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화 (5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화

돈깨나 들인 듯한 오프닝에 기자들은 놀랐다.

‘와. 레몬이 작정했구나.’

CG 퀄리티를 보아하니 단순히 한두 푼 들인 뮤비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대형 기획사에 비견될 수준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면 반응 괜찮겠는데?’

기사를 올리기 위해 급하게 손가락을 놀리던 것도 잠시.

청량감 넘치는 전주에 하나둘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이국적인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다섯 소년들.

그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왜 여기 있는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들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이윽고 선우주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뮤비의 보정 효과와 오묘한 표정이 어우러지자 몇몇이 소리 없이 감탄했다.

여긴 지금 어디인 걸까

낯선 바다 낯선 공기

어디 있는 걸까 넌

난 외딴 곳에 눈을 떴어

이어서 앳된 외모의 막내, 왕지호가 나왔다.

표정 연기에 능한 두 멤버의 도입부가 끝나자 지켜보던 기자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루해하던 시선에서 진지하게 평가하는 시선으로.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도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노래가 좋았다.

기대치가 애초에 낮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뉴블랙의 데뷔곡은 기대 이상이었다.

연예계에 발을 걸친 직업인 만큼 기자들 역시 전문가였다.

매일같이 아이돌 신곡을 듣고, 쇼케이스를 다니면서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이 온다고 할까.

이 노래가 좋은 노래인지, 앞으로 잘될지.

그런 면에서 불꽃놀이는 합격점이었다.

‘하이라이트까지 좋다면 대박일 텐데.’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뮤비 영상이 흘러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정체불명의 소녀에 의해 다섯 청년이 지구에 불시착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낯선 환경과 낯선 인물들에 당황하지만, 이내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에 매료되어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진다.

어느덧 함께 웃으며 노는 소년들.

청량하지만 어딘가 따스한 구석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듣고 있다 보면 노래가 손짓하는 것만 같다.

여기 와서 자신들과 함께 놀자고.

노래는 어느덧 하이라이트로 다가섰다.

파란 배경과 함께 서늘한 분위기의 멤버가 시원한 고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불씨는 이미 있었던 거야

너는 그저 빛나게 두면 돼

Show your true colors

뒤이어 하이라이트 파트가 기자들의 귓가에 훅 들어왔다.

저길 봐 우리의 불꽃이야 (Firework)

밤하늘을 수놓는 우리의 모습을

밤하늘 위로 쏘아진 폭죽들이 멤버들이 지닌 각각의 색을 묘사하면서 어우러졌다.

‘Like a Firework’라는 후렴구와 함께.

1절이 끝나자 기자들의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지금 듣고 있는 뮤직비디오에 대한 평가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호평이었다.

특히 스트릿 보이즈와 비교하는 기사를 준비하던 이들은 뉴블랙의 노래에 더 높은 평점을 주고 있었다.

물론 힙합 컨셉과 여름 시즌송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완전히 다른 장르니까.

하지만 두 그룹이 들고 나온 신곡에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뉴블랙의 노래에는 자신들만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따스하면서도 즐거운.

노래 자체의 분위기와 가사 등 모든 것이 멤버들에게 딱 맞는 주문 제작 옷처럼 들어맞았다.

들으면 딱 ‘아, 얘네 노래구나’ 싶다고 할까.

이런 부분이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었다.

그럴수록 기자들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여기 리더라는 애는 뭐 하는 애지?’

장소원과 Something이라는 곡을 들고 왔을 때만 해도 모두가 비기너스 럭이라고 여겼다.

작곡가에게 일생일대에 한 번 찾아온다는 운때를 맞이한 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지금 노래를 들어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홍보를 엄청 했지만 정작 큰 내실은 없었던 스트릿 보이즈와 달리 이쪽은 정말 재능이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몇몇은 눈을 빛내며 묘한 기대를 품었다.

‘여태까지 아이돌 자작곡이 큰 성과를 거둔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이번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은 불꽃놀이의 본 무대를 조용히 기다렸다.

무수한 질문거리와 함께.

*   *   *

데뷔 쇼케이스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여느 신인들이 하는 쇼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뻔하게.

뉴블랙이 어떻게 나온 팀명인지, 뜻은 무엇인지, 멤버들 특기는 무엇인지, 앨범을 만들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뭐가 있었는지, 롤 모델은 누구인지, 앨범 컨셉은 어떤 것인지 등등.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여유로움?

Something 때 하도 단련이 되다 보니 이제는 쇼케이스에서 치는 멘트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물론 공연에 있어서는 여전히 떨렸지만.

“조금 떨리긴 한데 신난다. 그치?”

불꽃놀이 본무대를 앞둔 백스테이지.

내가 웃으며 한 말에 리혁이가 대답했다.

“뭐, 뮤직카페 때보단 덜 떨리네. 할 만해요.”

“형, 지금 다리 엄청 떨고 있는데여.”

“뭔 소리야. 나 하나도 긴장 안 했거든?”

……라고 말하는 것치고는 짝다리를 짚은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는데 못마땅한지 리혁이가 째려본다.

비주가 리혁이의 긴장을 풀어 주는 동안 몸을 풀던 중현이가 물었다.

“리혁아,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을래?”

“어? 있어요?”

“아니. 그냥 물어본 건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래퍼의 말에 메인보컬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계속해서 멤버들의 허리춤에 마이크팩이 잘 달려 있는지, 인이어 상태는 괜찮은지 점검을 하던 비주가 말했다.

“썸씽 때보다 더 떨리는 거 같아요. 그때는 떨리기도 하면서 설레었는데 지금은 좀… 무섭기도 하고.”

“그때는 이미 뜨고 나간 거였잖아.”

내가 웃었다.

“썸씽이 이미 차트 1위를 했으니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잖아. 지금은 아직 뮤비만 공개하기도 했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니 당연히 무섭지.”

“형은 안 떨려요?”

“어젯밤에 내가 좋은 꿈을 꿨거든.”

사실 나도 떨린다.

노래가 잘 뽑혔다고 회사 사람들이 말해 줘서 안심은 하고 있는데 솔직히 기자들 평가는 모르는 거 아닌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는 상황이었다.

안 떨릴 수가 없지.

하지만 나까지 떨고 있으면 얘네가 얼마나 불안해하겠어.

연말 평가 이후로 애들이 이렇게 입술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터라, 나는 어제 우리 김덕순 여사가 말해 준 꿈을 내 걸로 둔갑시켰다.

“꿈에서 내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거든. 그런데 해랑 달이 막 동시에 떠 있었는데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야. 그 밑으로 산이 있는데, 용들이 막 사과 농장 근처를 빙빙 돌더라. 이거 완전 길몽이라니까.”

다른 애들이 오오하면서 좋아하는 가운데, 중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거 태몽 같은데요. 형.”

“…….”

막내 라인이 웃음을 터뜨린 가운데, 비주가 환장하겠다는 얼굴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김중현.”

“우리 할아버지가 사과랑 용 나오면 아들 꿈이라 그랬는데.”

동갑내기 친구를 붙들고 메인댄서가 잔소리를 하는 동안 지호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형, 미신 안 믿는다면서여.”

“필요할 땐 믿어 줘야지, 지호야. 원래 인생이란 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줘야 편해지는 거야.”

“우와,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했는데.”

뭔가 미묘한 기분을 느끼는 가운데 현장 스탭이 우릴 불렀다.

“뉴블랙 팀, 올라갈 준비하실게요.”

“네!”

농담으로 풀어진 분위기도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를 바라보는 멤버들.

미약한 숨소리들을 들으며 하나씩 눈을 마주쳤다. 그러곤 씩 웃으며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극성맞은 리더 따라 주느라 다들 고생 많았고.”

“고생 엄청 했죠, 사람 걱정시키고.”

리혁이가 손을 얹으며 한 말에 내가 웃었다.

“그래. 이번 무대 정말 잘될 테니까 나만 믿고 가 보자.”

“맞아요. 우리 노래 좋으니까 잘될 거예요.”

중현이의 잘될 거라는 말에 막내 라인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려고 하자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 오늘 무대 잘해서 중현이 징크스도 좀 깨 보자. 솔직히 이런 거 너무 말도 안 된다잖아.”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동안, 스태프가 올라가라는 듯 수신호를 보냈다.

“자, 마지막으로 화이팅 한번 하고 가자.”

다 같이 손을 얹어 작게 화이팅을 외친 후.

우리는 무대로 올라갔다.

*   *   *

모든 조명이 암전된 무대.

노트북 불빛에 비춰진 기자들의 얼굴이 달걀귀신처럼 둥둥 떠 있는 객석 앞 무대에 올라 대형을 갖추고 섰다.

가운데 나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비주와 리혁이.

날개에는 중현이와 지호가 서 있다.

나는 양옆에서 숨을 몰아쉬는 두 동생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조명이 탁! 켜지며 환하게 밝아졌다.

눈부신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를 변주한 MR이 나왔다.

강렬하고 빠른 비트.

본무대 이전에 보여 줄 30초짜리 댄스 브레이크였다.

다 같이 한데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쳤다가 흩어지는 군무가 몇 번 정도 이어지고.

무대 곳곳에 있던 우리는 다시 모였다.

숨소리가 헐떡이고.

처음처럼 밀착한 상태에서 노래의 인트로를 기다릴 때였다.

이제 청량한 딥하우스풍의 전주가 흘러나올…….

‘어?’

뭔가 이상하다.

-치직.

살을 맞댄 리혁이와 비주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음원이 왜 이러지?’

처음에는 치직거리는 소리가 섞였나 했지만 이내 음향 상태가 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전주가 느려진다.

0.4배속 정도로.

그렇게 슬로모션으로 돌아가는 노래에 우리는 안무를 시작할 타이밍을 반쯤 놓친 채였다.

다급한 마음에 무대 아래를 보니 이미 난리가 났다.

음향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 당황한 얼굴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어쩌지?

심장이 펌프질을 하면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뭐야.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명색이 리더지, 나 역시 음악 방송 경험이 불과 한 달밖에 없는 초짜였다.

Something으로 행사를 뛰긴 했지만, 여태까지 이런 류의 음향 사고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프로 가수인 장소원 선배가 늘 곁에 있어서 걱정이 없기도 했고.

어떡해야 하지?

음향 사고가 벌어지고 2초 동안, 다른 네 명의 눈동자가 모조리 내 쪽으로 향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늘 그러하듯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쳐다보는 것이다.

문제는 나 역시 당황해 버렸다는 데 있었다.

어…….

목 뒤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차분히 생각하면 금방 답을 낼 수 있는 문제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차분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무대 동선이라든가, 표정 등 다른 부분에 관해서만 몰두했지,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백짓장 같았다.

컴퓨터로 작업 관리자를 켰는데 선우주의 뇌에 응답 없음이 계속 뜨는 듯한 기분.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

기묘한 감각과 함께 익숙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 병원에서 있었을 때처럼.

눈앞의 풍경이 바뀐 것이다.

*   *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챌 틈도 없이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멀리서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들.

과거의 나는 허름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금세 생각이 났다.

비트윈이 뮤직카페에 나오고 나서 불려왔던 강원도의 어느 축제 현장이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까 신기하네.”

눈앞에서 장소원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수플레를 먹고 있다.

“뭐가요, 선배님?”

“아니. 썸씽 활동하는 동안에는 희한하게 음향 사고가 한 번도 없었잖아.”

“없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전혀 아냐. 보통 한 번쯤은 나는 게 낫거든. 이게 징크스 같은 건데, 사소한 사고가 없으면 꼭 큰 사고가 터지더라고.”

미신 같은 걸 안 믿는 과거의 내가 웃자, 장소원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내 말 안 믿지?”

“아뇨. 믿어요.”

최용재 교수 때와 달리 대체 내가 왜 이런 기억을 체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과거의 내가 화제를 돌린다.

“선배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만약에 음향 사고 같은 게 터지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저희도 미리 말씀을 들어야 나중에 비상 상황에서 대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장소원이 입을 열자, 과거의 나는 물론이고 현재의 나 역시 정신을 집중하고 선배의 조언을 경청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향 사고가 나면 간단해. 무대가 무너질 정도로 대형 사고가 아닌 이상 무조건 멈춰선 안 돼.”

“왜요?”

과거의 리혁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음향이 복구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게 맞지 않아요? 그게 가장 베스트일 거 같은데.”

“너희 입장에서만 베스트겠지.”

가요계 선배가 말했다.

“무대 흐름이라는 거, 그거 전혀 무시할 게 아냐. 관객들이 한껏 흥으로 달아올랐는데 식잖아? 다시 그만큼 달구려면 엄청 오래 걸려. 단독 콘서트면 모를까. 보통 행사장에서 주어진 시간으로는 메우지도 못하지.”

“그럼 무반주로 하라는 건가요?”

“실력이 안 되면 모르겠지만, 된다면 무반주라도 해야지.”

“서로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상할 것 같은데.”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장소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우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한번 겪어 보면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지난 시간은 1초.

왜 갑자기 내 앞에 이런 이상한 현상이 생겼는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직전.

멤버들이 나를 쳐다보는 가운데,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무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방금 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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