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화 (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2화

까칠하기는.

내가 얼마나 잘해 주는데 면박이나 주고.

괘씸한 동생을 한 번 흘겨보다가 자세를 고쳤다.

이제 라이브 무대가 있을 차례였다.

보이는 라디오로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 되고 있었기에 나는 낯빛을 차분하게 정돈했다.

다 잘해 놓고 마지막에 태도 논란이 나오면 곤란하잖아.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저 듀오가 어떤 노래를 선보일지.

광고가 끝나자 두 아이돌 가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은 한조였다.

잘하네.

리듬이 빠른, 귀에 쏙쏙 들어오는 랩이었다.

언더에서 크루 활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런 가락이 느껴졌다.

잘한다.

영어 가사인데도 귀에 잘 들어오고.

스트릿 보이즈가 고른 노래 ‘Silence’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제로 삼고 있는 감성적인 힙합 곡이다.

예전에 작곡 공부를 하면서 들은 노래였는데, 빠르게 속삭이는 랩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후렴구에서 보컬이 치고 나오는 노래였다.

랩도 중요하지만, 후렴구에서 감정을 터뜨려야 하기에 보컬이 진짜 중요한 노래.

한조가 랩을 끝내고 기원이 마이크에다 입을 가까이 댔다.

오…….

이윽고 작은 체구에서 쩌렁쩌렁한 성량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깜짝 놀랐다.

지금껏 같이 방송했던 그 소심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 보여서.

감미로운 목소리에 댓글창이 사뭇 뜨거워졌다.

턱을 괴고 노래를 감상하던 장소원 선배도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려뜨렸다.

의외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와 리혁이도 노래를 들으며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식이 아닌, 좋은 무대에 보내는 진심 어린 존중이었다.

3분 가까이 이어진 노래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우리와 DJ가 손뼉을 쳐 주는 동안.

허리를 90도로 숙여 가며 인사하던 스트릿 보이즈는 인사를 마치고 라디오 부스를 떠났다.

문이 닫히기 전에 기원이 리혁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게 보였다.

리혁이도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곤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뭔가 생각이 복잡한지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에게 검지를 들어 보였다.

“……?”

고개를 갸웃하는 리혁이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생수 한 박스.’

눈썹을 와락 일그러뜨리는 리혁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   *

이어진 뉴블랙의 인터뷰는 몹시 순조로웠다.

아무래도 Something의 원조 멤버들만 남아 분위기가 편안하기도 했고, 장소원 선배와는 같은 작곡가로서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야기 하나가 나오면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그게 끝없이 계속돼서 피디님이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낼 정도였다.

DJ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에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요. 아쉽죠, 여러분? 시간만 되면 더 이야기를 나누는 건데.”

DJ가 제일 아쉬워하고 있는 거 같다, 하는 댓글들이 올라오자 소원 선배가 민망하게 웃었다.

“제가 또 사심 가득한 방송을 했나 보네요. 아무래도 아끼는 후배들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주 씨가 굉장히 이야깃거리가 많은 친구거든요. 스토리가 진짜 풍부해서.”

군필 아이돌이라든가, 수능 날 의인이라든가.

한 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가 꽤 많긴 하다.

다만 오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작곡에 관한 것이었기에 선배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한 터였다.

“아쉽지만 보내 줘야겠죠? 자, 그럼 청취자 분들에게 부를 노래를 소개해 주겠어요? 자작곡이라고 들었거든요. 그것도 여기 원더풀 나잇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자작곡, 그것도 최초 공개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채팅창이 술렁인다.

그런 반응을 보며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다.

“너무 기대하시면 곤란해요. 아무래도 미흡한 부분도 있고.”

“속으면 안 돼요, 여러분.”

DJ가 운을 띄웠다.

“제가 아까 우주 군이 준비해 온 악보를 아주 살짝 봤거든요? 오늘 듣게 될 자작곡 기대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 선배님.”

“그럼 소개 부탁드릴게요.”

장난스럽게 웃는 이에게 나도 웃으며 대꾸했다.

“네, 저희가 들려 드릴 노래 제목은 밤바다입니다.”

“밤바다, 왜 그런 제목이 붙었나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랐거든요. 군산에서 살았는데 그때 당시 집이 바다와 굉장히 가까운 편이었어요. 밤에 마당에 나와 앉아 있으면 짭조름한 소금 냄새도 나고,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리고 그랬거든요.”

웃으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어째 나머지 둘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왜 저러지.

뭔가 기분이 묘한걸.

“아무튼 제가 바람 쐬고 그러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막 그런 게 있어요. 선선한 바람이 몸을 싹 스쳐 가면 기분도 업 되고 모든 일이 잘될 거 같고 그런 느낌 말이에요.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되게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이면 할머니한테 거실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고 막 졸랐어요.”

내 칭얼거림에 우리 김덕순 여사는 야밤에 뭔 문을 여냐고 구시렁거리곤 했지.

당연히 열어 주었지만.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그렇게 문을 열고 할머니 무르팍에 누웠어요. 그러면 밤하늘이 엄청 예쁘게 보이거든요. 달도 훤하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하고. 그 상태로 눈을 감으면 귓가에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 품은 따뜻하고. 그게 너무 좋았어요.”

“…….”

“혹시 제가 너무 과하게 설명하고 있는 건가요? 두 분 표정이…….”

“아뇨.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요.”

몹시 신경 쓰이는 걸.

아니, 추억 얘기하고 있는데 무슨 소년 가장 바라보듯 보냐고.

“네, 어쨌거나 그런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만든 노래입니다. 즐겁게 감상을 해 주셨음 좋겠어요.”

“그거 말해야죠.”

리혁이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할머니, 듣고 계신다면서요.”

“오, 우주 군의 할머님이 지금 듣고 계신 건가요?”

“……네, 지금쯤 안방에서 라디오로 듣고 계실 거예요.”

사실,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만 신인 주제에 방송을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몸을 사리던 터였다.

“그럼 광고 듣기 전에 할머니에게 한마디 남겨 보실까요?”

“음…….”

어색해서 몸을 배배 꼬는 내 모습에 유리창 너머에 있는 제작진 분들이 미소를 짓는다.

“어, 우리 김덕순 여사. 엄청 애정하고요. 제가 만든 노래니까, 잘 들어 주시고… 그리고 어… 전국에 있는 모든 할머님들 화이팅입니다. 손자, 손녀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결국 아무 말 대잔치가 나와 버렸다.

채팅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ㅋㅋㅋㅋ’에 부끄러워하는 한편, 장소원 선배는 입가를 파르르 떨며 웃음을 참았다.

“네, 그럼 광고 듣고. 뉴블랙의 밤바다로 찾아뵙겠습니다!”

하…….

오늘 이미지 완전 망했다. 망했어.

군대 드립 때부터 표정 관리에 실패하더니, 방금은 무슨 전국 할머니 연합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처참한 기분을 느끼며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왔다.

“진짜, 둘 다 그만 웃어요.”

“웃는 거 아냐. 누나가 원래 좀 웃상이라서 그래.”

“선배님.”

내 부름에 장소원이 씩 웃으며 시선을 거둔다.

이제 둘이 무대에 집중하라는 듯 자기는 대본을 바라보면서.

“너도 그만 웃고. 이 생수 도둑아.”

“아, 사 줄 테니까 그만 좀 얘기해요. 말만 리더지 배포가 좁쌀 같다니까. 자꾸 그러면 나도 좁쌀이라고 부를 거예요.”

생수 도둑과 좁쌀을 두고 저울질하던 나는 여기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손해였다.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푸는 한편.

기타가 잘 조율됐는지를 확인한 뒤에 시범 삼아 살짝 쳐 보았다.

오케이. 체크 완료.

악기도, 연주자도 준비 됐으니 남은 건 파트너였다.

“준비됐어?”

걱정을 담아 상대를 바라보았다.

누가 자기 보고 걱정하는 티를 내는 걸 싫어하는 애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준비 기간도 짧았고.

개인적인 경험의 부재 때문에 리혁이가 감정을 잡느라 고생했으니까.

괜히 작곡에 대한 내 욕심 때문에 애를 고생시키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가슴 한편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였다.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요. 감정 잡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래.”

“이제 와서 걱정하면 뭐해요. 무대 바로 앞에 남겨 두고.”

평소처럼 삐딱하게 말하던 녀석의 눈이 다른 곳을 흘깃거린다.

아까 스트릿 보이즈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그걸 바라보던 녀석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뭐…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어떤 느낌인지는 어느 정도 알 거 같으니까. 그러니…….”

그러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 한번 믿어 봐요. 잘할 테니까.”

누군가를 따라 하듯 주먹을 내미는 리혁이에게, 나 역시 손바닥을 뻗어 그걸 보자기처럼 감싸 쥐었다.

왠지 모르게 예감이 좋았다.

*   *   *

부스 바깥.

안에서 펼쳐지는 만담을 지켜보던 피디와 엔지니어, 두 작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뉴블랙 멤버들이 너무 귀엽다는 듯 서브 작가가 환하게 웃었다.

“애들도 예쁘고, 분위기도 진짜 화기애애하다. 그죠?”

“그러게 말이다.”

메인 작가가 아쉽다는 듯 툭 던졌다.

“저렇게 셋이 합이 좋을 줄 알았으면 단독으로 부를걸. 그렇잖아도 소원이가 단독으로 부르자고 노래를 불러 댔잖아. 애들도 착하고, 자기가 이것저것 뽑아낼 자신 있다고.”

“뭐. 이미 섭외한 걸 어떡해요.”

피디가 쓴웃음을 지었다.

뉴블랙 앨범이 나왔을 때부터 얘네 좀 부르자고, 맨날 얘기했던 장소원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뉴블랙을 섭외하려고 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DNS 미디어가 윗선을 타고 섭외 요청을 하면서 결국 대결 코너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잖아.”

콘솔기기에서 음향을 조율하던 엔지니어가 툭 뱉듯이 말했다.

“우리 딸내미가 아이돌 팬이어서 잘 아는데, 뉴블랙이랑 스트릿 보이즈랑 데뷔 전부터 싸움 붙고 난리도 아니었대.”

“그래요, 선배?”

“말도 아니었다던데. 홍보 싸움 붙고 시끌시끌했대. 오늘 댓글이 다른 날보다 많은 것도 그렇고, 투표 치열했던 것도 아마 그런 영향이 없잖아 있었을걸?”

“맞아요. 빠르게 삭제하긴 했는데 은근히 날선 댓글들이 있었거든요.”

“어쩐지. 그래서였구나.”

“그래도 아까 그때 이후로는 많이 잠잠해졌던데.”

“언제요?”

메인 작가가 모르냐는 듯 물었다.

“기억 안 나? 스트릿 보이즈 막내 애가 긴장하고 있는데, 리혁이가 물 건네주면서 뭐라고 부드럽게 말해 줬잖아. 그 이후로 잠잠해진 거 같다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그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묘하게 날이 서 있던 댓글들은, 리혁이 기원에게 물병을 건네준 이후로 싹 사라져 있었다.

그때, 부스 안에서 장소원이 신호를 보냈다.

“준비됐나 보네요.”

피디의 말에 엔지니어가 콘솔기기를 조작했다.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 단조로운 피아노음이 흘러나왔다.

서브 작가가 괜히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이거 파일 제대로 된 거 맞겠죠?”

“방송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나 확인했잖아.”

“그렇긴 해도…….”

3분 20초짜리로 구성된 재생 파일에서 초반 40초는 단조로운 피아노음이 반복되는 구간이었다.

그냥 건반만 부드럽게 두드리는 느낌.

‘어떻게 무대를 꾸리려는 거지?’

대강 어떤 식으로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에 걱정이 됐다.

본격적인 음악 방송이라면 모르겠지만.

4부의 라이브 코너 같은 경우는 기획사와 방송국이 ‘이런 노래를 부를 겁니다.’하고 조율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현장에 와서 컨디션 따라 곡을 바꾸는 가수도 있기도 했고.

그랬기에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무대에 대해 걱정이 들었다.

오늘 방송 중에 보았던 뉴블랙의 이런저런 모습에 호감을 느낀 듯, 무의식적으로 손까지 모으는 서브 작가를 보며 엔지니어가 웃었다.

“소영 씨, 벌써 팬 됐어?”

서브작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따 팬카페 정도는 한번 들어가 볼까 생각 중이에요.”

“얘,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얼른 실시간 반응이나 모니터링해.”

“네에…….”

하지만 다른 제작진도 부스 안에서 기타를 쥐고, 목을 가다듬는 이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똑같았다.

선물로 받은 케이크 때문일 수도 있고.

오늘 방송 분량을 낭낭하게 만들어 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괜찮은 애들처럼 느껴져서 기왕이면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지켜볼 때.

“오.”

선우주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잔잔한 기타 연주였다.

단조로운 피아노음만 있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기타 소리와 맞물리니 잘 어울렸다.

피아노와 기타.

단 두 개의 소리인데도 풍부하게 느껴진다.

제법 괜찮은 연주에 의외라는 듯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들은 이윽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밍을 진짜로 하는구나.”

서리혁이 눈을 감은 채로 허밍을 하고 있었다.

부드럽고 낮게 깔린, 허밍이었다.

음이 조금씩 높아지는 그 허밍을 듣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희한한 일이었다.

노래 앞부분을 허밍으로 채우고 있는데도 전혀 어색하다거나 부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았으니까.

“이야, 요즘 가수 데뷔하려는 애들 다 아이돌로 빼낸다더만. 저러니까 요새…….”

잡담을 하려던 엔지니어는 다른 이들의 집중한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부스 안을 바라보던 그도 얼마 안 가 그 행렬에 동참했다.

자꾸만 시선이 갔다.

노래도 노래였지만 부스 안에서 부드럽게 소리를 내고 있는 서리혁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냉랭한 무표정도 아니고, 얼굴이 벌게졌을 때 나오는 당황한 표정도 아니고.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사람 같다고 할까.

노래에 대한 감정을 이입하듯 입가에는 보기 좋은 미소를 띠면서.

모니터를 둘러보던 서브 작가가 말했다.

“청취자들 반응이 꽤 좋아요.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고요.”

“시선이 확 끌리긴 하네. 그래서 넣은 건가?”

누군가 궁금증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물론, 선우주가 그런 질문을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일부러 넣은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들어갔다는.

감정을 잡기 어렵다고 말한, 그런 서리혁을 위해 선우주가 제시한 방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정 어려우면 부르기 전에 30초 정도 허밍으로 워밍업을 하자는 의도였는데, 막상 하면 할수록 그것이 자연스럽게 노래와 어울렸다.

그리고.

가장 크게는, 노래를 만들고 보니 2분 40초라 방송 나갔을 때 그것만 하면 허하다는 싱거운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이들에게는 신비하게 다가올 뿐이었지만.

“이제 노래 시작하나 본데?”

허밍이 끝난 서리혁이 눈을 뜬다.

그러곤 준비가 되었다는 듯 선우주에게 미소를 보냈다.

선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움직였다.

“오…….”

본격적으로 시작된 ‘밤바다’의 전주.

그 제목에 어울리게 따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노래였다.

*   *   *

한편 그 시각.

목동 HBS 방송국 스튜디오의 인원들이 감탄하고 있는 동안, ‘밤바다’를 담은 전파가 멀리 퍼져 나갔다.

가장 가깝게는 근처 아파트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어느 학생의 MP3 플레이어로.

다음에는 안양천 너머의 어느 슈퍼의 낡은 라디오로.

막 강남역에 도착한 어느 2호선 지하철 내부로.

더 멀어져서는 서울 외곽 순환도로를 벗어나고 있는 낡은 트럭까지.

‘밤바다’의 잔잔한 멜로디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종착지 중 하나는, 낡은 라디오를 틀어 놓은 채 손자가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누군가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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