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화 (4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화

9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그날, 한밤의 음악회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우리가 함께 만든 노래가 타이틀곡이 됐다는 기쁨 덕분일까,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퍼포먼스에 흥이 더 붙었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녹화가 끝나고 인사하는 자리에서 PD님으로부터 오늘 무대 참 좋았다고, 나중에 또 부를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말까지 들었으니까.

“고생했어, 우리 아가들.”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자리에서 소원 선배는 우리를 안아 주었다.

다시 못 만날 것도 아닌데 눈이 촉촉하다.

동생들을 바라보는 큰누나 같은 표정을 짓던 장소원은 헤어지기 직전,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맞다, 나 이번에 HBS 저녁 라디오에 DJ로 들어가거든.”

뮤직카페는 우리에게만 좋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다.

그룹 해체 이후 드라마 OST로 연명하던 싱어송 라이터에게도 좋은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소원 선배로서는 인고의 세월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HBS 라디오국에서 가장 청취율이 높은 간판 프로그램의 DJ 자리.

Something의 성공도 있지만, 라디오국에서는 그녀가 뮤직카페에서 예능 초보자인 뉴블랙을 능숙하게 챙기고 토크를 이끌어 간 모습을 보고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너희 데뷔하면 내가 피디님한테 졸라서 선곡표에 불꽃놀이 빵빵하게 넣어 줄게. 시간 되면 게스트로도 초청 추진해 보고. 그래도 되지?”

“당연하죠. 안 불러 주셔도 갈 거예요.”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장소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2월부터 5월까지 있었던 행복한 시간을 정리했다.

뭐,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 로드 매니저였다.

민기 형은 파병 나가는 배우자에게 손수건을 흔드는 사람처럼 아련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입술을 앙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   *   *

얼마 지나고 우리 데뷔일이 확정됐다.

6월 19일.

연습생 계약서를 쓰면서 들었던 대로였다.

투자자들이 애들 언제 데뷔시키냐고 성화를 부려서 2014년 6월을 예정으로 잡았다고 했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한 달 반가량.

체중 감량을 위해 식단도 조절하고, 일본어나 영어 레슨도 받고, 헬스장 가서 PT도 받고, 샵 가서 피부 관리도 하고, 예능 대처법도 배우자니 시간이 빠듯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스케줄에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힘들어하는 것과 별개로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영영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연습생들은 일단 데뷔부터 하고 싶어 한다.

일단 방송을 타면 그 다음에는 알아서 잘되겠지, 하는 생각이라고 할까.

우리도 방송 활동 전까진 그랬다.

하지만 막상 나가 보고는 깨달았다.

음악 방송을 뛰면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고, 행사나 스케줄이 끼어 있어도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고.

이런 상황을 겪어 보니 활동 중에 연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마치 ‘뭐, 자격증은 취업하고 나서 따면 되지’라는 취준생의 발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는 직장인의 마음이라고 할까.

그랬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나는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이건 작년에 OK목장이라는 작곡 그룹이 만든 노래인데. 듣고 나서 의견 좀 들려줘. 우리 생각에는 이 사람들이 불꽃놀이 노래랑 색이 맞을 거 같아서, 이번에 수록곡 외주를 줘 볼까 하거든.”

보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는 장비들로 가득한 A&R팀 전용 사무실.

나는 그곳의 직원들과 같이 앉아 데뷔 앨범을 만드는 중이었다.

이윽고 재생 버튼이 눌리고, 시원한 멜로디가 귓가를 간질인다. 불꽃놀이가 중현이의 랩으로 시작하듯, 이 노래도 시원한 랩으로 시작했다. 누구 노래인가 했더니 스칼렛의 곡이다.

이게 2집 수록곡이었나?

래퍼 데이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곡이 끝나고 나는 입술을 뗐다.

“스칼렛 2집에 있는 곡이네요. Summer Nights였나.”

“오, 알고 있네?”

“트렌드 공부하려고 어지간한 아이돌 노래는 다 듣고 있거든요. 음… 확실히 이 노래가 불꽃놀이랑 컬러가 맞는 거 같긴 해요. 시원한 여름 분위기도 나고 좋네요.”

“그렇지?”

반색하는 직원들에게 덧붙였다.

“그런데 조금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자면, 곡을 의뢰할 거라면 Summer Nights와는 다른 방향이었으면 해요. 이건 불꽃놀이랑 컬러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아서요. 수록곡이 타이틀에 밀릴 가능성도 있고. 분위기가 조금 다른 곡이었으면 해요.”

나는 기억을 떠올리다가 말했다.

“틴스피릿 3집 수록곡 중에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곡이 있거든요. 퓨처 하우스 계통에 몽환적인 느낌인데, 이것도 OK목장분들이 작곡하셨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여름밤을 주제로 하는 다른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아요.”

“한여름 밤의 꿈, 그런 노래가 있었나?”

한두 명을 뺀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이윽고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찾아낸 이들이 잠깐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도 괜찮은 거 같네. 하긴, 우리도 Summer Nights는 컬러가 너무 똑같아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의뢰하려고 하긴 했어.”

“너 진짜 아는 노래 많구나. 이것도 공부하려고 들은 거야?”

“원래 희망하던 진로가 A&R 쪽이어서요. 수능 준비도 음대 가려고 했던 거고요.”

그 말에 직원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내가 휴가 때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꼬마의 말에 터뜨렸던 웃음과 비슷했다.

군복을 입은 나를 보고 자기도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지.

직원 중 하나가 웃다가 나온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직접 해 보니까 어때?”

“하루하루 새로운 거 같아요. 음악 일 하는 게 좋기도 한데, 역시 남의 돈 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공감하는 듯한 표정으로 직원들이 다시 웃는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영 분간이 안 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 꿈을 정하게 된다면 A&R 쪽으론 안 할 거라는 거.

홍보팀이고 매니지먼트고, A&R이고 이놈의 엔터 업계는 사람을 갈아서 일을 한다.

홍보나 매니지는 평소 매니저 형들이나 홍보팀분들을 통해 자주 접해서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A&R은 상대적으로 널널한 유토피아 이미지였는데 알고 보니 여기도 만만찮은 지옥이다.

일단 업무량부터 말할 필요가 없다.

곡의 선정, 기획, 작곡, 앨범 디자인 등등 업무의 경계선이 없다 보니 ‘저희 이것도 해야 하나요?’ 하면 ‘해야지’하는 식으로 일이 막 생겨난다.

무엇보다 앨범이 망하면 가장 먼저 다른 부서에서 ‘쟤네가 잘못 만들었어요!’하면서 책임 소재를 돌리는 편이라 스트레스도 만만찮고.

내가 본 직원들은 자유로운 음악인보다는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에 더 가까웠다.

“죄송해요. 안 그래도 일정이 타이트한데, 갑자기 앨범 컨셉이 바뀌어 버려서 일이 늘어나셨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네가 적당히 좋은 노래를 만들었어야지.”

“맞아. 수록곡 만들어 오랬더니 타이틀을 만들어 오니?”

농담하듯 타박하는 직원들에게 야식을 돌리겠다고 회유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4층 휴게실에 둘러앉아 야식을 펼친 가운데, 직원 하나가 젓가락을 똑 뜯으며 물었다.

“참, 내일 쉰다며. 너희끼리 뭐 하기로 한 거 있어?”

“아뇨. 각자 따로 놀기로 해서. 다 같이 놀까 생각했는데, 리혁이가 맨날 얼굴 보는데 뭐 하러 쉬는 날까지 얼굴을 보냐고 했거든요.”

리혁이답다며 다들 웃는다.

내일은 석가탄신일.

바야흐로 뉴블랙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공식 휴일이었다. 레슨도 작업도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휴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뜬다.

이따 숙소 들어가면 머리만 감고 바로 자야지. 영화 한 편 보면서 잠이 들면 정말 최고의 하루가 될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주야, 애들 숙소에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아, 네.”

“나 방금 비주 본 거 같은데?”

“네?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말을 하는데 젓가락이 가리킨 쪽에 정말 비주가 걷고 있다.

유리창 너머 복도.

비주는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러느라 휴게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도 못 알아챈 거 같다. 이윽고 심각한 표정으로 걷던 녀석이 문을 노크한다.

“이사님 사무실 아니야?”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그러곤 내게 묻는다.

“무슨 일 있나 보네. 우주야, 뭔 일이야?”

“아뇨, 저도 모르겠어요.”

알았어도 모른다고 둘러댔겠지만 이 경우는 나도 모르겠다.

비주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얘가 처음으로 이상하게 군 것은 한 달 전이었다. 그때는 무슨 일인지 알아내려다가 멈췄다.

애가 평소대로 돌아와서, 아, 뭔진 몰라도 해결됐구나 했지.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쟤가 멀쩡해진 게 아마 중현이한테 ‘쟤 무슨 일 있냐’고 추궁한 다음 날부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중현이한테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그룹 리더로서 동생들 컨디션이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매일 체크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동안 작곡 놀음에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비주한테 동생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사실 따지고 보면 연습이나 작곡 같은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우리 멤버들 아닌가.

나는 유리창 너머 사무실 문을 흘깃거렸다.

문도 닫혀있고, 여기도 유리창으로 막혀 있는 터라 저기서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머릿속으로는 자꾸 안 좋은 생각 만 떠오르는 것 같고.

비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할 타이밍을 노렸지만, 그날 내가 휴게실을 나설 때까지 비주는 나오지 않았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여?”

“비주 생각.”

“너무하다, 정말.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옆에 있는데 다른 사람 생각하기 있기 없기?”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라.”

해맑게 웃고 있는 막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옥신각신하는 우리를 보고 웃는다.

여기는 신촌의 복합 쇼핑몰.

뮤직카페 본방을 달릴 때였나.

패션 테러리스트인 맏형을 디스하던 막내에게 한 약속 때문에 오게 됐다.

“제가 울 누나들 옷 살 때도 귀찮아서 안 나가 주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 옷 사러 온 건데 그렇게 뚱하면 써여? 지금 표정 리혁이 형 같아여. 되게 심술궂은 놀부 느낌.”

“야, 리혁이는 너무 갔다. 중현이 정도로 하자.”

“중현이 형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여.”

양손에 봉투를 가득 들고 따라가는 동안, 지호가 참았던 걸 얘기한다는 듯 조잘조잘 떠들었다.

“형은 갈색 웜톤인 거 같다고 말해 줘도 뚱하고. 세심하게 옷을 골라 줬더니 추리닝이나 고르고.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여성복 매장에서 할머니 옷이나 사고 있고. 그리고 뭣보다 누가 청바지에 등산화를 신고 나오냐고여.”

마지막 말이 핵심인 거 같다.

휴일이라 평소 신던 운동화를 빨아서 남은 신발이 등산화가 유일했거든.

중현이는 발 사이즈가 너무 크고, 비주와 리혁이는 작고.

맞는 신발이 없어서 흰 티에 청바지, 등산화를 신었는데 막내는 걸을 때마다 슬그머니 떨어져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신발 가게를 찾는 동안 지호가 물었다.

“그래서, 비주 형 얘기는 왜 나온 건데여?”

“애가 요새 좀 이상한 거 같아서.”

“그래여? 전 모르겠는데. 평소랑 똑같지 않아여?”

어제 비주는 늦은 시간에 숙소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웃는 얼굴로 별거 아니라고. 그냥 이사님이랑 면담할 게 있었다고 대꾸하니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인데 하면서 정색하면서 묻기도 애매하고.

“아, 맞다. 수상한 게 있기는 했어여.”

“뭐가?”

“비주 형이랑 중현이 형이랑 오늘 같이 농구하러 나간다고 했잖아여.”

“그랬지.”

“근데 중현이 형은 남들이랑 운동하러 나갈 때 윗도리 검은색으로 입거든여. 그래야 불타 버린 고구마처럼 강력해 보인다구.”

“그런데?”

“오늘 파란색 입고 나갔잖아여. 이상하져. 갑자기 패턴이 바뀔 리도 없구, 그게 아니면 둘이 운동이 아니라 다른 걸 하러 나간다는 건데.”

은근히 예리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막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우리 빼고 맛있는 거 먹으려는 거 아닐까여?”

“아주 셜록 홈즈 납셨네.”

“아, 리혁이 형처럼 말하지 마여. 사람 서운하게.”

하지만 지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현이는 분명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예전에 내가 물을 때도 당황해서 얼버무리고.

뭔가 심각한 일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전부 말이 안 되는 것뿐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결판을 짓자.

당장 데뷔가 한 달가량 남은 상황.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넘어갔지만, 팀 활동에 지장을 줄 만한 사건이 있다면 알아야 하니까.

이따 둘이 들어오면 앉혀 놓고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다.

“뭐, 기왕 나온 거 우리끼리 쇼핑이나 재미있게 하자.”

미소를 지으며 막내의 목에 팔을 장난스럽게 둘렀다.

그래.

일단은 주변에 있는 작은 즐거움들을 놓치지 말자고.

*   *   *

우리는 쇼핑을 마무리하고 거리로 나섰다.

5월의 따스한 날씨 때문일까.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봄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 같다.

길을 걷는 커플들, 어린 친구들에게서 봄 향기가 나는 것만 같고.

화기애애하게 걸으며 우리는 밥 먹을 곳을 찾았다.

“옷은 네가 샀으니까 밥은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봐. 비싼 것도 사 줄 수 있어.”

“비싼 건 별로구여.”

“그럼 어디 가지. 저기 치킨집은 어때?”

“형.”

지호가 정색했다.

“아빠 회사에서 신제품 테스트할 때마다 먹었던 게 치킨이에여. 기름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 토 쏠린다니까여. 둘째 누나도 남친이 치킨 너무 좋아한다고 헤어졌어여.”

그럼 치킨은 보류.

“잠깐만여. 반 애들한테 물어볼게여.”

지호가 핸드폰 메신저를 켰다.

수백 명이 넘는 친구 목록에 압도된 것도 잠시, 지호가 단톡방에 뭐라고 쓰자마자 순식간에 답장이 달렸다.

흐뭇했다.

유치원에서 인기 많은 꼬마 동생을 보는 기분이다.

“근처에 라멘이랑 규카츠 유명한데 있구여. 수제 버거 집이랑 초밥 맛집도 있구. 고기 덮밥 유명한 데도 있대여. 그리고… 뭐야? 길채경 얘는 왜 복어집을 추천하는 거지.”

“복어집?”

“분명히 사람 죽은 데일 거예여. 얘는 기회만 되면 절 독살할 애라.”

“신기하네. 둘이 얘기도 하고.”

“앞에서는 친한 척하져. 뒤에서 서로 욕하고.”

앙숙을 떠올린 막내가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답장을 보내는 막내를 타일렀다.

“지호야, 길에서 폰 보고 걷다가 넘어진다.”

“넹.”

지호가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은 채 대답했다.

“핸드폰 좀 그만 보라니까.”

“리혁이 형한테 답장하는 중이에여.”

“아, 그래? 걔는 지금 뭐한대?”

“지금 신기술이 적용된 로봇 청소기 보고 있대여. 뭐야, 동영상은 왜 찍어서 보내는 거야.”

우리 팀 메인보컬님은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기구 박람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왜 그런 행사가 존재하고, 왜 가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갈 때 불꽃놀이의 후렴구를 콧노래로 부르며 나가는 걸 보니 정말 기분이 좋긴 한 모양이다.

지호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말할 때였다.

“참, 리혁이 형이 그러는데 이따 저녁은 다 같이… 으헉!”

보도 블럭 틈에 운동화가 꼈는지 지호가 앞으로 엎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이 반응했다.

온몸의 신경 세포가 깨어난다고 할까.

모든 게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보인다. 그리고 내 몸은 이때에 맞춰 필요한 동작을 바로 꺼냈다.

반사적으로 뻗어나가 지호의 뒷덜미를 잡은 것이다.

땅바닥에 옥수수를 털릴 위기가 닥치기 1초 전, 옷 칼라에 목이 졸린 걸 빼면 막내는 멀쩡했다.

“야! 너 괜찮아?”

“괘, 괜찮아여.”

“괜찮은 거 맞아? 고개는 왜 못 들고 있어?”

“쪽팔리잖아여. 사람들이 막 쳐다보지 않아여?”

“아니. 아무도 안 보고 있어.”

사실 다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한참 뒤에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호가 이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여, 형.”

“조심 좀 해. 나 아니었으면 너 틀니 끼고 데뷔할 뻔했어.”

한참 동안 서서 괜찮은지 확인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는 거 같았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길 때였다.

“어?”

의아해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지호가 걷고 있다. 아니, 지금 보니 걷는 폼이 이상하다.

마치…… 쩔뚝대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등골에 스칠 때, 지호가 넋이 나간 얼굴로 날 불렀다.

“형.”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골치 아픈 일이 하나 더 늘었음을 직감했다.

“저 발목 다친 거 같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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