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8)화 (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8화

숨이 막힐 듯한 어색한 공기.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상대편이 주춤주춤 자리를 비켜 줬다.

“안녕하세요.”

구석에 있던 한조가 인사를 속삭였다.

리더끼리 눈인사를 나누는 한편, 두 메인보컬은 자기들끼리 고개를 꾸벅하더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저건 인사를 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한 명은 동굴이라도 팔 것처럼 구석으로 파고들고 있고, 한 명은 타조처럼 뻣뻣한 자세로 올라가는 숫자만 보고 있었다.

헛웃음만 짓고 있을 때.

호탕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커다란 상자를 든 로드 매니저 때문에 가려졌던 스트릿 보이즈의 박 실장이었다.

그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만나니까 또 반갑네. 뉴블랙은 로드분 혼자만 오셨나 봐요?”

“예, 실장님이 바쁘셔서.”

“하긴 한창 바쁠 때죠. 요즘 뉴블랙 잘나가잖아요. 노래도 잘나가고 방송도 여기저기 나오고.”

우리 음방에만 나오는 거 다 알면서.

살살 긁어대는 말투성이지만 말투가 서글서글하고 친근해서 흠잡을 데가 없다.

괜히 정색하면 이쪽만 이상한 사람이 될 정도로.

“나도 요새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 애들이 요번에 K-Net 리얼리티 또 들어가잖아.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제작진이랑 밥도 먹어야 되지, 작가들이랑 미팅도 해야 되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는 거 같다니까. 어휴.”

“예, 고생이시네요.”

공손하게 대꾸하는 민기 형의 모습에 박 실장이 흠 하며 콧잔등을 긁었다.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열폭인가.

누가 봐도 뉴블랙의 성적이 월등히 좋은 상황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실장은 뭔가 ‘그래도 우리가 이건 더 잘나가지!’ 하는 걸 나름대로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띵-

12층.

라디오 센터에서 문이 열리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겼다.

마중을 나온 서브 작가님을 따라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뒤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짐이 무거운지 저쪽 로드 매니저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한조가 도와주겠다는 듯 다가갔지만 박 실장의 뒷모습을 흘깃거리던 로드 매니저가 눈짓을 하며 고개를 젓는다.

이럴 때 보면 회사 분위기가 우리와 다른 것 같다.

레몬은 아무래도 배우 기획사로 출발해서 그런지 가수나 매니저들에 대한 제약이 적은 편이지만, DNS 같은 경우는 시작부터 아이돌 회사라 그런지 아랫사람들을 꽉 쥐어짜는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 회사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때.

그 시선을 오해했는지 박 실장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스트릿 보이즈 팬들이 보내 준 서포트예요.”

“네?”

“저 상자 말이에요.”

“아… 네.”

“우리 애들이 라디오 나간다니까 팬들이 난리가 났더라고. 회사에선 됐다고 하는데도 워낙 극성이어서, 이번에도 스탭분들 드시라고 과자랑 음료 엄청 보냈다니까. 벌써부터 팬이 얼마나 많이 붙었는지….”

명절 날 취준생인 조카를 붙잡고 자기 자식이 취업했다고 자랑하는 큰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뒤에서 부끄러워하는 두 아들까지 덤으로 해서.

“…음?”

그때까지 말이 없던 서브 작가님이 멈칫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한테 주시려고 가져온 건가요?”

“예, 작가님들이랑 피디님 드시라고 팬들이 보낸 겁니다.”

“아, 네에… 조금 많네요.”

어색하게 웃는 서브 작가의 모습에 박 실장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무료로 먹을거리를 가져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만큼 기뻐하거나 그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지.

마침내 스튜디오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왜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라디오 부스가 딸린 스튜디오.

그 벽 한켠에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호텔 마크가 그려진 디저트 상자.

상자마다 귀여운 서체로 [원더풀 나잇 제작진분들께, 뉴블랙의 막내 지호가 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용!]이라고 써 있다.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다.

-제가 선물 보내 놨으니까 기대해여!

그제야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면서 웃음이 나왔다.

“피디님, 게스트분들 오셨어요.”

콘솔기기 테이블에 앉아 있던 피디가 일어나더니 우리를 보고 반색했다.

“아, 어서들 와요. 그렇지 않아도 보내 준 케이크 잘 먹었다고 인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개당 몇 만 원이 넘어 보이는 고급스러운 디저트 용기들을 보고 있던 박 실장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

이번에는 실컷 자식 자랑을 했는데, 취준생이던 조카가 알고 보니 고시를 붙고 임용을 기다린더라, 하는 사실을 알게 된 표정이라고 할까.

인사를 나누던 피디가 스트릿 보이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뭡니까?”

“아, 이게…….”

말을 얼버무리는 이를 보며 나는 웃음을 참았다.

*   *   *

희비가 교차한 얼굴로 매니저들이 스튜디오를 나가는 동안 우리는 라디오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머, 다들 반가워.”

장소원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DJ를 중심으로 U자 형으로 나뉜 테이블에서 왼편에는 나와 리혁이가, 맞은편에는 한조와 기원이 앉았다.

긴장한 낯빛들을 마주한 그녀가 웃으며 말을 걸어줬다.

“두 그룹 다 라디오는 처음이지?”

“네.”

“많이 떨리겠지만 열심히 해 줘. 모자르는 부분은 내가 메워 줄 테니까 조금 부끄럽더라도 자신감 있게 멘트 팍팍! 알았지?”

“네, 선배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장소원은 우리를 향해 싱긋 눈웃음을 보이더니 대본으로 눈을 돌렸다.

의미는 명확했다.

사적인 친분만으로 방송 분량을 챙겨 줄 수 없기에 알아서 잘하라는 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밥그릇은 우리가 챙겨야지.

숙소에서 응원하고 있을 동생들을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방음유리 너머에서는 제작진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도 있고, 구석에는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 내 앞에는 기다란 마이크와 모니터가 있다.

마이크 높이를 조정하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번주 게스트도 아이돌인가요???

-다들 잘생겼어용

-스트릿 보이즈 응원한다!!!!

보이는 라디오 화면과 채팅창이 시끌시끌하다. 그 옆에는 메모장 어플이 떠 있는데 무슨 용도인지 잘 모르겠다.

이따 알게 되겠지.

그러는 동안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우리 애에게 시선을 옮겼다.

또 긴장했구만.

심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기다랗고 새까만 속눈썹이 초당 2번씩 깜빡거리고, 테이블 밑으론 한쪽 다리를 달달 떨고 있다.

다행히 특유의 서늘한 무표정 때문인지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긴장했다는 티는 별로 나지 않았다.

“떨려?”

“누구요? 나?”

“그래. 너.”

“하나도 안 떨리는데. 신경 쓰지 마요. 내가 뮤직카페 때나 좀 떨었던 거지, 오늘 생방송은 알아서 잘할 수 있어요.”

“야. 나도 떨리는데 네가 어떻게 안 떨리냐.”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웃어 보였다.

“마음 편하게 먹어.”

“네?”

“어떻게 사람이 매번 잘하냐. 못할 수도 있는 거지. 너무 잘하려고 마음먹지 말고. 편하게 마음 먹자. 너랑 나랑 오늘 청취자분들이랑 재미있게 수다 떨고 가겠다, 그런 마인드로 하자고.”

“…좋아요.”

파이팅하자는 듯 주먹을 내밀었다.

내 주먹을 빤히 바라보던 리혁이가 이내 알았다는 듯 덥석 잡더니 악수처럼 흔들었다.

아니.

부딪치는 거야, 리혁아.

어쩐지 아까 중현이랑 내가 하는 걸 유심히 바라보더니.

스킨십 단기 교육 과정 그런 거 있으면 좋겠다. 있으면 얘 좀 보내고 싶은데.

그나저나, 저쪽은 난리 났구만.

여기가 맑음이면 저긴 우중충한 흐림이다.

기원은 누가 봐도 심하게 긴장한 모습으로 침만 삼키고 있었다.

5초마다 한 번씩 자그마한 손이 생수뚜껑을 열고 벌컥 들이키는데, 방송 시작 전부터 물이 반밖에 안 남아 있었다.

거기다 막내를 위해 헤드폰 길이를 줄여 주고 있는 한조도 만만찮게 긴장한 모습이고.

처음에는 아, 쟤네도 첫 생방송이라서 그런가 싶었는데 이내 왜 저러는지 이유를 눈치챘다.

장소원 선배 때문이구만.

스트릿 보이즈의 데뷔곡 Hunger에는 우리 노래 Something을 향한 디스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장소원은 그 노래의 원작자였다.

물론 디스랩에 대해서 그녀가 아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쌩신인인 쟤네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속이 바짝 탈 수밖에 없을걸.

조용히 대본을 살피는 DJ를 흘깃거리는 둘의 모습에 헛웃음만 나온다.

차라리 뻔뻔하게 나오지.

쇼케이스 Q&A 때 답변했던 것처럼 ‘디스 아님. 니들이 오해야’라는 태도로 일관하면 차라리 나을 텐데.

저 정도로 눈치를 볼 거면 왜 저랬는지 모르겠다.

뭐.

상식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한두 개가 아니기에 나는 신경을 끄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내 소관도 아니고.

우리 애들 챙기는 것도 정신이 없어 죽겠는데 남의 그룹 사정까지 관심을 두고 싶진 않았으니까.

지금 내 관심사는 딱 두 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이번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그리고 4부에 있을 라이브 무대에서 ‘밤바다’를 얼마나 잘 살려낼 수 있을지.

그 외에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광고 거의 끝나 갑니다. 준비해 주세요.

토크백 버튼을 누른 피디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리자, DJ를 따라 게스트들이 헤드폰을 썼다.

푹신한 느낌.

낡고 포근한 촉감을 즐기는 동안 걸스온탑이 부른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늘 밤도 영원히, 장소원의 Wonderful Night.

마침내 생방송이 시작됐다.

*   *   *

석환 형이 예전에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예능이란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그만큼 방송 분량 1분 1초를 따내기 위해서 멘트를 던지고, 끼어들고 어떻게든 이목을 끌어 보려고 별짓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연출되는 장면의 장르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그룹 너무 훈훈하네요. 이렇게나 죽이 잘 맞는데, 그동안 음악 방송에서는 얘기할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겠어요.”

두 리더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요. 뉴블랙분들이랑 늘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 흥미로운 연극이 연출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방송 나가면 분량 따내기 위해서 온갖 짓을 해야 되는 건 맞아.

석환 형의 교육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녹화 방송이야.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다 편집돼서 나가는 거지. 그런데 너희가 나갈 라디오는 생방송인 거 알지? 괜히 분량 챙기겠다고 나섰다가 비호감으로 낙인찍히면 그게 더 손해야.

그러니 최대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라는 것이 매니저의 조언이었다.

어차피 우리 같은 신인들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분량을 가로채는 스킬도 없고, 그걸 실행할 만큼 단수도 높지 않으니까.

저쪽도 비슷한 교육을 받았는지 분위기는 연신 화기애애했다.

뭐.

인정하기는 싫지만 실제로도 궁합이 나쁘지 않기도 했고.

“게스트분들의 포지션도 겹치네요. 우주 씨와 한조 씨는 그룹의 리더, 기원 씨와 리혁 씨는 메인보컬이죠?”

“네, 맞아요.”

“재미있는 조합이네요. 신기한 게 두 리더는 느낌이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메인보컬끼리 인상이 확 다른 것 같아요.”

모니터 화면의 메모장에 글씨가 입력됐다.

PD님이 청취자 반응 중에서 재미있다 싶은 것들을 입력해 주는 것이었다.

“정다은 님이 ‘온도차가 봄이랑 겨울 같아요ㅋㅋ’라고 하시네요. 정말 그러네요. 기원 씨는 보면 병아리 같은 귀엽고 따스한? 그런 느낌인데 리혁 씨는 얼음공주 느낌이거든요.”

“저 왕자 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리혁 씨는 공주가 더 어울려요.”

장난스러운 멘트에 리혁이가 작게 웃었다.

“기원 씨는 어때요? 청취자분이 봄처럼 따스한 인상이라고 하시네요.”

“…아, 네. 저도 봄 좋아해요.”

긴장했는지 엉뚱한 대답을 내어 놓는 기원을 보며 DJ가 웃어 보인다.

“이런 면에서도 온도차가 보이네요. 한조 씨는 기원 씨를 엄청 챙겨 주시는데, 리혁 씨는 굉장히 독립적인 분위기잖아요.”

“아니에요. 제가 엄청 챙겨요.”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끼어들었다.

“리혁 씨가 겉으로는 굉장히 독립적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면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친구예요. 제가 맏형으로서 늘 챙겨 주고 있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전 늘 혼자서도 잘했어요.”

“이젠 거짓말까지 하시네요.”

우리 둘이 농담으로 투닥투닥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방송의 관심도 뉴블랙 쪽으로 돌아왔다.

DJ가 판단하기에도 멘트를 던져도 계속 놓쳐 버리는 저쪽보다는 우리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 뉴블랙이 방송의 중심이 되도록 만든 것은 나도, 리혁이도, 장소원도 아닌 제3의 인물이었다.

“어? 방금 재미있는 코멘트 하나가 올라왔네요. 리혁이는 피라루쿠님, 아이디 보니까 뉴블랙 팬분이신가 봐요.”

네. 저희 막내입니다만.

이 녀석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불안불안해할 때 장소원 선배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명 좀 줄여 주세요!! 리혁 씨 얼굴이 사라져써용!’이라고 하시네요.”

“예? 제 얼굴이요?”

모니터를 확인한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피디님이 조명 밝기를 올렸는지 리혁이의 얼굴만 달걀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피부가 너무 하얘서 생긴 일이었다.

화면에 나오는 모습은 미소년 스케치에 얼굴만 안 그린 상태 같다.

-얼굴이 사라졌어ㅋㅋㅋㅋ

-혼자 반사판 댄 줄 알았네ㅋㅋㅋ

-급 달걀귀신ㅋㅋㅋㅋ

귀엽다는 듯 채팅창에 ‘ㅋㅋㅋ’가 가득해지는 가운데, 리혁이는 부끄러운 듯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디님이 다시 밝기를 줄였을 때.

-헐 토마토 같아요.

누군가 남긴 댓글처럼, 화면 속에 아주 잘 익은 홍시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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