뜻함
-감정 : 즐거움
-현재 곡의 컨셉 : 청량한 여름 시즌 송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적어 내린 나는 잠시 무엇이 빠졌는지 고민하다가 하나를 추가했다.
-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 ???
아이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리스너는 팬이다.
썸씽과 같은 대중가요와 달리 아이돌 음악의 가장 큰 소비자는 팬덤이기 때문이다.
팬이야말로 아이돌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 팬카페에 가입해 있는 우리 팬, 그리고 앞으로 우리 팬이 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자판을 두드렸다.
-초대장(?)
아이돌과 팬은 같은 꿈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꾸는 꿈에 초대하는… 내용을 쓰려다가 나는 백스페이스를 눌러 지웠다.
뭔가 부담스럽다.
이 노래는 우리와 팬의 첫 번째 만남이다.
이런 메시지는 너무 무겁다.
소개팅에 나갔는데 갑자기 상대가 ‘누구 씨, 저와 함께 미래를 꿈꿔 보시지 않겠어요?’하는 격이니까.
부담은 즐거움을 해친다.
소개팅에서 선 자리처럼 구는 사람을 만나면 파스타가 코로 들어갔다 입으로 나올걸.
조금 가볍게 가자.
우리와 함께하자는 초대의 의미를 살리는 대신, 같은 꿈을 꾸자는 부담스러운 내용 말고 같이 놀자는 내용으로 바꾸는 거다.
여기로 와서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하는 메시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여름의 청량한 컨셉, 바다 이미지와도 잘 맞았다.
자. 정리하자면.
함께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따뜻함)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재미있게 노는데(즐거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우정(사랑)이 싹 튼다.
그렇다면 놀이가 핵심 소재일 텐데.
노는 걸 상징적으로 표현할 만한 제목이 뭐가 있을까.
바닷가에 가면 뭐 하고 놀지?
물 흐르듯이 이어지던 생각이 턱 막혔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라고 할까.
내가 마지막으로 바다에 가서 놀았던 게 언제더라?
초등학교 2학년 때 군산 앞바다에 현장 학습 간 게 마지막인 거 같은데.
그 이후로는 서울로 올라가 연습생 생활을 계속했고, 쉬는 날에도 연습만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다는 많이 가 봤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바다가 있기도 했고, 연습생 시절에도 바다에 갈 기회는 많았다.
휴가 때 같이 바다로 놀러가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으니까.
후자는 누가 봐도 불순한 목적이 뻔해 보여서 거절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좀 충격이긴 하다.
나 지금까지 뭐하고 산 걸까.
바다에서 뭐 하고 노는지도 모르고.
조개 구이, 해수욕 같은 키워드가 떠오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남들 이야기를 들은 거지, 경험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바다 가면 뭐 하고 노나요?’라고 질문이라도 올릴까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만드는 노래이니만큼 기왕이면 경험담을 담고 싶었다.
애기 때는 바닷가에서 자주 놀았던 것 같은데.
초코 우유를 마시며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아주 희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5살 때였나.
아주 오래되고 낡은 책 같은 기억이었다.
* * *
“불꽃놀이요?”
다음날, 동생들에게 나는 곡 제목을 알렸다.
“바닷가에서 같이 노는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그걸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소재로 불꽃놀이가 좋을 거 같아서. 게다가 불꽃놀이는 여러 의미도 있잖아. 새해를 축하하는 것처럼 뭔가를 시작하거나, 기념하는 의미로 쏘는 거니까. 우리 데뷔 앨범의 의미에도 맞지.”
“웬일로 일리 있는 말을 하네요.”
리혁이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긍정을 표현했다. 가장 까다로운 리혁이가 오케이했으면 다른 애들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다.
중현이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제목은 어떻게 떠올린 거예요?”
“어릴 때 기억이 났어.”
5살 때 즈음, 엄마아빠와 함께 어딘가의 바다에서 있었던 기억이었다.
희한하게 부모님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보았던 불꽃놀이는 기억 속에 생생하다.
밝고 화창한 하늘로 쏘아지던 한 줄기 불꽃.
그런 내 설명에 애들이 묘한 미소를 짓는다.
왜들 그러지?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전 좋은 거 같아요. 곡 분위기에도 어울리고.”
고맙다고 답하려던 때 막내가 끼어들었다.
“형, 근데 노래 제목 한글로 할 거예여?”
“처음에 영어라고 할까 했는데 Firework는 영 어감이 안 살아서. 우리 할머니가 영어를 어려워하더라고. 썸씽도 맨날 쌈싱이라고 하는데 파이어워크는 얼마나 낯설겠어.”
작업실 소파에 앉은 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어릴 적부터 어르신들 많은 마을에 살았던 중현이가 공감하는 듯했다.
그렇게 내가 정한 제목에 대한 설명을 끝냈을 때, 리혁이가 질문할 게 있다는 듯 손을 들었다.
“작사는 어떻게 할 거예요?”
“참, 그걸 말 안 하고 있었네. 너희한테 맡기려고.”
“네?”
당황한 듯 눈을 뻐끔거리는 동생들에게 나는 친절하게 웃어 주었다.
“우리 노래잖아. 작곡은 내가 했으니 작사는 너희가 해야지.”
이젠 너희가 고생할 차례야.
* * *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말 그대로 4월 한 달이 녹아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간이 훅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면 날짜가 며칠씩 지나 있고.
매일매일이 데뷔 준비로 바쁜 나날이었다.
그 동안 우리의 공동 작업물에도 변화가 생겼다.
며칠간 머리카락을 뜯으며 창의력을 쏟아부은 동생들은 각자 부를 파트의 가사를 써 왔다.
거기서 며칠이 또 지나고.
한때 ‘Untitled’라는 무제의 소스는 [작곡 / 우주], [작사 / 뉴블랙]의 <불꽃놀이>로 탈바꿈했다.
녹음 작업도 순탄하게 흘러갔다.
우리 팀 메인보컬에게 혼나다시피 디렉팅을 당한 지호가 눈물을 글썽거리긴 했지만, 뭐.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던 일이었기에 순조로웠다.
마침내 ‘뉴블랙 - 불꽃놀이’가 완성되었을 때, 한자리에서 모여 듣던 우리는 기시감을 느꼈다.
Something의 완성본을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감각이라고 할까.
“이렇게 퀄이 잘 뽑힐 줄은 몰랐는데.”
중현이가 감탄했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형은 진짜 보다 보면 가끔 우리 도와주려고 찾아온 외계인이 아닌가 싶다니까요. 근데… 이거 잘 뽑혀서 좋긴 한데, 수록곡으로 두기에는 왠지 아까운 거 같아요.”
“맞아요. 이 정도면 나중에 디지털 싱글로 따로 노려도 될 거 같은데.”
“둘 다 칭찬은 고마운데, 미리부터 김칫국 마시지는 말자. 이사님이랑 A&R팀분들 의견부터 들어 봐야지.”
“그래도 좋으니까 좋다고 하는 거죠. 나 칭찬에 완전 야박한 거 알죠?”
아주 잘 알지.
리혁이의 말에 웃어 보이며 막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래 퀄이 좋다는 칭찬은 고맙긴 했지만 내게는 뭔가 부족했다.
진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라고 할까.
무슨 상상을 하는지 해맑게 웃고 있는 막내에게 물었다.
“지호는 어때, 우리 색깔이 잘 사는 거 같아?”
“음, 저는 색깔 그런 거는 잘 모르겠구여. 그냥 이 노래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거 같아여. 썸씽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건 듣다 보면 진짜 불꽃놀이 보는 거 같아서 좋아여.”
지호가 말을 이었다.
“형들이랑 같이 바닷가에서 불꽃이 팡팡 터지는 거 보는 거 같다구 해야 되나. 우리 지금까지 연습생 시절 고생한 것도 떠오르고, 우주 형 만난 뒤로 연말 평가랑 음악 방송 나갔던 것도 떠오르고. 그리고 뭐라구 해야 되지? 추억도 생각나는데 왠지 앞으로 좋은 미래가 펼쳐질 거 같은 기분…?”
나는 막내의 말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내가 의도했던 바를 지호가 정확히 캐치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긴 했지만, 잘 만든 것과 의도에 부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그렇다면 색깔은 잘 살려 낸 걸까?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이 노래가 마음에 들어요, 형.”
“그래?”
“느낌이 좋다고 해야 하나. 우리 몸에 딱 맞는 옷 같기도 하고. 아직 섣불리 말하긴 어렵지만 듣다 보면 왠지….”
말끝을 흐리던 녀석이 미소를 지었다.
“진짜 우리 노래 같아서 좋아요.”
* * *
4월 말.
레몬 엔터테인먼트 3층의 회의실은 한 무리의 사람들로 분주했다.
회사 내 다른 부서보다 복장이 자유로운 이들은 A&R팀의 직원들이었다.
아티스트 앤 레퍼토리(Artist &Repertoire).
아이돌 기획사에서 신인 개발, 매니지먼트와 함께 3대 중요 부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부서로, 아티스트의 앨범에 관한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곳이다.
가수에게 어떤 컨셉의 앨범이 어울릴지 결정하고, 곡을 외부에 공모하거나 직접 만드는 곳.
회사마다 성향이나 업무가 다르지만, 레몬 엔터 같은 경우는 제작이사 조규환의 영향으로 직업 작곡가의 분포가 높은 편이었다.
그런 구성 때문인지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흘러갔다.
“오늘 우주가 가져온다는 자작곡이요. 들어 보셨어요?”
“이사님도 아직 못 들어 봤다고 하던데. 제목만 알아요. 불꽃놀이.”
“불꽃놀이?”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비슷한 제목이 너무 많지 않나? 우리가 알고 있는 불꽃놀이만 해도 다섯 곡은 될 것 같은데.”
“뭐, 그래 봐야 수록곡이잖아요.”
“어차피 작명이랑 노래 히트도 별개고요. 제목이 Something인 노래가 성공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그건 그렇지.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그들은 썸씽의 성공을 회고했다.
회사 내에서 런칭하는 신인 보이 그룹이 장소원과 작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아, 그렇구나’ 정도였다.
어차피 연습생은 신인 개발팀이 담당하는 영역이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장소원은 싱어송라이터로 재능이 있는 편이니, 음원이 나온다면 공짜 홍보도 되는 셈이라 잘됐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까맣게 잊었을 때.
갑자기 모든 사이트에서 차트 1위를 점령하는 전무후무한 곡이 등장했다.
“그때 진짜 깜짝 놀랐지. 아침에 회사 나왔는데 전화기는 울려 대고, 홍보팀 사람들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그날이 지호 졸업식이었는데, 하필이면 걸스온탑에 누구지, 걔가 껴 있어서 기자들 잔뜩 와 있었잖아.”
“윤 실장님도 애들 인터뷰 막는다고 뛰어갔잖아요.”
“뭐, 그때는 회사 전체가 다 난리였으니까. 스칼렛도 나름 빨리 음원 차트 1위 찍은 편이었는데, 그것도 꼬박 1년이 걸렸잖아. 데뷔도 안 한 애들이 음원 차트 1위에 떡하니 이름 올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때 기억을 회상하던 직원 하나가 말했다.
“이번에도 기왕 자작곡 맡긴 거, 괜찮은 거 나왔으면 좋겠네요.”
“뭐. 잘 되면 좋은 거긴 하지만, 별로여도 나쁠 건 없지.”
“그런데 우리가 도와줬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썸씽 때는 장소원이 많이 도와줬다면서요. 혼자 맡겨서는 영 퀄리티가 안 나올 거 같은데….”
“고치는 거야 우리가 해 줄 텐데, 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썸씽의 성공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지만, A&R팀 직원들의 전반적인 기대치는 몹시 낮았다.
그건 애초에 선우주에게 작곡을 맡긴 목적 때문일 것이다.
썸씽과 뮤직카페 이후 곡을 주겠다는 외부 작곡가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굳이 수록곡 하나를 초보자의 자작곡으로 허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미지 메이킹.
데뷔 앨범을 홍보할 때 ‘작곡돌’ 이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랬기에 곡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별 관심이 없었다. 음악적인 호기심과 별개로 이건 비즈니스니까.
“게다가 이번에 우주가 베이스로 삼은 소스, 그거 엄청 어렵잖아. 우리 중에서 그거 안 만져 본 사람 있나?”
악명 높은 소스를 떠올린 그들이 몸서리를 쳤다.
A&R팀에 소속된 작곡가라면 모를 수가 없는 소스였다. 겉보기로는 쉬워 보여서 만졌다가 모두가 영혼까지 털린 바로 그것.
이걸 깎으면 저게 튀어나오고, 저걸 깎으면 이게 튀어나오고.
뭘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도 안 나서 모두 포기한 것이었다.
전문 작곡가들도 죄다 손을 놓고 포기를 외친 것인데, 막 작곡을 시작한 아이돌이 얼마나 잘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에는 좀 어렵겠네요.”
“그래요. 대신에 격려나 많이 해주자고요. 그동안 회사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우주한테 엄청 받아먹었잖아요.”
“고기만 네 번 먹지 않았어? 애가 크게 될 애야. 사람 챙기는 법도 알고.”
썸씽이 새로운 기록을 세울 때마다 우주는 레몬 엔터의 직원들에게 회식자리를 대접했다.
이런저런 작은 선물도 주고.
직원들이 뉴블랙의 리더를 좋아하고 아끼는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랬기에 A&R팀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미리 어떤 말이나 리액션을 할지 준비해 두고 있었다.
최대한 우주가 상처받지 않고,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금 이사님이랑 팀장님 오고 계세요.”
막내 직원의 말에 그들 모두 대화를 멈추고, 책상의 서류를 정리했다.
이윽고 제작 이사 조규환, A&R팀장과 뉴블랙 담당 실장 윤석환 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뒤에 뉴블랙 멤버들도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붙었다.
“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인사하는 멤버들을 직원들은 흐뭇한 미소로 반겼다.
모두 착석하고 인사말을 나누는 것도 잠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우주가 지금까지 작업한 결과물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정한 거고요. 곡을 듣게 될 주요 리스너는 저희의 팬이거나 잠재적인 팬으로 설정했습니다. 대체로 즐거운 분위기를 살리는 데 주력했고, 장르는 딥 하우스 쪽으로 결정했는데… 만들고 보니 트로피컬 느낌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해서 경계선이 모호해요.”
우주가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많이 부족하지만, 저희가 처음으로 작업한 결과물인 만큼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좋게 봐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A&R팀 직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아까 말했듯이 실망스러워도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기로.
이윽고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
전주를 들었을 때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입부가 좋았다.
리듬이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마치 밤하늘의 별이 깜빡이는 듯한 비트가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즐거운 멜로디가 그 위를 수놓는다.
굳이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왠지 맑게 갠 밤하늘이 연상된다.
‘나쁘지 않은데? 수정해야 할 것도 적고.’
그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흘러나오는 전주를 감상했다. 도입부를 들어 보니 노래에 손을 댈 구석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일이 줄었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것도 잠시.
노래를 듣는 그들의 시선이 바뀐 건 김중현의 랩이 치고 들어오는 부분부터였다.
‘중현이가 랩을 잘하긴 하네. 확실히 랩 메이킹에 소질이 있어.’
신나는 멜로디 아래로 래퍼의 목소리가 흘러간다. 목소리 자체가 강해서 힘을 주지 않는데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직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중현이가 랩을 잘 만드는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비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부분부터 리혁이의 파트까지.
점점 고조되어 가던 리듬과 멜로디가 후렴구에 가서 터지듯이 변화했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불꽃 대신 청량한 멜로디가 그들의 귀를 적셨다.
‘…이걸 쟤가 만들었다고?’
그들이 감탄하는 건 단순히 노래의 퀄리티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매일같이 해외 명곡이나 국내 명곡을 들으며 공부하는데, 이 정도 수준의 곡에 놀랄 리가 없었다.
그들이 놀란 것은 노래의 퀄리티가 아닌 색 때문이었다.
이 노래의 장점은 바로 멤버들과의 궁합이었다.
음악적인 색깔이라고 할까. 누가 들어도 ‘아, 얘네 노래구나’ 싶을 정도로 멤버 개성이 톡톡 튀면서도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룹명인 뉴블랙이라는 단어처럼, 서로 다른 색깔이 하나로 어우러져 근사한 검은색으로 탈바꿈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그 가수에게 안 어울리면 좋은 노래가 아니다.
대형 기획사라 돈이 많다고 해도 그 가수에게 어울리는 컨셉의 곡을 주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힘들다. 반면, 중소 기획사라 해도 가수에게 딱 맞는 좋은 곡을 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아이돌은 A&R과 기획력 싸움이라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불꽃놀이는 순수한 음악적 측면을 벗어나 기획적인 면에서 합격점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A&R팀 직원들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킨다.
당연히 별로일 거라고 생각해서 반응이나 리액션까지 준비했는데, 노래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은 좋은 노래에 감탄하는 한편 난감함을 느꼈다.
주조연 캐스팅이 끝난 영화에서 단역 배우 하나를 뽑으려는데, 갑자기 주연보다 더 주연에 어울리는 배우가 등장한 격이라고 할까.
“…….”
마침내 노래가 끝났을 때, 장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