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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화 (4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화

어어…?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싶었지만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응급실의 풍경.

약품 냄새와 쌀쌀한 겨울 공기, 응급실 특유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렸다.

마치 VR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지각하고 있지만 내 몸은 의자에 앉아서 움직일 수 없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일까.

고민을 하기도 전에 내 눈앞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노인.

내가 작년 수능 날에 구한 최익현 할아버지였다.

뭐야?

이거 현실인 건가?

만약에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움직여서 내 볼을 꼬집었을 거다.

너무나 생생했으니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사실적이었다. 말 그대로 현실이었으니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과거로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웅크리는 노인을 향해 내 시선이 돌아간다. 초점이 향한 곳은 갈비뼈 쪽이었다.

내가 구하느라 밀친 부위.

이때의 나는 그걸 보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을 느꼈었다.

내가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저 때문에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내가 움직이지 않는데도 저절로 입이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다.

내 말에 곁에 있는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유, 그런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옆에 선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야.

이 사람 방금 내가 병원 복도에서 본 사람이잖아.

-선우주 씨가 아니었으면 아버지가 이렇게 침대에 누워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그러면서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병원 로고와 함께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소아청소년 암센터 최용재 교수]

‘어?’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끼는 동안 과거의 내가 상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님이 편찮으시다거나 혹여 병원에서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요.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 테니까.

거기까지 딱 보았을 때, 다시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 현실이었다.

비주 동생이 입원한 병실로 통하는 복도,

시험 삼아 손을 움직이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체감상으로 1분은 일종의 기억을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현실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형?”

먼저 걸어가던 비주가 내게 고개를 돌린다. 의아한 시선으로 묻는 비주에게 나는 봉지를 넘겼다.

“비주야, 민준이 재수술해야 하는데 좋은 교수님을 찾지 못했다고 했지?”

“아, 네.”

“어쩌면…….”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네?”

“이거 좀 받아 가. 먼저 병실로 돌아가 있을래?”

“형, 저 길도 잘 모르는….”

“왼쪽으로 가!”

얼떨떨해 하는 비주에게 사과 봉지를 집어 넘기고는 멀찍이 최 교수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갔다.

비주는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비주야, 왼쪽!”

“아, 네!”

왼쪽으로 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상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며 상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기를 3초.

중년인의 피곤한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오른다.

“선우주 씨?”

“네, 오랜만에 봬요. 교수님.”

아직까지 내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갑작스러운 주마등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조금 갑작스러울 수도 있으시긴 한데, 제가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어서.”

일단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   *   *

병실은 조용했다.

부모님은 식사를 하러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갔고, 밤새 열이 났던 민준이는 잠에 취해 있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동생.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김비주는 소원을 빌었다.

우리 동생 좀 낫게 해 달라고. 이깟 아이돌 안 해도 괜찮으니까, 동생이 행복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 소원은 반대로 이뤄졌다.

그는 데뷔도 하기 전부터 음악 방송 1위를 거머쥐었고, 꿈과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반면 동생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요즘에는 한 달에 몇 번이고 열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였다.

정확한 상태는 듣지 못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걸 보면 상황이 안 좋은 것 같다.

그나마 오늘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열이 많이 내리기도 했고, 멤버들이 함께해 줬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누나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많이 웃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들 고마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하면서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간병인 의자에 앉아서 민준이의 어린이용 과학책을 읽는 김중현, 핸드폰을 보면서 인상을 쓰고 있는 서리혁, 턱을 괴고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왕지호.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지만 선우주.

그 얼굴을 떠올리자 김비주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쪽팔려.’

어디 분위기 있는 곳에서 그랬어도 쪽팔렸을 텐데, 마트에서 물건 고르면서 속마음을 털어놨다니.

‘나 원래 그런 말 잘 안 하는데….’

별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다 시시콜콜하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속절없이 깊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주겠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조금 후련하기는 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수술 얘기는 왜 꺼낸 거지?’

아까 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우주는 중요한 기회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는 교수님이라도 되나?’

김비주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저기, 형.”

고개를 돌아보니 왕지호가 옆에 다가와 쭈뼛쭈뼛 앉았다. 평소의 능글맞은 표정이 아니라 눈치를 많이 보는 얼굴이다.

김비주가 미소를 지어 주었다.

“발목은 괜찮아?”

“네, 형이 사다 준 파스 붙였어여.”

왕지호가 발목을 들어 보이자 덕지덕지 붙은 파스가 보였다. 어설프게 붙여서 귀퉁이가 이미 덜렁덜렁하다.

“이리 줘 봐.”

김비주는 막내의 발목에 파스를 제대로 붙여 주었다. 그러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쭈뼛거리는 왕지호를 바라봤다.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여.”

“어떤 말?”

“그… 그동안 철없이 굴어서 죄송하다구여. 오늘 아침에 간이 짜다고 투정 부린 것도 그렇고. 평소에 방 어지른 것도 죄송하구. 어, 그리고…….”

그래서 그런 거였나.

병원에서 만난 다음부터 계속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길래 다리가 엄청 아픈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형은 동생 때문에 매일 마음고생하고 있었을 텐데, 숙소에서 저랑 리혁이 형이랑 맨날 속 썩이고.”

“나까지 끼우지 마라. 난 비주 형한테 잘했다.”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서리혁이 말했다.

잠시 째려보던 막내가 다시금 주눅이 든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죄송해여. 제가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괜찮아.”

김비주는 웃으며 왕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민준이도 쓰다듬어 줄 머리카락이 생기면 좋을 텐데.

“그냥 평소에 그럴 때도 귀엽게 생각했어. 아직 그럴 때잖아.”

“제가 앞으로 잘할게여.”

“저도요.”

서리혁이 중간에 끼어들자 왕지호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제가 사과하는 데 형이 은근슬쩍 껴여? 따로 해여.”

“싫은데?”

“얘들아.”

책을 읽던 김중현이 말했다.

“민준이 방금 잠들었어.”

두 동생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면서 김비주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변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저 둘은 그의 삶에 즐거움을 주는 몇 안 되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

그가 해 준 요리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좋아할 때마다, 그가 다린 교복을 입고 번듯한 모습으로 나갈 때마다 흐뭇하다고 할까.

왕지호와 서리혁이 서로 눈으로 기 싸움을 하는 동안 김중현이 다가왔다.

“우주 형은 어디 갔어?”

“모르겠어. 아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지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

두 동생과 달리 김중현은 그에게 편한 친구였다.

동갑이고 따로 챙겨 줘야 할 게 없는, 알아서 잘 사는 친구.

그런 편안함 때문에 진작부터 그의 사정을 알리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럼 우주 형은 나한테 뭘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선우주는 그가 본 사람 중에서도 알 듯 말 듯한 부류였다.

어떨 때는 엄청 따뜻한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차갑고.

쉴 때는 소파에 하루 종일 늘어져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처럼 있다가 평일만 되면 연습실에서 밤을 새곤 하는 사람.

때로는 곡 작업을 한다고 폐인이 될 만큼 틀어박히기도 하고.

도통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덕분에 불가능한 일들을 해냈다는 것.

사기가 최저였던 상태에서 연말 평가 1위를 거머쥐었고, 음악 방송 1위와 음원 1위를 거머쥐었다.

그랬기에 굳이 선우주를 정의하자면 의지하고 싶은 사람 정도라고 할까.

왠지 저 사람이라면 내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것 같고.

내 고민을 말하고 싶은.

아까 동생의 재수술에 관해서 털어놓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말도 안 되지.’

선우주가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동생의 병원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어떤 뒷배라도 있다면 모를까.

한때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인맥으로도 수술 일정 잡는 게 어려운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비주야!”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고함에 모두가 놀랐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의 엄마였다.

“엄마?”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엄마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고는 꼭 껴안았다.

당황스럽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는 엄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요?”

“민준이, 민준이….”

사과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듯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의 말을 김비주는 차분히 기다렸다.

“민준이 수술 일정 잡혔대!”

“네?”

“수술 일정을 잡을 수가 있대!”

무슨 소리일까? 멤버들은 물론이고 그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린 곳으로 세 남자가 나타났다.

은은한 미소를 품고 있는 선우주, 엄마처럼 눈시울이 벌건 아빠, 그리고 아까 보았던 의사.

엄마가 눈물을 닦고는 웃었다.

“비주야, 이분은 최용재 교수님이셔.”

“아.”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소아암 수술에 있어서 권위자라고 들었다. 그에게 수술을 잡으려면 적어도 세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최 교수님이 우리 민준이 수술 집도해 주신다고 했어.”

“네?”

당장 세상이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김비주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가운데 서 있는 차분한 인상의 교수.

어정쩡하게 그에게 인사를 하던 김비주는 선우주를 바라보았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이를 보면서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   *   *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그 녹색 외계인들.

뽑기 기계 안에서 기다리면서 뭔가 일어날 때마다 ‘오오오’하는 그 귀요미들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

최용재 교수가 뭐라고 말을 이어 갈 때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오, 했다가 아, 했다가 어… 하고 말을 잇는다.

“수술 일정은 그렇게 잡을 거고요. 노파심에 말씀 드리지만, 절대 어디 가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괜히 말 나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네! 네! 당연하죠.”

어머님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버님은 안경을 벗고 소매로 눈물을 훔치다가 말했다.

“이걸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휴가 일정을 빼시고 저희를 위해서…….”

“감사라면 저 말고 여기 있는 선우주 씨에게 해야죠.”

최 교수님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제 아버지를 구해준 은인이 부탁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습니까. 힘껏 도와줘야죠.”

모두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본다.

교수님이 덧붙이듯 말했다.

“물론 수술이 잘될 거라고 확신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 집도하겠습니다.”

의사들이 그러하듯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최선만으로도 진심은 전달됐다.

비주 부모님과 우리 멤버들은 연신 허리를 숙였다.

마침내 최 교수가 방을 나갔을 때, 동생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형,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저 교수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진짜인 거죠, 이거?”

동생들에게 찬찬히 설명을 했다.

저분이 내가 수능 날 구했던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오늘 우연히 마주쳐서 말씀을 드려 봤다고.

조심스럽게 도움을 구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수술을 집도하겠다고 역제안을 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주 부모님은 병실로 올라오다가 마주치게 된 거고.

그런 짧은 이야기가 끝나자 비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형…….”

하지만 나도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비주 아버님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안아 줬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정말.”

아들과 똑 닮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어머님과 비주가 합류했다. 왜 내가 이 흐느끼는 가족의 품에 끼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엄마, 왜 그래요?”

교수가 왔을 때도 잠에 취해 있던 민준이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났다. 어리둥절한 얼굴이 우리를 바라본다.

곧바로 비주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숙소로 돌아가는 내 손에는 보드게임의 트로피 모형이 들려 있었다.

민준이가 건네준 트로피였다.

음악방송 1위를 하고 받은 트로피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보다 더 값진 선물이었다.

*   *   *

그리고 얼마 뒤.

연습실에 있던 우리는 전화기를 두고 빙 둘러앉아 소식을 들었다.

민준이의 수술 결과였다.

울먹이던 어머님은 교수님이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아주 잘 끝났다고.

그러니 내년 봄이 되기 전에 책가방이나 학용품을 사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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