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화 (6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67화

분명히 중국 팬미팅이니 뭐니 해서 바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영상 통화다.

애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본다.

“받을 거예요, 형?”

“받아야지.”

바쁘냐고 물어 놓고서 안 받는 것도 웃기잖아.

통화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확 밝아졌다.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수영장이 보인다.

파라솔과 테이블이 있고, 선베드가 있는 고급진 풍경.

가운을 입은 미남이 그 안에서 씩 웃고 있다.

이윽고 들리는 유쾌한 목소리.

-헤이, 군필.

젠장.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오늘 낮 스케줄이 비었거든. 외출도 귀찮고 해서, 쉬면서 인터넷만 하고 노는데 형 얼굴 계속 나오더라.

“……봤어?”

-봤지. 내가 애들한테도 쫙 돌렸어.

망할.

그때, 배경음 사이로 ‘야, 한태현 누구냐?’, ‘누구? 여자임?’, ‘여자야?’ 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우주 형이야, 인사해.

화면을 돌리자, 수영장 안에 있는 3명이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뭐야, 우주 형이구만. 형 오랜만!

-어우. 몇 달 사이에 왜 이렇게 늙었대?

-형, 관리 좀 해!

농담과 함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핸드폰에서, 그리고 내 옆에서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

내 표정을 보며 한태현이 웃는다.

-신경 쓰지 마. 쟤넨 입만 열면 개드립이라니까.

생과일주스를 쭉 들이켜던 상대가 우아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래서, 나랑 놀아 줄라고 전화한 거야?

“전화는 네가 하지 않았냐.”

-아, 맞네. 요새 잠을 못 잤더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봐.

어깨를 으쓱이던 상대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을 게슴츠레 떴다.

-심심해서 연락한 줄 알았더니. 어째 부탁할 게 있는 듯한 분위긴데.

“맞아.”

-뭔데?

“잠깐만. 일단 우리 애들이랑 인사부터 할래?”

이번에는 나만 비추고 있던 카메라 렌즈를 멤버들에게 돌렸다.

엇, 하던 애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휴, 왜 인사를 하세요. 부담스럽게.

그러더니 자기도 선베드에서 일어나서 똑같이 꾸벅 인사를 해 온다.

양쪽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편해지는 분위기.

확실히, 팬사인회 팁을 물어보려고 얘한테 연락했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인기 아이돌답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잘 안다고 할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흐음, 팬사인회 꿀팁이란 말이지.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나중에 연락할까?”

-됐어.

손을 젓던 이가 눈을 반짝였다.

-근데 도와주면 뭐 사 줄 거야? 밥?

“밥이야 당연히 사 줄 수 있다만, 넌 돈도 많은 애가 벼룩의 간을 내어먹으려고 그러냐.”

-싫음 말든가.

“그래. 끊자.”

-아아아! 알려 줄게, 알려 준다니까.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도 밥은 사 주는 거지?

“그동안 즐거웠어. 태현아.”

-알려 준다니까, 와 진짜 저 쫌생이.

쫌생이란 단어에 리혁이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메모를 한다.

왜 저런 걸 필기하는 거지.

물론 나도 농담이었을 뿐 조만간 밥을 한 끼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번 SNS 사진 건까지 쳐서 비싼 걸로.

-내가 아무한테나 알려 주는 거 아닌데. 저 형이 한턱낸다니까 알려 주는 거예요. 이거 진짜 꿀팁이거든요.

녀석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첫 팬싸라고 했죠? 딱 세 가지만 명심하세요.

곧바로 이어지는 강의에 애들이 오오 하면서 경청했다.

그만큼 유익한 내용이었다.

‘팬사인회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txt’ 같은 제목이 붙을 만한 핵심 요약집이라고 할까.

확실히 회사에서 들려주는 주의사항보다 훨씬 실전적이었다.

그런 팁을 머릿속에 새길 때였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다 잊어버리고 딱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어떤 거요?”

-좀 하다가 막힌다 싶으면.

싶으면?

-저 형이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내가 연습생 시절부터 봤는데, 대충 저 형 따라 하면 중간은 가더라고.

“어, 맞아요. 진짜로 그래요.”

비주가 손뼉까지 치며 격하게 공감했다.

-그죠? 진짜라니까요.

늘 태클을 걸기 바빴던 우리 프로 불편러도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둘도 맞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죽이 이상한 데서 맞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대체 얘네들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쨌거나 슬슬 사전 녹화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나는 통화를 마쳤다.

“…오늘 정말 고마워, 태현아. 한국 오면 톡해. 뭐. 너랑 나랑 약속 잡을 시간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 형 나중…#%&^!

“왜 그렇게 시끄러워?”

요란한 배경음에 눈썹을 찌푸리자, 잠시 기다려 보라는 듯 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움직이는 슬리퍼가 보이더니.

이윽고 수영장 펜스 너머로 핸드폰을 비춰 준다.

“……뭐야. 저게.”

호텔 지상.

그곳에 모인 수백 명의 팬들이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있다.

녀석이 손을 흔들어 주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환호성이 되돌아왔다.

-이따 밤에 요 근처에서 행사가 하나 있거든.

대수롭지 않듯 말하는 한류 스타의 미소에 우리 모두 얼떨떨한 표정만 지었다.

*   *   *

“예? 딜레이요?”

사전 녹화를 앞두고 방송국 측에서 딜레이 소식을 전해 왔다.

진작 좀 얘기해 주지.

의상까지 갖춰 입고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데요?”

“모르겠어.”

민기 형이 대답했다.

“밖에 비가 내리는 중이라 세트 교체가 늦어지나 봐. 거기다 방금 스트릿 보이즈 사녹에서 사고가 있기도 했고.”

“사고요?”

“무대에서 가수랑 카메라가 부딪혔대.”

“헐, 아무 일 없대여?”

“좀 깨졌다고 들었는데.”

“저런…….”

우리의 상상 속에서 누군가 쓰러진 채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때였다.

민기 형이 말했다.

“카메라가 깨졌대.”

“예?”

“사람은 멀쩡한데, 카메라가 깨졌다나 봐.”

“저런…….”

그쪽 그룹에도 단단한 사람이 하나 있나 보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자 중현이가 머쓱하게 웃으며 코를 문질렀다.

왜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짓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쉽다. 방금 컨디션 최고였는데.”

지호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팬들이랑 만나려고 에너지를 잔뜩 충전하고 있었는데, 김빠진 콜라가 된 기분이다.

“밖에 비 오는데 팬분들은 괜찮을까요?”

비주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투두두두-

세찬 물방울이 창문을 때린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비 때문에 사방에 보이는 모든 게 뿌옇다.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만 비산할 뿐.

창문에 서린 김을 슥슥 문지르는 손바닥이 시렵다.

“오늘 날씨 좋다고 다들 우산 안 챙겨 왔을 텐데. 어디로 피신 가 있긴 하겠지?”

“뭐,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리혁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상암동이니까 근처에 뭐 많잖아요. 햄버거집도 있고, 카페도 있고. 그중 한 군데에는 들어가 있을 거예요.”

“제가 우산이라도 사비로 사서 보내 드릴까여?”

“기특하네, 우리 막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가 헤어 와 메이크업 때문에 어깨만 토닥여 주었다.

물론 생각은 기특했지만 실행할 순 없었다.

당장 우산 사러 누가 가냐고 하면 회사 사람이 가야 하는데, 민기 형한테 절대 얘기 못하지.

-형. 저희가 돈 드릴 테니까 팬분들에게 우산 좀 사다 주실래요?

말도 안 된다.

그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얼른 이 소나기가 그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근데.”

창밖을 바라보던 중현이가 말했다.

“현장에 와 주는 팬분들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나라면 못할 텐데. 이렇게 매일 사전 녹화 보러 와 주는 거.”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할 짓이 아니긴 하지.

매일 시간이 달라지니까.

음악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런 궁금증을 품어 봤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생방송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가수들의 무대가 딜레이 없이 연결되는 걸까?

정말 생방송이라면 가수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시간 동안 딜레이가 있어야 하지 않나?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전 녹화다.

미리 찍어 놓는 거지.

생방송 때는 A가수가 무대에 올라와 1절을 소화한 후에 바로 뒷순서인 B와 교대하면, 그동안 2절은 녹화분으로 TV에 나가는 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사녹이 아무나 못하는 인기의 상징이었는데 요즘은 우후죽순 늘어나는 각종 코너 때문에 신인들도 다 하는 추세였다.

문제는 이런 사녹의 녹화 시간이 매번 달라진다는 거다.

운이 좋을 때면 아침에 후딱 하고 끝내지만, 가끔 잘못 걸리면 꼭두새벽에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기준이 없다.

중현이가 말했다.

“우리한텐 나가야 되는 스케줄이지만 팬들은 아니잖아.”

“맞아여.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을 텐데.”

굳이 이유를 꼽자면 딱 하나밖에 없을 거다.

단지 우리가 좋다는 이유로.

응원해 주겠다는 그 이유 하나로 매번 찾아와 주시는 거겠지.

“나 같아도 저렇게는 못해.”

내가 뭐라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봐주러 오나.

“저도 그래요.”

비주가 공감한다는 듯 대답했다.

“저도 못했을 거예요.”

“나도요.”

“저는 로켓 배송도 못 기다리는데, 이런 건 진짜 못했을걸여.”

멀리 창밖으로 다른 그룹 팬들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한 버섯밭처럼 색색의 우산들.

문득 태현이가 보여 줬던 무수한 팬들의 물결이 떠오른다.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어느 나라든 팬들은 늘 기다리는구나.

팬의 시간이란 어쩌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아.”

갑작스럽게 낸 소리에 동생들이 바라본다.

“왜 그래여, 형?”

“또 이상한 거 떠오른 표정인데. 뭐예요, 이번에는?”

동생들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곤 입술을 뗐다.

“얘들아.”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팬사인회 선물로 뭘 드려야 할지 알 것 같아.”

*   *   *

7월 13일 일요일.

여의도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뉴블랙 1st 싱글앨범 ‘The New Black : First Chapter 팬사인회]

조그마한 상영관의 객석이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앨범을 산 팬 중에서 100명을 뽑아 진행하는 비공개 팬사인회.

분위기는 고요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낱말들을 잠자리채로 낚는다면 초조, 흥분, 긴장, 설렘 같은 단어가 나올 듯한 느낌이다.

늘 멀리서만 보던 내 가수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니.

팬이라면 누구나 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달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팬카페에 접속하거나 친구와 톡을 했고, 누군가는 카메라 세팅을 만지작거렸고, 몇몇은 옆 사람과 말을 트기도 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도 잠시.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뭐 보세요?”

“원더풀 나잇에서 밤바다 라이브 한 거요.”

“어, 저도 아까 들으면서 왔는데, 둘이 음색 진짜 이쁘지 않아요?”

“맞아요. 들을수록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에요.”

“진짜, 우리 애들 노래 너무 잘하는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쇼케 때 무반주로 라이브 한 이후로 팬카페 인원 확 늘었잖아요.”

한 명이 말하면 다른 한 명이 맞장구를 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갈 때, 누군가 한탄하듯 말했다.

“진짜 볼 게 너무 많은 거 같아요. 매주 연습 영상 올라오고, 데뷔 준비 기간에 올라온 리얼리티도 있고, 동영상이 계속 올라오니까 좋기도 한데 많기도 하구.”

“커뮤에서 누가 농담으로 그러던데요. 뉴블랙은 떡밥이 너무 많아서, 다 챙겨 먹으려면 영양제라도 먹어야 된대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소소한 대화가 오갈 때였다.

팬사인회 시작을 앞두고 영화관의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영사기가 돌아가면서 화면에 동영상이 재생됐다.

‘원래 팬싸에서 VCR도 틀어 주나?’

…라는 의문은 곧바로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 때문이었다.

카메라 가까이 눈을 들이대며 뭔가를 살피는 이, 선우주의 클로즈업 된 얼굴에 누군가 허, 하며 숨을 삼켰다.

-됐나?

카메라를 요모조모 살피더니 뒤를 돌아본다.

-된 거 같지?

-그런 거 같은데요.

-우리 나와여? 나옴?

-얘들아, 얼른 이리로 모여 봐.

정겨운 목소리들의 향연에 팬들이 미소를 지었다.

숙소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모인 뉴블랙 멤버들.

비좁은 거실 풍경에 눈살을 찌푸렸던 것도 잠시, 가운데서 석상처럼 앉아 ‘D-5’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든 김중현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중현이 형, 그거 같아여. 마피아 석상.

-마피아?

-모아이 말하는 거예요, 형. 왕지호 넌 진짜 아는 게 뭐냐.

-와, 이 형 진짜 막말…….

-얘들아, 팬분들한테 보내는 메시지 찍고 있잖아. 조용히 해야지. 자, 우주 형, 이제 말하면 될 것 같아요.

동생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우주가 카메라를 쳐다봤다.

멤버들을 볼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지금 좀 많이 당황스러우시죠? 어, 뭐지? 왜 갑자기 얘네가 나오지? 이렇게 말이에요.

우주가 말을 이었다.

-이 영상을 찍는 이유는요. 저희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그냥 드리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어떻게 그걸 만들었는지, 여기까지 와 주신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

-큐 안 하니?

-형, 저희 누가 하기로 했죠?

-그러게.

-왕지호 아니에요? 까먹으면 왕지호 아님 중현이 형인데.

-왜 애꿎은 저를 물고 넘어져여. 이렇게 귀여운…….

-너지?

-네, 저예여…….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동생들을 보며 웃던 선우주가 카메라를 들고는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형! 어디 가여?

-팬분들이랑 비밀 얘기하러 간다. 인마.

그렇게 말하던 이가 카메라를 향해 싱긋 웃는다.

-동생들의 못난 모습은 잊어 주시구요. 이제부터 그럼 저와 함께 메이킹 필름 속으로 떠나 보실까요? 짠~

3초 동안 포즈를 취하던 이.

이윽고 굉장히 민망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내려다보면서 ‘녹화된 건가? 된 거겠지?’하는 중얼거림으로 영상이 시작됐다.

첫 장면은 마찬가지로 숙소 안이었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

각자 좋아하는 동물을 캐리커쳐처럼 어설프게 만들어 내더니, 그걸 한 그림에 옮겨 모으기 시작한다.

숲에 모인 동물들의 모습.

그 아래로 아기자기한 글씨로 ‘The New Black’이라고 적는다.

각자 2글자씩 쓰는데 마지막 K를 누가 쓰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K니까 김씨가 해야 하지 않을까?

-옳소.

-아니져. K니까 King인 왕씨가 해야져.

-뭐, 이런 걸로 토론을 해요? 그냥 아무나 쓰지.

-그럼 리혁이는 빼는 걸로.

-아, 왜요. 글씨는 내가 제일 잘 쓰는데.

-저기, 얘들아.

선우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앞에 from을 추가하면 되지 않을까?

-……!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었지만 보고 있던 팬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이윽고 도안이 회사로 넘어가고.

D-4, D-3.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멤버들이 대기실 안에서 바깥에 있는 팬들을 훔쳐보는 장면이나 사인을 연습하는 장면, 팬레터를 읽으며 좋아하는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마침내 D-1.

결과물을 받아 든 멤버들이 기뻐한다.

어설픈 그림이 인쇄된 에코백.

이윽고 멤버들이 그 안에 과자나 포토 카드를 담는다.

회사에 올라오는 여느 동영상처럼 짧은 리얼리티 형식이었지만 그걸 보는 팬들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선물이었다.

사인회에 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게 될 팬들에게까지.

멤버들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저희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들이 기다리는 만큼 우리 또한 당신들과의 만남을 늘 기다리고 있다고.

VCR이 흘러나오는 내내 그 마음이 또렷하게 전달됐다.

에코백은 단순히 매개체일 뿐, 그 과정이 팬들에게 전해 주는 선물인 듯했다.

이윽고 음악 방송의 대기실이 나온다.

-이제 저녁이면 드디어 만나게 되겠네요. 사실, 이 영상이 흘러나오는 동안에도 저희는 문앞에서 기다리는 중일 거예요. 이제 들어갈 텐데, 저희가 들어가면 반겨 주실 거죠?

팬들이 출입구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우리 웃으면서 만나요.

-만나요!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VCR이 남긴 여운이 사방에 뭉게뭉게 떠돌고 있을 때, 불꽃놀이의 청량한 전주를 배경으로 문이 열렸다.

등장하는 다섯 멤버들.

뉴블랙과 팬들이 두 번째로 가지는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2